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 망국의 신하에서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
시부사와 에이이치 지음, 박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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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에이이치 저의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읽고

나는 솔직히 경제에 관해서는 솔직히 관심이 별로다.

어렸을 때부터 시골이었지만 아버님이 친구 분하고 함께 하는 사업(어업)이 잘못되면서부터 중학교 때부터 수업료도 내지 못할 정도였고, 형제들이 중고등학교를 거의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더 겪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땠든 지금까지도 직장 다니면서 받은 봉급으로 착실하게 생활만 해왔다.

봉급을 활용하여 다른 경제활동에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았고 하지 안했다.

그래서인지 퇴직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매스컴에서 언급하는 정도만 이해할 정도다.

오래 만에 우리 한국도 아닌 일본 경제의 아버지 격인 시부사와 에이이치에 대한 인물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일본경제에 대한 뿌리와 함께 오늘날의 일본 경제가 출발할 수 있게 된 배경 등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공부시간이 되어 너무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솔직히 어느 역사책에서 아직 들어 보지 못했던 인물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 그런데 일본의 설계자이고 경영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즉 일본 경제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 만큼 오늘 날의 일본 경제가 있게 하는 데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했다는 말이다.

결코 쉽지 않은 시대적 상황이었다.

막부정치 시대에서 메이지 시대에 이르는 그러한 어려운 시대적 상황 아래에서 난세를 잘 사용할 줄 알았기에 오늘 날의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막부 정치 시대에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일찍이논어』『대학등의 고전을 익혔다.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신하였으나 막부가 무너지면서 메이지 신정부의 관리가 되어 근대 일본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

요시노부의 신하였던 1867, 27살의 나이에 파리 만국 박람회를 시찰하며 유럽 자본주의를 체험했다.

자본주의와 기업 경영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귀국 후 메이지 신정부에서 대장성 조세사정, 개정국 국장을 역임하며 일본의 조세, 화폐, 은행, 회계 등을 개혁했다.

1873'상업이 부흥해야 나라가 선다'는 신념으로 관직을 내려놓고 철도회사, 가스회사, 전등회사, 방직회사 등 500여 개의 기업을 설립하면서 일본 자본주의의 뼈대를 세웠다.

동시에 양육원, 적십자사 등 600여 개의 자선기관을 세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가장 가슴에 남았던 것은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끗끗하고도 당당한 인생철학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얼마든지 결정적으로 인생행로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에도 원래 품었던 자신만의 철학인 '도덕 경영'을 실천했던 사상가로써, 도덕적인 삶을 살았던 한 인간으로써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현대 경영학의 대부인 피터 드러커도 "나는 기업의 목적과 경영의 본질을 시부사와 에이이치에게 배웠다."라고 하였고, 세계 유명한 경영인들이 롤 모델로 삼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세계 경제의 리더 격인 일본 경제를 설계하고 뿌리를 만들게 한 "시부사와 에이이치"인물에 대해 좋은 깨달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내 자신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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