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미술관 - 미술관 담장을 넘어 전하는 열다섯 개 그림 이야기
이소라 지음 / 혜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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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한 더위로 밤잠을 설쳤습니다.

이미 달아난 잠을 안타깝게 붙잡고서 뒤척이느라 더 괴로웠던 밤.

그러다가 잠을 포기하고 읽었던 책, <한밤의 미술관>입니다.

"내게 위로가 되는 그림은 뭘까?"

저자는 이 사소한 질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그림들 중에서 내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 간직하고 싶은 '나만의 그림'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저도 책상 옆에 좋아하는 명화들을 붙여놓고 매일 보고 있습니다. 기분에 따라서 똑같은 그림도 다르게 느껴지는 마법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미술관에 가서 직접 볼 날을 꿈꾸며... 대신 지금은 책으로.

이 책에는 열다섯 개의 그림과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각각의 그림들이 소장된 미술관에 대해서도 설명해줍니다.

폴란드 크라쿠프 국립 미술관,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 런던 테이트 브리튼, 독일 다름슈타트 헤센 주립 박물관, 오스트리아 비엔나 레오폴드 미술관, 루빈 박물관, 크뢸러 뮐러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벨기에 왕립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그리고 누군가의 갤러리(개인 소장품)

위에 열거된 해외 미술관은 직접 가볼 엄두가 안나지만, 마지막에 소개된 우리 동네 미술관은 가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PKM 갤러리, 부산시립미술관, 경주 솔거미술관, 뮤지엄 산,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대전 이응노 미술관, 양평 구하우스,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제주도 비오토피아 수풍석 박물관.

아마도 책 속에 소개된 그림 중에서 '나만의 그림'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끌리는 그림을 발견할 겁니다.

제 눈길을 사로잡은 그림은 프랭크 캐도건 카우퍼의 「무자비한 미녀 La belle dame sans merci」입니다.

처음엔 강렬한 빨간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여인만 보입니다. 고개를 살짝 튼 채로 두 팔을 올려 머리를 만지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팔로 표현하는 하트 모양!

그러다가 아래쪽으로 은빛 갑옷을 걸치고 누워 있는 남자가 보입니다. 두 눈을 감고 있어서 잠든 줄 알았더니 얼굴 위에 거미줄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남자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 섬뜩해집니다. 어떻게 저 여인은 죽은 남자 곁에서 여유로운 자태를 뽐낼 수 있는 건지.

그녀 주변에 피어 있는 빨간 꽃들마저 독을 내뿜을 것만 같습니다. 여인의 빨간 드레스를 자세히 보면 꽃잎 무늬가 아니라 무서운 탈 같기도 합니다. 정중앙에는 여인의 상반신 모습이 작게 축소되어 그려져 있습니다. 치명적 아름다움과 공포를 맛볼 수 있는 작품, 무자비한 미녀.

그림만 보고 있어도 무시무시한 이야기 한 편을 떠올리게 됩니다. 한 번 보고, 또 보고, 자꾸 보게 되는 건, 이 그림이 저를 유혹하는 걸까요.

미녀 주변에 핀 빨간 꽃들은 양귀비를 닮았습니다. 중국의 미녀로 유명한 양귀비를 과연 프랭크 캐도건 카우퍼가 알았을까요. 꽃 중에서도 유독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양귀비의 꽃말이 위로, 위안, 몽상, 잠이라고 합니다. 어쩐지 그림이 한여름밤의 악몽 같기도 합니다.

<한밤의 미술관>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미술관을 산책할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림과 이야기가 있는 미술관을 혼자 즐기다보면 마지막은 기분좋게 잠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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