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p.27

소녀는 이 세상의 움직임들을 한 발자국 앞서 눈치 채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도 위에서 마무리.
미술을 바라보는 정치 사회적 관점에 대한 소개가 흥미롭다.
이제 북런치 시작해야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적 정의 -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
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 / 궁리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개인의 경험에 공감하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분별있는 관찰자]이며 우리는 소설을 통해,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이러한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

페미니즘, 난민문제, 소수자인권, 심지어 연예계 가십까지 오늘날의 많은 문제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서로를 공감하지 못하고, 공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적 정의]를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공리주의 담론에 익숙해져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과학의 편리함 때문에 사람들을 하나의 숫자로 치환해버리는 것의 위험성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보건분야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학기 [국제보건론] 수업을 통해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역량이론(저자 누스바움의 주장)의 윤리적 관점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내 상황과 연관을 짓지 못했으나 이번 책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분별있는 관찰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저자가 분별있는 관찰자에 대해 설명을 더해 갈수록, 하나님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월트 휘트먼의 시에서 햇살에 비유한 부분. 크리스찬으로서 우리는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하는지 고민해보는 지점이었다.

p.s. 번역이 너무 힘들었다... 한글을 읽는데 원문 영어가 눈에 보이는 느낌ㅠㅠ 정말 그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추천하고 싶지만 번역때문에 별 하나를 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발터 벤야민

2. 3. 시선과 젠더

4. 5. 유화와 자본주의

6. 7. 유화와 광고, 자유와 행복

미술작품의 성물화 p.27

오늘날의 문화에서 원작의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은 어떻게 평가되고 정의되는가. 원작의 가치는 그것의 희소성에 따라 정의된다. 이러한 가치는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격에 의해 확인되고 평가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예술작품‘ 이기 때문에 - 예술은 상업보다는더 위대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 시장가격은 정신적인 가치의 반영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한 물건의 정신적인 가치는 그것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나 예시하려는 바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마술이나 종교의 언어로만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근대 사회에서 마술이나 종교는 더 이상 살아 있는 힘이 아니므로 ‘예술작품‘ 은 가짜 종교성의 분위기로 포장된다. 예술작품은 마치 성물(聖物)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제시된다.
성물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소실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의 증거이다. 살아남은 성물이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것이 본래 생겨났던과거가 연구된다. 그리고 그러한 유래와 계보가 증명되었을 때 비로소 예술로 선언된다.

미술을 국가가 이용하는 방법 p.35

미술이란 그것이 지닌 유일무이한 변함없는 권위를 통해 다른 형태의 권위를 정당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 소위 국가의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현대의 사회 시스템과 그것이 우선적으로 중요시하는 것을 찬양하기 위해서 미술의 권위를 이용하는 것이다.

예술의 고유성 파괴 p.39

현대의 복제 기술이 해낸 것은 예술의 권위를 파괴하고 예술을 - 혹은 새로운 기술로 복제한 예술 이미지를 - 그 어떤 보호영역으로부터 떼어낸 일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예술 이미지가 순간적이며, 도처에 존재하고, 실체가 없으며, 어디서나 얻을 수 있고, 무가치하며, 자유로운 것이 되었다. 이제 예술 이미지는 마치 언어처럼 우리 주위를 둘러 싸고 있다. 예술 이미지는 삶의 주류에 합류했는데, 이제 예술 자체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삶을 지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복제 시대의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 p.40

이미지의 새로운 언어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새로운 언어를 통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경험들을 더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
과거의 예술은 더 이상 과거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미지의 언어가 들어섰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언어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 스스로의 과거와 단절된 개인이나 계급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개인이나 계급에 비해, 선택이나 행동을 함에 있어 훨씬 덜 자유롭다. 바로 그 점이 과거의 예술 전체가 이제 정치적 문제가 된 이유 -단 하나의 이유이다.

ch.3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 p.54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주어진 한정된 공간에서, 남자들의 보호, 관리 아래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자들의 사회적 존재는 이렇게 제한된 공간 안에서 보호, 관리를 받으며 그 여자들 나름으로 살아남으려고 머리 쓰고 애쓴 결과로 이룩된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를 치르 기 위해 그녀의 자아는 찢겨 두 갈래로 갈라진다. 즉 여자는 거의 계속해서 스스로를 늘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갖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는 항상 그녀를 뒤따라 다닌다. 방을 가로질러 갈 때, 또는 아버지가 사망하여 울 때도 그녀는 걸어가거나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감시하도록 교육받고 설득당해 왔던 것이다.

p.56

이러한 이야기를 단순화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은 행동하고 여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남자는 여자를 본다. 여자는 남자가 보는 그녀 자신을 관찰한다. 대부분의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결정된다. 여자 자신 속의 감시자는 남성이다. 그리고 감시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그녀 자신을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특히 시선의 대상으로.

p.76

오늘날 이 누드가 포함하고 있는 태도나 가치들은 광고, 저널리즘, 텔레비전과 같은 좀 더 다양한 미디어 속에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여자를 보는 방식, 즉 여자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ch.5 유화와 자본주의 p.102

자본이 사회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유화는 사물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영향을 미쳤다. 마치 모든 것이 상품이 되었기 때문에 모두 서로 교환 가능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유화는 모든 사물을 동등한 대상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현실의 모든 사물은 물질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데카르트적인 이분법적 체계 덕분에 정신은 별도의 범주로서 손상당하지 않고 따로 보존될 수 있었다. 회화는 정신에 대해서도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러나 정신이라는 것은 회화가 넌지시 가리킬 수는 있었지만 시각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유화는 모든 사물의 외양만을 총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p.109-110

여기서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 여전히 전통적인 데생의 규범을 따르고 있지만,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림 속의 인물이 현실감을 전혀 갖지 않게 만들려고 애썼다.
•••
유화의 ’실체성(substantiality)’, 즉 실재하는 사물처럼 실감나게 그려내려는 유화의 속성을 블레이크는 극복하고자 했는데, 그의 이런 바람은 유화 전통의 의미와 한계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p.128

유화는 그 자체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가시적인 세계를 재현하는 일정한 관습의 특별한 체계에 의존했다. 이렇게 한데 모인 관습들을 바탕으로 화가들은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액자 안에 든 유화가 세상을 향한 상상의 창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 하지만 우리의 주장은 다르다. 유럽의 유화로 대표되는 문화를 하나의 전체로 본다면, 그리고 그 문화가 스스로에 대해 주장하는 것을 제쳐 버리고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의 모델은 세상을 향해 난 창이라기보다는 벽 안에 소중하게 박아 놓은 금고에 더 가깝다. 즉 가시적인 사물들을 한데 모아 저장해 둔 금고.

ch.7 광고와 유화-이미지 소비 방식 p.151

대개 광고를 스쳐 지나가거나 넘겨다보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걷거나 여행하거나 책장을 넘기며서 우리는 광고를 스친다.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경우는 이와 좀 다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론상으로는 우리 자신이 행위자다. 즉 우리는 화면으로부터 눈을 돌려 버리거나, 볼륨을 낮추거나 또는 커피를마시거나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광고를 스치는 게 아니라, 광고가 끊임없이 우리를 스치고 있다는 인상을 갖는다.

p.153-154

과연 무엇이 그들을 남들의 선망의 대상인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가. 그건 바로 다른 사람들의 선망이다. 광고란 어떤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사회적인 관계에 대한 것이다. 광고가 약속하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행복이다. 즉 다른 사람들에 의해 외부적으로 판단되는 행복이다. 선망받는 행복이 곧 매력(glamour)인 것이다.
•••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신감의 고독한 형태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경험을 나눠 갖지 않음으로 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은 당신을 관심을 갖고 보지만 당신은 그들을 관심을 갖고 보지 않는다. ••• 바로 이 점이, 광고 속의 그 많은 매력적인 인물들의 시선이 비어 있고 초점이 맞지 않는 듯이 보이는 이유의 설명이 된다. 이들은 그들을 매력의 대상으로 만들어 주는 다른 사람들의 선망의 시선을 무관심하게 관망하는 것이다.

p.157

따라서 광고에 인용된 미술작품은 거의 상반된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얘기할 수 있다. 즉 그것은 물질적인 부와 정신적인 것을 한꺼번에 의미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술작품이 광고에 쓸모있게 인용되는 것이다.) 광고에 인용된

p.161

왜 광고는 이렇게 유화의 시각적인 언어에 깊게 의존하게 되었을까.
광고는 소비사회의 문화다. ••• 유화란 무엇보다도 사유재산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것은 당신이 소유한 것들이 곧 당신이라는 원리에서 나온 미술형식이다.
광고가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시각예술을 대신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그 시각예술이 마지막으로 소멸해 가는 형태가 광고인 것이다.

p.169

광고는 미래 시제로 얘기하지만, 그 미래의 달성은 끊임없이 연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광고가 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질 만큼 믿음직하게 보이게 되는 것일까. 광고의 진실성이란 광고가 내건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는가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광고가 주는 환상이 그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품는 환상에 얼마나 적절하게 들어맞느냐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광고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백일몽에 적용된다.

p.172

의미 없는 노동시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현재는 꿈 속의 미래에 의해서 ‘상쇄’돼 버린다. 이 미래의 꿈 속에서 노동하는 순간의 피동성(被動性)은 상상적인 행동에 의해 대치된다. 백일몽 속에서 피동적인 남녀 노동자는 능동적인 소비자로 바뀐다. 노동하는 자아는 소비하는 자아를 선망하는 것이다.

p.173

광고는 소비를 민주주의의 대체물로 만들어냈다. 무엇을 먹을까, 무슨 옷을 입을까, 무슨 차를 탈까 하는 선택은 의미있는 정치적 선택을 대치하고 있다. 광고는 사회 내부의 비민주적인 모든 것들을 은폐하거나 보상해 주는 일을 돕는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의 또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하는 것을 은폐해 준다.

p.171

글래머라는 것은, 한 개인이 사회에 대해 갖게 되는 선망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진 공통의 정서가 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로 향하다 중도에 멈춘 산업사회는 그러한 정서를 만들어내기에 안성맞춤의 사회다. 개인적인 행복의 추구는 만인의 권리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실제의 사회적 환경은 개인으로 하여금 무력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그는 그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상태와 현재 그 자신의 상태와의 모순 속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그 모순과 원인을 충분히 깨닫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인 투쟁에 참가하거나, 아니면 자시 자신의 무력감과 함께 뒤섞여서 백일몽으로 융해되어 버린 선망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야 한다.

p.178

그것은(광고는) 획득할 수 있는 능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인간의 기능이나 필요성은 이 능력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 자본주의 문화 안에서 그와는 다른 종류의 희망 이나 만족감 또는 쾌락은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기대될 수 없다.
•••
자본주의는 다수의 관심을 가능한 한 좁은 범위 안에 가두어 놓음으로써 그 생명을 이어 나간다. 이것은 한때, 일단은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수탈로 달성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발전된 국가들에서 무엇이 바람직한 것이고 무엇이 바람직하지 않은가에 잘못된 기준을 부여함으로써 이를 달성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반기 북런치 리스트]

2월 이가형 일상상담
3월 이예영 나무
4월 이경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5월 박은성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6월 문정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7월 김두호 눈먼 시계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