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이 번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나오고 고발이 진행되고 마치 전쟁터가 된 것 같다.

피해자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스스로 상처를 헤집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패닉.

한 검사의 고발에 나는 망연해졌다. 어느 시인의 이야기에 역겨웠고, 어떤 예술인의 고백에 한참을 울었다.

비슷한 상처. 누군가는 깊이 베이고 찔렸으며 누군가는 슬쩍 스쳤을 수도 있지만 같은 무기에 의한 상처를 품은 이가 너무나 많았다. 어쩌면 이런 상처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알 수도 있는 사람. 페이스북 뉴스피드 사이에 뜬 프로필과 이름들 속에서 알 수 밖에 없는 사람을 보았다.

한 겨울에 맨발로 뛰쳐나가 밤새 거리를 방황하게 했던 선배. 그 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자기를 거절한 댓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눈에 힘을 주던 선배. 동기들은 발설하지 말라고 했고, 선배의 친구들은 세상 사는 법을 모른다며 힐난했다.

그 때, 자취방에 틀어박혔던 나는 이러다 죽지 싶어서, 이러다 죽이지 싶어서 오래도록 두려워했다.

그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고 그 기억은 딸아이를 단단히 단속하는 것으로 발현되었고, 아들녀석을 감시 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 때는 세상이 그랬으니까, 유교적인 전통이 있어서..남존여비가 팽배했잖아 따위의 말같지 않은 말들을 들었다.

그런가?

성폭력을 당한 남자는 없냐고 누가 그랬다. 있겠지. 있을 거다.

이 터져나오는 사태는 젠더의 문제라기 보다. '권력'의 문제다. 지배와 소유의 문제며 불평등과 억압의 문제다.

남자는 여자와 달라서 따위의 말로 퉁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거다.

 

선배는 안정되어 보였다. 예전보다는 덜 날카로워 보였지만 여전히 단단한 눈매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전체적으로 '안녕'한 것 같았다.

비슷한 이름만 들려도, 비슷한 뒤통수만 봐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소름이 돋는 건 내가 예민해서만은 아닐거다.

결국 도망을 쳤음에도 이렇게 데인 상처를 만지듯 소스라치는데, 도망조차 치지 못했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무력감은 얼마나 치명적일까.

 

누구는 음모라고도 한다. 누구는 벌써 지친다고 한다. 누구는 여자들 무서워서 회식도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는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 인식하고 있을 수도 있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선배의 '안녕함'을 발견한 이후로 일상이 진정되지 않는다.

책도 읽히지 않고, 생각도 모아지지 않고, 일도 자꾸 까먹고, 멍하니 먼 곳만 보게 된다.

그 때, 어두운 방에 허깨비 처럼 앉아 마른 울음을 삼키던 그 여자애처럼 자꾸 시선을 잃는다.

 

힘겨운 싸움이 될거다. 아니라고 발뺌하고 윽박지르고 조롱하며 2차, 3차의 피해들로 협박할거다.

이건..'권력'의 싸움이니까.

이젠 숨지 않아야 할텐데. 상처는 자꾸만 벌어지는데 꽃 같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어째서 당신들은 '안녕'한 건지..자꾸 되묻고 싶다.

그래도 되는거냐고?

'안녕'할 수 있냐고?

 

책을 사 놓고 읽지 못하는 시간이 자꾸 길어진다.

하루 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것 같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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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07 2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펜스 룰‘은 남성이 ‘착한 남자‘로 스스로 규정하는 수사입니다.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를 상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남자들은 자신을 ‘성폭행, 성차별과 무관한 남자‘로 드러내는 것이죠. 펜스 룰은 여성 운동의 본질을 흐려뜨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