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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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가족 레시피>는 오래 전부터 입소문으로 들었던 책이었다.

불량가족이라? 구미가 막 당겼다.

읽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불량(?)스럽고 이 가족사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이 가족이 과연 부둥켜안고 화해할 날이 오기는 할지....

 

얼마나 불량한지 일단 가족 소개부터 들어보라.

주인공 여울이부터 말하자면

코스튬플레이가 취미이며 이 불량가족으로부터 가출 아니 출가가 꿈인 고1 여학생이다.

술을 진탕 먹어 필름이 끊겨진 적도 있다. (고1 여학생이다. )

여울이 덕분에 우리 딸도 가끔 가는 코스튬풀레이에 대해 몇 가지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딸과 모처럼 대화가 통했다.

 

여울이 위로 고3 언니가 있는데

여울이와 배가 다르다.

먹는 게 취미이고 따라서 살이 넘쳐난다. 

여울이와 같은 방을 쓰는데 여울이만 보면 쌍욕부터 나오는 캐릭터다.

 

그 위로 비리비리한 대학생 오빠가 있다.

이 오빠 또한 여울이 언니와 배가 다르다.

다시 말해 애 셋이 모두 엄마가 다른 일명 콩가루(?) 집안인 셈이다.

오빠는 희귀병에 걸려 대학생인데도 불구하고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여기에 뇌경색에 걸린 이혼 당한 삼촌이 함께 살고 있다.

주식 때문에 전재산을 말아 먹고, 뇌수술을 받고, 이혼 당하고 이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이 집의 가장인 여울이 아빠는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세 아이의 엄마가 모두 다르겠지.

여자를 밝힐 뿐더러 수 틀리면 폭력도 가끔 쓴다.

여울이도 불곰 아빠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적이 여러 번이다.

뚜껑이 열렸다하면 물불 안가리는 다혈질이다.

 

엄마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집에 없다. 

안주인은 다름 아닌 80세를 훌쩍 넘긴 여울이 할머니다.

80 넘은 노구를 이끌고 이 대식구 살림을 도맡아 하니

입만 열었다 하면 쌍욕에 "양로원에 보내 줘" 란 말을 노래처럼 부른다.

특히 캬바레 댄서였던 여울이한데는 한 번도 상냥하게 "여울아" 이름 불러준 적이 없다.

"이 년, 저 년" 이 일상어이다. 

이런 레시피를 가지고 있으니 불량가족이라고 할 밖에.

내가 여울이라도 하루 빨리 출가를 하고 싶을 듯하다.

이건 가족이 아니라 웬수가 모여사는 것 같다.

 

이런 가족사 때문에

여울이의 목표가 출가-가출은 어쩐지 불량스럽다나?- 가 된 건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얼굴도 모르지

아빠는 다정하기는 커녕 일만 부려먹고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두들겨 패지

할매와 언니는 자기만 보면 쌍욕을 해대지

그나마 자기 편이 되어주던 오빠와 삼촌이 여울이보다 앞서 가출을 해 버리자

마음 둘 곳이 더 없어진다.

 

여울이가 마음 줄 곳이라곤 코스튬플레이와 고양이 뿐이다.

지금의 " 나 " 가 아니라 전혀 다른 " 나 " 가 되어보는 시간.

그게 코스튬플레이의 매력이다. 

그 시간만큼 여울이는 우울함을 벗어버릴 수 있다.

이 집의 천덕꾸러기에서 탈피하여

피요나 복장을 한 그 날만큼은 공주인 것이다.

비참한 현실을 잊어버리기 위해 여울이는 코스튬플레이에 더 집착하는 것일지도.

 

오래 전부터 출가를 결심하고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던 여울이를 앞질러

다른 가족이 하나 둘 가출하자 정작 여울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욕쟁이 할매와 단둘이 집에 남게 된다.

할매도 양로원에 가고 싶은 게 소원이지만 

형편상, 할매의 꿈도 잠시 보류다.

바야흐로 지금이 불량가족 최대 고비인 듯하다.

"뭉치면 싸우고 흘어지면 산다"는 불량가족이건만

각자 서로 뿔뿔이 흩어진 지금, 여울이는 문득 도덕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한다" 

어쩌면 지금, 불량가족 저마다의 진화가 시작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어거지로 가족을 화해시키지 않고, 해피엔딩의 행복감도 독자에게 맛보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위기를 맞은 그 상태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 점이 오히려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야기는 위기의 정점에서 끝났지만

여울이가 이 위기를 통해 달라질 거라는 점을 확신한다. 

" 위기에 처할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한다"는 그 말처럼 말이다.

여울이 뿐만 아니라, 이 가족 구성원 모두 각자가 맞은 위기를 통해

지금보더 더 진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삼촌이다.

 

가출 후 여울이를 찾아온 삼촌은 전과 완전 달라졌다.

뇌경색 때문에 팔다리 움직임이 부자연스럽지만

구박 받으며 주유총 쏘는 것을 익혔고, 주유소에서 기숙하면서

외국에 나가 있는 아이들을 언젠가는 보러 가리라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단다.

주식도 끊었고 월급도 꼬박꼬박 모으고 있다고.

집 나갈 때 여울이한테 비루하게 꿔갔던 돈도 갚았다.

언니, 오빠, 아빠, 할머니, 그리고 여울이 모두 삼촌처럼 조금씩 진화할 거라고 믿는다.

 

불량가족을 응원한다.

부디 다시 한 집에 살게 될 때는,

상대의 상처를 후벼파는 말보다 따뜻한 눈길 한 자락, 말 한 마디 건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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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4: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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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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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컬링 (양장) - 2011 블루픽션상 수상작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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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버리, 스위핑, 페블, 시트, 하우스, 브룸, 스톤.

이런 낱말과 연관되어 있는 운동 경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컬링"이다.

사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이 "컬링"이 그 컬링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 읽고 다시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힌트가 다 나와 있었다. 

그런데도 눈치 채지 못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가보다.

 

지난 동계 올림픽 때 잠깐 컬링 경기를 본 적이 있다.' 와! 무슨 저렇게 재미 없는 경기가 다 있냐?' 싶었다.

한 사람이 맷돌 같은 돌을 던지자 두 사람이 열심히 대걸레 같은 것을 가지고 돌을 쫒아가면서 빙판을 문질러댔다.

한편으론 웃겼고, 한편으론 저런 게 무슨 운동 경기인가 싶어 금방 채널을 돌려버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컬링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완득이>이후 이렇게 열광한 청소년 소설은 처음이다. 

책을 읽고나서 운동 같지도 않게 느껴졌던 컬링이 참 철학적인 운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빙판 위의 체스"라는 별명을 가진 컬링이 궁금해져 경기 동영상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놀라운 변화였다.

책 한 권이 이렇게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다니. 

작가는 참 위대한 사람 같다.

생각을 변화시키는 마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나처럼

컬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료도 찾아 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도 해주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더불어 컬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음 좋겠다.

더 나아가

컬링 처럼 혹시 내 주변에 관심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심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컬링이 비인기 종목이고,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는 비주류 운동이듯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 또한 그런 존재들이다.

이름 때문에 "으라랏차"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주인공 차을하를 비롯해서

며루치, 산적, 박카스 모두 그냥저냥하다.

작가 말대로 만년 후보 같은 아이들이다.

 

어느 날, 며루치와 산적이 을하에게 집적대며 컬링 이란 것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동계올림픽 중계 때 딱 한 번 스쳐가듯 경기를 구경한 것 뿐인데

그런 사람한테 컬링을 함께 해 보자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리고 왜 하필 나냐고? 라는 의문도 들었다.

넷이 하는 경기라면서 그럼 나머지 한 명은 어디서 조달하려고?

뭐? 강원도에 내려간 박카스라는 녀석이 있다고? 

뭐 이런 녀석들이 다 있어? 라고 생각했지만

을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컬링 동호회에 들어가게 된다.

 

학교나 집에서나 관심 받지 못하던 을하는

어느새 컬링에 빠져들게 된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며루치와 산적이 왜 야구를 관두고 컬링을 하게 되었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자신은 아무런 재능이 없어 이렇게 관심 받지 못하고 지내지만

산적처럼 뛰어난 재능이 있고, 그 일을 좋아하더라도 뜻하지 않은 일로 관둘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를 다 해봤지만 어느 것 하나 남다른 재능이 없어 

모두 관두고,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는

말 그대로 이류처럼 되어버린 을하.

반대로 동생 연화는 피겨 스케이트에 일찌감치 재능을 보인다.

이를 본 엄마는 연화에게 올인하고, 이 때부터 을하는 집에서도 찬밥 신세가 되고 만다.

맹모 삼천지교라고

엄마는 연화를 위해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감행하고, 아버지만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가족이 된다.

 

을하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전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부모에게 아무런 도움을 구하지 않고 묵묵히 혼자 견뎌내던 을하는 어느 날,

학교를 걸어나와 무작정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이웃 학교 야구부 연습 장면을 보게 된다.

그후로 매일 같이 야구 연습을 지켜보던 을하의 눈에 들어온 선수가 한 명 있었다.

그게 바로 산적 " 강산" 이었다. 자신과는 달리 진짜 멋져 보였다.

그 강산이 하교 후에 흠씬 얻어맞고 있던 자신을 구해주던 "베어맨"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산적은 왜 을하에게 컬링을 함께하자고 제안했을까. 아무런 재능도 없는데 말이다.

그때 자신이 구해준 옆학교 비실비실한 남학생이 바로 을하하는 것을 산적은 알고 있을까. 

함께 컬링을 하며 친구 비스무레한 사이가 되어가지만 여전히 산적과 관련해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존재한다.

가장 궁금한 것은 그들은 왜 컬링을 하는 걸까.

또 을하 자신은 왜 컬링을 하는 걸까.

 

아웃사이더였던  을하가 컬링을 하면서 확실히 얻은 게 있다.

바로 친구다.

시종일관 말 많은 며루치, 자신을 구해줬던 은인 산적, 전지 훈련 장소를 제공해준 박카스.

매주 일요일마다 함께 연습하고 박카스가 있는 강원도 두메산골로 전지훈련하러 갔다오니 어느새 친하게 되었다. 

서울로 이사온 이후, 늘 혼자였던 을하에게 친구가 생겼다. 컬링 덕분에 말이다. 

 

그 녀석들과 함께 컬링을 하면서 확실히 달라진 점이 있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매 맞는 을하가 아니었다. 

을하는 산적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자

며루치와 합세하여 학교와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정작 범인은 따로 있는데 교묘하게 산적을 엮어 산적을 제거하고자 하는 이들에 맞서는 둘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한편 학교라는 사회도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깝고 분노가 일었다.

을하는 산적을 위해 그동안 억눌려 있던 용기와 정의감을 당당히 표출한다.

학주가 엄청 나게 폭력을 가해도 이에 굴하지 않았고,

대충 합의하고 넘어가라는 온갖 협박과 감언이설에 끝까지 저항하였다.

친구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컬링 팀을 향해 나도 몰래 " 힘내 화이팅 조금 더 버텨" 라며 간절히 응원했다.

 

을하가 안고 있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다.

남다른 재능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그래서  무엇도 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혼자라는 외로움 등.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감정이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요즘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꿈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을하 같은 아이들은 더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을하에게도 재능이 있을지 모르는데

기존의 잣대로만 들여다보니 재능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재능으로만 아이들을 평가하니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을하처럼 자존감을 잃고 더 헤매는 것은 아닐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을하는 그 해법을 "친구"에게서 찾았다.

그건 산적, 며루치, 박카스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이 암흑 같은 세상을 버티는 게 가능할 수 있다고 말이다. 

 

컬링 경기는 인생을 담고 있는 듯하다.

우리 인생에 있어 곧은 길만 존재할까. 굽은 길은 없을까.

강한 직구로 던진다고 하여 하우스 안에 스톤이 안착하는 것은 아니다.

을하가 처음 딜리버리 했을 때는 직구로 스톤을 던졌다가 보기 좋게 아웃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가서 딜리버리 할 때는 을하가 던진 공이 컬링하여 하우스 근처로 간다.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게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는 길일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린 지금, 컬링 하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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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14: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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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2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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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양장)
로버트 뉴튼 펙 지음, 김옥수 옮김, 고성원 그림 / 사계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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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을 본 순간, 오래 전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퍼뜩 떠올랐다.

물론 그 영화도 볼 기회를 놓쳐 지금까지 못 보고 있지만서도.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는 날이 과연 있을까 싶다.

소나 돼지는 사람에게 늘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가축이라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소와 돼지가 도축되고 있을텐데.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 이름도 작가의 이름 그대로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로버트의 아버지는 돼지를 잡는 사람이다.

늘 아버지한테서는 돼지 냄새가 난다.

교회에 가는 날만 빼고 말이다.

아버지는 신실한 세이커 신자다.

(조사를 해 보니 기독교 중의 퀘이커 교도라는 게 있는데 

퀘이커 교의 분파 중 하나가 세이커 이다.

근검 절약, 검소한 공동체 생활을 하는 무리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함석헌 씨가 세이커 교도 였단다. )

비록 글을 몰라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하지만 아버지는 교리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한 마디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로버트는 다른 과목은 모두 우수한데 국어 과목은 늘 형편이 없어 낙제 직전이다. 

늘 자신을 놀리는 급우와의 갈등으로 학교를 박차고 나온 날 일생일대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헤매던

로버트는 우연히 옆집 소가 송아지를 낳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게 되고,

바지를 홀라당 벗어가면서까지 송아지 출산을 도와주게 된다.

송아지를 낳고서도 숨을 헐떡거리는 어미소를 보고, 어미 입에서 혹 같은 것을 보게 된다.

어미 입 속 깊숙하게 손을 집어넣어 그 혹을 꺼내려다

화가 난 어미소한테 물려 뼈가 다 드러나도록 물리기까지 한다. 소도 위기에 처하면 무는가보다.

물론 혹은 꺼냈다. 로버트의 팔뚝은 뼈가 드러난 채 너덜너덜해졌고.

로버트의 이런 용감한 행동이 정말 고마워 이웃은 예쁜 새끼 돼지 한 마리를 선물한다.

세이커 신자인 아버지는 선물을 안 받으려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로버트가 한 일이 장하기 때문에 허락한다.


로버트는 돼지 이름을 핑키라고 지어준다.

로버트와 아기 돼지 핑키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돼지가 그렇게 애교가 많을 줄 몰랐다.

읽으면서 <꼬마 돼지 베이브>가 자주 연상되었다.

로버트는 아기 돼지를 데리고 품평회도 나가 가장 "예절 바른 돼지상"을 받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몸집이 커져가는 핑키한테서 전혀 발정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버지는 중대한 발표를 하게 된다.

새끼를 낳지 못하면 죽일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아버지가 수없이 많은 돼지를 잡아 죽이는 것을 목격했고,

아버지는 이 고장에서 제일 가는 도축업자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핑키를 죽여서 먹어야 하는 걸까?

그게 최선인 걸까? 

로버트는 " 이제 네가 엄마와 이모를 돌보고 이 농장을 책임져야 한다"는 유언 같은 아버지를 말을 듣고

뭔가 불안하고 무서운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작가의 어릴 적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가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늘 돼지 냄새가 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합*체>에서 난장이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체 처럼 말이다.

마지막 부분, 돼지를 갓 잡아 피가 줄줄 흐르는 아버지 손에 로버트가 뽀뽀를 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에 어머니가 아버지한테서 나는 냄새는 진정한 노동의 냄새라고 했던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도 어릴 적 아버지가 부끄러운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새치가 많아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그렇잖아도 늦둥이었는데 머리마저 백발이니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 같아 보였다.

아버지가 학교에 오시면, 짖궂은 남자 애들이 나더러

" 니네 할아버지 오셨다" 라고 말하는 게 너무 싫었다.

" 할아버지 아니라 우리 아버지거든" 앙팡지게 말하였지만 상처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는 왜 머리가 하얘서 남자애들한데 놀림을 당하게 하는지 밉기도 하였다.

염색이라도 좀 하지.


고등학생 때였던 듯하다.

학교가 좀 멀어 아버지가

짐 자전거 뒤에 날 태우고 힘들게 패달을 밟아 학교로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

학교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었다.

그 때 아버지 등에서 질펀한 땀 냄새가 났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후론 아버지의 백발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어쩌면 로버트나 나처럼 한번쯤은 부모님을 부끄러워한 기억이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다보면 로버트처럼 부모를 진정 이해하고 깨닫는 순간이 오게 되는 듯하다.

깨닫는 순간은 물론 개인차가 크다. 

로버트처럼 13세에 깨닫기도 하지만 철이 늦게 드는 사람도 있다. 끝내 못 깨닫는 사람도 물론 있다. 

부모를 진정 사랑하고 존경하게 순간은 자신이 부모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부모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진정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난 수퍼남매 키우면서 부모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어릴 때 가졌던 부끄러움이나 앙금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아! 우리 부모가 정말 위대한 분들이었구나! 날 이렇게 사랑하셨구나' 저절로 깨닫게 된다.

지금은 부모가 살아계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자라면서 하지 못했던 말, 

요즘 아버지를 뵐 때마다 안아주며 이 말을 하곤 한다. 

" 아버지,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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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4 15: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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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4 15: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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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64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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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다른 아이 어깨를 올라탄 채 힘차게 농구공을 던져 올리고 있다.

 " 합 * 체" 라 써진 글 제목에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 "합체"가 아님을 언뜻 눈치 챌 수 있다.

슛을 하는 아이의 빨간 티셔츠에 그려진 인물은 " 체 게바라"이다.

음~ 이 아이가 체 게바라를 알고 있다면, 뭔가 혁명을 꿈 꾸는 이야기?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딸이 재미있다고 하였을까!

궁금했다.


이 두 아이의 이름은 오 합, 오 체 쌍둥이이다.

아버지는 난장이이다.

합* 체 또한 고1인데  아버지 유전 때문인지 키가 초등 수준이다. 

작은 키 때문에 같은 반 급우한데 매일 놀림을 받아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 

어떤 토크쇼에 나온 여자 한 명이 남자 키가 180cm  이 안 되면 루저라는 말을  하여

공분을 산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평소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이지만

그 파장은 정말 대단했다. 

말을 좀 신중하게 했음 좋았을 텐데....

솔직하다는 게 항상 옳지는 않다. 

그 여자의 논리대로라면,  합* 체는 루저 중의 루저일 것이다.


합은 그나마 작은 키에 만족은 안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며 사는데

쌍둥이 중의 동생 체는 작은 키가 늘 불만이다. 형처럼 공부를 잘하지도 못 한다. 

운동, 그 중에서 키 커지는 농구를 좋아하지만 단신 때문에 농구 선수를 하기엔 역부족이다.

체의 소원은 바로 키 크기이다. 

체의 그런 소원은 어쩌면 난장이 아버지가 어이없게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더 굳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후진하는 차가 난장이 아버지를 미쳐 발견하지 못 해 자동차에 치여 돌아가셨다.

난쟁이가 아니었다면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외치는 체의 말에 먹먹해진다. 

아마 그래서 키 작은 게 더 싫어졌을 게다. 

아버지처럼 되기 싫어서 말이다. 


사춘기가 되면 가뜩이나 외모에 민감하기 마련인데

또래보다 작은, 아니 초등 수준 정도 밖에 안 되는 키 때문에 늘 불만이 많은 체의 고민이 십분 이해된다.

게다가 난장이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이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을 테고 말이다

아버지 자신은 자식들 앞에서 한번도 난장이라서 슬프다거나 억울하거나 하다고 한 적이 없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 하시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끝까지 긍정적으로 웃으며 살다 하늘 나라 가셨지만

난장이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멸시당하며 사는 모습을 그저 바라봐야했던

체의 가슴은 여기저기 상처뿐이었다. 


여름 방학이 가까웠을 무렵,

늘 자신을 놀리던 한 녀석과 한판 붙고 학교를 뛰쳐 나오던 날이었다. 

체는 약수터에서 씩씩대며 널브러져 있다가 

자신을 "계도사"라 부르는 이상한 할아버지와 조우하게 된다.

신통방통하게 체와 관련된 것을 알아맞추는 이 할아버지에게 어쩐지 마음이 쏠린다.

그 도사가 키가 크고 싶다면 자신이 알려준 비기를 그대로 따르라는 말을 듣고, 급기야

여름 방학하자마자

형 합을 꼬드겨 계롱산으로 향한다.

도사들이 많이 수련한다는 그 계룡산 말이다. 

자칭 "계도사"가 알려준 비기는 진짜 키 커지는 비기가 맞을까?


유난히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나라에서

합*체가 견디기는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체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계도사의 말대로 해 보고 싶었을 게다. 

계도사가 알려준 수련 방법 또한 따라하기 쉽지 않은데

얼마나 간절하였으면 하루에 세 번씩 수련을 한다.

이걸 따라하면 자연스레 키가 커질 것도 같은데...

단군신화에서 곰이 웅녀로 탈바꿈 하였듯이

합 * 체도 부디 힘든 수련과정을 잘 견뎌 

33일 후에는

부디 키가 한 뼘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난장이 아버지.

자신도 키가 너무 작아 놀림 당하는 체의 활활 타오르는 마음이 이해된다. 

아버지와 형은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캐릭터라면

체는 지금이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인 데다 좀더 외모에 민감한 성격인 듯하다.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해법은 다를 수 있다.

합은 공부로 

체는 수련으로 


합리적인 합이지만 동생의 그런 마음을 이해했기에 묵묵히 계룡산까지 따라가주고 함께 수련을 해 준다.

동굴에서 지내는 동안, 형제는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하지만, 함께라서 외롭지 않다.

체가 발견한 폭포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가 멱을 감는 장면은 정말 시원했다.

그 순간 만큼은 어떤 고민도 시련도 없어 보였다.

33일 후에, 신체적인 키가 자랄지 안 자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 분명 마음의 키는 한 뼘 자랄 듯하다.


"왜 학교는 꼭 키번호를 정할까? 그것도 한 학기 한 번씩 말이야 "

체의 불만사항이다.

학교에선 당연하게 새학년 새학기 첫날, 키번호를 정한다.

선진국에서도 그럴까? 하는 의문이 나도 들었더랬다. 

키 번호를 정해서 뭐하지? 특별히 하는 거라곤 운동장에서 줄 설 때.

그때도 굳이 왜 키번호로 서야 하지?

그래, 뭐 별 거 없네.

하여 올해부터는 키 번호를 정해주지 않았다.

출석 번호가 엄연히 있으니 굳이 정할 필요성을 모르겠다.

체육 시간에 줄 설 때도 출석번호대로 세운다.

가끔 선착순으로 서라 하면 아이들이 빨리 움직여서 선착순도 많이 써먹곤 한다.

(이것도 경쟁심 유발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출석번호대로 서라 하면 느릿느릿 하는 아이가 있어서)

키 큰 아이 입장에서는 키 번호가 자랑스러울 지 모르겠으나

체 같은 아이한테는 아픔이 될 수도 있으니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출석 번호도 남녀 순 없이 그냥 가나다라 순으로 한다.

맞아!

이것도 왜 굳이 남자는 1번부터,,, 여자는 51번부터 순서를 매겨야 해?

남녀 차별도 아니고 말이야.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학교에서 나이스 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우리 학교도 건의해 볼 문제인 듯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조금 뒤집어 생각해 보는 것,

그게 혁신의 시작인 듯하다.

혁명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혁명은 의례히 당연하다 생각한 것을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본 결과,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 게바라는 죽어서도 그걸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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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9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9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 사계절 1318 문고 68
박선희 지음 / 사계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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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집은 내 로망이기도 하다. 닭장 같은 아파트보다는 이층집이 참 낭만적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락방이 있는 이층집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산다.

그게 언제일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수퍼남매도 이층집을 좋아해서 펜션을 구할 때는 복층을 가능한 구하도록 노력한다.


구라파식 이층집이라니? 작년에 스위스에서 봤던 아기자기 예쁜 집이 떠오른다.

집집마다 예쁜 화분도 있었더랬지.

구라파라는 낱말도 참 오랜만이다. 유럽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요즘 애들은 잘 모를 듯하다.


30년 전에는 정말 아름다웠을 이 집이, 

서서히 금이 가고, 벽이 기우는 등 도미노처럼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집에 문제가 생겨서 가족에게 문제가 생긴 걸까

아님 가족에게 문제가 생겨서 집이 무너지기 시작한 걸까

몽주네 일곱 식구에게 봇물 터지듯이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무너져 가는 집에서 계속 살자는 할머니와

하루빨리 집 팔고 이사가자는 엄마의  팽팽한 대립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이층집의 2남 1녀 중 막내 몽주는 이번 여름 방학에 마술을 배우는 게 목표였다.

할머니 생신날, 멋지 마술쇼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술을 배우는 사이, 가족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목격하고,

실연을 경험하면서 그 어느 해 여름 방학 보다 더 뜨거운 여름을 경험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몽주와 몽주 언니의 대조적인 성격이 눈에 밟힌다.

엄마라서 그런가 보다.

저런 딸 있음 정말 복장 터지겠다 싶다. 

가족과 집에 일어난 문제를 대하는 몽주와 몽주 언니의 방식이 정말 다르다.


내내 공부 잘하고 ,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 다니는 몽주 언니는 너무 이기적이고 개인적이다.

한 마디로 자기 밖에 모른다.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관심도 없고, 설사 알게 되더라도 참 냉정하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듯한 캐릭터이다. 

마지막에는 몽주만 빼고 온가족에게 미국 연수 간다고 속인 채 연인을 따라 캐나다로 떠나고 만다.

몽주에게 남긴 편지를 봐도 가족에게 전혀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안 느껴진다. 

그런 언니가 몽주는 정말 못마땅하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남도 아니고, 가족 일인데 어쩜 저럴 수 있지 싶었다.

공부 잘해봤자 소용 없고, 감수성 많은 아이로 키우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캐릭터였다. 


공부에 별 소질이 없고, 외모도 통통하고,  겉보기엔 언니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게 막내 몽주다.

엄마가 준 학원비를 몇 개월 째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  놓고 있다. 

그 돈으로 유럽 여행을 가는 게 꿈이다.

pc 방을 하는 아빠가 못마땅하고 창피한  언니와는 달리

아빠 힘들까 봐 1-2 시간씩  pc 방 봐주러 가는 마음이 따뜻한 아이다.

그런  아이이기에 할머니와 엄마의 대립,

아빠 엄마  사이의 냉랭하고 아슬아슬한 기운, 

엄마와 카페 사장님과의 이상야릇한 관계, 

언니와 흑인 이슬람교도와의 연애 등

가족과 관계된 일은 그냥 지나치지 못 하고, 모두 마음이 쓰인다.

집에 금 이 간 것, 기둥이 기울어진 것, 타일 색이 바랜 것까지 말이다.

감수성이 제로인 언니에 비해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그런 아이이다.


언니는 총체적인 난국을 뒤로한 채-아니 안중에도 없었지- 자신의 사랑만을 위해 떠나버렸다.

(그런 언니가 흑인 이슬람교도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니... 이해할 수 없다. )

몽주는 그게 선천적으로 안 되는 아이다.

몽주는 구라파식 이층집과 그 안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배운 마술이 아니라

전혀 색다른 마술을 준비한다.

몽주의 친구와 자신을 실연시킨 꽁지머리 사서와 함께 말이다.


얼마 전, 강신주 박사가 강연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지방 내려가면 "요양원"이 우후죽순 생겨난다고 한다.

그것도 대부분 경치 좋은 곳에 말이다.

자식은 부모를 그런 경치 좋은 요양원에 모셔 놓고 제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를 감수성 없는 아이- 몽주 언니 같은  아이-로 키우면 부모의 종착지는 결국 요양원행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모의 아픔이 "그들의  아픔" 쯤으로 인식되는 괴물로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부모가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부만 잘하는 아이, 남의 아픔은 살펴볼 줄 모르는 아이로 키우면

결국 부모가 병 나면,  요양원에 데려다주는 그런 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요양원에 데려다주는 자식을 모두 비하할 수는 없겠지만

박사의 핵심은 그게 아니니까. 


몽주의 언니를 보면 참 부모로서 씁쓸하다.

공부 잘해서, 제 할 일 야무지게 잘해서

키우는 내내 부모에게 큰 기쁨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부모가 힘들 때, 가족에게 큰 난관이 생겼을 때는

나 몰라라하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언니를 보면서

공부 못해도

마음 따뜻하고 배려심 많은 몽주가 훨씬  "지성인" 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나중에도 몽주가 부모님 걱정하고, 효도하며 살 거라고 생각한다.


몽주가 산산조각 난 가족의 마음을 어떻게 이어주는 마술을 할지 궁금하지 않는가!

수학 한 문제, 영어 단어 하나보다

몽주가 겪는 이런 일련의 성장통이 더 사람답게 만드는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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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8-17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라파, 복고풍 단어네요^^

수퍼남매맘 2015-08-17 18:3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수퍼남매도 ˝구라파˝ 가 뭐냐고 질문하더군요.

책읽는나무 2015-08-18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깐 저도 구라파가 다른 단어인줄 알았어요^^
저는 나이 들면 시골 한적한 곳에 마당 있는 한옥집을 짓고 살고 싶단 생각을 품고 있는데 이층으로 된 한옥집은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울애들도 매번 계단이 있는 이층집에서 살고 싶다고 노랠 불러요~~실내계단은 아이들에게 어떤 로망이 있는거겠죠?
하긴 저도 빨간머리앤 때문에 초록지붕 다락방을 흠모하던 시절이 있긴 했습니다만~~^^

암튼 저도 몽주같은 아이로 끝까지 나도 남고 싶군요!!

수퍼남매맘 2015-08-18 11:43   좋아요 0 | URL
한옥은 더 운치 있겠죠.
관광지에는 가끔 한옥 펜션도 있던데 가격이 비싸더라고요.
처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들으면 진짜 낭만적 일 듯해요.
아이에겐 다락방이 웬만한 놀이터보다 더 재미있는 공간일 거예요.
수퍼남매도 단독 주택 살자고 노래를 불러요.

님은 분명 몽주 같이 마음 따뜻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일 겁니다.

2015-08-18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8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