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 백작 주주
에브 드 카스트로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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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존


90cm밖에 안되는 사람. 소위 난쟁이라 불리우는 부류의 사람이다. 머리가 크고 팔 다리가 짧고 오동통한 손가락을 가진 사람들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유제프는 모든 비율이 완벽한, 사람의 축소판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치 살아있는 인형이라고 생각되는데도 무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유제프는 그의 유년시절부터 그런 취급을 받으며 성장했다.

방탕한 아버지의 죽음, 그 마지막을 목격한 어린 소년. 몰락한 귀족가의 자제였지만 이미 더 기울 수도 없이 기울어버린 가세. 아이들을 책임질 수 없었던 어머니에 의해 다른 귀족의 집으로 입양이라는 미명하에 팔려가는 유제프.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귀족의 집에 입양되었지만 그저 눈요기감이 될 수 밖에 없는, 애완인(人)이 되어버린 유제프의 위치는 고단할 수 밖에 없을 그의 일생을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과시와 사치 허영이 그득했던 프랑스의 귀족사회에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편입된 유제프는 신기한 대상, 혹은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한 장난감에 다름아니었다.

글을 배우고, 읽고 쓰고 악기를 연주하는 유제프.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의 절반밖에 안되는 체구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어린 동생 아나스타시아에 대한 그리움. 가시지 않는 아버지의 기억을 품고 살아내기 위한 절박함이 있었을테니 말이다.

어떤 극적 효과를 위해 조그마한 체구를 가진 주인공을 설정하는 이야기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유제프 보루브와스키는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유제프의 회고록에 기반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절절한지도 모르겠다.

하필이면 격변의 시기를 살아낸 것 마저도..


#2. 역사


작은 사람,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의 수명이 긴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무수히 보아왔던 비극적 결말에 대한 기시감일지도 모르지만..

놀랍게도 유제프는 그런 염려를 뒤엎고 근 한세기 가까이 살아낸다. 그가 살아낸 시기..프랑스의 격변의 시기였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의 시기.

왕정과 공화정을 모두 겪어낼 수 밖에 없었던..귀족들의 횡포를 가까이에서 보면서도 그들에게 의탁해서 살아내야만 했던 유제프의 기구함이란..

어쩌면 유제프는 시민혁명을 시민의 반대편에서 가장 낱낱이 목격한 목격자일지도 모르겠다.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이 튀어나올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도 들었다고 한다.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소설. 가장 낮은 시선으로, 거기 있었으나 거기 있었다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존재의 눈으로 보는 혁명의 현장은 또 다른 먹먹함이 있다.

프랑스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풍랑이 일었던 시기를 가장 작은 몸으로 견뎌낸 유제프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로운가보다.


#3.살아남기


유제프의 생활력, 아니 생존력은 대단하달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원했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존재. 사랑하는 여인에게서까지 외면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유제프. 귀족들의 장난감이었지만 보통의 사람들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떻게든 살아낸다. 애잔하기까지 한 유제프의 행적을 따라 읽다보면 '살아남기'란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특히나 아직 살아있는 유제프를 부검하고 박제로 남겨 연구하려 드는 사람들을 볼 때..유제프의 의식이 빠져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볼 때..차라리 그의 생기가 돌아오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어쩐지 그의 고통스러움에 공범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인데..단지 좀 작은 사람일 뿐인데..


#4. 목차가 다 읽어주네.

흥미로운 목차를 가졌다. 목차를 찬찬히 읽는 것만으로도 시놉시스를 읽은 느낌이다.

하나의 저주에 대하여, 납으로 만든 시계추에 대하여, 그리고 내몰리는 한 가족에 대하여 말해 보자. 폴란드의 옛 동화라고 하지만 결코 동화가 아니라 사실이었으니까...- 작은 꼬마를 진주조개로 만드는 방법 - 추운 폴란드에서는 연못이 녹은 다음 미끼를 던진다. 사랑에서도 미끼를 던지기 전에 여자의 마음부터 녹여야 한다. -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 - 살롱의 난쟁이를 교육하는 방법 살롱의 난쟁이를 두 토막 내는 방법. - 주주, 산 채로 불에 타 죽을 뻔하다. 그리고 왕비나 난쟁이나 같은 인간임을 알다. - 주주, 타오르는 덤불숲을 발견하다 그리고 교수대에 올라 목에 줄을 걸다 - 주주, 평범한 결혼한 남자가 되다 -주주, 심장을 강보에 싸 요람에 두고 오다 - 주주, 알록달록한 어릿광대의 도시에 들어서다 - 주주, 날카로운 엄니를 가진 야수를 길들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만나다 - 주주, 대혁명의 수레바퀴에 치여 쓰러지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건 목차때문이었다. '심장을 강보에 싸 요람에 두고 오다' 이 강렬한 문구를 떨칠 수 없었다. 내 짐작이 맞았다.

이 챕터가 가장 날이 서 있다.

어쩌면 저주에 가까울 신체조건과 태생. 그래서 과연 유제프는 불행하기만 했을까.


유제프는 생각했다. <나는 하느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통해 태어났다.> 유제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p468)

생존자체가 기적이었을 유제프.

작은 친구 유제프를 얻었다. 실제로 거기 있었던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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