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징 4학년 스콜라 어린이문고 40
김혜진 외 지음, 메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에서 온 브로콜리가 덩굴을 뻗어 큼직한 이파리 하나를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뜻인가? 나는 손바닥으로 이파리를 살짝 건드렸다. 그러자 비 온 다음 날 숲에서 나는 냄새가 확 퍼졌다. 와, 꼭 산림욕장에 온 것처럼 상쾌해서 절로 웃음이 났다.
"나는 하이랑, 친구들은 그냥 하이라고 불러. 그리고 지구인이고, 여자아이고, 한국 사람이고, 청운초등학교 4학년 2반이야."             - 문이소, '우주 브로콜리는 지구를 정복하지 않아' 중에서, p.92~93

 

한 달 전에 전학을 온 여울이는 친구 관계가 걱정이다. 왜냐하면 지난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고 따돌린 아이들 때문에 도망치듯 이사를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에 어떤 상황에서도 튀지 않고 조용하게 지내기로 마음 먹는다. 마침 마니토 게임을 하게 되고,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자신의 이름을 뽑게 되어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그때 맑은 목소리로 누군가 말을 건넨다. 휘파람을 부는 듯, 유리잔이 울리듯 영롱한 소리로 자신과 마니토를 하면 된다고 말이다. 과연 그 목소리의 정체는 누구였을까. 여울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을까.

 

엄마 손을 잡고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아이들이 벌써 4학년이 되었다. 보통 3학년까지를 저학년, 4학년부터는 고학년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5, 6학년에 비해 4학년은 아직 많이 서툴고, 부족한 것 투성이이다. 그럼에도 점점 더 자아가 생기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주변 관계에 대한 걱정도, 고민도 많아져서 훌쩍 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이 시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4학년들을 위한 맞춤 동화집이다. 김혜진, 이재문, 문이소, 이나영, 채은하, 다섯 명의 작가가 완전히 다른 매력의 다섯 빛깔 동화들을 탄생시켰다.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사물함에 몸을 기댔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딱히 잘못한 건 없는 거 같은데, 왜 꼬여 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화기애애한 교실 풍경이 무척이나 멀게 느껴졌다. 지난 학교에서도 이런 기분이었지. 나는 무심코 떠오른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랑은 다르잖아.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 내려고 일부러 큰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이것 참 큰일이네. 나는 누구랑 마니토를 한담."            - 채은하, '너는 나의 우렁' 중에서, p.174~175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와 미스터리를 해결하게 된 채이의 이야기,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아빠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는 솔이의 이야기, 유치원 때부터 단짝이던 친구와 멀어지게 되어 고민인 하이의 이야기, 잘하던 수영을 할 수 없게 된 리안이의 비밀, 따돌림을 당할까봐 걱정인 여울이의 이야기 등 다섯 명의 아이들은 각자 다른 고민을 안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려움을 풀어 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딱 그 시기에 걸맞는 눈높이와 사려 깊음으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오로지 4학년만을 위한 맞춤 동화를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전국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거쳐 탄생했다. 선생님들이 4학년에 대해 해주신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이 시기에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페이지수가 많은 편이지만, 글자 크기가 크고 읽기 편한 레이아웃에 귀엽고 발랄한 그림들이 삽입되어 있어 아이들이 읽기에도 딱 좋다. 4학년들을 가리켜 농담 삼아 (천)4학년이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저학년 동생들에게는 모범이 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며, 적극적이고 호응도도 높은 '천사'같은 학년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4학년 아이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작가의 말을 읽어 보니, 곧 <레벨 업 5학년>이라는 5학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도 나올 것 같다. 이번 작품에 등장했던 어린이가 5학년이 되어 맞이하게 되는 에피소드도 수록된다고 하니 궁금해진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속도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하나의 문턱을 넘어간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부족한 것들이 더 많지만, 그것조차 이 나이에 겪을 수 있는 꼭 필요한 과정이니 괜찮다. 더 즐거운 학교 생활이 될 수 있도록, 이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찰랑찰랑 사랑 하나 파란 이야기 16
황선미 지음, 김정은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나를 구할 거야. 할머니가 그랬어. 나쁜 생각은 행운을 갉아먹는다고. 궁지에 몰려도 최선을 생각하라고. 궁지가 뭐냐고? 글쎄. 아마도 나쁜 일 중에 최악이 아닐까. 아무튼, 애들이 내 얘기를 하지 않는 건 내가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는 거야. 그러니 윤봄인답게 당당해도 돼. 혹시라도 누가 그 얘기 꺼내면 “그게 뭐?” 해야지.            p.50

 

황선미 작가의 <찰랑찰랑 비밀 하나>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이다. 전작에서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생겼던 봄인이에게 봄바람처럼 설레이는 감정이 찾아온다. <찰랑찰랑 사랑 하나>라는 제목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운 첫사랑 이야기이다.

 

봄인이의 엄마와 아빠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치료해주는 의사이다. 덕분에 다섯 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랑 둘이 살아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치매가 온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게 되면서, 봄인이는 백수 삼촌과 함께 지내게 된다. 백수 삼촌은 할머니랑도 사이가 나빴고, 봄인이랑도 별로 친하지 않았기에, 낡은 공동 주택에서 삼촌과 함께 살게 된 것이 봄인이는 화가 나고 슬펐다. 하지만 거침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당당한 성격의 봄인이는 도무지 책임감 없는 어른들에게 언젠가는 다 갚아 주겠다고, 아주아주 멋지게 자라서 당당하게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며 씩씩하게 주어진 환경을 헤쳐 나가는 것이 전작의 이야기였다.

 

 

새카만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뛰기를 잘해서 붙은 별명 '찰랑이'가 이름보다 더 익숙한 봄인이는 생일인데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 속상하다. 늦게까지 만화책 작업을 한 삼촌은 쿨쿨 자고 있고, 하나뿐인 손녀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직접 만들어 주셨던 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시고, 작년 생일에 원피스를 보내주셨던 엄마도 소식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친구들과 키즈 카페에서 놀기로 했다. 재원이가 친구들까지 초대해 자신을 위해 번개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으로 봄인이는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친구들인 모인 자리를 보자마자 봄인이는 깨닫는다. 이건 자신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재원이가 크림색 드레스에 공주처럼 왕관을 쓰고 있었던 거다.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봄인이는 친구들의 깜짝 파티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세상 모두한테 버려진 기분이 든다.

 

 

"찰랑. 좋은 일 있구나! 남재민이랑 연락된 거야?"
아, 현기증 나.
좋은 일이라니. 죽을 지경인데.
그런데 말이야, 참 이상하지. 갑자기 숨을 크게 들이마시게 되더라고. 용기가 필요할 때 나는 가끔 이래. 저번에 영모한테 사귀지 않겠다고 할 때도 그랬어. 지금도 그런 때야. 솔직해져야 할 때.            p.101

 

너무 슬프고 화가 나서 그대로 나와 버린 봄인이는 눈물을 쏟으며 무작정 걷고 또 걷는다. 집에는 가기 싫고, 전화할 사람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데로 가 버리고 싶었던 거다. 그러다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만남을 하게 된다. 어쩌다 보니 인기 절정의 아역 배우 남재민과 얽히게 된 봄인이는 늘 곁에 있었던 친구 영모에게 고백까지 받아 당황스럽기만 하다. 누구를 사랑하는 게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지만, 영모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남재민 생각에 가슴이 막 두근거리니, 설레는 건지 어떤 건지 자신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자, 봄인이에게 찾아온 마법과도 같은 첫사랑의 순간은 어떻게 될까. 싱그럽게 반짝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사랑스럽게 펼쳐진다.

 

 

누구나 살면서 설레는 감정이 찾아오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일상의 모든 것들이 반짝거리고,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반짝이는 순간은 계속되지 않는다. 영원히 지속되는 감정이란 없으니 말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랑은 살면서 꼭 필요한 마법과도 같은 감정이다. 그 사랑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든, 어떤 대상을 좋아하든,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한 존재는 성숙해지고, 앞으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기도 하고 말이다.

 

당차고 똑 부러진, 어떤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봄인이와 철없는 삼촌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하니, 다정하고 유쾌하고 따뜻한 이들의 좌충우돌 일상이 어떻게 이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
최재봉 지음 / 비채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일들에 비할 때 작가는 상대적으로 고도의 자율성을 지닌 직업이다... 작가는 온전히 자신의 판단과 결정으로 작가가 된다. 자유와 독립이 글쓰기의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 되는 까닭은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작가에게 어떤 글을 쓰라고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칙적으로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고 써야 하는 글을 쓸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쓰고 싶을 때 쓰고 쓰기 싫으면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그런 행복한 작가도 없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작가와는 무관한 얘기다. 작가 역시 쓰고 싶지 않아도 써야 할 때가 있다.              p.55~56

 

소설 제목에 얽힌 이야기 중에는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원래 작가가 생각한 제목이 '광화문 그 사내'였는데 출판사에서 너무 장난스럽다며 난색을 표하자 '칼과  길'을 대안으로 제시했고, 이번에는 너무 무겁다는 의견이 있어서 편집자가 내놓은 절충안 '칼의 노래'로 낙찰이 되었다는 사실. 김영하의 경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자살 안내인'이라는 기괴한 직업을 지닌 이를 화자로 등장시켰는데, 제목이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에서 왔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 영향을 받은 제목들도 많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폭풍우'에서, 윌리엄 포크너의 <소음과 광란>은 '맥베스'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은 '아테네의 타이먼에 영향을 받았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영어판 제목 '지나간 일들의 기억' 역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일부 활용한 것이다.

 

이렇게 제목에 얽힌 재미있는 배경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이 작품은 독자를 사로잡는 첫 문장의 비밀,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 글쓰기의 마지막 단계인 퇴고 과정 등 문학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책에는 작가와 작품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파트 1, 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문단 문제를 다룬 파트 2, 고전과 현대문학을 잇는 각각의 주제를 다룬 파트 3와 작품 안팎으로 문학을 구성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룬 파트 4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문학을 탐독해온 저자의 내공이 돋보이는 광활한 세계가 네 가지 파트로 구분되어 담겨 있다.

 

 

 

작중인물이 작가의 의지를 벗어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례는 뜻밖에도 드물지 않다. 문학이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더 공감하는 예술 장르인 까닭일까. 작가들은 종종 강자인 작가 자신보다는 약자라 할 작중인물을 역성드는 작품을 내놓고는 한다. 이탈리아 작가 루이지 피란델로의 희곡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는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자 연습 중인 연출가와 배우들을 '등장인물' 여섯 사람이 찾아온다. 이들은 어느 극작가가 자신들을 탄생시키고서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며, 연출가와 배우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며 그들 앞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연극을 '공연'하기까지 한다.              p.216

 

30년 동안 한겨레신문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해온 저자가 지금껏 문학의 발자취를 따라 직접 취재하고 연구하며 기록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최재봉의 탐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칼럼을 개고하고 미공개 원고를 추가하여 엮었다. 제목과 문장, 작가의 생활과 작업실, 마감과 퇴고 등 작가들의 속사정을 살펴보고 독법, 문단, 해설, 문학상, 표절 등 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대 문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첫사랑, 모험, 복수, 팬데믹 등 고전과 현대문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들을 짚어보고, 작중인물, 부캐, 독자, 편집자 등 문학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문학작품들을 읽으면서 맛본 즐거움과 행복의 경험을 담은 글들이 '탐닉'의 의미라면 문학의 이면과 비밀을 파고든 글들이 '탐구'의 의미로 '탐문'이라는 큰 제목 아래 함께 묶였다.

 

일주일이면 수십 권에서 백 권에 가까운 문학 도서가 책상 위에 쌓이는, 문학 담당 기자의 삶이란 어떤 걸까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신간들 속에서 읽고 소개해야 할 책들을 골라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을 무려 30년 동안이나 해온 저자의 탄탄한 내공이 이 책 여기저기에 포진되어 있다. 기자로서의 전문성과 독자로서의 애정이 모두 담겨 있는 글들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문학 전문 기자의 날카롭고 집요한 30년 탐독을 아우르는 대장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모 엑스 마키나 - 인류의 종말인가, 진화의 확장인가
베른트 클라이네궁크.슈테판 로렌츠 조르크너 지음, 박제헌 옮김 / 와이즈베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론 머스크는 아마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러나 머스크가 자칭 트랜스휴머니스트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째서 한 사람이 인공지능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화성 식민지화 계획을 세우며, 뇌와 컴퓨터 간의 인터페이스를 만들고 있는 걸까? 기본 세계관을 알면 답은 간단하다. 머스크가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는 트랜스휴머니즘의 핵심 주제들이다. 다른 사람은 이 주제를 사색하지만 머스크는 실행한다. 그는 크랜스휴머니즘 의제를 구체적인 기업 정책으로 만들었다.           p.71~72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은 아이들의 친구로 인공지능 로봇이 생산되는 디스토피아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AI 제조기술과 유전공학이 발전해 사회가 이 과학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계급 시스템을 재구성한 근미래는 어쩌면 우리의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 미셸 우엘벡의 <어느 섬의 가능성>에는 인간 복제를 통한 영생을 제안하는 종교 단체가 등장하고 이들에 의해 복제된 주인공의 클론이 나온다. 우엘벡이나 이시구로는 트랜스휴머니즘이란 말을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지만, 두 작품 모두 트랜스휴머니즘을 심도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공상과학 분야 외에도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예술 작품들이 많아진 이유는 이것이 곧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80세 안팎이지만, 한때 100세 시대라는 말로 미리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있었을 정도로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인류의 오랜 숙원이다. 그런데 10년이나 15년 더 사는 문제가 아니라, 기대 수명이 250년, 500년 이상 늘어날 수 있다면 어떨까. 바로 철학과 기술적 유토피아의 혼합인 트랜스휴머니즘이 바로 그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첨단 과학기술 운동을 말한다. 이 책은 의사이자 항노화 전문가와 트랜스휴머니즘 철학자가 만나 현재 및 미래의 기회와 위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인 ‘호모 엑스 마키나(Homo ex Machina)’는 ‘기계가 된 인간’이란 뜻으로 나노 기술, 유전공학 기술, 마인드 업로딩 등으로 인간의 신체적 능력은 물론이고 정신적 능력까지 향상된 상태를 뜻한다. 그야말로 새로운 ‘진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것이 현 인류의 ‘종말’을 뜻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과연 어느 쪽일까?

 

 

 

마인드 업로딩을 바라보는 이런 생각은, 인간의 성격을 디지털 매체로 옮기는 데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각 변형 단계에는 지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많고 얼토당토않은 부분도 있다. 그런데도 이런 단계를 거쳐 초지능이 등장한다면, 이는 초지능의 개념뿐만 아니라 지능 폭발의 개념을 발전시킨 어빙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어빙은 초지능이란 주제를 훌륭하게 묘사한 영화 중 하나인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언급한다.             p.360

 

인간이 극복해야 하는 생물학적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80년 정도로 한정되는 인간의 수명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은 단연 트랜스휴머니스트의 가장 큰 적이기도 하다. 수명을 연장하려는 시도는 과거부터 어느 정도 진전이 있어왔고, 150년 만에 평균 기대 수명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렇게 평균 수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120세가 사실상 종착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00세가 충분하지 않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기대 수명을 250년 내지 500년, 심지어 1,000년까지 늘리기를 바란다. 그야말로 불멸을 향한 인간의 오랜 욕망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건강하게 나이 들어야 하고, 유전자를 최적화해 생물학적 능력을 최적화하게 되고, 급기야 인간을 생물학적 신체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마인드 업로딩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허무맹랑한 공상과학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나의 시신을 냉동 보관하고 200~300년 후에 다시 깨어나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2억이라면 과연 할 만할까? 죽고 부활하거나 영원히 사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 아이가 걸릴 수 있는 질병을 사전에 차단한다거나, 뇌의 어느 부분에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수학 능력을 높일 수 있다면 어떨까. 또는 아이의 유전자를 변형해 수명을 30년 늘릴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나의 시신을 냉동 보존하고, 내 아이의 유전자를 진단해 편집하는 등 복잡하고 논란이 많은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매우 놀라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아직은 너무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이런 이야기들이 실제로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이라니 말이다. 나노봇이 혈관을 돌아다니며 몸 속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를 감시하고 암세포를 추적하며, 개인의 기억이나 정보가 클라우드에 업로드되어 다른 사람이나 기기와 융합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머지않았다. 그런데 이런 기술로 최적화된 인간은, 기계 장치로 몸과 마음이 대체된 인간은 인류의 종말일까, 인류 진화의 확장인 것일까, 여전히 의문이다. 나노공학, 유전자 조작, 인공 기술을 기반으로 한 트랜스휴머니즘이 가져올 미래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구나의 일생 - 오늘이 소중한 이야기 (양장본) 오늘을 산다 1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새의노래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스다 미리의 인생론과 행복론이 담긴 두 권의 책이 '오늘을 산다' 시리즈로 함께 출간되었다. <누구나의 일생>은 30대 일러스트레이터 쓰유쿠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40대 싱글 직장인 히토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라 따로 읽어도 상관없지만, 같은 판형으로 디자인되어 함께 읽으면 더 특별할 것 같다. 두 권 중에 먼저 만난 것은 <누구나의 일생>이다.

 

쓰유쿠사 나쓰코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언니는 결혼해서 따로 가정을 꾸리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두 사람만 한 집에 살고 있다. 도넛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와 '화과자 가게의 하루코'라는 만화를 그린다. 주로 그날 도넛 가게에서 있었던 일이라든가, 아빠와의 대화, 길을 걷다 마주한 풍경 속에서 힌트를 얻어 그리는 일상 만화이다. 시간적 배경은 ‘코로나 시기’로, 만 2년 동안이나 지겹게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시절이다. 오미크론 변이가 어쩌고 하면서 팬데믹이 장기화되던 시점, 대체 이놈의 코로나가 끝이 나긴 할지 슬슬 짜증나기 시작하던 그 시기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많은 일상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렸고, 도시의 모든 것들이 바뀌었으며,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달라진 일상을 받아들여야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출을 하지 못하거나 타인과의 교류가 줄어든 사람들이 답답함과 우울함을 느끼며 코로나 블루를 호소했던 것도 어느새 꽤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이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것도 어느샌가 끝이 나 버린다. 우리의 일상도, 우리의 삶도 그렇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 허무한 날이 있는가 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마스다 미리는 보통의 매일이 지금처럼 계속 이어지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이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일상들 속에 따뜻함도, 뭉클함도, 서글픔도, 쓸쓸함도 다 포함되어 있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보니, 이제는 안다. 아주 오래 마음에 남아있게 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어떤 날이라는 것을. 그저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수많은 날들 중에 어느 한 순간이 오래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을 수록 조금씩 더 좋아지는 것이 바로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다.

 

극중 쓰유쿠사의 아빠가 한 말처럼 인생은 제비뽑기 같은 구석이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다면 당첨인 거지만, 아마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아가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보다 죽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 더 분하고 허무하고 슬프다고, 쓰유쿠사는 자신의 일기에 쓴다.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산다는 건 가만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복선이라도 된 듯, 그녀의 일생은 어느 순간 막이 내리고 말지만 남겨진 이들은 그녀와의 추억으로, 그녀가 남긴 만화 작품을 통해서 기억한다. 그러고 보면 여전히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일생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기대도, 절망도 없이 그저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각자의 매일매일이 쌓여 자신만의 일생을 완성시켜나간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평생 죽을 때까지 자기만의 것'이라는 대사가 이상하게 위안이 되는 그런 작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에서,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나만의 삶,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일생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