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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먹어요
아녜스 드자르트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을 접할 때에는 많은 요리와 레시피가 담겨있기에 맛있는 요리들을 실컷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소설책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요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요리에 관한 이야기나, 작은 음식점 '쎄 무아(나의 집)가 어떻게 성장하느냐를 보여주는 책은 아니었다.
그 이상의 많은 이야기. 즉, 자신이 선택한 결혼이었고, 가정이었지만, 무참하게 무너져서 세상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간 40대 미리엄이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식당은 '셰 무아' . 프랑스어로 나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엄마가 만들어주는 사랑이 담긴 식당인 것이다. 미리엄은 '나는 사랑으로, 사랑에 의해 요리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추락할 만큼 추락해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녀.
위조한 문서로 은행 대출을 받아서 식당을 차리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그냥 누군가에게 맛난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었기에 차린 식당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면서 따뜻한 밥 한끼 먹이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리엄이 왜 6년동안 남편과 자식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면서 살아야만 했을까?
이 한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책의 많은 부분을 읽은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미리엄은 자신이 원했던 결혼이지만, 확고한 신념도 없었고, 완전무결과 신뢰감 만족을 보장하는 남편에 의해서 지쳐가고, 아들을 출산한 후에 자식 자랑을 늘어 놓다가 날아온 남편의 이유 모를 따귀 한 대. 그리고, 아들은 커가면서 너무도 완벽하여 엄마의 손길이 미칠 틈조차 주지를 않고, 그런 가운데 우울증과 함께 찾아온 함정.
그 함정이 가정을 파탄시키고, 그녀를 세상의 뒤편으로 숨어 버리게 만든다. 타인과의 관계도 어설프고, 아니 원하지 조차 않는 그녀에게 찾아온 두 사람. 뱅상과 벤.
활기가 없던 식당에 생동감을 가져다 주는 벤. 그러나, 미리엄과는 너무도 다른 식당에 대한 열정.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의 제목인 '날 먹어요'의 의미도 궁금할 것이다. 이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날 먹어요'라는 글자가 적힌 케이크를 먹은 앨리스가 몸이 커지고, '날 마셔요'라는 글자가 적힌 주스를 마시자 앨리스가 작아진 그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 앨리스가 원하는 크기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 '먹고, 마시기'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원래 크기로 가기 위한 노력을 했듯이, 미리엄이 자신의 아픈 상처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크기를 찾아가기 위해 자아 정체성을 찾아 가기 위한 노력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날 먹어요'는 자신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으라는 의미와 그것이 곧 미리엄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의미,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상태에서 미리엄이 가장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음식을 누군가에게 먹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책의 문장들은 참 낯설다. 문장(글)의 향연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화려하고도 섬세하게 치장된 문체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고 단순한 문장들이 아닌, 수식과 열거와 비유 (은유)로 가득찬 문장들이기에 어느 정도의 분량을 소화하기 전에는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만큼 미리엄의 심리를.. 갈망을.... 희망을....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표현해 나가는 것이다.
6년이란 긴 세월을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았을 엄마의 마음 역시 애잔하게 다가온다. 앞으로 그녀는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을지. 그리운 아들과의 만남은 이루어 질 수 있을지.... 이 모든 이야기가 작은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