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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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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의 인간이 창조한 괴물이나 로봇이 제재가 된 소설, 영화 등에 소재 자체뿐만 아니라 창조주와 - 어리석은 인간을 말할 때가 많은 - 피조물과의 갈등 그리고 작품 전체에서 던지고 싶은 철학적 메시지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프랑켄슈타인'.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인 줄 알았다. 특히 역사각형의 넓은 이마와 - 그래서 덜 지적이고 잔인함이 느껴지는 이마 - 용도를 알 수 없는 양쪽의 그로테스크한 나사못 그리고 사람이라면 참을 수 없었을 것 같은 크게 꿰맨 자국이 괴물이 남겨준 강한 인상이었다.


무심결에 넘겨본 첫 페이지는 영화에서 자극적으로 포장된 괴물의 인상을 일갈해버렸다.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 실낙원"

p5, 페이지 번호가 없던 최초의 페이지들 중에서


그리고 곧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고 그것을 만든 영특한 과학자였음을, 그리고 괴물은 넓은 이마도 나사못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흑발은 출렁거렸고,"

p72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가난과 낭만으로 가득한 유랑생활을 한 메리 셸리가 20대 초반에 쓴 이 책은 - 1818년 책으로 출간 -,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서간 형식으로 회상되어지는 것을 쫓는 것도 재미있지만,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일곱개의 뺨' 처럼, 덮어둘 수만은 없는 '문제'들에 대해 송곳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구중의 자물쇠를 채운 금고에 꽁꽁 숨겨둘 비밀 일기가 - 하지만 이것도 영원히 온전한 비밀을 약속할 수 없을 것이다 - 아닌 이상, 창조자의 창작물은 창조주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되어질 것이다. 또한 그 산물을 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문학이든 과학이든 그 산물 자체에 인격을 부여할 만큼 그 '산물' 자체의 희로애락도 논하게 만든다. 불이 뜨거운지조차 모르는 '갓난아기' 같은 '괴물'이 창조되자마자 세상에 버려지고 홀로 성장해, 창조주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그 창조주가 자신을 외면했음에 분노해서 위해를 가하는 고뇌하는 괴물을 보면 '연민'의 감정마저 생긴다.

셸리의 과학적이고 천박하지 않은 기법은 '프랑켄슈타인'을 동정하지 않게 만든다. 읽는 이로 하여금 창작자의 항구를 떠나 '릴리즈'된 '창작물'이 자신의 예상과는 - 제대로 무엇을 예상 했는지도 모를 무책임한 창작자 - 다르다고 방기한 그를 비난하게 만든다. 지적호기심과 탐구심 그리고 그것에 대한 열정은 뜨겁지만 나약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유부단하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동정표 따위는 행사하기 힘들게 만든다.

나는 문학 작품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방망이를 깍듯이 무엇을 만드는 사람으로써 이 책은 편하게만은 읽히지 않았다.

언제든지 나의 창작물이 '괴물'이 되어 그것의 사용자에게 또 나에게 언제 위해를 가할지 모를 일이다 - 아니 이미 경험한 것 같다.


나는 내 창작물이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방기' 했는가?


"악마!"

p131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사악하다."

p194


나는 내 창작물에 '연민'과 '공감'을 느꼈는가?

나는 도대체 '나'만을 위해서 구중의 자물쇠로도 꽁꽁 숨길 수 없는 창작물을 만들어 냈는가?


라는 질문들을 무수히 하며 읽었다.

그리고 강렬한 울림을 준 밀턴의 실낙원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


밀턴의 실낙원 p141





"결국 때가 되면 비탄은 필연이라기보다 일종의 자기만족이 된다."

p54


"지식의 획득이 얼마나 위험한지, 본성이 허락하는 한계 너머로 위대해지고자 야심을 품는 이보다 고향을 온 세상으로 알고 사는 이가 얼마나 더 행복한지를."

p65


"정말로 인간이란 그토록 강력하고 그토록 덕스럽고 훌륭한 동시에 그토록 사악하고 천박하단 말인가?"

p159


"폐인이 된 지금도 이토록 고아하고 신과 같은데 전성기 때는 어마나 영예로운 사람이었을까요."

p286


"많은 평자들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창조하는 과정이 신에게 도전하는 과학자의 과도한 야망을 보여줄뿐 아니라 작나가 예술가가 품는 창작의 불안을 투영하는 은유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괴물을 창조한 '불경한 기예 (unhallowed art)'에서 'art'라는 말이 기술과 예술 모두를 아울러 칭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p311 - 312, 해설


"괴물의 얼굴들은 모두가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

p312, 해설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 실낙원"
p5, 페이지 번호가 없던 최초의 페이지들 중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흑발은 출렁거렸고,"
p72

"악마!"
p131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사악하다."
p194

밀턴의 실낙원 p141

"결국 때가 되면 비탄은 필연이라기보다 일종의 자기만족이 된다."
p54

"지식의 획득이 얼마나 위험한지, 본성이 허락하는 한계 너머로 위대해지고자 야심을 품는 이보다 고향을 온 세상으로 알고 사는 이가 얼마나 더 행복한지를."
p65

"정말로 인간이란 그토록 강력하고 그토록 덕스럽고 훌륭한 동시에 그토록 사악하고 천박하단 말인가?"
p159

"폐인이 된 지금도 이토록 고아하고 신과 같은데 전성기 때는 어마나 영예로운 사람이었을까요."
p286

"많은 평자들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창조하는 과정이 신에게 도전하는 과학자의 과도한 야망을 보여줄뿐 아니라 작나가 예술가가 품는 창작의 불안을 투영하는 은유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괴물을 창조한 `불경한 기예 (unhallowed art)`에서 `art`라는 말이 기술과 예술 모두를 아울러 칭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p311 - 312, 해설

"괴물의 얼굴들은 모두가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
p312,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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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11-16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지와 낙심만 안고 돌아갑니다. 이런 부당함을 인내심으로 견디기 위해서는 제가 품은 것보다 더 많은 철학이 필요합니다.`(293p)

초딩 2015-11-19 12:48   좋아요 0 | URL
어떤 `무서운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생각할 꺼리들 논할 꺼리들을 많이 던져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답니다. 이 책을 읽게 해준 사람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

오늘도 맑음 2018-03-18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딩님~! 프랑켄 슈타인 특별판 광고에 초딩님의 평이 실렸어요^^ 꼭 읽어보도록 할 께요~!!
 
아Q정전.광인일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5
루쉰 지음, 정석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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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위해 문학을 하는가?” 좀 더 수동적으로 “당신은 왜 문학을 하는가?” 라는 질문에 중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이며 혁명가에 사상가인 루쉰은 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즉 의학이란 결코 중요한 것이 못 되며 국민이 우매하면 아무리 체격이 건장하고 우람해도 무의미한 공개 처형의 관중 노릇밖에는 못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에 비한다면 병에 걸려 죽는 것쯤이야 그다지 불행한 것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p10, 자서


일본 유학 중 본 영화. 중국 동포들이 러시아군 첩자를 하다 일본군에 잡혀 공개 처형당하는 같은 중국인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동포의 병든 신체가 아닌 우매한 정신을 고치기 위해 문학을 할 때이다. 문예진흥운동을.


이 책은 루쉰의 처녀작 “광인 일기”를 포함해, 그의 대표 작품집 “눌함”과 “방황” 중 “눌함”에서 11편의 작품을 번역해서 묶은 것이다.

11편의 각 단편들은 거칠고 투박하며 또 해학적이다. 싹둑 자른듯한 몇 편의 결말은 카프카를 생각나게도 한다.

수전 손택이 극단적으로 치우친 칼날 같은 질문들과 사유의 끝 없는 가지 침으로 사상을 던지고 논한다면, 루쉰은 동포의 계몽을 담백하게 일화같이 그려서 전달한다.


동포의 지독히도 어리석음을 처절하게 묘사하고, 멍에와 같은 낡은 봉건시대의 인습이 그 동포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저잣거리의 비린내 나는 흙탕물에 가둬두는 것을 다음 11편에 담아 외쳤다.



*** 아Q정전 ***

업신여김에 어리석은 허영 같은 뽐냄으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아Q. 혁명에 우연히 참여한 자신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존경심마저 표하자, 혁명이 어느 집 나무 열매인 줄 알고 더 으스대다 형장의 이슬이 된다.


"그는 스스로를 자기 비하의 제1인지라고 여겼다. '자기 비하'란 말만 빼면 어쨌든 '제1인자'가 된다. 장원급제도 '제1인자'가 아닌가!"

p29, 아Q정전


"역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망각' 이라는 보물이 효과가 있긴 있었다."

p37, 아Q정전



*** 광인일기 ***

주위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다는 환각에 빠진 환자의 일기다. 식인하는 어리석고 비인간적인 인습을 광인으로 꼬집어 지적한다.


"아직도 사람 고기를 못 먹어본 어린이가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라..."

p109 - 110, 광인일기



*** 콩이지 ***

글공부는 했지만, 과거에 오르지 못한 '콩이지', 그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벼슬'을 할 수도 있었다는 과정에 집착하는 바닥으로 몰락하는 답답한 이들을 대표한다.



*** 약 ***

"옛날 중국의 민간에는 사람의 피가 폐병에 좋다는 일종의 미신이 있었다. 따라서 범인이 처형되면 집행인으로부터 사람의 피를 바른 만두를 사곤했다."

p139, 약


이런 악습 때문에 루쉰은 서구 의술을 배우려 했다. 하지만 그 악습을 맹신하는 동포의 어리석음을 먼저 계몽하기로 결정하고 행동한 것이다.



*** 내일 ***

우둔한 과부가 허망하게 자신의 아이를 잃는 이야기다. 음양오행에만 매달려 사경을 헤매는 어린 아기를 이름 모를 약 두 첩으로 처방하는 의사와 그것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어머니를 그려내고 있다.



*** 작은 사건 ***

"한 움큼의 동전은 무슨 의미일까? 그자를 포상했단 말인가? 내가 인력거꾼을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p156, 작은 사건


인력거꾼이 인력거 손잡이에 옷이 걸려 넘어진 할머니를 스스로 모시고 파출소로 간다. 인력거에 타고 있던 화자는 별일 아니니 그냥 가던 길을 가자고 종용하는데도 말이다. 종용했던 화자는 파출소에서 나온 순경에게 손에 잡히는 데로 동전을 쥐여 주며 인력거꾼에게 전해주라고 한다.

그리고 말한다 '공자 왈 시경에 이르기를...'은 단 반 줄도 기억에 남지 않지만, 이 사건은 자신을 부끄럽게 하고 새롭게 다짐하게 해주며 용기와 희망도 준다고.

고인물처럼 썩어가서 마시기는커녕 냄새조차 역겨운 그들의 학문을 비판하고 있다.



*** 두발 이야기 ***

"솔직히 말해 당시 중국인들의 반항은 망국 때문이 아니라 변발 때문이었어."

p159, 두발 이야기


사상과 가치관의 발현 됨이 두발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런 사상과 가치관을 결부시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고 버거운 일반인들의 억울함과 반항을 이야기하고 있다.



*** 풍파 ***

개인의 의지와 노력과는 결코 무관한, 하지만 그 개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절대적인 황제의 용좌 오름에 울고 웃는 치친의 이야기이다.



***고향 ***

"희망은 본디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또 없다고 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를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p198, 고향


희망이라는 말조차 계급과 처지에 따라 달리 해석하게 된 자신과 자신의 어릴 적 따르던 친구의 현재 모습에 고뇌하는 화자의 이야기이다.



*** 백광 ***

오십 평생을 봉건시대의 과거에 매달리던 쳔스청. 일생의 마지막 과거에서도 낙방하게 되자 - 예전에도 몇 번 행했지만 - 거부였던 조상이 묻어두었다는 은 덩어리를 찾기 위해 광인이 되어 집안의 땅을 판다. 그러다 은 덩어리가 뿜어내는 환영의 백광을 따라 길을 나서다 호수에 빠져 죽는다.

일확천금과 같은 그리고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은 덩어리와 같은 과거 급제에 평생을 매달린 쳔스청을 당대 맹목적으로 저물어가는 지식인들을 비꼬고 애도한 이야기이다.



*** 토끼와 고양이 ***

"만일 조물주를 힐책할 수 있다면 나는 그가 생명을 너무 함부로 창조해냈으며 죽이는 것 역시 너무 함부로 한다고 욕하고 싶다."

p217, 토끼와 고양이


집 마당에서 키우는 토끼의 새끼들이 태어나고 또 일부가 고양이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이다. 덧없이 희생되는 사람들을 애도하고 또 그 탓을 조물주에게까지 돌려본다.





"썩어 있는 정신을 도려내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필설을 휘두른 것이다. 그것은 사그라져가는 중국을 희생시키기 위한 '외침' 이었다."

p226, 옮긴이의 후기

"즉 의학이란 결코 중요한 것이 못 되며 국민이 우매하면 아무리 체격이 건장하고 우람해도 무의미한 공개 처형의 관중 노릇밖에는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에 비한다면 병에 걸려 죽는 것 쯤이야 그다지 불행한 것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p10, 자서

"역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망각` 이라는 보물이 효과가 있긴 있었다."
p37, 아Q정전

"아직도 사람 고기를 못 먹어본 어린이가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라..."
p109 - 110, 광인일기

"옛날 중국의 민간에는 사람의 피가 폐병에 좋다는 일종의 미신이 있었다. 따라서 범인이 처형되면 집행인으로부터 사람의 피를 바른 만두를 사곤했다."
p139, 약

"한 움큼의 동전은 무슨 의미일까? 그자를 포상했단 말인가? 내가 인력거꾼을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p156, 작은 사건

"솔직히 말해 당시 중국인들의 반항은 망국 때문이 아니라 변발 때문이었어."
p159, 두발 이야기

"희망은 본디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또 없다고 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를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p198, 고향

"만일 조물주를 힐책할 수 있다면 나는 그가 생명을 너무 함부로 창조해냈으며 죽이는 것 역시 너무 함부로 한다고 욕하고 싶다."
p217, 토끼와 고양이

"썩어 있는 정신을 도려내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필설을 휘두른 것이다. 그것은 사그라져가는 중국을 희생시키기 위한 `외침` 이었다."
p226, 옮긴이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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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5-11-12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질문이군요. 사물의 본질을 따지거나 진리를 찾아가는 다소 철학적인 성격의 근원적 질문을 접하면 뭐라 할 말을 잃고 멈춰 서게 됩니다. ˝일순, 멈춤!˝

초딩 2015-11-12 19:15   좋아요 0 | URL
그 `멈춤`이 읽는 이유 또 목적 중의 하나 인 것 같습니다 :)

2015-11-16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7 0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크눌프 헤르만 헤세 선집 6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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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수레바퀴 밑에서"와 "유리알 유희"에 탐닉했고 그 사유의 늪에 허우적거렸지만, 이제는 수레바퀴 밑에서 위험하게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해낼 수 없다. 그렇게 자신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다 독일 문학의 한자리를 굳건히 지키시고 계시는 권현준씨의 헤세 역서를 보고 위로 삼아 구매를 했다.

-_-; 사실 헤세 작품들을 좀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간달프인지 크눌프인지는 제목 자체를 처음 봤다. 이 책에 같이 수록된 "동방 순례"는 그나마 제목이라도 스치며 본 것 같은데 말이다. 현대문학의 헤르만헤세 선집에서 이 두 중편 소설이 한데 묶인 이유는 "여행"이라는 테마라고한다. 하지만 나는 그말에 수긍하기는 힘들다. 표면적이고 직접적으로 여행을 나타내긴 했지만 헤세 작품 전체가 자아를 찾는 여행이라고 반론해본다.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먼 북소리`를 여행으로 묶었습니다"와 "이 두 작품을 여행으로 묶었습니다"는 많이 다른 것이다. 못땐 법 때문에 안그래도 힘든 출판사에게 때아닌 딴지는 그만 걸고 이렇게 좋은 책을 만들어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회귀한다. :)



크눌프


원제는 "크눌프, 크눌프 삶의 세가지 이야기"이다. 나는 한국어가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아이슬란드 어로 둔갑한다고해도 원문을 충실히 - 직역에 가깝더라도 - 옮긴 책이 좋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은 해설에 하면 되지 않겠나싶다. 그래서 민음사 역서들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제목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 :) 아직 여행으로 묶은 것에 대한 불평이 남아 있어서는 아니다. 역서는 역자, 출판사 등에서 언제나 많은 이슈가 있는 법이니.

크눌프는 홍반장 같다. 성이 홍씨이고 통장/반장 할때의 반장이라는 지식인의 답이라고해도 좋고, 언제나 어디서나 어려움이 나타나면 간달프처럼 - 백마는 아니더라도 자전차라도 타고 - 나타나 문제를 훈훈하게 해결해주는 동네 아저씨라고해도 좋다. 그 이름의 영화처럼.

독일어에 익숙하지 않는 나는 크`놀`프라고 계속 발음하는 이 크`눌`프는 사람이다. "사람이아니면 무엇이냐?"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독일식 이름이라 이것이 지명인지 가게이름인지, 아니면 말이름인지 - 간달프의 - 몰라서 먼저 하는 말이다. 철지난 영화제목 (홍반장)을 붙인 크눌프 아저씨는 - 결혼을 안 한 것 같으니 늙은 총각? 요즘은 어디에나 늙은 총각인 것 같다 - 한량이다. ㅡ,.ㅡ


"저 친구는 정말 행복하군

...

다만 구경하는 것 외에는 삶에 대해 더는 아무것도 욕심을 내지 않는 기인 같은 친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친구의 그런 삶을 고상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일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여러 면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손이 저토록 부드럽고 아름다울 수는 없고 또 저토록 가볍고 날렵하게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

하루하루를 마치 일요일처럼 즐겁게 살았다"

p34


한량의 "일정한 직사가 없이 놀고먹던 말단 양반 계층"은 사전적 의미가 나쁘지 않다. 책을 읽으면 무엇인가를 꼭 얻어내야한다는 결과 지상주의의 남성성은 - 유대인 가족대화의 과정을 중시하는 여성성과 대치되는 뜻으로 써봤다 - 짧은 단편을 읽는내내 눈을 충혈시키며 메시지를 찾으려한다.

세번째 이야기 (장)에서 크눌프가 눈밭에 쓰러져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죽어갈때조차.

설득의 심리학은 완독한 것 같이 사람들을 불나방처럼 따르게 하고 - 특히 여자도 - 재능은 있으나 그외의 것들이 신의 공평함으로 부재해, 신의 불공평함을 겸비한 훌륭한 친구들이 많은 크눌프에게는 최소한의 "차카게 살자. 못땐짓하면 벌 받는다."라는 일상의 메시지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시종일관 쿨하고 영특한 크눌프는 "크눌프에 대한 나의 추억"에서 친구와의 대화를 보면, 제대로 가꾸어지기만 했다면 최소한 문학사에는 한 획을 그었을 것이다. 크눌프의 친구들을 까만 커튼속 스툴에만 앉히고 카메라를 들이댔다면 크눌프가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증언할 것이니 말이다.


"그 사람은 내면에서 스스로 그것을 느끼거든. 반면에 선한 일을 하면 우리가 만족을 느끼고 또 양심의 가책도 없으므로 선한 일은 또한 옳은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p74-75


"모든 사람은 각자 영혼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영혼을 다른 영혼과 뒤섞을 수는 없어"

p82


유형지에 새로 부임한 사령관이 새롭게 내린 억울하고 답답한 업무 때문에 잠시 만났는데, 그 업무로만 만나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처럼 크눌프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아쉬움이 가득했다. 당혹스러워하는 나에게 해설이 편의점에서 이제는 화폐 가치마저 잃어버린 동전들을 내던지듯이 그 답을 우쭐대며 알려준다. 크눌프는 `헤르만 헤세` 자신이이라고. 지식과 지혜 그리고 사유로 가득하지만 딱히 쓰일 때가 없어 부유하는 것만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지만, 그 주위의 나아감만 있는 이들에게 지성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너도 빨리 결혼하고 애 놓고 어서 하데스의 강을 건너 이쪽으로 오렴"이라는 질투섞인 동경을 자아내는 헤르만 헤세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설명한 것이었다.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의 사유의 결과물이 작가와 책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동방 순례


나에게 `동방`은 고결한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한 단어다. 순례는 거기에 향신료까지 들이 붓는다. 크눌프의 사유를 통해 이 단편집은 헤세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에 내 손모가지와 전재산을 걸었다. 그랬다. 동방 순례는 헤세의 집필에 대한, 수렁과 같은 사유의 늪에 빠져 절망한 자신의 이야기를 `변명` - 소크라테스의 아름다운 변명처럼 - 한다. 좋아하는 커피의 꼬브랑 이름까지 말하듯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작가와 그들의 작품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역사속 실존 인물부터 다른 책속 인물 그리고 무려 헤세 친구들까지 나오며 떠난 이 판타스틱한 원정대의 동방은 지리적이라기 보다는 형이상학적이다.


"우리에게 동방은 그저 어떤 나라, 어떤 지역만이 아니었다. 영혼의 고향이자 청춘이었고,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느 곳에도 없는, 모든 시간이 하나가 되어 버린 그런 곳이었다."

p166 동방 순례


동방 순례에서의 간달프 - 크눌프말고 - 는 `레오`다. 그 메시아 레오가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어머니와 아이로 비유해서 이야기해준다.


"그것은 어머니들의 경우와 같습니다. 아기를 낳고 아이에게 자신의 젖과 아름다움과 힘을 다 주고나면, 어머니 자신은 보이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아무도 그들에대해 더는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p172 동방 순례


잠시 그 콧수염 때문에 카사노바로 가득히 보이는 로맹 가리이야기를 하고 싶다. "하늘의 뿌리"로 1956년 프랑스 콩쿠를 상을 받았고,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1975년 작 "자기 앞의 생"으로 또 콩쿠를 상을 받았다. 인류 최초로 콩쿠르 상을 두번 받은 것이다. 콩쿠르상은 한번 수상한 작가에게는 상을 다시 주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앞의 생"에 상이 결정될 때,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 역을 하고 있는 오촌 조카를 통해 수상을 거절하겠다고 편지를 보냈지만, 콩쿠르 아카데미 의장은 "아케데미는 한 후보가 아니라 한 권의 책에 투표한 것이다." 라고 답변했다. 이처럼 작가에게는 다소 씁쓸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에게 다가와 메시지를 전하고 그 존재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로서는 책을 쓰든지 아니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어. 책을 쓰는 일은 나를 허무, 혼란, 자살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었지.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책을 썼던 거야."

p189 동방 순례


그리고, 돌을 굴려 올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그 돌에 깔려죽을 것 같아 - 벌을 받아서 하는 것이지만 - 끊임 없이 돌을 굴려올리는 시지프처럼,

책을 쓰지 않으면 산소 공급이 중단되는 업보를 타고 난 것처럼 절박하게 작품을 썼다고 헤세는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의 이름이 레오였는가?"

p192 동방 순례


우리가 주저할 때 표면적으로 내세운 어떤 이유들이 정말 그 이유인지, 무엇인가를 - 그것이 해답일것 같은 - 말하려는 내 마음을 젖은 멍석으로 덮어버리고, 고민을 위한 고민을하며 입꼬리를 한 없이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지는 않는지, 괴로워하며 고민하기를 네번째 식사로 규정하고 - 또는 매일 거르는 아침 대신 - 습관처럼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인공의 작가 친구가 던진 질문이다.


"내가 선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희생을 바치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의 이기적인 소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로 나는 동방 순례 이야기를 쓰겠다는 계획을 하면서 그런 이기주의를 매일 더욱 분명히 느끼고 있다."

p193 동방 순례


우리들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목적과 당위성을 에두르며 포장을해도, `이기적 소망`에 눈이 멀어 과오를 범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많은 시련을 - 때로는 치명적인 - 겪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헤세는 자신의 창작 과정에서 겪은 이 '이기적 소망'으로 인한 힘들었음을 하소연하는 듯 했다.


"고통은 너무 커지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지요. 현재 H는 시험을 겪으면서 절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절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입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삶의 덕을 갖추고, 정의를 갖추고, 이성을 갖추고 극복하고자 하고 또 삶의 요구들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든 진지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절망의 이쪽 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고, 저쪽 편에는 깨달은 자들이 살고 있지요."

p229 동방 순례


이보다 더 절망한 이에게 자비롭게 위안을 주고 과정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말이 있을까. 이 말은 어쩌면 헤세 자신이 창작의 과정에서 (동방 순례) 겪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준 깨달음의 선물이고 보상인지도 모르겠다.

 

크눌프는 헤세와 같은 사람을, 동방 순례는 창작을 하는 과정을 대변하는 작품 같다 :) 

"저 친구는 정말 행복하군
...
다만 구경하는 것 외에는 삶에 대해 더는 아무것도 욕심을 내지 않는 기인 같은 친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친구의 그런 삶을 고상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일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여러 면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손이 저토록 부드럽고 아름다울 수는 없고 또 저토록 가볍고 날렵하게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
하루하루를 마치 일요일처럼 즐겁게 살았다"
p34

"그 사람은 내면에서 스스로 그것을 느끼거든. 반면에 선한 일을 하면 우리가 만족을 느끼고 또 양심의 가책도 없으므로 선한 일은 또한 옳은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p74-75

"모든 사람은 각자 영혼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영혼을 다른 영혼과 뒤섞을 수는 없어"
p82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이나 미덕에 대해 자랑하고 떠벌리는 경우,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p55, 크눌프

"정말 아름다운 소녀가 하나 있다고 할 경우, 만일 그 소녀가 지금이 가장 한창때이고 그 순간이 지나면 늙고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사람들은 아마 그 소녀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여기지 못할 거야.
..
그래서 나는 밤에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보다 더 아름다운 순간은 없다고 생각해"
p71, 크눌프

"우리에게 동방은 그저 어떤 나라, 어떤 지역만이 아니었다. 영혼의 고향이자 청춘이었고,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느 곳에도 없는, 모든 시간이 하나가 되어 버린 그런 곳이었다."
p166 동방 순례

"그것은 어머니들의 경우와 같습니다. 아기를 낳고 아이에게 자신의 젖과 아름다움과 힘을 다 주고나면, 어머니 자신은 보이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아무도 그들에대해 더는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p172 동방 순례

"나로서는 책을 쓰든지 아니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어. 책을 쓰는 일은 나를 허무, 혼란, 자살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었지.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책을 썼던 거야."
p189 동방 순례

"그의 이름이 레오였는가?"
p192 동방 순례

"내가 선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희생을 바치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의 이기적인 소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로 나는 동방 순례 이야기를 쓰겠다는 계획을 하면서 그런 이기주의를 매일 더욱 분명히 느끼고 있다."
p193 동방 순례

"고통은 너무 커지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지요. 현재 H는 시험을 겪으면서 절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절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입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삶의 덕을 갖추고, 정의를 갖추고, 이성을 갖추고 극복하고자 하고 또 삶의 요구들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든 진지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절망의 이쪽 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고, 저쪽 편에는 깨달은 자들이 살고 있지요."
p229 동방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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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7-16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로님의 서평을 읽고 나서야, 제가 크눌프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정 글들에서 아로님과 크눌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저도 모르게 감상을 기록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애정이 가득한 글 잘 읽었습니다. ^^
창작 비슷한 어떤 작업을 하는 저는, 책을 읽으면서 창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지요..=ㅂ=;;;;

초딩 2015-07-16 22:31   좋아요 1 | URL
너의 글을 잘 읽어주신 하얀이에게님에게 정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너는 지금 태엽 감는 새 1편 도둑 까치편과 성 (카프카의 `성`이아니고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성`)을 읽은 직후부터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습니다.


 
변신.시골 의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0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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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모음집이다. 카프카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의 나라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정말 체코는 예술과 문화의 나라인 것 같다. 언젠가는 꼭 St Charles Bridge의 사진을 찍으러 가볼것이다. :) 카프카는 1883년 7월3일 프라하에서 태어나 1908년 프라하의 노동자 재해 보험국 법규과에 근무하며 밤에는 창작을 했다고 한다. 1917년 폐결핵으로 휴직하고 요양을하다 1920년 복직 후 1924년 6월3일 41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카뮈와 사르트르가 발굴해서 세계적으로 - 우리의 머리에 쥐가 백 마리 정도 내리고 단절된 공허함을 가득 느끼게 하는 - 유명해졌다고한다.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이분도 역시 유대인이다. 실세계에서는 출장온 이스라엘 사람을 만난 것이 다인데 책으로는 정말 많은 유대인을 만나는 것 같다. :) 이 책은 카프카의 "변신", "유형지에서", "단식광대",  "시골의사", "판결"을 담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손에 든 이유는 "변신"이 어떤 사람이 아침에 깨어나니 벌레로 변신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이 세계적인 부조리 철학의 0.5세대 같은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가 궁금했고, 좀더 구체적으로는 -_-; 벌레가된 주인공의 끝이 어땠는지 - 예전에 읽어서 도무지 추측조차 할 수 없어서 - 몹시 궁금해서였다. "어렵다", "황당하고 당황스럽다", "단절" 이라는 단어가 그의 작품명 보다 먼저 떠오르는 카프카에게서 나의 이런 궁금증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카프카는 훌륭한 사진사이면서도 현상하여 인화한 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사진 원판을 그대로 제시한 모양이다.

원판을 보고 사물과 인간의 모습을 알아낼 만한 눈을 가진 고객은 없는 것이다.

아마도 숙련된 사진사 자신만이 인화하기 전에 그것이 잘된 사진인지 잘못된 사진인지 판별할 수 있으리라."

p198 해설의 마지막

이 무슨 회괴망측한 소리인가. 그렇다면 책을 내지 말았어야지 -_-;.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신한 주인공은 자신이 벌레임을 자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_-; 하지만 곧 포기하고 비참하리만큼 넓은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다 카프카처럼 죽었다. 죽기전 일말의 메시지라도 던져줄 독백도 없었고, 가족 중 누군가가 슬픔의 고해성사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각 씬들 하나 하나를 무미건조하게 - 독일식의 경쾌한 단문으로 - 설명하던 3인칭 작가도 그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좀 와봐요. 저것이 뻗었어요. 저기 널브려져서 그만 뻗어버리고 말았어요!"

p79 변신 중

라고 일하러 온 할멈이 그레고르의 시체를 보고 그의 부모에게 외친 이 대목 정도가 그나마 참 격정적이었다. 세스코를 불러서 벌레퇴치를하고 오랜만에 쾌적한 환경의 집을 선물 받은 가족처럼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결근계까지 써대며 상쾌하고 활기찬 나들이를 나간다.

...

카프카의 소설들은 종결조차 없는 것이 허다하다고한다. 그나마 종결스러운 것이 있는 소설이 여기 이 5개의 단편이라고한다. 말인가 글인가 -_-

2막이라도 열릴 것 같은데 페이지는 흰 공백을 잔뜩 드러내고, 다음 페이지는 억울하게도 "유형지에서"였다.


사형기계를 애착인형처럼 사랑한 장교는 곧 폐기될 그 기계의 운명과 함께한다. 자신이 직접 그 사형기계에 들어가서 죽는다. 그리고 끝.

단식 기록을 세우며 흥행을 하던 단식광대는 이제는 철지난 유행처럼 아무도 단식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도 계속 단식 기록을 세우다 굶어 죽는다. 끝.

눈보라가 치던 날 멀리 있는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떠난 시골의사는 자신에게 말을 빌려준 못땐 녀석이 자신의 하녀를 겁탈하는 것을 알고 환자를 본 후 눈보라 속을 달려 집으로 간다. 이렇게 외치며

"속았구나! 속았구나! 한번 야간 비상종이 잘못 울린 것을 따랐더니 결코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구나."

p 166

내가 하고싶은 말이었다. -_-;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신이 많이 나가계시는 아버지를 모시며 나름대로 사업을 번창 시킨 아들은 노망에 가까운 아버지의  "나는 너에게 빠져 죽을 것을 선고한다" (p187) 말에 뛰쳐나간다. 난 그냥 아버지와 싸워서 기분이 상해 바람이라도 쐬러 나간 줄 알았다. 그런데 별다른 상상을 할 여유도 없이 몇줄 뒤에 게오르크는 다리 난간을 붙잡고 있단다. 난 강을 보면서 화를 삼키며 난간을 꽉 쥐고 있는 줄 알았다. -_-; 강을 본것이 맞다. 다리에 매달려서. 그리고 빠져 죽는다. 끝.


"변신"에서 메시지를 찾기 어려워 - 한 번 읽고 찾았다면 난 이렇게 글을 쓰고는 있지 않을 것이 틀림 없다 - 다음 단편들을 빠르게 읽어갔지만, 다 이모양이다. 그리고 이 아방가르드하신 카프카님 작품을 이렇게 덮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모질게 또 사유해본다.


우선, 이분의 출신성분부터 보자.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유대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도 아니었으며,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독일인도 아니고, 프라하에서 태어났으나 체코인도 아니었다. 또한 관청에 직을 가졌으나 순수한 관리도 아니었고 완전한 작가 생활도 하지 못했다. 시민 계급도 노동자 계급도 아닌 카프카는 아무 세계에도 소속되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p188 해설

-_-; 이런 사람이 한둘이겠냐마는 어쨌든 그의 작품 세계 저 아래 맨틀 어딘가에서 흐르는 멘탈의 지하수는 이렇단다. 카뮈가 좋아라하고 뛰쳐나올 것 같은 그 이방인이다. 이 중간자적인 이방인 카프카는 존재에 대해서 이런 무거운 생각을 토로하고 있다. 친구가 아주 많았거나 아주 적었을 것 같다.

"존재한다는 것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참된 존재는 `그곳에 소속해야한다`

p189 해설

그리고 이분의 몸에 흐르는 유대인의 피에는 `원죄 의식`이 배어져있다.

"아름다운 상처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 그것이 태어나기 전에 내가 준비한 전부다"


카프카는 어느 세계의 어귀에 있는 - 들어오는 것인지 나가는 것인지도 분간할 수 없는 - 이방인이었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지당하고 자연스러운 `원죄 의식`도 가득했던 것이다. 어느 세계의 소속을 위해 출입증으로 카프카가 제시한 것은 `직업`이다. 하지만, 세계에 속한 축복 받는 구성원이 아닌 이방인의 `직업`은 많이 어둡고 비참하다. 변신에서의 그레고르나 단식광대의 광대 유형지에서의 장교를 보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직업과 완벽한 - 그 라이프 싸이클까지 - 등호를하고 있다. 마치 우리처럼.


카프카는

"여기에 이방인이 아닌 자가 있다면, 큰집과 실업자 같은 - 하지만 능력자 -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를 위해 매우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느날 추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돌은 우리 스스로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불편한 카프카의 사진 원판으로도 우리는 알고 있다.

"카프카는 훌륭한 사진사이면서도 현상하여 인화한 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사진 원판을 그대로 제시한 모양이다.
원판을 보고 사물과 인간의 모습을 알아낼 만한 눈을 가진 고객은 없는 것이다.
아마도 숙련된 사진사 자신만이 인화하기 전에 그것이 잘된 사진인지 잘못된 사진인지 판별할 수 있으리라."
p198 해설의 마지막

"좀 와봐요. 저것이 뻗었어요. 저기 널브려져서 그만 뻗어버리고 말았어요!"
p79 변신 중

"속았구나! 속았구나! 한번 야간 비상종이 잘못 울린 것을 따랐더니 결코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구나."
p 166

"나는 너에게 빠져 죽을 것을 선고한다"
p187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유대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도 아니었으며,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독일인도 아니고, 프라하에서 태어났으나 체코인도 아니었다. 또한 관청에 직을 가졌으나 순수한 관리도 아니었고 완전한 작가 생활도 하지 못했다. 시민 계급도 노동자 계급도 아닌 카프카는 아무 세계에도 소속되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p188 해설

"존재한다는 것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참된 존재는 `그곳에 소속해야한다`
p189 해설

"아름다운 상처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 그것이 태어나기 전에 내가 준비한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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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12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프카의 소설을 이해하기 어려워 <카프카와의 대화>를 읽어봤는데 카프카의 말도 어려웠습니다. 나름대로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한 것 같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모순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해요.

비로그인 2015-07-13 16:47   좋아요 1 | URL
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군요. 누군가는 너무나도 재미있다고 하면서 읽는데 (심지어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희극이라지요?_?) 저는 해설이 없으면 작품세계에 범접하기도 힘들더라고요.ㅜㅜ

초딩 2015-07-16 10:43   좋아요 1 | URL
˝카프카와의 대화˝를 알라딘에서 검색하니 책 표지가 하얗습니다. 어떤 책일까요? 표지 사진을 못 찍었는건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책인지 궁금하고 의구심도 들었지만 일단 :) 장바구니에 쏙 넣어 봅니다.
해설의 힘을 많이 빌려 독후감을 쓰고 나니, 더 부끄러워져서 좀 더 읽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
모쪼록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15-07-17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붉은색 표지는 구판입니다. 흰색 표지가 새 출판사에서 나온 개정판입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

초딩 2015-07-17 19:5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ㅎㅎ 실제 책 표지가 흰색이었군요 ㅎㅎㅎ 주말 잘 보내세요~
 
크눌프 헤르만 헤세 선집 6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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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소란과 애써 나를 분리하며, 편하지만은 않은 스툴에 앉아 뒤로 넘어지지 않게 - 도루하려는 주자를 흘낏 흘낏 견제하는 투수처럼 - 가끔식 주의하며 책장을 넘기고 있다. 크눌프를 따라 온 동방 순례의 막바지를 그렇게 읽고 있다. 현실의 인물과 소설 속의 인물이 또 다른 소설 속에서 마구 등장하고 자세한 정보에 대한 질문을 무기력하게하는 고유 명사들이 가득한 은유에 지쳐있었을 때, 동방 순례의 후반부는 낮은 신음을 내게할 만큼의 반전과 꼬인 실타래를 풀어주는 명징한 전개로 속도를 내고 있다.

발 마저 까딱거리며 얼마남지 않은 책의 종료를 보며 녹녹치 않은 그리고 지루했던 작.업.을 곧 마치려는 어느 수공업자처럼 기지개라도 한 번 시원하게 펴보려는 순간이다.


누군가 나의 어깨에 - 투명한 징검다리라고는 절대 없을 것 같은 벼랑의 끝으로 자꾸만 내몰려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지를 잊어버린 내 어깨 - 가만히 그리고 부드럽게 하지만 두툼한 아버지의 손처럼 확고하게 손을 얹는다. 그리고 내 어깨를 토닥토닥거려준다 - 거친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자꾸만 틀렸던 문제의 답을 이제야 바로 썼다는 것을 알리는 먼 북소리처럼.


내 눈으로 활자들이 온기를 띠며 들어와 망막을 지나 각 뇌들을 거쳐 딱딱한 껍데기에 둘러싸인 마음으로 전해진다.

그 검은 활자들은 말한다.


"고통은 너무 커지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있지요. 형제 H는 시험을 겪으면서 절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절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입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삶의 덕을 갖추고, 정의를 갖추고, 이성을 갖추고 극복하고자 하고 또 삶의 요구들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든 진지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동방 순례 P 228 - 229


"이러한 절망의 이쪽 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고, 저쪽 편에는 깨달은 자들이 살고 있지요."

동방 순례 P 229


주위와 애써 분리된 스툴 위에 앉은 나의 거친 뺨 위로 맑고 온기가 확실히 있는 그리고 단 소금기가 있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고통은 너무 커지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있지요. 형제 H는 시험을 겪으면서 절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절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입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삶의 덕을 갖추고, 정의를 갖추고, 이성을 갖추고 극복하고자 하고 또 삶의 요구들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든 진지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동방 순례 P 228 - 229

"이러한 절망의 이쪽 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고, 저쪽 편에는 깨달은 자들이 살고 있지요."
동방 순례 P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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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4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로님의 서평 제목만 보고, 헤세의 <동방 순례> 서평인 줄 알았어요. ㅎㅎㅎ

초딩 2015-07-04 21:38   좋아요 0 | URL
이 책이 헤세의 중기 작품인 ˝크눌프˝랑 유리알 유희의 선행작인 ˝동방 순례˝를 묶은 책이도라구요 :) ㅎㅎ. 책 표지에는 동방 순례가 언급도 안되어 있는데말이죠 ㅋㅋ

비로그인 2015-07-0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작품세계를 이해해 보고 싶어서.. 헤세의 그림전도 다녀와 보았지만...., 저는 헤세와 가까워지는 일에 실패 했지요...ㅜㅜ흑흑
아후~ 데미안이나 크눌프와 같은 인물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저는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헤세의 작품에 등장하는 `초인`의 경지에 이른 그런 인물들이 저는 좀 거북하더라고요..^^;;

그나마 덜 직접적이었던 동방순례는 그래도 좀 좋았습니다.(응???ㅎㅎㅎ) ^^

초딩 2015-07-07 10:09   좋아요 1 | URL
:) 아주 예전에 - 좀 어릴 때 - 수레바퀴 밑에서와 유리알 유희를 읽고 엄청난 사고의 늪에 행복하게 빠진적이 있습니다. 정작 데미안은 읽었는지 기억이 없구요 :)
어떻게 허우적거렸는지 기억은 없는데 마냥 좋아했었습니다. 헤세를. :) 지금은 그 때의 생각과 감정을 반추해서 끄집어 내보려고 다시 책을 들었구요. 이럴 땐 인간의 착한 망각 장치가 좀 얄밉습니다. 양키처럼 봐주는게 없으니 ㅎㅎ
헤세는 동양인같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백인이긴하지요. 아무튼 :)

비로그인 2015-07-08 03:16   좋아요 0 | URL
그런데 혹이 아로님께서도, 현대문학의 책으로 구입하신 이유가....^^????

초딩 2015-07-08 03:45   좋아요 0 | URL
북플에서 보고 구매해서요. 땡스투도 드릴겸 ㅎㅎ :) --;;;

초딩 2015-07-08 11:32   좋아요 0 | URL
아 그리고 권혁준씨의 카프카 번역이 아주 훌륭하고 또 그분이 더 번역을 했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어디서 봐서 냉큼 구매했죠 :)

비로그인 2015-07-08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아로님께서도˝의 ˝도˝는 아로님 역시 번역자`권혁준`을 찾아 책을 구입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때문이었지요:-)
`소송`의 초기 번역 제목은 `심판`이었잖아요? 저도 (다수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소송`이라는 제목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 그 덕분에 권혁준 번역가를 신용하게 되었다는 아주 씸플한 구입 비하인드 스토리랍니다:-) 저도 저분이 더 많은 번역을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문장이 좋아요.^^

안그래도 느닷없이 생겨난 [마이리뷰]와 관계없는 그 땡쓰투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아로님이셨군요. ^^ 마음이 훈훈합니다.(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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