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개정증보판 줄리언 반스 베스트 컬렉션 : 기억의 파노라마
줄리언 반스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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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완전무결한 부모와 오누이와 이웃과 동료로 이루어진 세상을 사는 것도 아닌데, 상처를 피할 도리가 있을까. 그렇다면 문제는, 수많은 것들이 걸린 그런 문제로 인한 손실에 어떻게 대처할까이다. 상처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억누를 것인가. 상처를 받아들여 중압감을 덜어보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상처받은 이들을 돕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류이자,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다. - P79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 P138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꺽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 P158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치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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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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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지만 대화체가 하나도 없는, 작가가 주인공인 제롬과 실비를 관찰하며 쓴 관찰일기 같기도 한 독특한 작품이었다. 그 관찰이라는 것이 적잖이 객관적이어서 가끔 뼈를 맞은 듯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내 얘기인가) 예를들면 ‘시간이 그들은 대신해 선택해 주었다.‘ (P. 31) 같은...
나 조르주 페렉 좋아하네.

임시방편인 상태가 현재를 완전히 지배했다. 기적만 바랄 뿐이었다. 건축가, 인테리어업자, 미장공, 배관공, 카펫업자, 페이트공을 부른 다름 자신들은 유람선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아와서는 완전히 새롭게 정돈되고 변신한 아파트, 믿을 수 없을 만큼 넓어져 이상적으로 변신한 아파트, 꼼꼼하게 신경 쓴 구석구석, 접이식 칸막이, 미닫이문, 눈에 띄지 않게 제작된 효율 좋은 난방 기구, 감쪽같이 감춰진 전기 시설, 고급스러운 가구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달콤하게 빠져드는 부푼 몽상과 달리 실제로, 그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객관적 필요와 재정 상태의 절충을 꾀한 어떤 이성적 계획도 끼어들지 못했다. 무한한 욕망만이 그들을 압도했다. (P. 26-27) - P26

대부분의 동료들처럼 제롬과 실비도 선택이 아닌 필요에 의해 사회심리 조사원이 되었다. 제멋대로 흐르게 놔둔 시큰둥한 성향이 어디로 자신들을 이끌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그들을 대신해 선택해 주었다. 물론,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고 싶었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천직이라 부르는 내부의 강력한 이끌림을 느끼며, 그들을 뒤흔들 만한 야망, 충만케 해줄 열정을 느끼며 자신을 쏟아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그들은 단 하나만을 알았다. 더 잘살고 싶다, 이 욕망이 그들을 소진했다. (P. 31-32) - P31

하나둘씩 차례로 거의 모든 친구들이 항복해 갔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던 삶에서 안정을 찾아 떠났다. ‘우리 이제 더 이상 이렇게 못 살겠어.‘ 라고 말했다. ‘이렇게‘ 라는 말은 모호한 동시에 계획성 없는 삶, 너무 짧은 밤, 얼간이, 낡아빠진 재킷, 지겨운 일, 지하철과 같은 말들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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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필립 로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
박대겸 지음 / 호밀밭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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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소설을 써야 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힌 필립 로커웨이가 소설을 쓰기 위해 처음 한 행동은 구글링이었다. 소설을 쓰려면 먼저 소설을 읽어봐야 하니까. (우리의 주인공은 지금까지 독서와는 담 쌓고 살아왔다) 나름 고심해서 고른 키워드로 <666, 페스트리카>이라는 소설을 알게 되고 그 책을 구하기 위해 뉴욕의 크고 작은 서점을 방문하며 겪는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소설을 써야겠다는 충동의 발현은 그로 하여금 들여다 보고싶지 않았던 과거를 마주보게 하는 ‘소설 같은‘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야기를 기록으로 보존하고 어떤 이야기를 기록에서 배제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야.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해서 보존해야 해.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잘 알고 있지만 굳이 꺼내 보려하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 해. 그러니까 나는 형에 대해 써야 해. (중략) 나는 곰이 있는 장소로 돌아가야 해. 내가 공포를 느끼는 곳으로, 자꾸 덮으려 하고 모른 척 하려 하고 없었던 일처럼 생각하려 하는 곳으로 돌아가야 해. (p. 173)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르죠. 그러고 나서 반성을 하고 회개를 하고.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다시 사회로 돌아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 나가야 해요. 하지만 여기서 짚어야 할 포인트는, 그가 돌아와야 할 사회가,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는 무대 위가 되어서는 안 되는 점이에요." - P57

흔히 책에는 답이 있다, 삶의 길이 있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읽히는 책에는 답 보다는 의문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러므로 독서라는 것은, 길을 찾는 행위하기보다는, 어쩌면 미로에 빠지는 행위에 가까울지도 모르죠. - P85

지칠 줄 모르는 인내심을 발휘한 끝에 필립은 3주에 걸쳐 [666, 페스트리카]를 다 읽을 수 있었고, 책을 덮는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책에 담긴 메시지나 소설의 의미 같은 것이 몰아쳐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소설의 어떤 장면이 강렬하게 떠올라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차라리 그 반대, 3주에 걸쳐 읽었음에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내용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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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경감 듀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피터 러브시 지음, 이동윤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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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앨마와 월터 이에외도 여러 공범들이 등장한다. 잭과 캐서린, 잭과 포피... 앨마는 월터와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지만 그 비밀로 인해 월터를 멀리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가짜 경감 듀는 어디까지가 ‘가짜‘일까? 꽤 오래된 소설이지만 여전히 탐정(역할)이 등장하는 미스터리는 흥미롭고 재미있다. 세월이 흘러도 인간은 (내 취향 포함) 변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에게 되뇌었다. 월터는 그녀 자신을 위해 이 일을 했다. 용감하고 냉정하며 단호하게 일을 처리했다. 남자들이 여자의 요구를 수행하느라 겪은 그 어떤 시련에도 뒤지지 않게 그의 사랑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흔적을 남겼다. 이제 그는 살인자였다. 그의 두 손이 죽음을 영접했던 것이다. 그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혐오감을 느끼는 게 가능한가?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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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이스크림 :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 띵 시리즈 20
하현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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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좋아하니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눈물나는 장면들이 꽤 있었다. 엑설런트 같은 추억의 아이스크림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것들도 있었다. 작가님이 유명해지면(?) 영업하고 싶다던 아이스팜 자두바는 꼭 먹어보고 싶다.
‘나만 알고 싶은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 (본문 中) 갑자기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신나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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