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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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강산무진을 읽고 난 후, 접하게 되었다. 읽게 되었다. 김훈의 글과 서사에 비해 천명관의 고래 속 그것들은 변사 또는 이야기꾼의 나레이션이었다. 이런 단어들이 쓰여져서 출판되어도 되는지 그리고 문학동네소설상의 수상작에 끼여져 인쇄될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심사평을 읽고나니, 왜 이런 서사에 익숙한지 왜 이런 속어 같은 단어들과 그 단어들을 입고 있는 인물들과 그들의 죽음 그리고 영혼의 등장이 반가운지 알았다. 남미 소설을 닮은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고래가 일으키는 갑자스러운 파도 같은 것이 밀려온다고했는데, 난 그 파도를 타지는 못한 것 같다. 좀 더 플롯을 통해 충격적이거나 아련한 아니면 무너져내리는 사실을 마주하기를 바랐는지 모르겠다. 노파와 금복과 그 주위 인물들과 사건들이 세대에 걸쳐 춘희가 만든 어마어마한 벽돌로 퇴적되고 그것은 다시, 또 다시 극장을 만들면서 변형되어 사라졌다.

이야기꾼이 정신 없이 쏟아내는 말들이 리듬을 타서 재생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처럼, 고래 속의 말들과 사실들 결과들이 정교하게 의도된 것처럼 보이지 않고 관성에 의해 윤활유처럼 생산된 것 같아.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기는 싫었다.

하지만, 심사평처럼 인터뷰처럼 고래는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작가의 소감은 그럴 줄 알았다를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고래는 워싱턴 IAD 출장을 가는 14시간의 비행속에서 잠과 와인/위스키와 함께 대부분을 읽었다. 볼티모어 학회에 도착해서 찍은 사진도 하나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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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0-04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멋있어요. 초딩님,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초딩 2019-10-04 20:34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저녁 되세요~
 
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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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읽었다. 언제 시작했는지는 어느 계절에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처음 이 낡아 보이는 책을 손에 쥔 공간은 이미 나와는 인연을 다 한 곳이 되었다. 손에 쥔 계기도 퇴색되었다. 표지의 작게 세로로 쓴 문학동네는 문학동네임을 강조한다.

'화장'을 읽기 시작했고, 다시 앞으로 와서 읽은 '배웅'은 그 간극이 몇 달인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러다 어느날 저녁 앉아 성큼 읽고 그 기세로 이렇게 읽어내렸다. 번역서에서는 보기 힘든 후려침이 느껴진다.


숨을 들이쉬면, 날이 선 공기 한 가닥이 몸 안으로 빨려들어

공기는 한 올씩 갈자져서 몸 안으로 들어왔다.

저녁의 시간들은 물러서는 것처럼 다가왔다. 

모두 p336


해설 또한 분주하다. 

그는 받아들임에 대해 썼다.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음에 대해 썼다. 받아 들일 수 있음에 대해 썼다.

"허무는 기본적으로 성숙한 어른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p372 해설

"중년의 나이란 이 느닷없는 삶의 반전에 대책없음. 그것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p375 해설


2006년 봄에 김훈은 쓰다.

2019년 여름의 끝에 나는 읽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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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의 데드히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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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소설가와 그 소설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은 20대 후반의 음악에 대한 지식이 있고, 책과 멋진 술을 즐기고, 경제적으로 여유를 넘어 부가 넘쳐흐르고, 수영을 좋아하고, 노화를 늦출줄 아는 자기 관리를 하며, 우수한 사람들이 걸어야하는 길 따위는 걷지 않아도 자기만의 방식으로도 우수한 사람이 되는 그래서 더 천재적으로 보이는, 게다가 우연히 만나는 여자들은 모두 이상적인 미인이고 그녀들은 모두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부조리를 만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런 등장인물들을 만날 때 마다, 그들이 하루키 자신을 투영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가 주인공 화자와 나머지 남자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고, 몇몇 등장하는 여자들은 다른 그룹으로 묶어 서사하는 방식은 여자분들이 - 내가 아는 여자분들은 모두 다 - 그를 왜 싫어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20대 후반의 그는 회전목마의 데드히트에 있고, 중년의 그는 여자 없는 남자들에 있는 것 같다.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덜어내고, 좀 더 '단'편적이었으면 좋았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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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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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더"라는 이름. "헤더"라는 여자의 이름은 어딘가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중성에서 몇 퍼센트 여성쪽으로 간 것 같은 이름.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다보니, 예전에 김영하님의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그 "헤더"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요즘은 우연히 잡은 책이 사연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대 미국 단편 문학의 가장 빛나는 성취"라는 책 뒤의 찬사에는 못 미칠 것 같은 단편들이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연이어 있다.

그래도 오랜만의 단편은 나쁘지 않았다.


생각하는 방식, 감각하는 방식, 그리고 행동하는 방식까지 다른 여러개의 내가 내 안에 존재하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들은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옆집처럼 간섭하지 않고 내안에 공존해간다. 서로 알길 없는 여러 독립적인 집들이 모여 아프트 한동을 이루듯.

내안의 여러 '나'들이 모인 나는 하나의 '나'일까? 그래도 그 모두들이 동일한 나일까?


표지에 있는 여자의 피부는 너무 얇고, 남자의 손가락은 지나치게 길다.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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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풍경 -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
유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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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보고 펼쳐진 첫 페이지가 다른 책들보다 이 책을 먼저 읽게했다.


타이포그래피는 비전공자이지만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 역사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여행하며 소개하는 책에 매료되었다.

법에 관한 책이 있는지 묻는 갑갑한 사정을 가진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갈길을 결정했다는 프롤로그의 글은 시작부터 가슴 뭉클하게 했다.

나는 세리프 (Serif - 획의 끝에 붙어 있는 작은 돌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고, 또 그것이 없는 (without - sans) 산세리프 (Sanserfi)가 어떻게 이름지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활자의 사각형 밖을 나와 있는 "f"를 보고 그 정교함과 고민에 탄복했다.

일본의 도로 위 글자는 달리는 자동차 안 운전자를 고려해 길다. 그리고 그것을 정확히 그리기 위해 공사 직후 도로에는 자로 잰 것을 표시하는 선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최정호 명조 원도를 디지털화한 SM 명조는 잉크의 번짐을 고려해 의도보다 가늘게 만들어진 것을 간과해서 가로획이 너무 가늘다고 한다.

독일의 위조 방지 폰트 FE 폰트는 모든 획이 고유해서 F 아래에 테이프를 붙여 E를 만들어도 위조 된 것임을 판별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수 많은 밑줄을 긋게한 이 책은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깊은 사유, 에피소드 그리고 감상을 수필/기행문으로 쉽게 풀어써, 폰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흥미롭고 즐겁게 그 세계에 발을 내딛게 해주는 것 같다.


운전을 하다 도로 표지판에 종성이 있어도 초성, 중성, 종성의 음소들이 줄어들지 않아 종성이 없는 음절 (글자) 보다 길게 보이는 한길체를 보고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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