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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됭의 마귀들림 - 근대 초 악마 사건과 타자의 형상들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6
미셸 드 세르토 지음, 이충민 옮김, 이성재 감수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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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빙의'라던가  악마라는 말이 아닌 "마귀들림"이라니, 생경하게 다가오는 제목이다.

이 책의 맥락에서 악마 사건은 마녀 사건(혹은 마법사 사건)과 마귀들림 사건을 포괄하는 용어(p11)라고 미주가 달려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단순히 대규모 마귀들림 사건에 따른 구마의식에 대한 보고서일 것인가?

그 시작은 그렇게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마귀들림이 시작된다. 그것도 대규모로, 그것도 수녀원에서. 이 엄청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권력들이 루됭으로 집결한다.

재판이 시작되고 모든 증거와 취조의 과정을 제출된, 혹은 발견된 문서들을 중심으로 사건의 진행을 보여준다.

 

초현실적인 심령의 문제 혹은 신앙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역사"의 문제이며 "헤게모니 싸움" 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미 권력을 갖고 있는 세력들에 의해 꾸며지고

감추어지며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보여지는 연극처럼 말이다.

그들이 정말 마귀들림의 대상이었고, 실제로 마귀에 들려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귀의 언어와 체계를 흔들어 비로소 그들의 의도를 알아내고 구마의식을 통해 조종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다수 시민들의 언어와 체계를 흔들어, 그들을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한 성동격서의 전술은 아니었을까? 요즘 말로 해서 '물타기' 같은..

 

# 2.

(성 앙투안의 유혹-환영은 세계에 관한 주체의 생산물인 동시에 세계에 관한 주체의 자각이라는 위험한 양면성으로 규정된다)

 

이상한 것들은 보통 우리 발밑에서 은밀히 돌아다니게 마련이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기만 하면 이들은 홍수라도 난 것처럼 곳곳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 사회를 위협하는 어떤 힘이 덮칠 기회를 노리며 웅크리고 있다가 사회의 긴장 상황을 틈타 잠입하는 것이다. (-) 그 힘은 울타리를 부수로 사회의 배수로를 범람하고 길을 뚫는다. 나중에 물이 빠지면 그 길 끝에는 다른 풍경, 다른 질서가 나타날 것이다.

이는 이질적 요소의 침입인가 아니면 어떤 과거의 반복인가?  (p9)

악마의 발현이라는 위기 상황은 한 문화의 균형이 깨졌음을 폭로하는 한변 그 변화 과정을 가속화하기도 한다.

 

'마귀들림'은 루됭을 다섯달동안 짓밟은 흑사병의 후속탄이었을지도 모른다. 수녀원에서 유령이 처음 '출현' 하는 것은 1632년 9월 말, 루됭에서 흑사병의 마지막 사례가 보고된 시점의 일이다.

집단적 마귀들림의 발현과, 신학과 과학과 왕권의 서로 다른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저마다의 치밀한 설전과 증거의 제시. 이 치열한 과정을 작가는 한 발 물러서서 하나씩 짚어가며 기술해낸다. 마치 잘 짜여진 연극을 관람하는 날카로운 관객처럼 말이다.

 

누가 누구에게 마귀들렸는지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마귀들림에는 '진실한' 역사적 설명이 없다. (-) 마귀들림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악마에서 국가이성으로, 악마학에서 독실한 신앙으로 이동한다. 이 필수적 작업의 과정은 끝이 없다. (p383)

 역사의 형태로 보면 이는 사실이다. 마귀들림의 시대는 죽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역사 서술의 구마의식은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인식론적, 사회적 규준들의 불확실성과 그러한 규준들을 확립할 필요성 때문에 루됭에서 가동된 메커니즘은 오늘날에도 다른 '마법사들'을 상대로 찾아볼 수 있다. 여전히 어떤 그룹은 마법사들을 축출함으로써 자신을 규정하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특정 시기에 결부된, 즉 종교적 규준에서 정치적 규준으로, 우주론적 , 천상적 인간관에서 인간의 시선에 의해 분류되는 자연물들의 과학적 체제로 이행하는 시기에 결부된 루됭의 마귀들림 사건은 (-) 옛날의 악마 사건과는 달라도 그에 못지않게 우려스러운 타자의 새로운 사회적 형상들이 떠오르자마자 제기되는 문제를 향해 길을 열어준다.(p384)

 

# 3.

참 방대한 자료의 시기적 나열이라고 보아도 좋다. 진행 방향에 따라, 진행 순서에 따라 수집된 자료들을 배치하고 그 연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루됭의 마귀들림이 일어난 시기의 유럽의 정치,사회적 불안정성과, 신학,과학,왕권의 서열다툼의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자료의 나열이 무슨 흥미가 있으며 어떤 몰입도를 가질 수 있을까 싶지만, 이 책은 진짜 마귀들린것이 분명하다. 그 촘촘한 사이사이의 긴장감 마저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보여지는 것이다.

루됭의 높은 곳에서 항공뷰로 내려다 보고 , 로드 뷰로 사방을 돌아가며 보듯이 말이다.

과거 교회가 갖고 있던 권력을 수호하려 하다보니, 구마의식은 점점 더 스펙타클 해지며 연극화가 강해진다. 이 연극화는 어떤 중단의 산물이고 상실의 부인의 증후이다. 권력의 재현은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 - 혹은 이미 잃었다는 불안-을 드러내다 보니 더욱 극적이 된다.

그들의 언어와 체계의 혼란을 새로운 언어와 체계로 대체해 나가는 과정이므로 더욱 치밀하고 절박할 수 밖에 없진 않았을까?

 

# 4.

 

어떤 세력이 정치 사회적으로 주도권을 쥐고자 한다면 전략적으로 기존의 판을 깨고 새로 판을 짜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전의 판은 자신들의 언어로 말해지고 읽혀지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들의 언어를 알리고 체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크고 확실한 판을 짜야만 한다. 쉽게 말해 난장을 쳐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판은 자신들이 뛰어들어가 주연이 되는 판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조력자의 모습으로 정당성만을 획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권력의 지팡이를 들어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연극은 배우들이 해야한다. 배우가 사회적 파급력이나, 궁금증을 유발하는 다수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신분이라면 더더욱 좋은 일이다. 그런 이들을 섭외해야 한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서 한번에 상황을 제압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파급력을 갖는 것은 없을테니 말이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아직도 마귀들림은 진행중이다.

우리는 어쩜 이데올로기라는 마귀들림을 겪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단되어진 상황에서 저들의 언어로 대답하지 않는다고 "마귀들림"판정을 내리고  혹독한 구마의식을 거치며 자신을 놓아버리도록, 자신의 언어를 잊어버리도록 하는 것은 아닌지..

구분짓고 나누며 자신의 언어를 앞세워 타인의 언어를 종속시키고 그로부터 주도권을 빼앗는 것은 아닌지..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아타(我他)의 역관계가 힘의 논리로만 풀리는 것이 아니란걸 알텐데도, 지금 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요란하기만 하지 어떤 해결책도 내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사회.

어쩜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마귀는 광폭한 매카시즘이 아닐까?

스스로 구마사이자 마귀들린자를 1인2역 하려는 상황 속에서 타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 그저 순순히 저들의 언어에 익숙해지라고만 한다.

 

#5,

참 재미있는 책인데..어찌 정리해야할 지 모르겠다.

너무 방대해서..

카톨릭이나 중세에 대한 이해가 많으면 좀 더 수월하고 깊게 읽힐 것도 같다. 대천사와 마귀의 급을 비교하는 부분도 재미있던데..

 

여튼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이런 책은 좀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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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고독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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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갈색의 표지를 벗기면 연한 핑크빛의 표지를 만나게 되는 책이다.

슬픔의 색 밑에 감추어진 애틋한 색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알리체와 마티아, 제 속에 상처를 품은 두 청춘의 세상과 호흡하기, 혹은 고독과 화해하기.

 

#1. 소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자연수를 가르친다. 정수의 개념과 유리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친숙하게 보았던 자연수를 가르치는 것이다.

-자연수는 뭐지?

-일,이,삼,사, 오,육,칠,팔....

아이들은 큰소리로 교실이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하나라도 더 대답하려고 얼굴이 빨개지고 목엔 굵은 핏줄이 보일만큼 큰 소리로..

-그래, 그게 자연수야. 그런데 이 자연수도 몇가지로 나누어지지. 어떤 기준에 따라? 약수의 갯수에 따라 나뉘게 된다.

약수가 하나인 1, 약수가 두개뿐인 수, 즉 1과 자기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수 소수, 그리고 세개 이상의 약수를 갖는 합성수로 나눌 수 있어.

-왜요? 왜? 왜 나눠요? 그냥 자연수해요. 자연~스럽게~!

-글쎄 왜 나눌까? 그냥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놔둘일이지. 쨌든, 자연수는 이렇게 세분할 수 있어.

자, 그럼 하나만 묻자. 자연수는 소수와 합성수로 나뉜다. 맞나?

-네~!

-아니, 틀렸어. 1을 빼먹었잖아. 자연수는 1과 소수와 합성수라고 했지? 다시 묻자.

모든 소수는 홀수다. 맞나?

-네? 아닌가?

-틀렸어. 2가 있잖아. 가장 작은 소수 2. 2는 짝수지?

-아..헷갈려요.

소수를 걸러내는 건 다소 귀찮은 일이다. 고대 에라토스테네스는 1 빼고, 2의 배수 지우고, 3의 배수 지우고, 4의 배수 지우고...이런 식의

과정을 통해 소수를 골라냈다. 이것을 에라토스테네스의 체 라고 부르기도 한다. 굳이 소수를 분류하는 이유.

소인수분해를 하기 위해서다.

소인수분해는 어떤 자연수를 소수의 곱셈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 숫자가 가지고 있는 구성성분을 밝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소인수분해를 통해 어떤 수가 가지고 있는 약수의 갯수까지 우리는 알아낼 수 있다.

수를 쪼개고 쪼개고 쪼개어 , 더 이상 쪼개어 지지 않는 수에 이르러 그것들의 곱으로 나타내는 방식.

어쩌면 이 과정은 자신의 삶을 쪼개고 쪼개고 쪼개어 제 삶의 제일 작은 단위와 마주하게 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내 삶은 아주 흔한 100이야. 라고 말해버리지만, 실은 2의 제곱과 5의 제곱으로 이루어졌으며,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이도 가지고 있을 소수인 인수,

즉 소인수 2,와 5를 품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는건 아닐까?

 

세상을 보게 될 시점에 내가 품었던 나의 고유 숫자, 기본 숫자, 바탕이 되는 숫자, 오직 1과 "자기자신"일 때만 분해를 허락하는 숫자 "소수"를

나는 기억하고 있는가?

 

#2. 알리체.

스키를 강요하는 아버지, 그것을 벗어날 길은 없다. 자꾸만 뒷걸음질 치게 되는 알리체에게 닥친 사고. 덕분에 더 이상 스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불편한 몸과, 상처입은 마음이 거부하는 거식의 습관만 뺀다면 어느 정도는 타협할 수 있는 삶 아닌가?

 

"그녀는 어떤 행동을 하든 결코 돌이킬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늘 확고해 보여야 한다는게 끔찍했다. 알리체는 마음 속으로 그것을 '결과의 무게'라고 불렀다.(...) 열다섯 살다운 생기발랄함을 원했지만 그것을 손에 넣으려 애쓰는 사이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달아나고 있다는 데 생생한 분노가 일었다. 결과의 무게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녀의 생각들은 점점 더 빠르게 소용돌이치며 그녀를 조여왔다.(p119-110)"

 

"그녀는 이 몸이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면 파괴할 수도 있고, 흔적이 남을 정도로 망가뜨릴 수도 있고, 어린아이가 장난삼아 꺾었다가 땅바닥에 버려 시들어가는 꽃처럼 비쩍 마르게 내팽개쳐둘 수도 있다고..(p142)"

 

비올라의 파티에서 마티아를 만나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결과의 무게에 짓눌려 빛나는 시간 밖으로 밀려나가거나 혹은 스스로 뒷걸음질치며 걸어나온 알리체의 시간과 고독은 회갈색의 낡은 테이블보 같았을까?

 

내 다리엔 작은 화상자욱이 남아있다. 아마 알리체가 갖고 있는 걸음걸이의 원인과 닮았을까?

잦은 전학으로 나의 어린 시간은 늘 낯선 것들과 마주서야 했다. 아이들의 이름을 외워갈 즈음에 또다시 전학을 가게 되고, 6년의 초등학교 기간동안 나는 여덟번의 전학을 다니게 되었다. 생활기록부에는 더 이상 학교 이름을 적을 공간이 없어 덧댄 종이가 달려있었다.

끔찍한 가난은 한 곳에 머물러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이곳, 저곳을 전전하게 되었었다.

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훑어내리는 아이들의 시선이 싫었다. 익숙해지는 것도, 친해지는 것도 싫었다. 친해진다는 건 떠나게 될 시점에서 아주 귀찮은 조건이 되어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큰거리는 콧등이랄까, 조절되지 않는 눈물따위가 말이다.

어느 날, 엄마는 조심스레 이사 이야기를 하셨다.

이번 학교에서는 전학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헤어지고 싶지 않은 아이가 있었던게다. 끔찍하게도 말이다.

다음 날, 언제나처럼 혼자 챙겨먹는 저녁. 석유 곤로 위에 끓고 있던 냄비를 맨 손으로 들었고, 곧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리에 쏟고 말았다.

이웃의 아주머니가 달려오시고 소주를 붓고 물을 붓고, 젖은 바지를 벗겨내는 동안, 화기에 뜨거움보다 잠깐이라도 걷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더 컸다.

전화를 받고 엄마가 달려오실 즈음, 나는 인근의 병원에서 두 다리 모두 붕대를 감고 누워있어야 했다. 수포가 일어나고 상처가 깊어질 수도 있다고

침대에 붙어 있던 "절대안정, 이동금지"의 표지는 흐뭇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여덟번째 학교에서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치마를 입지 않는 여자아이로 자라났다.

교복 치마 밑으로 드러나는 화상자욱이 너무나 선명했으니 말이다.

말수가 적고 혼자 생각하고 읽고 무언가 자꾸만 끄적이게 된 것도 그 때 이후이리라.

 

알리체의 상처, 혹은 나의 상처, 저마다의 결과의 무게일게다.

 

#3. 마티아.

쌍둥이 남매 미켈라와 마티아. 모든 것에서 부족하고 놀림거리였던 미켈라와 뛰어난 마티아. 미켈라때문에 자꾸만 위축되는 마티아는 친구의 생일 초대를 받던 날, 공원에 미켈라를 두고 간다. 잠깐 다녀오겠노라는 말과 함께,

천진한 표정의 미켈라. 결국 돌아온 마티아는 미켈라를 찾아내지 못한다. 잃어버린 쌍둥이 반쪽.

그 죄책감이 마티아로 하여금 자꾸만 자해를 하게 한다. 상처가 쌓이고 쌓여 감각조차 모호해진 마티아의 손, 마티아에게 상처는 미켈라이다.

알리체를 만나게 되고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어 진다.

수학적으로 탁월한 마티아.

 

"2760889966649 그는 뚜껑을 다시 닫고 펜을 종이 옆에 내려 놓았다. '이조 칠천육백팔억 팔천구백구십육만 육천육백사십구' 그는 큰 소리로 그 수를 읽었다. 혀가 꼬일 만큼 복잡한 문장을 입에 완벽하게 익히려는 것처럼 한 번 더 작게 중얼거렸다. 마티아는 그 수를 자기 것으로 정했다. 세계 역사를 통틀어 어느 누구도 그 수를 생각해본 적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마 그 순간까지 그 수를 종이에 적어본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소리내어 읽은 이는 더더군다나 없었을 것이다.(...)  2760889966651 이라고 썼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알리체거야. (...)

이 두 개도 쌍둥이 소수일지 몰라. 마티아는 생각했다. (p176)"

분석하고 증명하고 계산하는 것으로 명확해지는 것을 원하는 마티아. 그에게 알리체는 증명되지 않는 명제였을 것이다.

마티아 자신이 소수라는 전제하에 출발했으므로 알리체는 알리체로만 존재하고, 알리체로만 분해 가능한 소수여야 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 조차 마음을 열지 못하는 마티아의 상처와 고독은 어느 것으로도 증명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이 그 매듭을 풀어낼 수 밖에 없다. 마티아 자신이 소수이니 말이다.

 

#4.모든 소수의 제곱은 세개의 약수를 갖는다.

같은 수를 두번 곱하는 것을 제곱이라고 한다. 제곱수가 되면 처음의 수보다 훨씬 많은 약수를 갖게 된다.

하지만 고집불통 소수의 제곱수는 단 하나의 약수를 늘리는 것으로 약수의 갯수를 한정짓고 만다. 똑같은 소수를 두번 곱해보아야 하나의 약수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구성 성분을 늘려가는 것으로부터 고독으로부터 걸어나오는 한 걸음이 시작된다는 듯이, 조금씩 늘어나 주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

우리는 저마다 소수로 태어났을게다. 오로지 자기자신으로만 대변되어지고 증명되어지고 명제화 되어지는..

그러나 조금씩 곱해지고 채워지는 커다란 숫자로 살아내는 건 아닐까? 그 시작에 "나"라는 소수를 품은 삶의 숫자는 조용히 불어나고 있을것이다.

자신의 수가 무엇인지 잊지만 않는다면, 제 속에 품은 고독의 온도가 어떤건지 안다면, 제 상처가 얼마나 단단한건지를 안다면 세상을 살아낸다는건 절반의 증명을 마친 수식일지도 모를일이다.

 

 

소수는 오직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진다. 소수는 모든 수가 그렇듯 두 개의 수 사이에서 짓눌린 채, 무한히 연속하는 자연수 안에 고유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다른 수도다 한 발 더 앞서 있다. 소수는 의심 많고 고독한 수다. (p173)

 

#5. etc

살아간다는 건, 상처를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헐벗은 채 나온 세상에 부딪히며 살아낸다는 건 무수한 싸움과 경쟁, 그리고 사랑이라 불리우는 간사한 혀에 속지 않도록 단단히 무장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나를 흔드는 가장 강력한 힘인 절제되지 않는 감정과 감상, 무시무시한 관념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단해져야했다. 단단해 지는데는 상처를 입는 것 만한 것이 없었다. 상처가 난 자리는 언제나 단단했다. 다른 어떤 곳보다 무뎠으며 다시 상처입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와의 싸움은 늘 그렇게 치명적이며 극단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라는 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저주인지를 알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끝없는 고독의 나락에서 허우적대다 비명을 지르라는 저주에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나를 이길 이유는 없다. 언젠가도 그랬다시피 세상과 싸움에서 가장 든든한 내편은 "나"다. 나와 싸우지 말자.

마티아에게,혹은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

{수학의 본질은 자유로움에 있다 (Cantor.G 1845~1918}고 말한 칸토어의 명제는 기억할 만 하다는것.

내가 수학에 빠져드는 것 또한 자유롭고 싶어한 욕구였을지도 모를거라는 고백.

한 없는 거듭제곱으로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의 주인이고 싶다는 외침은 아니었을까? 마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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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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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1.

알츠하이머..내 머릿속의 지우개..손예진..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앓게 되는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이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라는 말로 시작된다.

살인이라는 것이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으로도 가능하다는 것.

얼마나 매력적인 가정이란 말인가. 복수도, 치정도, 재물도 아닌 한 사람의 판타지를 만족시켜 주는 살인이라니..

사실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살인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소재가 아니던가? 익숙할 법도 하다. 대략 몇가지의 사건들과 메멘토 같은 영화를 접목시켜 가이드라인을 미리 정해보기도 한다.

익숙하기에 더 호기심이 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익숙한 그림에 눈이 가듯 말이다. 결국 다른 그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럼 그렇지' 하게 되는 .. 익숙한 것에서 시작하는 반전이 흥미로운 까닭이다.

낯선 것에서 일어나는 낯선 반전은 밍숭맹숭하다. '아..이게 반전인거야?' 하는 맹추같은 소릴 해야하니 말이다.

 

 

#2.

좋아하던 드리마의 한 장면.

사건의 단서를 얻기 위해 연쇄살인범과 거래를 한다. 그가 필요한 대답을 회피하자 수사관은 그가 전리품인 사체의 사진이 담긴 앨범을 불태우려 한다. 어떤 회유도 통하지 않던 그는 앨범에 붙은 불을 보고 경악하며 소리친다. "원하는게 뭔가? 제발 앨범만은.."

협상의 우위를 점한 수사관은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고 그에게 앨범을 돌려준다? 아니 돌려주지 않는다. 그럴듯한 말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그의 판타지를 빼앗은 채 돌려보낸다. 차라리 죽이는게 낫다. 그의 자랑이며 행복을 빼앗겨버렸으니 말이다.

 

어쨌든 늙고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범.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과 인물과 환경들의 끝없는 충돌과 오해 사이에서 그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와 나. 모두 어느것이 진실인지 어느 부분에서 마음을 놓아야 할지를 놓치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틀어쥐어도 자꾸만 어긋나는 그의 기억처럼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삐걱거리게 된다.

이 사람은 알츠하이머 환자다.

그의 말을 믿어선 안된다.

하지만, 그는 얼마나 치밀한가.

결국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의 이야기를 믿게 되는 것이다.

 

 

#3.

언젠가 [소년 탐정 김전일] 이라는 만화를 빌려서 본 적이 있다. 너덜해지고 지저분한 책, 그래도 빌려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더러워도 뭐..정말 참을 수 없는 건 시작부분의 말풍선 속에 누군가 무례하게 적어둔 "얘가 범인" 이라는 스포일러.

"아~씨!"

하지만 어쩌겠는가 읽어가는 수 밖에. 읽는 내내 나는 A가 범인이라고 했던 그 암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모든 증거와 정황은 A를 가르키고 있었고, 그가 범인이 아닐 이유가 없었다.

A를 범인이라고 결론내리며 나는 스포일러를 감행한 그 신원미상의 무례한을 한없이 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범인은 B였다.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그 신원미상의 무례한의 말풍선은 다시 등장한다.

"B가 범인이라는 단서를 찾긴했어?"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다시 처음부터 읽는다. B는 느닷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이었고 그의 알리바이는 허술하기 짝이없다. A는 모함일 수 있는 장치들이 있었다. 다 놓친것이다.

왜? A가 범인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신원미상의 무례한 덕분에 정말 흥미진진한 김전일을 읽었다.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김병수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다!

이것이 스포일러일까? 반전의 장치일까?

 

#4.

대다수가 빨리 읽혀지는 책이라 했다.

나의 독서습관 탓이겠지만..나는 빨리 읽혀지지 않았다. 행간에 배치된 내용이 무얼까? 갸웃거리다 사념들에 치여 책장을 덮곤했다. 그의 문체는 힘차고 거침없다.

이렇게 직선적으로 내리꽂히는 강렬함을 마지막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의 내공이며 실력이다. 필력이라 해야하나?

그래서 버거웠다. 어느 지점에서 숨을 돌려야 할지 알 수 없었던것처럼 말이다.

단숨에 읽고 나면 반드시 호흡곤란이 올게 분명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사람과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거라는 것이 내내 든 생각이다.

이건 '시간'의 이야기다. 또한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다.

그래서 쉬이 읽히지 않고 자꾸만 무언가 목구멍에 턱턱 막히는 것이다.

뼈를 다 발라내지 않고 급하게 우물거려 삼키는 갈치조림처럼 자꾸 목에 걸린다.

 

#5.

기억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다분히 기억에 의지하고 살아낸다. 그 기억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조작되어진 기억이라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기억은 늘 긍정적이다. "나는 참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는 귀결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적당한 타협과 재배치를 통해서 ..

물론 아프고 시린 기억들도 존재하긴 한다. 어둡고 악한 것들..그건 단지 해바라기의 그림자의 역할일 뿐이다. 적극적으로 그것을 드러내진 않으니 말이다. 그 또한 몇가지의 그럴듯한 변명을 덧입혀 [좋은 사람]이 되기위한 밑거름 쯤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기억을 믿는가?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아니 최소한 객관적이기는 한건가?

 

묻고, 묻고, 또 물어본다. 자신없는 대답들이 서둘러 준비된다.

제법 진정성이 있었노라 변명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6

처음부터 모두 있었거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에 기댄 채 사라지는 것인가? 기억에 기대어 살아지는 것인가?

 

묻는다. 내게.

묻는다. 네게.

 

#7

무엇을 말하건 새어나가게 될 비밀.

나는 차라리 함구한다. 다만 읽어보라고, 읽되 천천히 숨은그림 찾기를 하듯 읽어보라고 귀뜸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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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문학동네 시인선 38
오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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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요즘 호흡이 딸리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얇디 얇은 시집 하나 읽어내는 데 이렇게 숨이 가쁜것일까?

아니면, 읽을 책을 선택함에 있어서, 계획없이 마구잡이로 읽어대는 습관때문인지도 모를일이다.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술 좀 하세요?

그럴때 아주 요상한 대답을 하는 이가 있다.

-아..전 술 못해요. 그냥 그 분위기가 좋아서, 술 마시고 서로 이야기하는게 좋아서 끝까지 따라가긴해요.

이 무슨 민폐 찜쪄먹는 소리란 말인가? 나는 이런 사람이 정말 싫다. 서로 느끼는 흥의 농도가 조금씩은 다를 수 있지만, 색은 맞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나는 자꾸만 취해서 총천연색의 흥이 나오고 있는데, 그래서 이색인지 저색인지 구분도 안되고 있는데, 저는 마주 앉아 또렷이 색을 구분하고 있으니 말이다. 취하는 것도 예의일게다. 특히나 분위기가 무르익을때는..

분위기란 어떤것일까? 어떤 분위기를 말하는 것일까? 시작은 그랬다.

 

나는 <오 은> 이라는 사람이 쏟아놓은 퍼즐을 주워 담고 이리 저리 맞춰도 보곤 한다.

가장 자리부터 맞추어 보는것이 퍼즐 맞추기의 정석. 근데 이 사람 무척이나 주도면밀하다. 퍼즐의 모양이 고정체가 아닌 유동체다. 어디에 놓든 저마다 필요한 모양으로 들어앉아 있다.

-여긴가?

-네, 여기 맞아요~

-아닌데? 여긴가?

-여기도 맞아요.

-어떻게 그래? 여기면 여기고 저기면 저기지?

-아, 꼭 그래야 하나요? 여기도 되고 저기도 되고 ..

이런 식이다. 문제는 이런것이 짜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체크메이트 상황인데도 슬슬 웃음이 나오며 묘책이 있겠지? 어디지? 어디야? 하고 찾게 되는 것이다. 이런..

 

책 하나를 읽는데 국어 사전을 옆에 끼고 읽어야 한다는것, 내가 알고 있는 한 단어 한 의미의 저열한 의미조합으로는 도저히 풀어내지 못한다는 것, 블록버스터 버금가는 다양한 '말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 마치 사방에 활자가 붙어 있는 디스코 팡팡을 타는 기분이다. 시작~하는 순간 여기 저기서 떨어져 내리는 유동성 활자 퍼즐을 머리 산발한 채 숨 헐떡이며 그러나 신나고 재밌게 들어올려보고 던져보고 하는 놀이같은 책읽기 말이다.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이 이름을 다 제대로 부르려면 오래 들여다 봐야겠다. 이름 부르는 동안 날아가지 않기..>

 

"인과율", "부조리"  "Ratman" 등은 많이 인용되기도 하는 듯 하다.

나는 그의 <베이스>에 꽂혔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읽어 본다.

 

[ 베이스 ] -- 오 은

 

나는 던진다.

너는 때린다.

 

출발이 불안하다

 

나는 재빨리 줍는다.

그리고 던진다.

너는 약빨리 달린다.

그리고 미끄러진다.

 

너는 살아남고

당분간 우리는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중략., 미안하게도 길다..)

 

우리는 불안하고

우리 사이에 그가 끼어들 자리는 충분하다.

 

담장과 손잡고

나를 좌절시키는 법을 알고 있다

 

너는 나를 지나치며 휘파람을 분다 나중에

은밀한 곳에서 그와 진한 포옹을 나눌지도 모른다

 

환호성이 소음으로 변하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밤 집에 가는 길엔 조심해야겠다.

 

그런데 너는 대체 며칠만에 집에 들어왔는가

나는 등 돌려 널 맞이할 준비가 아직 안 돼 있는데

 

(한 번 더 중략)

 

언제든 갈라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우리는 속으로 아웃을 크게 외치며

서로를 잠시 노려본다.

 

수년간 쌓아왔던

우리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

이 분위기는 뭔가?  baseball을 끌어들여 서로간의 base가 허물어지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가?

기초 base.  여기까지 이해하고 혹시나 해서 뒤적여 본다. 이런..base는 비도덕적인, 야비한의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이럴 줄 알았다. 그래야 좀 더 처절한 맛도 나고 좀 더 이해도 되고 하지 않겠는가.

 

내내 이 사람은 천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적절한 언어의 조합과 분해 배치, 그게 의미일 때도, 끊어읽기 일때도, 리듬일때도 제각각 다르다. 천재가 아니라면 타고난 놀이꾼이다.

 

물론. 읽다보니 어느 순간 익숙해져서 <이것은 파이프다> 에선 나름 추리를 해보기도 했다.

"이것은 참이다" 라고 읽는 순간, 참? 명제인가? 그렇담 가정과 결론, 증명의 과정이 나오겠군, 가정? If? 설마? 아냐 가능해. 이건 If가 나올 타이밍이야. 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발랄하지만 가볍지 않고, 유쾌하지만 천박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까지 하려면 얼마나 쓰고 다듬고 던지고 받고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괜스리 '나는 이만큼 고뇌했소~' 대놓고 무게땅 잡는 것에 비하면 백만배는 맘에 든다. 문제는, 독자가 너무 괴롭다는거다.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독자의 자존심이란 것도 있는거다. 이렇게라도 핑계가 될만한 것을 걸어두지 않으면 안될것 같다. 왜냐하면 언젠가 꼭 다시 읽을게 분명하니까 말이다. 빠른 시간안은 아닐것이다. 저 오렌지색이 노랗게 되기 전엔 다시 보겠지.

 

 

오렌지색 책, 그 안에 쌓인 활자들이 은하수처럼 와르륵 쏟아져 내리는것 같아. 하지만 일부러 받아두진 않을생각이다. 어차피 제멋대로 일건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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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 내 취향대로 살며 사랑하고 배우는 법
김경 지음 / 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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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책 하나 읽는 데 다른 이들보다 오래 걸리는 사람인데, 이 책은 정말 오래도록 읽었다.

노란 표지위에 제목을 담은 검은 실루엣이 " 읽어낼 수 있겠어?"라고 살짝 시건방을 떠는것 같았다면 오해일까? 이 책을 표지의 유혹으로 구입해서 읽은 사람이 생각보다 꽤 많을 거라는데 한표 행사하고 싶다.

 

작가의 취향은 참으로 독특하고 독창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혹은 내가) 잘 모르는 fashion으로부터 사랑과 life style, 급기야는 사회적인것까지 다양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사실, 조금은 자신의 지적 수준과 정보의 양을 과시하며 나는 이렇다, 하는 류의 글은 멀미가 날 정도로 많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되묻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처음 love,와 fashion의 꼭지에서 나는 살짝 지루했다. 저마다 드라마틱한 사랑의 사건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그것이 잘 포장되어지고 구석구석 닦아내어지지 못해서 그렇지 그 질량과 농도는 어슷비슷할테니 말이다.

또 fashion은 문외한이다. 이제까지 여성잡지라곤 미용실에서 내어주는 것도 읽지 않고 살았는데, 느닷없이 fashion 이라니. 아는만큼 보인다 하지 않던가? 아는게 없어 보이는것도 없다.

 

"고다르의 여자처럼 입고  싶다!" 이 대목에서 부터 내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고다르라니..내가 아는 그 고다르? <카르멘이라는 이름> 을 보며 나는 이 남자에게 얼마나 큰 호기심을 보였는가?

횡단보도를 안심하고 건너는데 강렬한 라이트와 함께 내 엄지 발가락 앞을 쏜살같이 지나쳐 가는 엄청나게 어이없고 충격적이며 그 가운데의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자동차와 맞닥뜨린것처럼 말이다.

그후 작가의 시선을 <순진> 하게 따라가보기로 한다.

 

김경이 이끄는 대로 책 속을 떠다닌다.

내가 알고 있던것들을 이 사람은 잘도 끄집어낸다.

"너도 이거 알지? 나도 아는데 말야..내겐 이런 경험이었고, 이런 의미였으며 앞으로는 이렇게 될것도 같아."

혹은 내가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거..이렇게 연결시켜보면 어떨까? 이건 내 생각인데, ,,싫음 말고.."

 

꼬물꼬물 적어내기 시작한다. 글씨가 참 그렇지만,,그래도 오랜만에 손글씨 나쁘지 않다.

 

 

중간 쯤 읽었을때, 나는 사실 이 책을 다 읽어낼 수 있을까? 반문했다.

한 꼭지를 읽다가 다른것으로 자꾸 호기심이 옮겨가고 있으니 말이다. 밥딜런과 존 바에즈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이층 창고에 박혀있던 그녀의 앨범을 찾아내기도 한다. Donna Donna 한 곡을 듣기 위해 여덟번의 튐을 견뎌내야하는 그 판을 말이다. 그것도 부족해 김민기 ,한영애와 Janis Joplin 까지 자발적(?) 으로 다시 듣기 & 추억하기를 해내고 만다. 한 꼭지 읽고 사나흘을 혼자 쑈하고 있었던게다.

 

 

 

이렇듯 작가의 글에 등장하는 사람과 책과 음악은 때론 우아하게 때론 세속적이게 서로 맞물리며 무언가를 자꾸 메모하게 한다. 이미 사둔 책들은 다 어쩌라고????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거의 이주일이상 들고 다닌듯 하다. 다 읽었을까?

아니 아직 마지막 장을 덮지는 않았다. 이 긴 시간을 책 속에서 책 밖에서 나를 분주하게 만든 작가에 대한 복수(?)일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쯤 다 읽을 것 같소? 하고 말이다.

 

많은 부분에 작가의 시선에 동의 한다.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어쩔건가 멱살잡이는 할 수 없지 않은가? 어쨌든 작가의 취향이고 내 취향이니..

 

한마디.

<진정한 재능이란 열정을 지속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능력>(p204) 이라고 적힌 대목에서 한참 읽기를 멈추었다.

나의 재능이 뭘까? 라고 고민하는 누군가 있다면 손바닥에 적어주고 싶은 말이다.

 

 

오래 걸려도 좋으니 징검다리 건너듯 뛰어다니며 퍼즐 맞추기 혹은 지적 사치를 누리고 싶다면, 이책을 권하고 싶다. 어떤이는 금방 (내 옆자리에 있는 쌤) 읽고 "좋네" 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오래도록 끼고 싸워가며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런데?"

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아, 작가가 끌린다는 패배자. 사실은 신인류일게다.자신의 세계를 꾸려나감에 주저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고단하기만 한건 아닌, 삶을 즐기는 신인류말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따위는 하지 말자. 세상이 내게 결투를 신청하는 판에 나는 죽으나 사나 내편이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젤 쓸데없는 짓이 자신과의 싸움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남겨진 부분에서 딱 한페이지만 읽고 덮는다.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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