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민중사
문익환 지음 / 정한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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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올림픽이 한창이다. 남북한 단일팀이 구성되고 한반도 기가 펄럭인다. 북의 공연단이 공연을 했고, 고위 간부들이 방한했다. 분단과 전쟁의 위협만이 살길인 자들은 평화의 의미를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었지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통일'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게도 되었다.
통일 논의, 통일.
북한의 사람들은 얼굴이 빨갛고 머리에 뿔이 달렸을거라 생각했던 유년의 나는 대학생이 될 때 까지 '통일' 이라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남한 사람을 보면 죽창을 찌르고 목을 따버린다는 그들이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통일은 책에나 있는 단어였고, 의연한 척 내뱉는 단어였다.
불쌍한 사람들을 품어야 한다는, 내 민족 한겨레 라는 내재된 의미따위는 없었다.
통일은 불가능한 희망사항이었다.
하지만 지금, 북의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고 어색하지만 웃음을 나누기까지 통일논의가 싹을 틔우고 줄기를 세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그 한 가운데 '문익환'이라는 이름이 있다.
통일을 이야기할 때면 늘 선생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어떻게 해서든 통일을 일구는 씨앗이 되겠다 작정한 그 형형한 눈빛이 말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히브리 민중사'가 그가 세상에 온 100주년을 기념하여 복간했다고 했다.
초판이 세상에 나왔을 때, 변변하게 책 한 권 사 읽을 수 없었던 나는 '하루만 빌려주면 안돼?' 라며 책을 가진 친구에게 부탁했고 하루만에 다 읽어야 했다. 순식간에 읽어낸 책. 정확히 기억되는 부분은 없었지만 가슴이 뛰었고, 예언자들의 이야기에서 수많은 열사들의 얼굴이 스쳤다.
책을 덮고 긴 한숨을 몰아쉬며 울었던 것 같다. 우리의 투쟁들이 우리의 바람들이 기어이 이루어질 날이 있겠구나.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거다.

히브리 민중사는 단지 그들의 역사가 아닌 작금의 우리들과 닮아있다. 궁중사가들의 번지르르한 지배자의 서술을 뒤엎는 민중의 시선, 예언운동의 본질. '해방'이라는 말의 뜨거움을 온전히 읽게 된다. 생전에 선생이 강연하시던 모습이 떠오를만큼, 요즘 말로 '음성지원'이 되는 듯한 책을 온전히 내 것으로 붙들고 읽었다. 사흘에 걸쳐 천천히 읽어내며 마음을 다잡는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2018년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들에게 위로처럼 격려처럼 읽히는 것이다.
통일을 자꾸 미루며 자신들의 이익셈법에 몰두하는 정치인들과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려는 강대국들의 속셈과 아직도 건재한 국가보안법, 삶의 터전인 땅을 더는 돌볼 수 없는 농민들과 현장을 떠나 높은 굴뚝에 오르고 거리에 노숙을 하는 노동자들, 한데로 밀려나 목소리 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 이 모두 히브리의 민중들과 닮아있는 것이다.

뜨거운 사랑으로 싸우고 울었던 호세아.
온몸으로 사랑이었던, 온몸으로 예언자였던 호세아( p 207)
호세아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목사님의 모습이 자꾸 겹쳐졌다.
발바닥으로 살겠다던 목사님의 음성과 표정이 살아오는 기분.
어쩌면 이 끔직한 세상을 더는 볼 수 없었던 하느님이 '가라!' 명하신 예언자는 아니셨을까? 그 명령에 온마음으로 복종하신 건 아니었을까?
사람을 사랑한 인생이 그대로 아픔인 민중들을 사랑한 선생의 이야기가 히브리 민중들을 투영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거룩한 신으로 너희 가운데 와 있지만
너희를 멸하러 온 것이 아니다.
이 백성은 사자처럼 소리치는 나의 뒤를 따라오리라.
내가 소리치면
내 자손은 서쪽에서 달려오리라.
에집트에서 참새처럼 날아오고
아시리아에서 비둘기처럼 날아오면
나는 내 백성을 저희 집에 살게 하리라.(호 11:8~11)'

백성 모두가 '저희 집'에서 살게 되는 것.
그것이 해방의 모습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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