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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그래픽노블
머라이어 마스든 지음, 브레나 섬러 그림, 황세림 옮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마음을 설레게 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래서 이 친구가 나오는 책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그래픽노블로 만나는 빨강 머리 앤이에요.
머라이어 마스든이 각색하고, 브레나 섬러가 그렸어요.
아마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앤의 모습일 것 같아요.
우리가 알던 빨강 머리 앤은 아니지만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럽네요.
초록빛 풀밭에 빨강 머리 앤의 뒷모습이 보이죠?
두근두근 설레면서 책을 펼쳤어요.
음, 뭐랄까. 첫느낌이 정말 색달랐어요.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 머리의 소녀를 처음 본 느낌이었어요.
역시 그래픽노블만의 매력이 느껴졌어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이 돋보이는 그림이었어요.
사실 각색된 부분은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라서 원작과의 차이를 못느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앤과 매슈 아저씨가 처음 만나서 함께 마차를 타고 초록 지붕 집으로 가는 부분이에요.
무뚝뚝하고 말 없는 매슈 아저씨에게 스스럼 없이 말을 건네는 앤.
"여긴 꽃이 참 많네요."
"다리를 건널 때 눈을 꼭 감아야겠어요.
안 그러면 온 세상이 그대로 강에 풍덩 빠져 버릴 것만 같거든요."
"어휴, 제 상상력은 순 제멋대로예요.
이 빨강 머리만큼은 상상으로라도 지워 버리고 싶지만요."
"주근깨도, 깡마른 몸도, 흐리멍덩한 초록 눈도, 심지어 시시하고 촌스러운 '앤'이라는 이름도 상상으로 지울 수 있는데,
빨강 머리는 안 돼요. 평생 한이죠."
"아저씨는 여신처럼 아름다운 게 좋아요, 눈부시도록 똑똑한 게 좋아요, 천사처럼 착한 게 좋아요? 전 못 고르겠어요."
"제가 말이 너무 많나요? 그만할 수도 있어요."
"얼마든지 하려무나."
"와!"
"저 길을 '기쁨이 만발한 하얀 길'이라고 불러야겠어요."
"그리고 저건, '물결이 반짝이는 호수'!"
"황홀해서 한숨이 나올 것 같아요. 집에 다 와 간다니!" (17-20p)
앤의 놀라운 상상력이 반짝반짝 아름다운 언어들로 표현될 때, 매슈 아저씨는 처음 만난 이 소녀를 사랑하게 됐어요.
저 역시 이 장면에서 앤에게 홀딱 반했버렸어요. 어떻게 이 아름다운 소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세상에는 남들 이야기하느라 말 많은 린드 아줌마 같은 사람이 있어요. 이웃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고, 흉보고, 간섭하느라 쉴 틈 없이 바쁘죠. 한 마디로 그냥 말 많은 사람. 제가 완전 딱 질색하는 스타일이에요. 같이 있는 내내 기가 쏙 빨리고, 금세 피곤해지기 때문에 피하는 게 상책이에요.
반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자유롭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앤 같은 사람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자꾸만 듣고 싶어져요. 한 마디로 순수한 감성의 소유자.
이 책을 보면서 다시금 앤의 매력을 확인했어요.
색다른 그림체가 처음엔 약간 낯설었는데, 앤이 말하는 순간 마법처럼 원래의 사랑스러운 앤으로 느껴졌어요.
그래픽노블로 재탄생한 <빨강 머리 앤>, 저한테는 색다른 즐거움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