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따라하기 타이베이.타이완 북부 - 2019-2020 최신판 무작정 따라하기 여행 시리즈
이진경.김경현 지음 / 길벗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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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는 결혼 전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함께 떠났던 첫 해외 여행지였다. 당시에 갑작스럽게 휴가 날짜를 맞추게 된 거라 별다른 준비도 없이 부랴부랴 떠났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인들에게 워낙 맛집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터라 기대를 많이 하고 떠났었다. 처음 방문한 곳이라 지우펀, 예류, 진과스 등 유명 관광지들과 맛집 몇 군데를 다녀왔는데, 사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날씨였다. 비가 너무 자주 내렸고,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나왔다가도 또 금방 비가 쏟아지고.. 하여간 이상한 날씨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러 다시 타이베이에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이런 저런 준비도 하고, 여행 계획도 좀 짜보려고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를 찾았다.

무작정 따라하기 여행 시리즈만의 매력은 무엇보다 '분리형 가이드북'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출국 전 후로 나눠보는 최초의 분리형 가이드북이라고 알고 있는데, 가볍게 분권해서 볼 수 있고, 들고 다닐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자주 활용하는 여행가이드북이기도 하다.

1권은 미리 보는 테마북, 2권은 가서 보는 코스북이다. 1권에서 체크한 테마 장소를 2권 지도에 표시해 나만의 여행 동선을 정할 수 있다. 그렇게 여행 스케줄을 다 짜고 나면, 가볍게 2권만 여행 가방 속에 쏙 넣고, 비행기에 타기만 하면 된다. '미리 보는 테마북'은 표지부터 대만 현지의 먹거리들을 예쁜 일러스트로 가득 그려놓아, 가이드북답지 않게 느껴져서 더 좋았다. 대부분의 가이드북이 현지의 여행지를 사진으로 수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 속 음식들이 여행에 대한 설레임을 더해주는 듯했다. 새롭게 바뀐 이번 2019-2020 한정판 테마북 표지라고 하니, 다른 지역의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의 표지들도 궁금해진다.

 

타이완의 역사부터 문화, 언어, 풍속 등 배경 지식들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읽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인기 명소들과 야시장, 박물관, 골목길 등 테마 별로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다양한 장소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타이완의 백미인 '먹거리'에 대한 정보가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천원, 이천원 정도되는 저렴한 먹거리부터 중국의 전통이 살아 있는 산해진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먹거리 천국답게 다양한 음식들을 만날 수 있다. 샤오롱빠오, 샤오츠, 훠궈, 타이차이, 면요리.. 그리고 빙수와 테이크아웃 음료, 차관과 카페까지... 먹거리 여행으로만 테마를 잡아서 여행 계획을 짜도 3 4일이 부족할 것 같다.

 

'가서 보는 코스북'은 초행길도 걱정 없는 완벽한 교통 정보를 알려 준다. 책의 뒷표지 부터 지하철 노선도가 수록되어 있으니 말이다. 현지에서 사용할 코스북이기 때문에, 기내 서류 작성하기로 시작해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하고, 세관을 통과 후 공항에서 할 일과, 공항에서 시내 가는 방법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지역 별로 여러 가지 코스들을 소개해주고 있는데, 그 어떤 가이드북보다 많은 430여개 스폿을 담고 있다고 하니, 계획을 세우는데 대단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실 현지에서 두툼한 가이드북을 들고 들고 다니자니 무게 때문에 귀찮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 정도 가벼운 두께라면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다. 게다가 현지에서 일정이란 어떻게 달라질 지 모르므로 갑작스레 변경된 일정 때문에 새로운 맛집이나 장소를 찾아 볼 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상세한 도보 코스 지도와 지역별 교통 지도가 수록되어 있어, 현지에서 길을 찾아 헤맬 때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이베이를 여행하면서 절대 놓칠 수 없는 베스트 인기 명소가 궁금하다면, 타이베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도락이 뭔지 알고 싶다면, 타이베이를 각자의 취향에 맞는 코스로 완벽하게 즐기고 싶다면,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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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 모라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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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은 자신의 정체가 발각됐을 때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말이 많아 지겨운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한스 피터는 자신의 행동으로 정체가 노출될 때 사람들이 보이는 혐오감과 공포 반응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아주 고통스런 순간이 닥치면 어서 빨리 죽여달라고 애걸하는 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한편, 그의 정체를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빨리 알아차리는 사람들도 있다. 카리는 말없이 한스 피터를 빤히 바라봤다. 눈을 깜박이지도 않았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서 영민함이 엿보였다.   p.28

스릴러의 교과서라 불리는 《양들의 침묵》을 통해 미국 출판 사상초판 최고 판매부수’, ‘최고 계약금’, ‘최대 판권료라는 3대 기록을 갱신하며 스릴러 문학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작가 토머스 해리스의 신작이다. 13년의 칩거와 공백을 깨고 발표한 신작이라 무려 1,000만 달러가 넘는 선인세를 기록해 출간 전부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를 통해 세상에 절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대악을 창조한 토머스 해리스는 이번 작품에서 엽기적 살인마이자 장기 밀매업자인 한스 피터라는 악인을 창조해냈다. 강도, 강간, 살인, 장기 밀매를 하는 그는 여성을 납치해 장사를 하고, 더 이상 팔아먹을 수 없게 되면 신체를 훼손해 그것 또한 고객들의 변태적 취향을 충족시키는 일에 사용했다. 요즘 그는 액화 화장 기계를 사용하곤 했는데, 이 기계를 사용해 시신을 처리하게 되면 탄소 발자국은 물론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액체는 화장실 변기에 쏟아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동기나 이유도 없이 평생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온 그는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소유로 알려진 대저택에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금을 찾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 비밀스러운 대저택을 관리하는 것은 스물다섯의 젊은 여성 카리 모라였다.

그는 마음이 잠들 수 있도록 오래된 기억의 방들을 헤매고 다니다, 마침내 어렸을 때 파라과이 집에 있었던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대형 냉동고 앞에 도착했다. 그는 냉동고 앞에 있었고, 냉동고 문 사이로 부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냉동고 문을 열고 나올 수 없었다. 슈나이더가 완벽한 사슬 매듭 기법을 써서 냉장고 문을 체인으로 묶었기 때문이다. 매듭을 흔들어서 사슬의 연결 고리들이 모두 맞물리도록 하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p.189

카리 모라는 어릴 때 전쟁터에 끌려가 콜롬비아의 내전을 겪었고, 현재는 TPS(임시보호상태)라는 불안한 신분으로 미국에서 9년째 살고 있다. 어릴 적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낮에는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같이 새와 작은 동물들을 재활 치료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밤에는 저택 관리사로 일하며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곳은 한때 마약왕에 살인자이며 피에 얼룩진 갑부로 콜롬비아의 한 건물 옥상에서 경찰에게 사살된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소유였던 집이었다. 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영화 촬영 장소로 임대를 하고 있는데, 촬영 팀이 그곳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녀가 저택에서 이런 저런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미국 정부로부터 추방당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누구의 도움도 원치 않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기를 선택한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관리하는 저택에 어떤 비밀이 있고, 그것 때문에 이 저택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한니발 렉터를 넘어서는 괴물이 탄생했다'든지, '클라리스 스탈링처럼 인상적인 주인공'이라는 평가에 대해서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작가가 워낙 오랜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스릴러, 장편소설이라는 장르에 비해서는 페이지 수가 많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는 작품이긴 했다. 어쩌면 <양들의 침묵>이라는 엄청난 작품에서 비롯된 기대치 때문일 수도 있고, 작가가 기존의 작품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추구했던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절대적 악인이라는 캐릭터와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여성 캐릭터가 인상적이긴 했다. 과연 토머스 해리스가 이들을 주인공으로 다른 작품을 더 만들어낼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30주년 기념 특별 에디션으로 <양들의 침묵> 3부작도 새롭게 출간되었다. 심플한 표지로 새 옷을 입고, 새로운 번역을 통해 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출간되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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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의 역사 -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B. W. 힉맨 지음, 박우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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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표면을 평평하다고 이해하면 다음과 같은 어려운 질문에 부딪힌다. 지구는 어떻게 안정성을 유지했을까? 또 일출과 일몰, 별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늘이 신화 작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날씨가 맑은 날에 (지금은 대부분의 장소에서 보기 드물지만)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별들이 쏟아질 듯 밝게 빛나고 꽤 가까이 있는 듯하지만 그래도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존재였다는 점이 한몫을 했다. 반면에 지평선에서 땅과 하늘이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착각이라는 것은 땅을 조금만 돌아다녀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둥글게 펼쳐진 듯 보이는 창공과 근본적으로 평평해 보이는 땅 역시 착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났다.     p.71~72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이 상식이 된 세상이지만, 아주 옛날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고 한다. 평평한 육지를 둥근 하늘이 덮고 있으며, 바다 끝까지 가면 아래로 떨어진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 후로 과학적 탐구를 통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과학자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엄연한 사실로 믿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들에 따르면 지구는 구형이 아니라 평평한 접시 형태의 원반이며, 세계지도의 형상처럼 북극이 중심에 있고 우리가 남극이라 여기는 지역은 거대한 얼음벽으로 둘러싸인 원반의 테두리일 뿐이다. 기존의 지리학과 지구과학, 천문학 등의 성과를 깡그리 부정하는 참으로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는 이들처럼 '지구의 평평론'을 주장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베게트가 활약하기 전인 1927년에 E.M.포스터는 소설 쓰기에서 '평면적 성격'을 분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평면적 성격의 인물들은 일관된 생각이나 성격을 나타내며 입체적이거나 복잡한 존재가 아니다. 훗날 논평자들은 포스터가 말한 평면적 성격을 종종 부정적으로 해석했지만, 사실 포스터는 평면적 성격이 유용한 역할을 하며 독자들에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에서 위안을 느끼게 해준다고 믿었다. 그러한 1차원적인 인물들은 신뢰할 수 있고 쉽게 기억된다는 이점이 있다.   p.250

이 책은 평면의 언어적 개념부터 평평한 지구 모형을 오랫동안 받아들인 고대인들의 생각, 풍경에 대한 미학적 가치, 자연 그대로의 평평함과 인간이 만들어놓은 평평함, 스포츠와 예술 등에서의 평면성 등을 여러 사례를 들어가면서 조명한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평면이라는 것의 가치를 통찰하고, 그에 대한 인식과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든지 분명 평면이 지배하는 공간에 살고 있다. 평평한 종이, 평면 디스플레이, 평평한 책상, 평면으로 된 달력, 책장, 지도, 침대 등등... 평면과 평면 질서 속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 우리가 우주에서 지구의 둥근 모습을 바라본다면, 평면성이라는 개념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사물은 규모와 시각에 따라 달라 보이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평면의 언어적, 공간적 개념을 단순히 시각적인 면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이고,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서도 읽어내고 있다. 지형학에서의 풍경, 평평한 물질들을 넘어 사진, 영화, 소설, 음악에서의 평면성도 이야기하고 있어 다양한 시각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평면의 중심적 역할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좋을 것 같다. 그 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평면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평평함의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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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혁명 - 행복한 삶을 위한 공간 심리학
세라 W. 골드헤이건 지음, 윤제원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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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지금 앉아 있는 방의 형태부터 집에 들어오는 햇빛의 양, 당신이 사는 주택이나 아파트의 특징, 당신이 이용하는 인도나 도로의 너비와 모양)은 누군가의 '선택'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의뢰를 받고 만들었든 그냥 만들었든 건축 환경은 모두 인위적인 구성물이다. 다시 말해 얼마든지 다르게 만들 수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 앞에는 세상을 더 좋은 장소로 만들 수 있는 무궁무진한 기회가 펼쳐져 있다.    p.51

'신경과학과 건축', '뇌과학과 공간심리학' 이라니.. 대체 이들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평론가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은 이 책에서 신경건축학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의 모든 건축을 살펴본다. 그렇다면 신경건축학이란 무엇인가.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환경이 사람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학문이 낯선 것이 아니라 당연히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분야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환경이 인간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행동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던 환경심리학의 범위를 확장한 것이라고 보면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모두 '인간의 손을 거쳐 탄생한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사용하고, 살아가는 장소들은 모두 누군가가 모습과 기능을 고민해 디자인한 건축물이니 말이다. 자연환경과 달리, 우리 주변의 건축환경은 모두 누군가가 내린 결정의 산물이다.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나 창문 밖으로 보이는 대상들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은 왜 휴가지로 자연친화적인 장소를 고를까?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의 정서가 좋다는 것이 사실일까? 천장이 높은 곳에서 정말로 창의력이 샘솟는지, 왜 수업을 받았던 교실에서 시험을 보면 결과가 더 좋은지, 그 동안 은연중에 그럴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사람이 생각을 하려면 마음속에 어떤 목표가 있어야 한다. 어떤 유명한 신경과학자는 뇌를 생각하는 장치가 아닌 '본질적인 행동 기관'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감각 인지란 세상에 있는 여러 존재에 '반응하기 위한 기본적인 잠재적 준비 과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사람들은 인식하든 그러지 못하든 특정 공간이나 물체, 구조가 제공하는 기회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방식으로 건축 환경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p.185

저자는 인지신경과학과 환경심리학 분야의 최신 연구 결과를 활용해 방, 건물, 도시 광장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과 우리가 형태와 패턴, , 색상, 소리, 질감 등에 보이는 반응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건축 환경에서의 비의식적 인지 경험하기'라는 소제목을 보자면, 대체 뭘 이야기하려는지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거기서 뉴욕시 웨스트빌리지의 도시 경관을 한 페이지 가득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이 맨해튼 웨스트빌리지에 산다고 잠시 상상해보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다가, 냉장고를 열었는데 우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순간적으로 근처 가게에 다녀오기로 결정한 당신의 의식은 우유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가게의 점원에게 돈을 건네기까지 걸린 15분 사이에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그 안에 무수한 비의식적 인지'라는 것은 대부분 인접한 환경이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활동에 대한 복합 지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관문으로 가는 길, 눈높이에 있는 가게의 유제품 냉장고 선반, 놋쇠 손잡이가 달린 문 등등 건축 환경에 대한 비의식적 인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너무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감각을 체감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은 건물 밖으로 눈을 돌려 아테네의 파르테논, 맨해튼의 월드트레이드센터, 프랑스의 아미앵 대성당,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파리의 뤽상부르 정원, 베이징의 798 예술구 등 세계 최고와 최악의 건물, 조경, 도시 경관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을 사람의 눈높이에서 찍은 것으로 선별한 150장이 넘는 멋진 사진과 함께 하고 있어 시각적인 이해도 높여주고 있다. 이 사진들이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가 특별한 자신만의 원칙에 따라 선택했기 때문이다. 밤에 찍은 사진과 사람이 서 있을 수 없는 장소에서 찍은 사진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건축가들이 컴퓨터로 디자인한 건물 사진도 싣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이 워낙 발달한 탓에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모습과 완전히 다른 장소를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꾸며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책에 실린 꽤 많은 양의 사진들은 모두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면서 체감할 수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우리가 지금 머물고 잇는 공간은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반드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건축물을 만드는 데 차이점은 대개 공간 디자인이다. 그래서 저자는 고민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살아갈 장소, 우리의 행복과 아이들의 건강한 정서를 형성할 곳으로 건축 환경을 평가한다면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가. 투자 가치와 건물 면적 외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길러준다는 데 있어서 이 책은 놀라운 통찰력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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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0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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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하늘
루크 올넛 지음, 권도희 옮김 / 구픽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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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된 거야? 정상적인 대화조차 할 수 없게 됐잖아." 내가 말했다.

"우리 아들이 죽어가고 있어. 그게 우리한테 일어난 일이야." 애나가 말했다. 이미 그녀가 쓰는 어휘가 나와 달랐다. 내가 호스피스라는 단어를 아주 조심스럽게 작은 소리로 말하려고 애쓰는 동안, 애나는 '말기'라든가, '죽어간다'는 말을 편안하게 쓰고 있었다.

"그래." 나는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말했다. "끔찍하다는 건 알아. 이보다 더 끔찍할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우린 같은 편이잖아."     p.250~251

 

롭과 애나, 그리고 다섯 살난 아들 잭은 평범하고 행복한 가족이었다. 잭은 힘겹게 생긴 아이였다. 애나는 두 번 유산했고, 세 번째로 임신했을 때도 불안해했지만 결국 아이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어느 덧 다섯 살이 되었고, 통통하기만 하던 다리가 길어지고 아기 같던 말투도 사라져갔다. 롭과 애나의 세상은 도서관 책들과 부모로서의 저녁시간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어린 자식을 두고 있는 세상 모든 부모가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잭은 평범하게 자라고 있었고, 가끔 놀다가 의식을 잃거나 기절하듯 쓰러지곤 했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병원에서 뇌종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다. 성상세포종으로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과가 좋았음에도 암은 곧 재발하고, 잭의 병세는 깊어만 간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지푸라기 하나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롭은 점점 아들의 치료에 관해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게 되고, 급기야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치료법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인 애나는 이를 반대하고, 그들의 관계는 점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향한다. 거대한 슬픔 앞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결코 누가 누굴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해서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당신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결코 당사자가 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검증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방법이라도 시도해봐야 한다는 것과 이미 돌이킬 수 없다면 보내주어야 할 때를 받아들이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모두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 이해하고 싶었고, 응원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세상은 아침 서리가 내린 것처럼 바삭거린다. 너무 연약하고 깨끗해서 걸음을 내딛기가 두렵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세세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선반의 닳은 가장자리. 가로등 그늘 사이로 반사된 햇살이 양탄자 위에 만들어낸 빛의 무지개. 왜냐하면 이제 나는 제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름다리 아래 조용히 앉아 있을 때면 바람의 숨결과 대기 중에 떠도는 강물의 짭짜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새로운 과민증으로 이 세상을 느끼고, 보고, 듣는다. 마치 귀를 틀어막고 있던 장애물이 사라진 것 같다. 나는 이제 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p.354

 

저자인 루크 올넛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마지막 몇 달을 담담하게 다룬 논픽션을 자비출간해 호응을 받았고, 이후 30대 중반의 나이에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아 오랜 투병 기간을 거쳤다. 암 진단 이후에 둘째 아이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되어 자신의 병과 아이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겪어야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의 병을 극복했다. 그렇게 질병으로 인한 죽음과 그 과정을 이겨낸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이 책을 쓰게 된다. '자전적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그의 가족이 어린 아들을 불치병으로 떠나 보낸 것은 아니라서 독자로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의 모든 죽음이 비극이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만, 부모라는 존재에게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는 일은 그것이 타인의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너무도 끔찍하고, 참담한 슬픔을 동반하는 것이니 말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병으로 잃은 경험과 작가 자신의 긴 투병 기간이 있었기에, 이렇게 사실적인 작품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 그 자체를 클라이막스로 만들지 않고, 그 과정을 용기 있게 겪어 내는 과정과 남겨진 가족들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있어 더 뭉클했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희망은 누군가를 미치게 만들기도 하고, 끔찍한 선택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싶어 하는 절망적인 사람들이 종종 이 작품 속에서 벌어진 것 같은 일에 휘말리게 되기도 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한 모든 과정은 직접 겪어 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가 없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그러한 일들을 간접 경험하면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소중하게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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