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 모라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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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은 자신의 정체가 발각됐을 때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말이 많아 지겨운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한스 피터는 자신의 행동으로 정체가 노출될 때 사람들이 보이는 혐오감과 공포 반응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아주 고통스런 순간이 닥치면 어서 빨리 죽여달라고 애걸하는 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한편, 그의 정체를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빨리 알아차리는 사람들도 있다. 카리는 말없이 한스 피터를 빤히 바라봤다. 눈을 깜박이지도 않았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서 영민함이 엿보였다.   p.28

스릴러의 교과서라 불리는 《양들의 침묵》을 통해 미국 출판 사상초판 최고 판매부수’, ‘최고 계약금’, ‘최대 판권료라는 3대 기록을 갱신하며 스릴러 문학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작가 토머스 해리스의 신작이다. 13년의 칩거와 공백을 깨고 발표한 신작이라 무려 1,000만 달러가 넘는 선인세를 기록해 출간 전부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를 통해 세상에 절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대악을 창조한 토머스 해리스는 이번 작품에서 엽기적 살인마이자 장기 밀매업자인 한스 피터라는 악인을 창조해냈다. 강도, 강간, 살인, 장기 밀매를 하는 그는 여성을 납치해 장사를 하고, 더 이상 팔아먹을 수 없게 되면 신체를 훼손해 그것 또한 고객들의 변태적 취향을 충족시키는 일에 사용했다. 요즘 그는 액화 화장 기계를 사용하곤 했는데, 이 기계를 사용해 시신을 처리하게 되면 탄소 발자국은 물론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액체는 화장실 변기에 쏟아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동기나 이유도 없이 평생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온 그는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소유로 알려진 대저택에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금을 찾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 비밀스러운 대저택을 관리하는 것은 스물다섯의 젊은 여성 카리 모라였다.

그는 마음이 잠들 수 있도록 오래된 기억의 방들을 헤매고 다니다, 마침내 어렸을 때 파라과이 집에 있었던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대형 냉동고 앞에 도착했다. 그는 냉동고 앞에 있었고, 냉동고 문 사이로 부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냉동고 문을 열고 나올 수 없었다. 슈나이더가 완벽한 사슬 매듭 기법을 써서 냉장고 문을 체인으로 묶었기 때문이다. 매듭을 흔들어서 사슬의 연결 고리들이 모두 맞물리도록 하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p.189

카리 모라는 어릴 때 전쟁터에 끌려가 콜롬비아의 내전을 겪었고, 현재는 TPS(임시보호상태)라는 불안한 신분으로 미국에서 9년째 살고 있다. 어릴 적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낮에는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같이 새와 작은 동물들을 재활 치료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밤에는 저택 관리사로 일하며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곳은 한때 마약왕에 살인자이며 피에 얼룩진 갑부로 콜롬비아의 한 건물 옥상에서 경찰에게 사살된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소유였던 집이었다. 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영화 촬영 장소로 임대를 하고 있는데, 촬영 팀이 그곳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녀가 저택에서 이런 저런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미국 정부로부터 추방당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누구의 도움도 원치 않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기를 선택한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관리하는 저택에 어떤 비밀이 있고, 그것 때문에 이 저택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한니발 렉터를 넘어서는 괴물이 탄생했다'든지, '클라리스 스탈링처럼 인상적인 주인공'이라는 평가에 대해서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작가가 워낙 오랜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스릴러, 장편소설이라는 장르에 비해서는 페이지 수가 많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는 작품이긴 했다. 어쩌면 <양들의 침묵>이라는 엄청난 작품에서 비롯된 기대치 때문일 수도 있고, 작가가 기존의 작품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추구했던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절대적 악인이라는 캐릭터와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여성 캐릭터가 인상적이긴 했다. 과연 토머스 해리스가 이들을 주인공으로 다른 작품을 더 만들어낼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30주년 기념 특별 에디션으로 <양들의 침묵> 3부작도 새롭게 출간되었다. 심플한 표지로 새 옷을 입고, 새로운 번역을 통해 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출간되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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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의 역사 -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B. W. 힉맨 지음, 박우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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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표면을 평평하다고 이해하면 다음과 같은 어려운 질문에 부딪힌다. 지구는 어떻게 안정성을 유지했을까? 또 일출과 일몰, 별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늘이 신화 작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날씨가 맑은 날에 (지금은 대부분의 장소에서 보기 드물지만)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별들이 쏟아질 듯 밝게 빛나고 꽤 가까이 있는 듯하지만 그래도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존재였다는 점이 한몫을 했다. 반면에 지평선에서 땅과 하늘이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착각이라는 것은 땅을 조금만 돌아다녀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둥글게 펼쳐진 듯 보이는 창공과 근본적으로 평평해 보이는 땅 역시 착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났다.     p.71~72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이 상식이 된 세상이지만, 아주 옛날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고 한다. 평평한 육지를 둥근 하늘이 덮고 있으며, 바다 끝까지 가면 아래로 떨어진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 후로 과학적 탐구를 통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과학자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엄연한 사실로 믿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들에 따르면 지구는 구형이 아니라 평평한 접시 형태의 원반이며, 세계지도의 형상처럼 북극이 중심에 있고 우리가 남극이라 여기는 지역은 거대한 얼음벽으로 둘러싸인 원반의 테두리일 뿐이다. 기존의 지리학과 지구과학, 천문학 등의 성과를 깡그리 부정하는 참으로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는 이들처럼 '지구의 평평론'을 주장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베게트가 활약하기 전인 1927년에 E.M.포스터는 소설 쓰기에서 '평면적 성격'을 분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평면적 성격의 인물들은 일관된 생각이나 성격을 나타내며 입체적이거나 복잡한 존재가 아니다. 훗날 논평자들은 포스터가 말한 평면적 성격을 종종 부정적으로 해석했지만, 사실 포스터는 평면적 성격이 유용한 역할을 하며 독자들에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에서 위안을 느끼게 해준다고 믿었다. 그러한 1차원적인 인물들은 신뢰할 수 있고 쉽게 기억된다는 이점이 있다.   p.250

이 책은 평면의 언어적 개념부터 평평한 지구 모형을 오랫동안 받아들인 고대인들의 생각, 풍경에 대한 미학적 가치, 자연 그대로의 평평함과 인간이 만들어놓은 평평함, 스포츠와 예술 등에서의 평면성 등을 여러 사례를 들어가면서 조명한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평면이라는 것의 가치를 통찰하고, 그에 대한 인식과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든지 분명 평면이 지배하는 공간에 살고 있다. 평평한 종이, 평면 디스플레이, 평평한 책상, 평면으로 된 달력, 책장, 지도, 침대 등등... 평면과 평면 질서 속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 우리가 우주에서 지구의 둥근 모습을 바라본다면, 평면성이라는 개념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사물은 규모와 시각에 따라 달라 보이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평면의 언어적, 공간적 개념을 단순히 시각적인 면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이고,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서도 읽어내고 있다. 지형학에서의 풍경, 평평한 물질들을 넘어 사진, 영화, 소설, 음악에서의 평면성도 이야기하고 있어 다양한 시각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평면의 중심적 역할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좋을 것 같다. 그 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평면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평평함의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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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혁명 - 행복한 삶을 위한 공간 심리학
세라 W. 골드헤이건 지음, 윤제원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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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지금 앉아 있는 방의 형태부터 집에 들어오는 햇빛의 양, 당신이 사는 주택이나 아파트의 특징, 당신이 이용하는 인도나 도로의 너비와 모양)은 누군가의 '선택'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의뢰를 받고 만들었든 그냥 만들었든 건축 환경은 모두 인위적인 구성물이다. 다시 말해 얼마든지 다르게 만들 수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 앞에는 세상을 더 좋은 장소로 만들 수 있는 무궁무진한 기회가 펼쳐져 있다.    p.51

'신경과학과 건축', '뇌과학과 공간심리학' 이라니.. 대체 이들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평론가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은 이 책에서 신경건축학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의 모든 건축을 살펴본다. 그렇다면 신경건축학이란 무엇인가.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환경이 사람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학문이 낯선 것이 아니라 당연히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분야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환경이 인간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행동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던 환경심리학의 범위를 확장한 것이라고 보면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모두 '인간의 손을 거쳐 탄생한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사용하고, 살아가는 장소들은 모두 누군가가 모습과 기능을 고민해 디자인한 건축물이니 말이다. 자연환경과 달리, 우리 주변의 건축환경은 모두 누군가가 내린 결정의 산물이다.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나 창문 밖으로 보이는 대상들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은 왜 휴가지로 자연친화적인 장소를 고를까?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의 정서가 좋다는 것이 사실일까? 천장이 높은 곳에서 정말로 창의력이 샘솟는지, 왜 수업을 받았던 교실에서 시험을 보면 결과가 더 좋은지, 그 동안 은연중에 그럴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사람이 생각을 하려면 마음속에 어떤 목표가 있어야 한다. 어떤 유명한 신경과학자는 뇌를 생각하는 장치가 아닌 '본질적인 행동 기관'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감각 인지란 세상에 있는 여러 존재에 '반응하기 위한 기본적인 잠재적 준비 과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사람들은 인식하든 그러지 못하든 특정 공간이나 물체, 구조가 제공하는 기회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방식으로 건축 환경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p.185

저자는 인지신경과학과 환경심리학 분야의 최신 연구 결과를 활용해 방, 건물, 도시 광장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과 우리가 형태와 패턴, , 색상, 소리, 질감 등에 보이는 반응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건축 환경에서의 비의식적 인지 경험하기'라는 소제목을 보자면, 대체 뭘 이야기하려는지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거기서 뉴욕시 웨스트빌리지의 도시 경관을 한 페이지 가득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이 맨해튼 웨스트빌리지에 산다고 잠시 상상해보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다가, 냉장고를 열었는데 우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순간적으로 근처 가게에 다녀오기로 결정한 당신의 의식은 우유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가게의 점원에게 돈을 건네기까지 걸린 15분 사이에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그 안에 무수한 비의식적 인지'라는 것은 대부분 인접한 환경이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활동에 대한 복합 지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관문으로 가는 길, 눈높이에 있는 가게의 유제품 냉장고 선반, 놋쇠 손잡이가 달린 문 등등 건축 환경에 대한 비의식적 인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너무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감각을 체감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은 건물 밖으로 눈을 돌려 아테네의 파르테논, 맨해튼의 월드트레이드센터, 프랑스의 아미앵 대성당,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파리의 뤽상부르 정원, 베이징의 798 예술구 등 세계 최고와 최악의 건물, 조경, 도시 경관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을 사람의 눈높이에서 찍은 것으로 선별한 150장이 넘는 멋진 사진과 함께 하고 있어 시각적인 이해도 높여주고 있다. 이 사진들이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가 특별한 자신만의 원칙에 따라 선택했기 때문이다. 밤에 찍은 사진과 사람이 서 있을 수 없는 장소에서 찍은 사진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건축가들이 컴퓨터로 디자인한 건물 사진도 싣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이 워낙 발달한 탓에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모습과 완전히 다른 장소를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꾸며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책에 실린 꽤 많은 양의 사진들은 모두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면서 체감할 수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우리가 지금 머물고 잇는 공간은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반드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건축물을 만드는 데 차이점은 대개 공간 디자인이다. 그래서 저자는 고민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살아갈 장소, 우리의 행복과 아이들의 건강한 정서를 형성할 곳으로 건축 환경을 평가한다면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가. 투자 가치와 건물 면적 외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길러준다는 데 있어서 이 책은 놀라운 통찰력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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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0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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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하늘
루크 올넛 지음, 권도희 옮김 / 구픽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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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된 거야? 정상적인 대화조차 할 수 없게 됐잖아." 내가 말했다.

"우리 아들이 죽어가고 있어. 그게 우리한테 일어난 일이야." 애나가 말했다. 이미 그녀가 쓰는 어휘가 나와 달랐다. 내가 호스피스라는 단어를 아주 조심스럽게 작은 소리로 말하려고 애쓰는 동안, 애나는 '말기'라든가, '죽어간다'는 말을 편안하게 쓰고 있었다.

"그래." 나는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말했다. "끔찍하다는 건 알아. 이보다 더 끔찍할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우린 같은 편이잖아."     p.250~251

 

롭과 애나, 그리고 다섯 살난 아들 잭은 평범하고 행복한 가족이었다. 잭은 힘겹게 생긴 아이였다. 애나는 두 번 유산했고, 세 번째로 임신했을 때도 불안해했지만 결국 아이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어느 덧 다섯 살이 되었고, 통통하기만 하던 다리가 길어지고 아기 같던 말투도 사라져갔다. 롭과 애나의 세상은 도서관 책들과 부모로서의 저녁시간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어린 자식을 두고 있는 세상 모든 부모가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잭은 평범하게 자라고 있었고, 가끔 놀다가 의식을 잃거나 기절하듯 쓰러지곤 했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병원에서 뇌종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다. 성상세포종으로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과가 좋았음에도 암은 곧 재발하고, 잭의 병세는 깊어만 간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지푸라기 하나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롭은 점점 아들의 치료에 관해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게 되고, 급기야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치료법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인 애나는 이를 반대하고, 그들의 관계는 점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향한다. 거대한 슬픔 앞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결코 누가 누굴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해서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당신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결코 당사자가 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검증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방법이라도 시도해봐야 한다는 것과 이미 돌이킬 수 없다면 보내주어야 할 때를 받아들이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모두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 이해하고 싶었고, 응원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세상은 아침 서리가 내린 것처럼 바삭거린다. 너무 연약하고 깨끗해서 걸음을 내딛기가 두렵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세세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선반의 닳은 가장자리. 가로등 그늘 사이로 반사된 햇살이 양탄자 위에 만들어낸 빛의 무지개. 왜냐하면 이제 나는 제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름다리 아래 조용히 앉아 있을 때면 바람의 숨결과 대기 중에 떠도는 강물의 짭짜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새로운 과민증으로 이 세상을 느끼고, 보고, 듣는다. 마치 귀를 틀어막고 있던 장애물이 사라진 것 같다. 나는 이제 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p.354

 

저자인 루크 올넛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마지막 몇 달을 담담하게 다룬 논픽션을 자비출간해 호응을 받았고, 이후 30대 중반의 나이에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아 오랜 투병 기간을 거쳤다. 암 진단 이후에 둘째 아이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되어 자신의 병과 아이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겪어야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의 병을 극복했다. 그렇게 질병으로 인한 죽음과 그 과정을 이겨낸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이 책을 쓰게 된다. '자전적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그의 가족이 어린 아들을 불치병으로 떠나 보낸 것은 아니라서 독자로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의 모든 죽음이 비극이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만, 부모라는 존재에게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는 일은 그것이 타인의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너무도 끔찍하고, 참담한 슬픔을 동반하는 것이니 말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병으로 잃은 경험과 작가 자신의 긴 투병 기간이 있었기에, 이렇게 사실적인 작품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 그 자체를 클라이막스로 만들지 않고, 그 과정을 용기 있게 겪어 내는 과정과 남겨진 가족들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있어 더 뭉클했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희망은 누군가를 미치게 만들기도 하고, 끔찍한 선택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싶어 하는 절망적인 사람들이 종종 이 작품 속에서 벌어진 것 같은 일에 휘말리게 되기도 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한 모든 과정은 직접 겪어 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가 없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그러한 일들을 간접 경험하면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소중하게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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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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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그 시절 내가 겪어야 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다름' '섞임'의 세계가 있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는 수많은 벽이 있었다. 그 벽에 드리워지는 빛과 그림자의 명암도 뚜렷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바위에 부딪쳐 다른 지점에서 구부러지는 계곡물처럼 모두의 시간은 여울을 이루며 함께 흘러갔다.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우리 모두는 막연하나마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지금과 다를 거라고 믿었다.    p.193

나란히 서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공유했더라도.. 내가 보는 것과 네가 보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 그것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기억의 취약성 뿐만 아니라, 애초에 그 순간 같은 것을 보면서도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에겐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오래된 친구가 있었다. 40년 전, 1977년 대학 신입생 기숙사에서 처음 만나 그런대로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그녀와의 인연은 기숙사를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어렵게 취직한 광고 회사 출판부에서 다시 이어졌다, 직장을 옮기며 연락이 끊어졌다가 어느 카페의 개업식에서 우연히 만나고, 그 카페의 단골들과 어울리던 그룹으로 이어지며 세월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그다지 유명해지지는 못했지만 여덟 권의 책을 낸 소설가가 되었고, 동시에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들의 기숙사 시절을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라는 이름의 소설로 발표한 적이 있었다. 오래 알고 지내면서도 그녀의 책을 산 적도 읽은 적도 없었던 나는 그 책을 주문해서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본 세상이 자신이 본 것도 너무나 달랐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소설에 묘사된 스무 살의 내 모습 또한 너무도 낯설었다. 너무도 다른 그녀의 기억과 나의 기억은 그렇게 과거 속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란 누구인가. 내가 알고 있는 내 삶은 실제 내가 살아온 삶과 다른 것인가. 작가는 이 작품에서 1970년대의 문화와 시대상을 세밀하게 서술하면서 갓 성년이 된 여성들이 기숙사라는 공간에서 만나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이런 저런 관계를 맺으며 섞이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렇게 2017년을 사는 김유경이 기억하는, 1977년의 공기와 풍경들이 2019년에 책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소환된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에게 있는 자신만의 기억을 되짚고, 과거의 시간들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시대가 다르고, 배경이 다르더라도,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나를 지금의 인생으로 데려다 놓은 것은 꿈이 아니었다. 시간 속에 스몄던 지속되지 않는 사소한 인연들, 그리고 삶이라는 기나긴 책무를 수행하도록 길들여진 수긍이라는 재능이었다.

과거의 빛은 내게 한때의 그림자를 드리운 뒤 사라졌다. 나는 과거를 돌아보며 뭔가를 욕망하거나 탄식할 나이도 지났으며 회고 취미를 가질 만큼 자기애가 강하고 기억을 편집하는 데에 능한 사람도 못 되었다. 뜨거움과 차가움 둘 다 희미해졌다. 그렇다고 해도 '술과 장미의 나날' 시절의 혼란과 환멸을 잊어버린 건 아니었다.    p.281~282

책을 사서 볼만큼 용돈이 충분하지 않던 어린 시절. 나는 동네 책방이나 도서관에 가서 주로 책을 빌려 보았다. 책은 읽어야 하는 기간이 지나면 반납을 해야 했고, 반납하고 나면 다시는 볼 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가능한 많은 문장들을 머리 속에 집어넣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많은 문장들을 다 외울 수는 없었으므로, 맘에 드는 구절들을 노트에 메모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정말 매혹적인 작품을 만나면 아예 전체 책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철렁 내려 앉게 만드는 섬세한 어휘들과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그 문장들은 나의 감수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렇게 나는 수많은 책들과 함께 질풍노도의 시절을 흘려 보냈다. 문장과 문장을 이어 단락을 만들고, 그 단락들을 이어 하나의 글이 만들어 질 때마다, 시시해 보이는 나의 일상들이 근사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시절 가장 많이 내 손을 탔던 책이 바로 은희경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당시에 나는 구할 수 있는 그녀의 모든 책을 읽었는데, 아름다운 문장들과 예리한 표현들은 매 페이지마다 밑줄 긋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켰었다. 소설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허구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의 작품 속에서만은 그 인물들이 모두 다 '진짜'처럼 느껴졌었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오랜만에 책장 구석에 꽂혀 있는 '타인에게 말 걸기' 책을 꺼내 보았다. 무려 17년 전에 구입했던 책인데, 당시에 얼마나 여러 번 읽었던지 까맣게 손 때가 타서 낡은 책이다. 요즘은 아무리 좋은 책도 두 세 번 이상은 읽을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손 때가 탈 때까지 읽게 되는 경우란 찾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도 대여해서 읽고 또 읽다가, 결국에는 용돈을 모아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던 작가가 여전한 필력으로 신작을 발표하고 있어 독자로서 마음이 뿌듯하다. 은희경 작가가 <태연한 인생>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역시나 오래 전 그녀의 작품을 읽으며 밤잠을 설쳤던 그때만큼이나 설레이는 기분으로 읽었다. 살면서 가끔 생각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결코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를 지금의 인생으로 데려다 놓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나를 누구라고 알고 살아 왔던 것일까.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을 때 나는 책장에 꽂힌 책을 꺼내어 페이지 속으로 숨곤 했다. 책 속의 어떤 문장에서 오래 전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느 행간에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극중의 그녀처럼 기울고 스러져갈 청춘이 한 순간 머물렀던 날카로운 환한 빛을 향해 손을 뻗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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