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친절한 미술이야기
안휘경.제시카 체라시 지음, 조경실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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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자의는 아니고 그저 가까운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들리는 것이다.

지난 번 커피 숍에서 몇몇의 젊은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현대 예술, 현대 미술, 그런 단어들이 오갔고 그들이 얼마전 보고 온 전시회의 작품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현란한 단어들이 넘실댔고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 미술학도이며 나름 진지했다는 것만 오롯이 기억된다.

그림 보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화가가 누구고 그림의 사조가 무엇이고를 알지도 못할 뿐더러 들어도 잊는 걸 보면 나는 예술적 감흐이라곤  없는게 분명하다. 그것도 미술쪽에선 더더욱..

그래도 가끔은 궁금하긴 하다. 특히나 '현대미술'이라고 칭해지는 작품들에서는 말이다.

그 현대미술이라는 규정을 시기로 구분하는 것인지, 내용으로 구분하는 것인지 형태로 구분하는 것인지 역할로 구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만 하면 다 아는 (사실, 나는 잘 모르는) 화가의 전시회나 이제 갓 데뷔하는 화가의 전시회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집구석에 틀어박혀 읽기에 몰두하는 내게는 좀 먼 이야기였다.


나는 예술과, 특히나 미술과는 거리가 먼 예술적 감흥이라곤 약에 쓰려해도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해버릴 즈음 그림 하나가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행복한 눈물". 제목에서 느닷없이 정현종의 '고통의 축제'를 떠올렸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 작품을 행복한 고통, 고통의 눈물 따위로 오독했던것 같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었던 행복한 눈물은 고가의 그림이었고 소장자 사이에 석연치 않은 이유들을 뉴스에서 보게 되었다. 기존에 보았던 그림과는 사뭇 다른 그림. 현대 미술이 저런 거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 끝에 떠오른 많이 들어보고 스치듯 알게 된 앤디 워 홀. 아. 그 사람도 있었지.

팝아트라고 했던가? 이전의, 예전의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들, 그러고 보면 백남준이라는 걸출한 예술가도 있었지. 이전엔 생각하지 못했을 것들, 그리고.. 그리고.

모 쇼핑몰 광고에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차용되기도 했다. 호퍼의 그림은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 그 영화를 좋아했었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

그것 말고도 좋아하는 작가인 제임스 설터의 책 표지도 근사했다. 올 댓 이즈, 스포츠와 여가, 어젯밤 등에 그려진 던컨 한나의 작품들..

이렇게 생각을 따라 가다 보니 미술이라는 것이, 현대 미술이라는 것이 그리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형태로 놓여있어 그것을 미술, 혹은 예술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건 아닐까?

마치, 어머니를 늘 보면서도 위인전을 찾아 읽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들을, 작품들을 더 잘 이해 해 보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조심스레 운을 뗀다.

"저,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미술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책은 어떻게든 읽힌다. 같은 책을 서로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서로 다른 길을 걷다 만나게 될 게 분명하다. 저마다의 요구와 지향이 다르고 궁금한 것과 알고 있는 것이 다르다면 이건 백퍼센트 다르게 읽힐 수 밖에 없다. 개념, 혹은 혼란스러운 부분마다 A~Z로 이어지는 다양한 목차로 이동할 수 있게, 참고할 수 있게 표시를 해 두었다. 그렇다보니 굳이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 메뉴판을 읽듯 차례를 죽 읽어내리다 흥미로운 부분에서 시작하면 되겠다. 결국은 한바퀴를 다 돌게고 한 권을 다 읽고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대표적 현대 미술을 훑어볼테니까 말이다.

큐레이터의 글은 일단 믿음직 하다.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를 읽으며 그것은 거의 확신이 되었다.

작품과 관객을 연결해 주는 그들은 작품의 언어나 화가의 언어를 관객의 언어로 전환시켜내는 능력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별히 열정이 그득하고 자신 역시 창작품을 만들어내는 큐레이터라면 더더욱 작품을 잘 설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고도 남을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열정이 읽힌다. 군데군데 안달이 나서 참을 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본 적이 있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분명히 있는 작품들을 책 속에서 만난다. 하나도 모르는 게 아니었고, 어설프게 알고 적당히 보아왔던 것이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책을 다시 펴고 메뉴를 선택한다.

Art, what For? What`s all this about?

시작해보자. 이것 저것 물어보며 이것 저것 만져보며 때때로 따져가며 말이다.

예술은 어떻게 남는가. 남기는가. 남겨지는가..무엇이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가. 하는 본래적 의문이 남지만, 그것보다 먼저 즐겨보는게 어떨까?


현대 미술은 커녕 미술을 잘 모르겠다면 읽어볼만하겠다.

읽다보면, 자신이 얼마나 미술, 혹은 예술 속에 숨쉬고 있었는지를 알게 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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