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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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여보." 윌라가 말했다. "내 입장도 좀 생각해주면 안 돼요? 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거 같아요......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은 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칼리와 셰릴과 에어플레인이 유리창에 코를 바짝 대고 내가 오기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고요! 그건 당신도 이해할 수 있겠죠!"    p.132

 

1967년, 열한 살 윌라 드레이크는 초등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아빠와 동생 일레인만 있었고, 엄마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엄마는 아빠와 자주 다투었고, 감정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윌라는 아빠가 해준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엄마 대신 일레인에게 책을 읽어 주고는 침대로 올라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엄마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1977년, 스물 한 살 윌라는 남자친구 데릭과 함께 부모님을 만나러 온다. 데릭은 윌라와 당장 결혼을 하고 싶어 하고, 윌라는 아직 졸업 전이고 내년에 들을 계획이었던 언어 인류학 과정을 듣고 싶다. 윌라의 엄마는 곧 직장 생활을 하게 된 남자 친구의 스케줄에 맞춰 갑작스레 결혼을 하겠다는 말에 데릭이 배려가 없다며 반대하지만, 윌라는 데릭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1997년, 데릭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윌라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들 문제로 가벼운 말다툼 중이었고, 데릭은 왼쪽 차선에 가고 있는 운전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데릭은 그 차 앞으로 바짝 붙여 끼어들었고, 그러나 고속도로 갓길을 들이받는 사고가 나고 만다. 장례식 계획을 세워놓기엔 턱없이 젊은 나이였던 마흔세 살의 데릭을 잃고, 윌라는 미망인이 된다. 2017년, 예순 한살이 된 윌라에게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 온다. 다짜고짜 자신은 드니즈의 이웃인데 윌라의 며느리가 총에 맞아서 자신이 어린 딸을 데리고 있는데, 자신은 출근해야 해서 더 이상 아이를 챙길 수 없다며 연락이 온 것이다. 하지만 윌라의 두 아들은 아직 결혼 전이라 그녀에게 며느리뿐만 아니라 손주도 없었다. 알고 보니 드니즈는 아들인 션이 예전에 함께 살았던 여자친구였고, 우연찮게 그녀의 집에 션의 어머니 연락처가 있었다는 거다. 윌라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젊은 여자와 그녀의 아홉 살 난 딸, 그리고 강아지 에어플레인을 돌보기 위해 볼티모어로 날아가기로 한다.

 

 

만약 윌라가 클락 댄스를 만든다면 세 소녀가 보여준 춤과는 다른 춤일 거라고 생각했다. 윌라의 춤에는 한 여자가 무대 왼쪽에서 등장해 무대 오른쪽 끝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회전하며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 눈에는 오로지 빠르게 도는 흐릿한 색깔만 보이다가 어느 순간 '펑!' 무대 끝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진다.   p.334

 

윌라 드레이크의 인생에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중요한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초등학생일 때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 상황에 대처해야 했고, 여대생이었을 때 남자친구의 청혼을 받고 고민했고, 사고로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되어 자기 인생을 찾아가야 했고, 그리고 손주를 품에 안은 할머니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손주처럼 어린 소녀를 돌보게 된다. 어쩌면 그때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그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을 지도 모를 그런 순간들이다. 노년의 윌라가 마지막에 얻게 된 특별한 기회는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 지극히 평범한 한 여성의 삶을 시기 별로 일대기처럼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앤 타일러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삶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시종일관 보여지는 작품이라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누구나의 삶처럼 평범해 보이는 풍경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윌라의 입장에서 보자면 엄마의 가출도, 남자친구의 프로포즈도, 남편의 교통사고도 모두 상대가 그녀를 배려하지 못해서 벌어진 상황들이기도 하다. 특히나 언어학자가 되고 싶었던 그녀의 꿈이 결혼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던 점은 너무도 현실적이라 더 와 닿았던 사연이었다. 결혼 대신 선택한 것은 언어학자가 아니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ESL선생님이었으니 말이다. 세상의 많은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살면서도 그때 놓친 것들에 대한 상실감을 보상받지 못한다. 그래서 노년의 윌라가 지금까지의 삶을 뒤돌아 보고, 인생의 두 번째 기회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는 순간이 너무도 뭉클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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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
구보타 유키 지음, 강수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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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회사 업무도, 집안일도, 육아도 결국은 다른 영역의 행위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는 무엇을 위해 하는지에 대한 본래 목적과, 다른 행위의 목적을 비교하여 어디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일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순위를 정해야 하죠. 꼭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누군가에게 맡기거나, 돈을 내고 의뢰하거나, 아예 안 하는 선택지도 있으니까요.    p.48

 

저자는 일본의 출판사에 근무하는 편집자였다. 늘 성과가 요구되고 끝나지 않은 야근이 이어졌으며, 스트레스가 차곡 차곡 쌓여 가슴 속에 덩어리가 되고 있었다. 그러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즐거운 일이 생겨도 웃지 못할 정도로 메마른 상태가 돼버렸다. 그녀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1년 동안 독일에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 '다들 느긋하게 사는 구나'라고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1년 정도 일본을 벗어나 독일의 느긋한 템포로 살고 싶다고 베를린으로 건너갔고, 10년 째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나라로 손꼽히는 일본에서 마음의 여유를 잃은 상태로 불행하게 살았던 저자가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워 보이는 독일인과 까칠하지만 건전하고 건강한  독일식 라이프스타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삶의 기술을 들려준다. 독일 생활의 이모저모를 통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디에 살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처음에 저자는 독일의 창구에서, 관공서에서, 전화 통화에서 그들의 불친절함을 겪고는 무척 놀랐다고 한다. 불퉁한 얼굴로 마치 레이저를 쏘아붙이는 것 같은 독일인들의 직설적인 말투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점차, 그들이 남에게 억지로 친절하지 않기 때문에 나 역시 남에게 대접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에게 쏟을 시간과 정성이 있다면 나 자신에게 쏟는 것이니, 한마디로 독일인은 남에게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친절한 것이라는 거다.

 

 

베를린에 와서 깨달았어요.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다리 길이의 차이도 있겠지만, 저처럼 서두르며 걷는 사람은 소수예요. 걷는 속도뿐 아니라 모든 동작이 느긋해요. 그러다보니 제 템포도 그들에 맞춰 점점 느려졌어요. 그러자 짜증을 내는 일이 줄어들었죠. 늘 갈 길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짜증을 냈어요. 하지만 그렇게 서두른다 한들 얼마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었을까요. 고작 몇 분밖에 차이가 안 나는 일에 그동안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해왔고, 그것이 바로 스트레스의 큰 원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p.105~106

 

특히 독일의 노동 방식 중에 부러운 부분들이 많았다. 할 일이 끝나면 칼같이 퇴근하고, '근로시간 계좌' 제도로 근무시간 외에 추가로 일할 시간을 모아두었다가 업무를 짧게 마치거나 휴가로 쓸 수도 있다. 그리고 '단축 근무'라는 형태로 정사원이라는 고용 형태를 유지하면서 업무 시간을 줄여서 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취학 자녀를 키우는 여성이 출산 전까지 풀타임으로 근무하다가, 출산 후 주 20시간 근무로 계약을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력이 단절될 우려가 없고, 회사로서도 경험 있는 직원이 그대로 남는 다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플렉스 타임'이라는 제도도 있는데, 핵심 근무 시간인 '코어 시간'에만 사무실에 있으면 출퇴근 시간을 각자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제도이다.

 

 

겉으로 보기엔 독일이 굉장히 불친절한 나라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내가 1년에 한 달 휴가를 가니까 남도 내가 쉬는 만큼 동등하게 쉬어야 한다. 내가 남에게 억지로 서비스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남에게 서비스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서로 희생하지 않으니 눈치 볼 필요 없고 서로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할 필요 없다. 너무도 단순하면서도 명쾌하지 않은가. 그리고 덴마크 휘게와 닮은 듯 다른 독일판 휘게 ‘게뮈트리히’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보잘것없을 만큼 사소한 일이 바로 게뮈트리히라서, 별다른 준비 없이 오늘부터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행복의 기술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독일인의 일하기, 쉬기, 살기, 먹기, 꾸미기에 대해 알게 되니, 조금은 까칠하고 퉁명스럽게 살아가도 잘 돌아가는 사회가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배우게 되었다. 건강한 개인주의야말로 남을 위한 일상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인생을 살기 위한 첫 번째 마음가짐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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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 나의 일 년 (LIGHT VER.)
홍성향 지음 / 인디고(글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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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당신이 앉아있는 자리 맞은편에 당신과 똑같은 모습의 자신이 앉아있고, 마치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편안하게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p.14

 

지난 일 년의 중요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다가올 일 년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셀프 코칭 라이팅북이다. 지난 겨울 출간되었던 <나의 일 년>, 이번에는 지난 일 년을 돌아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질문들만을 모은 ‘라이트 버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 책은 [ 준비하기 ] 가볍게 나에게 말을 걸며 시작해볼까요? [ 지난 일 년 ] 나의 올해는 어땠나요? [ 다가올 일 년 ] 나의 내년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나요?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새로운 버전을 출간하며 다시 한 번 고른 핵심 인생 질문이 담겨 있다. 지난 일 년을 보내며 겪은 경험과 추억하고 싶은 기억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느꼈던 지난 일 년 동안의 대표 감정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삶을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방향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경험들은 삶 속에서 작은 점들로 연결되어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당신의 점들은 어디를 향해 있나요?    p.84

 

라이트 버전이라는 문구만큼 긴 시간을 내야 하는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지난 일 년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2010년부터 시작한 ‘일 년 그룹 코칭 프로그램’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압축하여 라이트 버전용 질문을 재구성했다고 한다. 올해를 생각하면, 어떤 경험들이 떠오르나요? 나의 올해를 표현해주는 대표 감정은 무엇인가요? 일 년을 보낸 나 자신의 지금 모습은 어떤가요? 늘 '해야지'라고 말만 하고 미뤘던 일들 중 새해에 꼭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다가오는 새해의 첫날,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나요? 등등 다양한 질문들이 수록되어 있어 자유롭게 원하는 질문을 골라 답을 써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흥미로운 것은 저자의 ‘음성 안내 가이드’ QR 코드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총 4개의 QR 코드를 통해 홍성향 라이프 코치의 목소리로 1:1 코칭을 받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올해 초에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웠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도 이제 한 달여 남았으니, 과연 나는 한 해 동안 얼마나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한 해 동안 하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들,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새로 맞이할 일년 동안에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 세우는 시간이다.

 

일 년은 365개의 경험 조각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퍼즐과도 같다. 눈뜨자마자 정신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평범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수많은 하루하루가 쌓여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매일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종종 잊어 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그 사소한 일상들이 쌓여,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 나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이다. 우리는 매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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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 - 실험실을 나온 괴짜 교수의 기발한 심리학 뒤집기, 개정판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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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은 계속 높아만 간다. 그래서 짝사랑은 종종 파국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거절한 여성을 납치한 한 남성은 결국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토로했다.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나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기존 심리학으로는 이와 같은 비이성적인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가정 원칙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p.81

 

유튜브 200만 구독자, 4억 뷰 조회로 ‘지구에서 가장 핫한 심리학자’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리처드 와이즈의 <괴짜 심리학> 후속작이다. 국내에는 <립잇업>으로 이전에 출간되었었고, 이번에 개정판으로 새 옷을 갈아 입고 나왔다. 원제인 'rip it up'은 뜯어내거나 찢어버린다는 뜻으로, 무언가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도록 요구할 때 쓰이기도 하는 강한 표현이다. 실제로 서문부터 '이 책을 한번 찢어보라'는 괴상한 과제를 내주며 시작하고 있어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심리학 관련 서적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리처드 와이즈면의 책들이 특별한 이유는 심리학자이면서도 '심리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그의 심리 실험에는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으며, 그 과정과 결과가 150여 개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각지에 소개되었다. 프로이트의 '심리' 대신 제임스의 '행동'에 주목한 괴짜 심리학자의 강력한 변화 프로젝트가 이 책에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다. 다양한 심리 실험 등에 대한 실제 사례들이 수록되어 있어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뜬구름 잡는 이론적인 이야기들은 실제 현실에서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다양한 과학적 방법을 활용해 직접 행동으로 옮겨볼 수 있는 삶의 기술들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까? '성격이 행동을 만든다'라는 기존 이론에 따른다면, 자신에 대한 인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형성되기 때문에 새 셔츠를 입거나 새 신발을 신는 것처럼 일시적인 변화로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가정 원칙은 특정한 유형의 사람인 것처럼 옷을 입는 시도는 자신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p.261

 

'느끼는 것처럼' 행동할 때 뇌가 반응한다는 실험 결과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특정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감정 상태뿐만 아니라 몸에도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하니 놀라웠다. 매일 몇 초 동안 웃음을 짓는 방법을 통해 '행복하다고 생각하기'를 실천하도록 한 결과, 웃는 표정을 짓는 방법을 실천한 그룹의 행복감이 더 많이 상승했다고 한다. 완전히 처음 보는 두 사람이 마치 연인인 것처럼 상대에게 장난을 치게 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호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한 실험도 있었고, 흡연자들을 대상으로 실제 의료 장비를 설치해두고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폐암 진단을 받게 하고 정말로 담배를 끊은 것처럼 행동을 바꾸어 보도록 한 실험 결과도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 심리학과 다이어트와의 연관 관계, 자존감을 조종하는 기술 등 실생활에서 바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서적들을 찾아 읽을 것이다. 이 책은 시종일관 '먼저 행동을 바꾸라'고 말한다. 습관은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태어나서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백 번 해도 소용없는 결심은 이제 그만두고, 뭔가 다른 것을 해보자는 것이다. 저자가 보여준 다양한 심리 실험의 결과는 ‘척’하는 행동 하나가 극적인 결과를 만든다고 말한다. 이는 '무언가를 원한다면,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제 인간 심리에 대한 케케묵은 생각을 버리고, 저자가 말하는 단순하면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보자. 좀처럼 고칠 수 없었던 나쁜 습관, 10분 이상 지속되지 않았던 집중력, 중요할 때마다 사라지는 자신감, 그리고 마음처럼 안 되는 분노와 우울증 모두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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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톰의 발라드
빅터 라발 지음, 이동현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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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저녁을 먹고, 식사가 끝나자 빅토리아 소사이어티를 나섰다. 건물의 계단을 내려오자 다시 할렘에 와 있었다. 사흘 뒤면 토미는 로버트 수댐의 저택을 방문하게 될 터였다. 이제 그 방문이 다른 우주로 건너가는 여행처럼 여겨졌다. 아버지가 두려워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들이 그렇게 멀리 가 버리려고 하니까.    p.47

 

할렘에 있는 다세대주택에서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찰스 토머스 테스터, 항상 기타 케이스를 들고 다니는 그를 길거리에서는 '토미'라고 불렀다. 사실 기타 연주자 토미에게 음악적인 재능은 없었다. 스무 살의 실력 없는 연주자였기에 연주보다는 도시 구석구석을 돌며 잡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토미는 특별 의뢰를 받고 온통 백인들로 둘러싸인 퀸스로 가서 작은 노란 책을 배달하고 200달러를 받는다. 그 돈이면 여섯 달 치 집세와 공과금, 식비 등을 모두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미에게 로버트 수댐이라는 부유한 노인이 다가온다. 그는 사흘 뒤 레드 훅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파티를 열 생각인데, 와서 연주를 해주면 500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계약금으로 100달러를 건네준다.

 

토미는 안전한 할렘을 벗어나 망토처럼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숲을 거쳐 특정할 수 없는 세월의 공팡내가 배어 있는 수댐의 집으로 간다. 내일 밤 파티를 위해 연주를 하는 토미에게 수댐은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어느 무시무시한 전설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믿는다며, 토미를 고용한 이유는 그가 환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대양의 해저에는 왕이 잠들어 계시고, 잠든 왕이 귀환하게 되면 인류의 어리석음을 싹 쓸어 버릴 거라고. 그러면 흑인, 혼혈인 들의 차별에 대한 비참함이 끝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려 수면이 일렁이는 느낌을 보여주고, 대양이 출렁이고 솟구치는 심해의 광경을 느끼도록 만들어 준다. 그렇게 토미는 이상한 경험을 하며 수댐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오며 이제 할렘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후한 보수 때문에 수댐의 집을 다시 찾게 된다. 그날 밤, 파티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토미는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나는 가슴속에 지옥을 품고 다녔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고 파괴해 버린 다음 앉아 파괴된 모습을 즐기고 싶었지."
"그럼 넌 괴물이야."
"너희들의 손으로 만들어 낸 괴물이지."     p.159

 

이 작품의 서두에는 '엇갈리는 심경으로 H.P. 러브크래프트에게 바친다'라는 문구가 있다. 빅터 라발은 공포 소설의 거장 러브크래프트의 문제작 <레드 훅의 공포>를 파격적으로 재해석해서 이 놀라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로 대표되는 독특한 신화적 세계관을 창조하여 오늘날까지도 굳건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작가이지만, 인종차별주의자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악명 높은 단편 <레드 훅의 공포>를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빅터 라발이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쓴 것이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도 전혀 상관없을 만큼, 독립적이고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레드 훅의 공포>는 말론이라는 백인 형사가 이민자들이 부글거리는 동네에서 사건을 수사하다가 고대 종교의 의식을 목격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도 '지저분한 혼혈인들'이라든지 '죄악으로 물든 가무잡잡한 얼굴들', 또는 '아시아의 원숭이들'이라는 식으로인종차별적인 묘사가 난무한다. 빅터 라발은 <블랙 톰의 발라드>를 흑인 주인공 토미를 중심으로 다시 쓰는 방법을 통해 러브크래프트에 도전하고 있다. 극중 토미에게 접근해 연주를 부탁한 로버트 수댐과 토미를 미행하고 위협했던 말론 형사는 <레드 훅의 공포>에 등장했던 주요 캐릭터들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올해 초에 출간된 <엿보는 자들의 밤>이라는 작품으로 빅터 라발을 처음 만났는데, 그의 매력에 푹 빠져 다른 작품이 출간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터라 이번 작품은 굉장히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러브크래프트를 읽었든, 혹은 읽지 않았든 지 간에 <블랙 톰의 발라드>는 대단히 매혹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이문화와 밀교에 비상한 관심을 품고 있는 노학자, 그리고 그의 저택에서 초월적인 공포를 마주하게 되는 형사와 수댐에게 이끌려 악마 소환 의식을 돕게 되는 흑인 청년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준다. 사실 피가 난무하는 공포보다 이런 식으로 기괴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계속 잔상으로 무서움을 남기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공포와 환상이란 것이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민자가 몰려들던 1920년대 뉴욕에서 무장 경찰과 마법이 혼재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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