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메로네 - 테일 오브 테일스
잠바티스타 바실레 지음, 정진영 옮김 / 책세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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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명의 여인이 한 사람당 하루에 하나씩 이야기를 한다. 닷새동안..그러니까 50편의 이야기다.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닮았고 익숙하다. 조금 더 정제되고 극적으로 추려져 읽게 되었던 신데렐라, 라푼젤, 장화신은 고양이같은 글의 원형이 여기 있다.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처럼 커다란 틀 속에 하나씩 놓인 이야기들이다.

 

여인들의 이야기.

고교시절 우리 반엔 아주 독특한 친구가 있었다. 모든 드라마를 꿰뚫고 있던 친구는 쉬는 시간마다 어제의 드라마를 재현하곤 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수십명의 캐릭터들의 특징을 제대로 집어내는 재주가 있었던 친구. 쉬는 시간은 언제나 순식간에 지나가곤 했다. 수업시간이 되어서도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야기는 얼마나 생생했는지 모른다. 쉬는 시간 종이 치기 오분전부터 시계를 흘깃거리고 친구와 눈짓을 하고 웃음을 빼물고 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친구의 표정과 목소리 몸짓으로 듣고 본 드라마는 세상 재밌는 것이었고 집에 돌아와 티비로 드라마를 보지만 친구의 재연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이야기꾼의 힘. 그런게 있다는 걸 그때 느꼈다.  펜타메로네를 읽으며 이야기꾼의 힘을 느낀다. 대부분이 정의가 승리하고 고생끝에 낙이 있고 악은 응징당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국 사랑을 이뤄내는 평이한 이야기지만 평이하지 않다.

 

그날 밤. 다음 날. 조차도 단순한 표현은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

"태양이 빛의 상점을 닫고 어둠에게 빛을 팔기를 거부하는 시간(비둘기 중에서)' 이랄지

"태양이 햇빛을 미끼로 밤의 그림자를 낚아올리는 매일아침(갈리우소 중에서)" 랄지 단 하나도 평범하게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꾼의 사설조는 흥미진진하고 몰입도를 고조시킨다. 은유와 비유로 범벅이 된 이야기가 모호하거나 난해하지 않고 경쾌하고 발랄하다. 잔혹한 장면조차 미간을 찡그리게는 하지만 꼼꼼히 읽게 만든다.

때론 귀여움에 미소를 짓게도 한다. 결코 귀여운 대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요리를 하던 시녀가 용의 심장을 불에 올려놓자 곧 냄비에서 김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시녀가 임신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있던 가구들까지 임신한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커다란 캐노피 침대는 작은 침대를, 커다란 귀중품 상자는 작은 상자를, 커다란 의자는 작은 의자를, 커다란 탁자는 작은 탁자를, 그리고 요강은 너무 예뻐서 먹고 싶을만큼 앙증맞은 요강을 낳았습니다. (마법의 사슴 중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 하기 전에는 절대로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책. 그녀들은 실력있는 이야기꾼임에 틀림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이야기들. 짧은 이야기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 뱀처럼 유려하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여도 새롭다. 반갑다.

 

옆에 두고 아무데나 펼쳐 읽을 차례다.

다 읽고 나서, 다 아는 이야긴데, 또?

이 이야기꾼이 범상치 않다. 꿈을 꾸듯 장면이 그려지고 손짓발짓 하며 재연할 이야기꾼이 그려진다.

 

<태양이 굽은 허리를 높이 치켜든 늙은 산자락을 더듬고 내려간 시간부터 책을 펴들었다. 개미의 재채기 소리가 이럴까? 참새의 딸꾹질이 이럴까? 금붕어의 고함이 이럴까? 벼룩이 쥐고 있는 작은 보물지도를 탐하는 것이 죄가 되진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작고 작은 벼룩이 숨긴 보물따위가 커봐야 얼마나 크겠냐고 생각했다. 쌀눈만큼이나 될까? 깨소금만큼은 될까? 어젯밤 뒤척이다 귀에서 굴러떨어진 귀지만큼이나 될까?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한 낮의 눈꼽만큼은 될까? 그런 정도의 보물이라면 세상에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인데 그것을 탐했다고 죄가 될까?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촘촘하게 늘어선 글자들이 모닥불가에 모인 날개미들처럼 날아들기 시작했다. 콧 속으로 파고들어간 녀석 때문에 오그레스(책속의 괴물여자)의 입냄새가 느껴졌지 뭐야. 입 속으로 파고든 녀석 때문에 암곰으로 변한 공주 입 속의 나뭇조각의 맛이 느껴지지 뭐야. 눈 속으로 파고든 녀석들 때문에 정교한 가면처럼 표정을 짓는 이야기꾼의 모습이 그려지지 뭐야. 다음 날 태양이 커튼처럼 드리운 안개를 간지럽히다 완전히 걷어버릴 때까지 정신을 놓고 읽었다. 눈꺼풀이 핫케이크 위의 메이플시럽처럼 흘러내려도 모른 채 읽었다. 까무룩 잠이들어 꿈 속에서조차 열명의 여자와 함께 오래 전부터 들어온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은, 읽히지 않는다. 온전히 들리고 느껴지는 책이다. -소심한 패러디를 해보고 부끄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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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완 2016-12-16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히

cyrus 2016-12-17 0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는데 기대되는 책입니다. 고전동화를 좋아해요. ^^

나타샤 2016-12-17 10:05   좋아요 2 | URL
제법 분량이 되는데 흠뻑 빠져 읽게 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양이라디오 2017-01-14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글은 본인이 쓰신 글이죠? 대단하십니다. 나타샤님도 이야기꾼의 기질이 있으신거 아닙니까ㅎ?

나타샤 2017-01-14 22:15   좋아요 0 | URL
에구..과찬이십니다. 책의 여운이 남았던것이 문제였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