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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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받은 마르케스의 이 책에서 그의 ˝마술적 리얼리즘˝에 흠뻑 빠져 하늘을 나는 양탄자가 새 자동차 모델같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리고 오래된 부엌 한구석에서 답답하리만큼 반복적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 왜 저렇게 살고 있지라고 자문하게되는 - 우리들 인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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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6-20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저도 읽으려고 준비중인 책인데... 아로님의 서재에서 만나니 반갑습니다:-)

올해는 작정하고 고전을 읽겠다고 다짐을 했는데요, 고전이 가진 아우라에 뒷걸음질만 치고 있는 기분입니다.

허나, 역시 읽어야겠어요~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가 저는 늘 궁금하니깐요~^^

초딩 2015-06-20 10: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하얀이님~ 제 작은 글을 반겨주시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후 읽었는데 백년 동안의 고독의 향과 여운이 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전개 방식과 마르케스의 글이 독특해서 더 그런것 같기도 하구요 :)
번역도 저는 좋았습니다~
 
이방인 알베르 카뮈 전집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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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는 제아무리 카뮈라고해도 저렇게 멋있게 담배를 꼬나물고 책 표지에 나타나진 못했을 것 같다. :) -_-; 뒤쪽 표지는 세피아톤으로 더 크게 담배를 물고 계신다.


아침에 내린 커피가 다 떨어졌고, 아직 퇴근할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서 (사실은 아닐지라도) 다시 커피를 내리듯이, 책장에 왜소하게 꽂혀 있는 이방인을 집어 들었다.

2008년에 인쇄된 이방인을.

해가 너무 강해서 해변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만 기억나는 책.

사실, 중반 아랍인들이 나타나는 대목에서야 "아 내가 이 책을 최소한 세번째 읽고 있구나 -_-;;" 를 알게 되었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 (LE MYTHE DE SISYPHE)

평생 돌을 언덕위에 올리는 (다 올리면 다시 굴러 내려오는) 형벌을 받는 시지프


부.조.리 철학의 카뮈 책 답게 담배를 입에 무신 카뮈로 장식된 표지, 전체 책의 반이 해설인 -_-; 구성 각 해설들의 너무나 정직해서 화가나는 번역 그리고 "이방인" 자체가 온통 부조리로 가득했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무시무시한 아마겟돈의 영향으로 모든 인간이 죽음을 향해있다는 숙명으로 출발해, 모든 것이 부질없고 의미없다는  인생무상에 가까운 부조리 철학. 읽으면서 화가 좀 치밀어 올랐다 :)


"어머니의 죽음을 영하25도의 얼음처럼 받아들이고 행동해도 되나?"

"물에 술 탄듯 매사에 저렇게 임해도 되나?"

"그리고 왜 사람을 죽여?"

"같은 이유면, 푹푹찌는 더위에 짜증나는 일이 가득한 광안리 해수욕장은 시체로 가득하겠네 -_-"

"그리고 정작 본인이 죽음을 마주하게되니 감정적으로 변하고, 죄없는 신부에게 핏대를 세우는구나"


카뮈가 30살에 이방인이 출판되었으니, 만약 이 책을 막 출판한 카뮈가 내 옆에 있었다면, 나이도 어린 녀석이라며 위와 같은 질문을 쏟아 붓고 훈계라도 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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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읽은 후, 이 삐딱한 청년의 서사와 문체만 아름다워보이는 - 하지만 내용은 잔인한 -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고민을 했었다.



죽음 앞에 평등하게 부조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머릿속이 하얗게되는 부조리는 "잘못된", "옳지 못한", 정도로 ... -_-;)

우리가 만든 사회 자체가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것이다. 하지만, 그 것을 비관해서 염세주의자가 되기 보다는, 그 자체의 부조리함을 인정하고 동행하면서 맞서야한다.


나는 이 것이 1차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은 카뮈의 부조리 철학으로 단정지어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가 전쟁으로 얼룩진 1차 세계대전 때의 사회와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생각 해보았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를 염세주의자의 건조하고 차가운 (듣는 이로 하여금 화가나게하는) 내뱉음으로 해석하지 말고,


"부조리한 사회에서 만든 관습이나 현상에 연연하는 것 보다는,

(연연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또 그 것에 연연할 필요도 없으니)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올바른) 생각대로 살아가야 한다" 를 생각해본다.


네번째 읽게된다면 다른 -_-; 출판사 책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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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5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직접 내린 커피를 음미하면서, 카뮈의 <이방인>을 읽는 아로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

초딩 2015-06-15 20:24   좋아요 0 | URL
쉽지 않은 책이라 그냥 마음 다 비우구 달팽이 처럼 세월아네월아 읽었네요 :)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시간 되세요~

비로그인 2015-06-1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방인은 아직 읽지 못했어요~ 페스트 이후에 이방인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강렬했는데...ㅜㅜ 늘 읽어야 할 책들에 마음만 조급하네요... 아로님의 글을 보니 재동기와 함께 4번은 읽으셨다는 말씀에서 한 번 읽은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스스로를 살짝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ㅜㅜ

초딩 2015-06-18 11:35   좋아요 1 | URL
:) 저는 역으로 이방인을 읽고 나니 카뮈의 시크한 부조리 철학에 관심이 더 가서 페스트 등을 꼭 읽어 보고 싶더라구요 ^^
저도 책에 욕심이 많은데, 한정된 시간에서 마냥 투정만 할 수 없어서 그것을 인정하고 여유있게 읽을려구해요 ^^
좋은 하루 되세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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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종데트르 (삶의 존재 증명)를 시도한 하루키의 대작.

하필이면 중간고사 때 새로운 게임이나 책, 음악, 놀이를 발견해서 세상에서 가장 수고스러운 사람으로 자기 체면을 걸어 그것들에 빠진 것처럼 두 권을 읽었다.

천근만근 무거운 인간 존재와 무의식에 대한 사유를 다룬 이 책에서 환타지 소설같아 책장은 잘도 넘어가는데, 나는 무슨 메시지를 얻어야하는지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먼저, 표면적으로 잘 드러난 결말로 통독하듯이 그 메시지를 찾았다.


주인공은 현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는 영혼의 죽음을 대단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박사나 조직에 맞서거나 대항하지 않고, 박사의 손녀딸이 자신을 냉동시켜 해결 방법이 있을 때 까지 기다려보자는 것에도 순순히 응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삶의 정수 (매일을 특별한 날로, 당연한 것을 멋진 것으로 식의)를 조금 발견하며 보낸다.

이방인의 주인공이자 부조리 철학의 대표주자인 뫼르소가 이 책의 주인공이었다면, 자신이 대항해도 상황이 변치 않으니 이 책의 주인공처럼 무덤덤하게 자신의 운명을 수긍하겠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날카로운 행동을 했을 것 같다. 이방인에서처럼 꼭 누군가를 해변에서 쏘아죽이지 않더라도 주인공처럼 착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에 가깝게, 주인공 자신의 무의식에서 만든 "세계의 끝"에서는 지구 정도는 구할 수 있는 주인공으로 헐리우드 영화에 캐스팅 될 만큼 반전의 결단력 있게 적극적으로 선택해서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무의식속 자신의 그림자를 세계의 끝으로 탈출시켜가면서 말이다.


현실과 무의식 세계에서 주인공이 마주한 상황은 대등하지 않지만 유사한 곤경이다. 자신이 인지하는 현실에서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무의식에서는 적극적으로 대항하며 이겨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키는 "인간은 무의식적으로는 두렵고 이겨내기 힘든 것들에 맞서지만, 결국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일까? 소크라테스의 "파이돈" 대화편에 나오는 "철학자" 정도는 되어야 불멸의 영혼을 인식하고 선행과 지혜를 추구할 수 있고, 보통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 노예처럼 채찍을 일용할 양식으로 생각하며 끝도 없는 피라미드의 돌들을 만들고 날라야하는 것일까? 하루키가 42킬로 마라톤을 완주할 만큼 체력이 좋아진 1984년 8월부터 이 책을 썼다고하는데, 그는 그 체력의 육체 속에 영혼을 가두어버린 것일까?


방백처럼 질문들을 던졌지만, 연극을 골똘히 보고 있는 관객들은 그저 골똘히 앉아서 보고 있을 뿐이다. 그가 교묘하게 만들어버린 "열린 결말" 속에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책을 고민하면서 더 오래 기억하라고 이런 수법을 쓴 것 같아 얄밉기도 하다. -_-;


나의 의식은 자꾸만 이 책을 열린채 놔두고 책속의 흥미롭고 독립적인 내용들을 레퍼런스로 나중에 써먹고 지금은 메시지 같은 것은 잊어버리라고 종용한다. 심지어 이정도 사유를 했다면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한장 받을 수도 있다고 갈라진 혀로 재잘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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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의식에게 한줄기 희망이 있다. 바로 "이쑤시개" 다.


더 정확하게는, 이 책에서 소개된 어떤 과학자가 생각해낸 "백과사전 막대"이다. 백과사전의 모든 문장을 숫자로 바꾼다. A는 01, B는 02 식으로.

그리고 그 것을 나란히 배열한 후에 맨 앞에 소수점을 찍는다. 그러면 거의 무한소수에 가까운 숫자가 만들어진다. 0.1732000631... 식으로, 그리고 그 이쑤시개의 길이를 "1"로 잡고, 백과사전이 만든 숫자에 해당하는 부분을 점으로 찍는다. 0.5는 이쑤시개의 한 가운데라는 식으로. 그러면 아무리 두꺼운 백과사전이라도 이쑤시개에 간단히 표현된다. 물론 현대 그리고 꽤 먼 미래의 과학에서도 그렇게 초정밀한 점을 찍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이쑤시개는 현실 또는 시간에 해당하고 백과사전은 우리의 생각 또는 영혼에 해당한다. 이쑤시개가 1cm 이든 1km이든 상관 없이 아무리 페이지가 많은 백과사전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1초이든 백만년이든 상관 없이 인간의 생각과 영혼은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사). 슈퍼맨 정도는 되어야 현실에서의 1초를 백년처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주인공은 박사님의 실험 덕으로 -_-; 현실에서는 멍하게 의식을 잃고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빠져 그렇게 영원히 살게된다.

글이 슈퍼맨을 넘어 "인셉션"으로 치닫고 있다. 이책의 열린 결말보다 더 열어져쳐질 것 같은 이 글을 닫아봐야겠다.


그러면, 도대체 히어로나 준히어로, 히어로의 친구의 친구도 아닌 우리들은 이쑤시개를 사용할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또는 천운처럼 또는 정말 우연히 2권을 읽을 때,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공간마다 책을 배정하는 버릇이 있다. 집에서는 이책, 사무실에서는 저책, 밥먹을 때는 요책 식으로) 좀전에 거론한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사후 영혼의 불멸에 대해서 긴 대화를 한다. 그의 3단을 넘어 9단 논법을 읽다보면 영혼 불멸을 지구는 둥글다 처럼 믿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고결한 철학자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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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루키의 이 책을 통한 메시지는.


인간의 무의식은 어떠한 역경에도 정의롭고 강인하며 또 영원불멸한 것이고,

그 것은 인간의 구성요소이지만 현실의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 지배받지 않는다.


라고 꽤나 그럴싸하게 결론 지을 수 있지 않을까? 문이 덜 닫혀서 어디선가 매서운 바람이 계속 불어 들어오는 것 같지만, 나의 의식은 여기서 갈무리를 하라고 한다. :)


마지막으로 책의 민줄들을 덧불여 본다.

˝그림자가 다시 내게 달라붙는다고 해도 다시 떼어내질 뿐이다. 그리고 똑같은 일을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p62-63

˝난 갈피를 못 잡을 때는 늘 새를 보곤 해.˝ p69

˝인간의 행위라는 것이 애당초부터 신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자발적인 것일까.˝ p83

˝시간이란 이쑤시개의 길이와도 같은 것이네. 그 안에 채워진 정보의 양과 이쑤시개의 길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네.˝ p131

˝인간은 시간을 확대해서 불사에 이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분해해서 불사에 이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p132

˝순수한 구덩이˝ p197

˝그러나 그래도 나는 방향타가 흰 보트처럼 반드시 똑같은 자지로 되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나 자신은 언제나 거기에 있으며, 내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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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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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1949년생, 별난 이들이 많다는 와세다대에서 학생 운동을 하며 7년 만에 졸업, 1979년 문단에 데뷔,

1985년 이 책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두권짜리 소설이다.

원서가 두권인지 제법 두터운 한권인지 알길은 있지만 별로 알고 싶지는 않은 어쨌든 긴 소설이다.



원래 목적지는 1994년작 "태엽 감는 새"였다.

하루키를 좋아하고 그의 천재성과 위대함을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할 준비는 되어있지만,

태엽 감는 새가 하버드 북 스토어 Top5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는 그가 새롭게 보였다.

그래서 그 책을 읽으려했는데, 하필이면 총 4권중 세번째 책만 중고로 구입한 상태라서

책장에서 뒹굴고 있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을 읽기 시작했다.



헤르만 헤세와 이문열에 이어 참 좋아하는 작가고 그들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드보일드"와 "원더랜드"가 들어간 이 책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하드보일드" -_-; 많이 끓었다는 뜻인가? 나의 무지함으로는 해석이 안되어 이곳 저곳을 뒤적거려보았다.


문학에서의 "하드보일드"

1930년대 전후 미국 문학에 나타난 새로운 사실 주의기법으로, 원래 계란을 완숙하면 더 단단해진다는 뜻에서 왔다고 한다.

문학적 용어로는 "비정", "냉혹" 이라는 말로,

극한 폭력적인 것들을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거나

사회적,윤리적, 도덕적인 것들을 전면 배제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 "하드보일드"가 제목에서는 어떤 역할을 할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하루키 그의 묘사, 서술 방식을 생각해보면 이만큼 적절한 말도 찾기 힘든 것 같다.

"화가나 소설가들이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본다"라고 말한다면,

하루키는 자기가 보고 싶은데로 본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키가 와세다대 영화과이니 "하드보일드"의 영화쪽도 살펴보면,

문학에서의 그것과 거의 같은 의미이고 주로 냉혹한 누아르 장르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드보일드"의 문학적 영화적 의미는 알겠는데,

"하드보일드"가 제목에 자리 잡고 있으니 머리속이 다시 흐트러진다.

"딱딱하고 가열되고 냉혹한" 정도의 수식어로 생각하고 다음 단어로 넘어가본다.



"원더랜드"

말 그대로 동화의 나라다.

1권을 읽고 2권의 중반을 읽고 있는 시점에서 원더랜드가 "동화의 나라"다라는 뜻을 가진 것이 참 혼란스럽다.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세계와 일각수 (유니콘)가 있는 동화속 같은 세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일각수가 있는 동화속 같은 세계가 책에서는 "세계의 끝"으로 불리운다.

그래서 자석요를 사듯이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현실의 세계로 생각했는데, 그 뜻이 "딱딱한 동화의 나라"라는 뜻이니

나는 이름도 성도 모른채 누군가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 같은 미안함과 (그래야할 이유는 없지만) 부끄러움이 든다.



...

...

잠시 내가 왜 이렇게 제목이 연연해할까라고 생각하다,

갑자기, "상실의 시대" 원제가 "노르웨이 숲"이라는 것이 생각났고,

(이 책은 "일각수의 꿈"으로 예전에 번역되었다고 한다. -_-)

지금 내가 작가가 짓지도 않고 한국 출판사에 의해 그럴듯하게 탄생한 제목에 목을 매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에 (일본어는 모르니)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영어 제목이 "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 이다.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작가의 것이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

...


이 책에서 하루키 그가 그려내고 있는

인간의 "마음" "기억" "존재"의 의미를 따라가다보니

2권의 중반을 읽고 있는 이 지점에서 제목에 눈이 많이 간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났을 때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듯이,

그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미리 알아내려고 제목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다.


 

곧 2권을 마저 읽고 나면

덜 두서 없이 정리해보고 싶다.



하루키 맛이 가득한 그의 "하드보일드"한 문체들을 마지막으로 덧붙여 본다.



˝마치 비늘 랩에 싸여 냉장고 안에 던져진 채 문이 닫힌 생선과 같은 서늘한 무력감이 나를 엄습했다.˝ p42

˝공기는 벌써 몇 년 동안이나 그곳에 버려져 있었던 것처럼 혼탁했다.˝ p72

˝아무도 내게 볼일이 없는 듯했다. 괜찮다. 나 역시 어느 누구에게도 볼일이 없다.˝ p119

˝그것도 아무리 오랫동안 들여다 보아도 뒤돌아서면 어떤 얼굴이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 그런 타입의 미녀다. 이 세상에는 그런 타입의 아름다움이 존재하다.˝ p231

˝`하지만`도, `만약`도, `그러나`도, `그래도`도 없이 파괴는 한순간에 완전히 끝나고 김빠진 침묵이 주위를 뒤덮었다.˝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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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생각수업 -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세계 최고 인재들의 생각법 1
후쿠하라 마사히로 지음, 김정환 옮김 / 엔트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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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후쿠하라 마사히로 (고유명사에 특히 약한 몹쓸 내 머리는 절대 기억해내지 못할 이름)는


학교와 기관의 고유 명사를 외울 필요가 없는 "세계 최고의 대학", "세계 최고의 고등 교육 기관", "세계 최대의 투자 회사", "세계 최고의 교수진", 세계 최고의 ~~~ 를 잔뜩 달고 다닌


중국이나 몽고 (기분은 나쁠 수 있겠지만) 일본 또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한국이

역사의 어느 때 전세계를 휘어 잡아 지금까지 유지했더라면 (돈으로든 칼로든 아니면 문화로든), 근대와 현대에

그 지식과 사상, 문화가 이 지경까지 폄하 받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동.양.인이다.


그 동양인 중에서도 일본인이다.



책 저자의 국적을 저렇게 길게 쓴 이유는 이 책은 "동양과 서양"의 "다름'에 대해서 특히 대학이라는 상아탑에서 일어나는 그 "다름"에 대해서 이야기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받을 수 있는 충격을 덜 파괴적으로 완화시키고 좀 더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 얼마전 EBS에서 만든 "동과서"라는 다큐멘터리를 한 번 보고 책을 대해도 좋을 것 같다.




마사히로는

"나는 도시의 높은 빌딩 숲과 땅밑의 거대한 지하철이 멋지고 부럽다고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

우리 시골도 충분히 아름답다,

단지 높은 빌딩은 땅의 면적을 최적화해서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고, 여러 시설들이 함께 있어

도시의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효율적인 것 같다.

나는 도시가 좋다 시골이 나쁘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단지...

...

...

...

"

이라고 말하는 4년 정도 지낸 도시 생활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골에서 보냈고 보낼 사람처럼 동양과 서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Annenberg Hall, Harvard College>

 

책을 읽는 동안 얼굴이 화끈 거릴 만큼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많이 느끼고, 읽어봐야겠다고 참고되는 철학가와 학자들의 책들을 수도 없이 노트했고, 몇몇 장들은 너무 감명 깊어 몇번이나 다시 읽고 지인에게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이야기해댔는데, 나는 왜 이 후기의 시작을 이렇게나 "깍아내리기"로 시작했을까?




동양과 서양의 "다름"에서 출발해서


지식과 세상의 모든 정보를 위태롭게 쌓기에 바쁜 작금의 동양과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서 시작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그것 자체가 무엇인지에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형이상학적인 사상에 대한 질문에까지 온통 질문을 던지고 깊은 사고를 하는 서양의 비교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가와 경제학자들의

상아탑 꼭대기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고결하리만큼 느껴지는 이론들


그 모든 것에 너무 흠뻑젖고 감명받아 때아닌 비판적 책 읽기가 극으로 발동해서 나의 비판적 후기가 (그래봤자 나또한 시골사람처럼 도시를 찬양하는) 시작 된 것 같다.



이 책의 후반부 "예술" 편에서는 (다른 독자들도 그랬겠지만) 아래 그림이 내 머릿속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누구도 찾지 않은 산속에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을 것 같은 동굴에서 혼자만의 비서를 찾은 것처럼

마사히로가 인문학을 책의 마지막에 들고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는 이미 온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최고/최신/절대의 영향을 주고 있으니말이다.


마사히로는 경제장 후반부에서도

자본주의에서, 기업이 점점 거대해져 사회주의 정부처럼 막강해져 종말에 가까워지는 시스템을 타계할 방법 중 하나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거론했다.

기술의 이노베이션을 통해 새로운 산업과 기술이 나타나고, 이 것은 기존에 주름잡던 거대해지고 있는 기업들을 파괴해서 기업의 절대 정부화를 막는 창조적 파괴를 거론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그의 "애플"이 창조한 단어처럼 된 이노베이션 을 또 유행처럼 다룬 것이다 :)



마지막 장에서

다름을 초월해서 우리 모두 "교양" (특히 인문학)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답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질문들을 던지고 맺는다.




그리고 내 머리속에 경종을 울려준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과학기술과 예술"에 대한 아래의 주장을 소개해주었다.


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을 편하고 빨리할 수 있게 된 우리가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더 가치있게 쓰지 못하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예전에 시간을 통해서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랜시간 동안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불편하게 먼 곳을 애써가서 공연을 봐야한다.




:)

하버드의 생각수업이 하버드나 옥스퍼드 등의 수업방식을 설명하는 책은 아니다 :)

시골에서 상경한 (똑똑한) 한 사람의 견문.감상록 같은 이 책은 그 자체만을 읽는 것도 충분히 자극적이고,

책에서 거론된 철학자와 학자들의 책을 찾아 읽어 보는 지도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저자도 그것을 바란다).




책을 읽어줄 때 큰애가 던지는 질문에 한 번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 질문 자체도 존중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큰애의 질문에 이어 질문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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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0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딩님 글을 읽어보니 이 책 읽고나면 또 장바구니에 책이 잔뜩 쌓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