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이유 없이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 양보만 하는 사람들을 위한 관계의 기술
다카미 아야 지음, 신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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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부탁하기 쉬운 사람' 혹은 '이래라저래라 하기 쉬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는 앞에서 살펴본 '거절하는 힘'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중 하나인 '자기신뢰감 쌓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그라운딩이 되어 있는가'가 관건이다. 여기서 '그라운딩(Grounding)'이란 '지면에 발이 붙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라운딩 되어 있는 사람은 남들이 정신적으로 침범하기 어렵다. 부탁하기 쉬운 사람 또는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비교나 질투의 대상이 되기 쉬운 사람은 그라운딩이 약한 경우가 매우 많다.    p.27~28

가끔 보면 유독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있다. 혹시 당신도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느라 내 감정을 누르거나, 동료의 부탁 때문에 내 일을 미루거나, 그냥 내가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내 주장을 포기하고 남에게 양보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행동들이 오로지 '선의'에서 비롯되어 타인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며 남들만 우선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행복은 뒤로 밀려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게 될지도 모른다.

 

심리상담가인 저자는, 착한 성격 때문에 고민이 많은 사람들을 수년간 상담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부드럽게 거절하고도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부당한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쉽게 이용당하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 간의 선 긋기'에 서툴다는 특징이 있다. 자신과 타인 사이에 선을 명확히 그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의식적으로라도 영역 의식이 있어야 서로의 자유를 존중할 수 있으니, 거절하는 힘이야말로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한 제1원칙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을 줄이고, 무의식 속 죄책감을 버리고,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를 먼저 확인하고 넘어가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상대가 곤란해진 건 당신 탓이 아니니, 때론 이유 없이 거절해도 괜찮다. 남을 위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냉정함을 기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질투를 하거나 받을 때 매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항상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나에게 경쟁을 걸어온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는가?

유독 자신에게 거북한 유형의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당신의 '그림자 인격'일 수도 있다. 그림자 인격이란 당신이 내면에서 억압하고 있는 그늘진 부분을 가진 사람, 또는 그 요소 자체를 말한다. 쉽게 말해 당신이 싫어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p.123~124

이 책에 따르면 '거절하는 힘'을 키우는 4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건전한 영역 의식 갖기, 이는 자신과 타인 간에 선을 긋고 각자의 영역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 자기신뢰감 쌓기, 이것은 남들의 간섭이나 사소한 의견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갖아야 한다는 말이다. 세 번째, 무의식 속 죄책감 없애기, 이것은 내가 뭘 잘못했나 부터 떠올리거나 미안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자신의 힘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 이는 남이 해달라고 하는 일보다 나에게 좋은 일을 먼저 하라는 말이다.

어떻게 해야 나답게 살 수 있을까. '나다운'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의 후반부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가능한 한 그것에 초점을 맞추는 훈련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일명 '한 달이면 나를 바꾸는 긍정 노트'이다. 노트 한 권을 분비해서 저자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규칙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이러한 노트 활용 연습법은 현재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장점을 인정하는 연습을 이어가고, 나를 당당하고 담담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워나가다 보면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양보만 하고 눈치만 보던 당신도 그러한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인생만 책임질 수 있다. 남들의 인생은 그들 각자의 몫이다. 그러니 행복의 우선순위에 나 자신부터 올려두고, 일단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착하지만 어려운 사람이 되기 위한거절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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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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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똥 몇 번 쌌다고 동물 관리국 사람한테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매콤 씨. 이봐요, 난 단지 서로 좋은 이웃으로 지냈으면 해요. 당신한테 무시당하니까 기분이 나빴을 뿐이에요.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니까요. 이웃끼리 그러는 거 아니잖아요. 최소한 동네에서는 그러는 거 아니죠."

", 좋은 이웃이라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우리도 잘 알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이 동네에서 말이에요."     p.43

195센티미터 장신의 스콧 캐리는 벨트 위로 불룩 나온 배와 운동기구로 다져진 허벅지 근육을 가진 평범한 중년 남자이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몸무게가 비정상적으로 매일 줄어들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몸무게가 13킬로그램이나 줄게 되자 그는 은퇴한 의사이자 친구인 닥터 밥에게 찾아간다. 이미 주치의한테 가서 정기검진도 받아봤지만 모두 정상 범위 안에 든다는 결과를 받은 상태였다. 닥터 밥이 보는 앞에서 체중계에 올라선 그의 몸무게는 96킬로그램이었고, 주머니 속의 동전 한 움큼과 부츠, 바지, 파카 등을 모두 벗고 다시 체중을 재도 역시 96이었다. 게다가 그의 상태는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고, 109킬로그램으로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옷을 벗었는데도 옷 입을 때랑 똑같은 체중이 나가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테니 말이다. 스콧의 몸무게는 매일 0.5킬로그램가량씩 규칙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체중이 줄어들면 그는 어떻게 되는 걸까.

칼로리가 높은 음식들로 과식을 해도 체중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고, 더 이상한 건 9킬로그램짜리 아령을 손에 하나씩 들어도 옷을 벗고 체중계에 올랐을 때랑 몸무게가 같다는 거다. 허리 사이즈나 다리 길이나 물리적 차원에서는 변화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꼭 스콧 주변에 중량을 반하는 힘의 장이라도 생긴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였다. 옷을 입거나 물건을 들거나 하면 중량이 더해져야 하는데, 왜 스콧에게는 그렇지 않은 걸까. 게다가 몸무게가 일정하게 계속 감소한다면 언젠가는 몸무게가 바닥 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스콧은 그 불가해한 상황에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일상을 느긋하게 보내기로 한다.

감소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는다면 지금 예상하기로 몸무게가 바닥 나는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속도가 빨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콧은 그 와중에도 인생을 만끽하기로 했다.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도리라고 느꼈다. 어쨌든, 가망이 없는 상태에 처한 사람들 중 전적으로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그리 흔할까? 스콧은 이따금 노라가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배워 온 어느 격언을 생각했다.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불가사의다. 그의 현재 상황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p.97

이 작품은 무려 '스티븐 킹'의 신작이다. 아마도 작가명을 가린 채 블라인드북으로 이 작품을 읽었다면 대부분의 독자들이 스티븐 킹의 작품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전에 없던 상냥함이 느껴진다'는 뉴욕타임스의 추천평처럼, 우리가 그 동안 스티브 킹의 호러 미스터리나 스릴러에서 느껴왔던 그 오싹함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첫 장에 '리처드 매드슨을 추모하며'라고 작가가 밝히고 있기도 하듯이, 이 작품은 <나는 전설이다>로 잘 알려진 SF 작가 리처드 매드슨의 또 다른 대표작 <줄어드는 남자>를 오마주한 소설이다.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에서 방사능이 섞인 안개에 닿은 후 점차 몸이 줄어들게 된 평범한 소시민 스콧의 이야기는 사실 좀 오싹했다. 키를 비롯해서 온몸이 일괄적으로 줄어들어 결국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져 벌레로부터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그의 생존 이야기는 고통과 외로움을 동반했으니 말이다. 그에 비해 스티븐 킹의 작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스콧의 이야기는 조금 더 경쾌하고, 따뜻하다.

점차 몸무게가 줄어드는 스콧의 이야기는 그의 옆집에 사는 레즈비언 커플에 대한 이웃들의 차별과 편견, 동성혼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스콧은 이들 부부와 애완견 문제로 사소한 분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들이 사람들의 공격적인 시선과 차별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가 사람들의 증오에 맞서 싸우는 방법은 바로 자신의 줄어든 몸무게를 활용한 것이었는데, 지역 마라톤 대회 에피소드는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내가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단어를 사용하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아름다운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인상적이었다. 기존 스티븐 킹의 작품들에 비해 가벼운 분량이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그 여운의 잔상은 꽤 오랫동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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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투 더 문
로드 파일 지음, 박성래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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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레오노프가 보스호트 2호를 타고 궤도에 올라 12분간 우주 유영을 했는데 이때 지구로 귀환하지 못할뻔했었다. 레오노프는 공기를 불어 넣는 형태의 사람 키만한 천으로 만든 튜브를 통해 캡슐에서 나왔는데 그의 우주복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캡슐로 돌아올 시점이 되었을 때 우주복이 너무 커져서 튜브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었고 수 분간 정적이 흐른 뒤, 레오노프는 수동으로 우주복을 조작하여 캡슐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될 때까지 공기를 우주복에서 빼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우주 산책이었다.    p.25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여 달 착륙에 관한 모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달 탐험의 역사를 비롯해서 일반인들은 거의 접할 수 없었던 내부 문건, 비행 요약과 우주로 나가는 방법 등 다양한 연구 계획 및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다.

 

 

1968년에서 1972년까지 미국은 9개의 작은 우주선을 달로 발사하였다. 이 중에서 6대는 성공적으로 착륙을 했고, 이는 각각 이전에 발사한 우주선의 성공에 힘입어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놀라운 시간이었고 우주 탐사의 황금시대라고 불린다. 이 책은 주로 달 탐험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탐험자적인 여러 계획을 진행하면서 작성된 미국 NASA와 이보다는 조금 작지만 소련의 기록과 같이 다채롭고 흥미로운 자료도 포함하고 있다.

 

 

아폴로 1호의 화재 사고로 인해 사령선의 약점이 제작사뿐만 아니라 NASA의 고위직에게도 드러나게 되었고, 미국의 달 착륙 계획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폰 브라운과 그의 팀은 새턴 V 로켓 개발을 묵묵히 진행했다. 최초로 달 여행을 가능하게 한 로켓인 새턴 로켓의 설계는 복잡하고 오래 걸렸다. 이 책에는 새턴 로켓의 자세한 설계도와 복잡한 제어판, 그리고 구체적인 개발 과정과 함께 로켓의 실물을 직접 눈앞에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바로 'Missions to the Moon' 앱을 통해 증강현실을 이용해 독자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달 착륙, 이것이야말로 강력한 한방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실수에 의해 이 임무가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아폴로 11호 승무원은 백업 승무원들의 도움만을 받으며 맹렬하게 시뮬레이터에서 훈련에 열중하였다. 모든 경우의 문제, 책에 나온 모든 오작동이 그들에게 주어졌고 여기에 대응하는 훈련이 계속되어 각각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확실히 커지게 되었다.    p.79

이 책이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Missions to the Moon' 앱을 다운받고 인터랙티브 아이콘이 있는 페이지를 스캔하면 비디오, 오디오, 문서 등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NASA 자료실에 있는 동영상을 실행해서 아폴로 11호 발사나 달에서 앨런 셰퍼드가 골프 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볼 수 있으며, 실제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들의 육성을 들어볼 수도 있다.

 

아폴로 13호의 승무원이 우주선 산소 탱크에 이상이 생겼음을 보고하는 음성 메시지를 직접 들을 수 있어 놀라웠다. 그리고 달 탐험과 관련된 내부의 중요 문서들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볼 수도 있고, 우주선 이글이나 새턴 V 등 우주선의 360도 랜더링 이미지를 보여주어 실제 눈앞에서 생생하게 잡힐듯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앞쪽, 뒷쪽 등 돌려보며 여기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로운 경험을 안겨 준다.

 

그리고 아폴로의 향후 계획과 유럽 우주국(ESA)의 달 탐사, 화성 비행 등 흥미로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현대 우주 프로그램과 일본의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의 달 탐사선 등 아시아 권의 활약도 흥미로웠다. NASA는 이제 2019년에 달에 복귀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임무는 일단 SLS를 사용하여 무인 오리온 승무원을 달에 보내고 돌아올 것이며, 무인 시험이 성공하면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모험의 절정에서 한 획을 그은 닐 암스트롱의 명언이다. 인류가 최초로 달에 도착한 1969 7 20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지만, 사실 그 최초의 발자국이 찍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꿈과 노력과 실패가 있었는지 대부분은 알지 못한다. 이 책은 150장 이상의 생생한 사진과 앱을 통해 증강 체험할 수 있는 페이지들로 그러한 모든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달에 가려고 했던 우리와 달에 도착한 우리, 그리고 앞으로 달에 도착할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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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라
얀 드로스트 지음, 유동익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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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학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터무니없는 우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토아학파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 세계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발생하는 모든 일은 원인과 함께 일어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성에 의해 일어납니다. 에피쿠로스학파가 어려움에 직면하면 자신을 위로하듯 이렇게 말할 겁니다. "달리 방법이 없어." 반면 스토아학파라면 이미 일어난 비극에 대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반응했을 겁니다.    p.75

'철학'이라고 하면 어쩐지 난해하고 어려울 것 같고, 추상적이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철학이란 삶의 의미나 선과 악에 대한 중요한 질문으로 가득 차 애매모호한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얀 드로스트는 철학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말 뜬구름 잡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알랭 드 보통에 의해 창립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생학교School of Life>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철학이 학문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고 하는 그는 이 책을 통해 일상 속에서 성찰하는 삶의 중요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카테고리는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사르트르, 푸코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각각 철학자들의 세계관, 인간관, 윤리관 등등을 세세하게 설명해주고, 그 과정에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진다. 간소한 생활 속에서 정신적 쾌락을 추구했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근거해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반면, 스토아학파는 인간은 이성적 절제를 통해서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플라톤과 함께 그리스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중용의 덕목을 강조했으며, 그것이 곧 인간의 자기실현의 길이라고 여겼다.

우리가 하거나 하지 않는 모든 것은 무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거나 하지 않는 순간 무게를 지니게 됩니다. 좋은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그럼 좋은 행동을 하십시오. 우리의 행동이 우리 자신이 됩니다. 사르트르가 의미 없이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이 쌓인 것은 개인 소장품이 아니고 온 세상 사람들이 들여다봅니다. 우리는 자신을 창조하면서 세상을 창조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상입니다.    p.394

네덜란드의 계몽주의자 스피노자는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 안에서만 존재하고 자연의 본질적 법칙에 따라 생성된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자체가 이성이며 정신이고 곧 신이라 생각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대표적인 실존주의 사상가인 사르트르는 인간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존재라고 말했다. 원래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에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짐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갈 뿐이라는 거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미셀 푸코는 지식은 권력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모든 지식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들 철학자들의 사상을 아주 쉽게 설명하면서, 책을 읽는 이들에게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상황들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철학을 강의하고 있어서인지 철학 이론들을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독자들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책을 읽으며 사고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방식으로 쓰여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보고, 경험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읽었다면, 아주 조금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친근하게 느껴졌을 거라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읽었던 철학에 관련된 책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했고, 이해하기 쉬웠고, 공감되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철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나는 처음 깨달았고, 내 삶에 철학적인 사고를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우리는 매 순간 생각해야 한다. 진짜 ''를 만나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삶을 위한 철학, 행복을 위한 철학'을 체감하게 해 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철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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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1~2 세트 - 전2권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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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남자들이 불타오르는 들판도 달려서 가로지를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까? 연인들의 몸에 성교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요? 그 힘의 대칭성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고려했을까요? 어떤 시가 그들의 영혼을 뒤흔들어놓는지, 여린 마음에 새겨지는 애정 어린 표현의 효과는 어떤지에 대해서는요? 우리는 과연 사랑의 생김새를 숙고했습니까? 어째서 어떤 관계는 사산되고, 어떤 관계는 지체되어 자라지 못하며, 어떤 관계는 깃털이 다 난 성체가 되어 연인들이 살아가는 내내 지속되는지 말입니다.     -1, p.86~87

치고지에 오비오마,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나이지리아 작가이다. 그는 단 두 권의 소설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두 번 올랐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신화적이면서 현실적인 내적 고통으로의 쓰라린 여행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19 부커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 동안 아프리카 문학들을 그래도 꽤 읽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스릴러 혹은 SF 장르의 작품들이었던 터라 진입 장벽이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프리카라는 낯선 대륙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 이국적인 분위기가 작품에 색다른 매력을 부여해 더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이 작품은 많이 낯설고, 좀처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아 난감했다.

이 작품이 나를 비롯한 평범한 독자들에게 진입장벽이 높았다면, 아마도 이유는 독특한 배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2권 후반에 실려 있는 작가의 주석에 따르면 이 작품은 이보 우주론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있다. 작가는 '이보 우주론이란 한때 나의 민족을 인도했고, 부분적으로는 지금도 인도하고 있는 신념과 전통의 복잡한 체계다. 내가 그런 현실 속에 허구의 작품을 위치시키고 있으므로, 호기심 많은 독자들은 그 우주론을 조사해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 역시 이야기 속을 헤매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보 우주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야 읽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권의 서두에 도표로 보는 이보 우주론이라고 해서 그림이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 이걸 봐도 이해하기란 어렵다. 

난 네가 좋았지만, 왜 그런지 몰랐어. 하지만 네가 매를 쫓은 그날, 나는 너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뭐든 할 거라는 걸 알았어. 이 남자에게 내 마음을 주면 이 남자는 절대 날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았어. 평범한 동물들에게도 그런 사랑을 보여주는 너니까 나한테는 더 큰 사랑, 더 큰 관심, 더 큰 도움을 주리라는 걸, 뭐든 더 크게 주리라는 걸 알았어. 그래서 내가 널 사랑하는 거야, 논소. 이제 알겠어? 사실이 아니니?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나이지리아 사람 중에, 아니 전 세계 남자들 중에 몇 명이나 한 여자를 위해 가진 걸 전부 팔 수 있겠어?      -2, p.87

이 작품의 화자는 모든 인간에게 깃들어 있다는 수호령라는 존재이다. ''는 지상의 인간을 보완하는 영적인 존재로, 절대자 신과 인간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소설은 치가 신에게 자신이 수호하는 인간 치논소 솔로몬 올리사의 삶을 증언하고, 변호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다. 덕분에 문장부터 낯설다. 오바시디넬루시여 혹은 추쿠시여, 그리고 아구지에그베시여... 등등 신을 지칭하는 말로 시작되는 문장들은 -뵈옵니다, -깃들었나이다, -때문이옵니다, -믿나이다, -되었나이다 등으로 마무리가 된다. 이러한 말투 때문에 내용이 더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일단 낯선 문장들을 천천히, 잘 삼켜가면서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대화를 들려주거나 상황을 소개하는 장면들에서 정상적인 문장들도 만날 수 있다.

주인공의 비극이 개인적 성향이나 운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나이지리아의 역사적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라서 인지...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구름 위에 떠 있는 거짓말 같은 판타지 세계에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거친 땅 바닥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세계의 면모가 그려지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다. 물론 그 단계에 이르는 과정은 어느 정도의 고난(이라고 표현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을 동반한다. 그러니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당신에게, 마술적 리얼리즘과 비극적 리얼리티로 인간 경험의 심오한 신비를 드러내는 신비로운 서사시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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