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대리인, 메슈바
권무언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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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권사님이시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형교회의 여선교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사실 엄마를 교회로 인도한 건 어린 '나'였다. 동네 사찰의 보살님이었던 엄마는 동제를 지내던 무당이 나를 신딸로 주면 안되겠냐는 말에 혼비백산해서 이사를 갔고, 며칠을 안절부절 못하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두렵고 두려워서 시작된 소위 '신앙생활'.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 손에 이끌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교회에 발을 디뎠고 웅장한 대성전에 압도되어 넘치는 은혜를 받았다. 줄곧 울고 소리치며 기도하는 엄마와 사람들이 겁이나고 무서웠다. 광기.

어쨌든 공부머리는 없어도 영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나는 엄마의 신앙생활에 그럴듯한 악세사리였다.

엄마는 늘 빳빳한 신권으로 헌금을 준비했다. 선교헌금, 건축헌금. 십일조헌금. 감사헌금. ..

선교센터가 지어졌고, 교육관이 지어졌고, 지하성전이 넓어졌고 방송시설이 생겼고, 대학이 생겼고, 신문사가 생겼지만 엄마는 여전히 가난하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기도는 수십년간 이어졌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사역을 하는데 부족함 없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도 끝이 없었다. 전세계 대표교회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빼먹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교회에 다닌다는 자부심은 생각보다 컸다. 마치 하나님은 다니는 교회의 크기대로 신도들에게 축복을 내리는것인양. 선택받은 자로서 사명감도 투철해졌다. '하나님 뜻'이라는 네글자는 너무나 영험(?)해서 네 글자로 열리지 않는 문제는 없었다. 너무나 거대해진 교회에서는 금전문제가 불거졌고, 탈세, 횡령, 담임목사의 부적절한 사생활들이 터져나왔지만 그것은 주님의 귀한 종을 음해하려는 마귀의 농간으로 치부되었고, 그 과정을 기도로 견뎌낸 이는 단련을 견뎌내고 더 크게 쓰임받을 준비를 마친 귀한 존재가 되어있곤 했다.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집단, 혹은 구조.

교회를 비판하고 교회 지도부를 비판하는 소리를 엄마는 불편해했다. 그런 소리를 들은 날이면 더 간절히 새벽기도를 했고 철야기도회를 다녀오곤했다.

하지만..엄마는 더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엄마 말로는 나이가 드니 힘이 들어서 그렇다고, 티비로도 예배드릴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는 지쳐보인다. 엄마의 가장 힘든 시간을 의지해 온 '신앙'이라는 기둥에 균열이 생기고 곰팡이가 핀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나님의 뜻' 보다 앞선 '사람의 뜻'을 눈치채버렸고, 성경을 오독하는 자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돈 앞에, 권력 앞에 성경과 하나님은 방패막이이며 그럴듯한 명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란걸 ..그래서 엄마는 혼자 예배를 드리고 혼자 기도하고 혼자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다.

말초신경부터 흥분이 되어 취한 사람처럼 뜨겁게 온몸을 흔들며 울고 소리지르지 않아도 조용히 찾아지는 하나님은 이전에 엄마가 알던 '징벌하는 하나님', '잘투하는 하나님', '복수하는 하나님'이 아닌 '사랑'의 하나님이며 '의지'의 하나님이며 '자비'로운 하나님이라고 했다. 폭신한 솜이불처럼 편안한 하나님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신의 대리인 메슈바. 를 읽으며 나는 자꾸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와 내가 함께 목격했던 메가처치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져있다. 더는 감출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터져나오는 목사의 성추행 문제나, 세습의 문제, 동성애 반대, 친자본적 포지션. .

그것이 비단 몇몇 목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고착화된 모순이었음을 다시 확인한다. 이제는 어디가 머리고 어디가 꼬리이며 누구의 머리인지 팔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뒤엉켜있는 권력과, 돈과, 기독교의 밀착관계는 극단적인 해결방법만 남은건가? 묻게 된다.

작가는 이 글을 쓰며 위험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했다. 읽다보니 알겠다. 매우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왜곡된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하나님의 최정예부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분명히 작가를 찾아내 해코지를 하려고 들지도 모를일이다. 그만큼 구체적이고 사실관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놀랍고 그래서 다소 걱정스럽기도 하다.

작가는 기독교인이었을까? 성경을 해석하는 눈 또한 명료하다. 모태신앙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젊은 어느 때 치열하게 성경으로 논쟁을 벌였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막연함이 아닌 구체화된 사건과 사람과 관계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

결코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잘 읽힌다. 어쩌면 신앙이라는 공감대를 걸치고 있어서였을지도 모르지만,..

 

누가 메슈바인가?

메슈바는 등을 돌리다, 라는 뜻을 담고 있는 히브리어라고 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신하고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사람들은 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다 쓰러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외치고 땅에 눈물 흘리고 있다. 서로를 속이고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를 혐오하며 내 것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겠다고 악다구니를 쓰고 없는 사람은 이제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 구원의 증표를 내보여야 할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단'의 낙인을 찍어댄다.

 

비자금을 관리하던 장로의 투신자살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한 순간도 어긋나지 않는다. 솜씨 좋은 목수가 손질 해 둔 조각을 아귀가 딱 맞게 끼워맞추듯 더함도 덜함도 없다. 살짝 거친부분은 있지만 나무란게 그렇지..나무를 만졌으면 가시가 한 두 개쯤 박히기도 하는거지. 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더할나위 없겠다.

종교의 문제라고 뭉뚱그려 말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명확히 '한국 기독교'에 대한 고발이며 동시에 고백이다.

 

나는 이 소설이 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반론을 막 제기하고 그것에 대한 반론과 근거를 꺼내놓고, 그렇게 구석구석까지 배인 악취를 다 드러냈으면 좋겠다. 그래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가 보일것 같다.

이 소설은 반기독교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물어봐주는 작품이다.

너는 메슈바인가?

그렇다면 너의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너는..하나님을 믿는것인가? 신의 대리인을 따르는 것인가? 라고..묻는다.

 

오랜만에 재미나게 읽었다. 눈이 먼저 달려가고 기억이 따라가고 현실을 짚어가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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