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아메리카나 1~2 - 전2권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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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메리카나'라는 단어와 비시 생각에 박장대소하며 신이 나서 네 번째 음절을 길게 늘여 발음했다. 비시는 그들보다 한 학년 아래의 여학생이었는데 여행차 잠깐 미국에 갔다 오더니 갑자기 요루바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고 모든 영어 단어에 흐릇한 r을 덧붙여 발음하는 등 이상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기니카, 난 지금 네 입장이 될 수만 있다면 정말 뭐든 할 것 같아." 프리예가 말했다. "네가 왜 가기 싫어하는지 모르겠어. 언제든 돌아오면 되잖아."    -1, p.115

이페멜루는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십삼 년이 된 어느 날, 나이지리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현지에 있는 가족들은 미국 생활이 그녀를 돌이킬 수 없게 바꿔 놓았을 거라고 생각해 돌아와서 적응할 수 있겠느냐, 미국 시민권이 있으니 언제든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있는 동료나 지인들은 그녀가 미국에서 십오 년이나 살았는데, 다시 나이지리아로 돌아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녀와 삼 년 동안 함께했던 남자친구 블레인 역시 그녀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놀라고,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에겐 이유랄 게 없었다. 그저 켜켜이 쌓여 왔던 불만이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마침내 그녀를 움직였던 것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미국에서의 무엇이 그녀의 삶을 다시 나이지리아로 향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녀는 익명으로 <인종 단상 혹은 (과거에는 니그로로 알려졌던) 미국인 흑인들에 대한 비미국인 흑인의 여러 가지 생각>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인종 문제는 완전히 과대 포장되어 있다는 걸 흑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이제는 계층 문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문제만이 중요하다. 드레드록 머리를 한 미국인 백인 남자라고 해서 전부 다 흑인 편은 아니다. 등등 특유의 독설과 유머를 혼합해 그녀가 실제로 미국에서 겪어 온 인종 차별의 순간들을 매우 현실적이고도 발랄하게 표현해 왔다. 한편 중학생 때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웠던 그녀의 첫사랑 오빈제는 이제 결혼해서 처자식이 있었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 버린 뒤로, 그들이 서로 연락하지 않은 지도 수년이 흘렀다. 이페멜루는 나이지리아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오빈제에게 이메일로 알리고 계속 연락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이페멜루와 오빈제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역경을 겪고,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한 성장 소설의 배경에는 나이지리아와 미국의 정치 경제, 인종, 종교, 이민, 페미니즘, 계급 갈등 등 수많은 사회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알렉사와 다른 손님들, 어쩌면 조지나조차도 누군가가 전쟁으로부터, 또는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가난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억압적인 무기력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오빈제 같은 사람들, 즉 유복하게 자랐지만 불만에 빠져 있고 태어날 때부터 고국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도록 길들여진, 진정한 삶은 그 다른 곳에 있다고 영구불변하게 확신하는 사람들이 단지 떠나기 위해 - 그중 어느 누구도 굶주리거나 강간당하거나 마을이 불타지 않았지만 그저 선택의 가능성과 확실성에 목말라서 - 위험한 일, 불법적인 일을 하기로 결심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 p.87

‘아디치에, 소설읽기온라인 서포터즈로 만나게 된 두 번째 작품이다. 지난 번에 읽었던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응고지 아다치에의 데뷔작으로 2003년 작이었고, 이번에 읽은 <아메리카나>는 그로부터 10년 뒤에 쓰여진 2013년 작품이다. 그녀가 작가로서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놀라운 성장을 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읽으면서 내내 감탄했다. 사실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좋은 작품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술술 잘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기에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그에 비해 <아메리카나>는 첫 장부터 시선을 확 사로잡는 문장과 사유들이 인상적이었고,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이라는 다소 예상 가능한 플롯으로 쓰여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강렬하게 현실을 그려내고 있어 지금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동시대성이 피부로 고스란히 와 닿았던 것 같다.

특히 이 작품은 2015년 민음사 모던클래식을 통해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젊은 포토그래퍼 김강희와 콜라보레이션한 표지로 번역 편집 전반을 다듬어 출간되었기에 이번 기회에 만나 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선명한 색상 대비의 인상적인 표지는 책을 읽기도 전부터 이미지로 작품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솔직하고 톡톡 튀는 묘사로 미국 인종주의의 민낯을 보여주고,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발랄한 페미니즘으로 꼬집고 있는 이 작품이야 말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묵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소설 자체는 전혀 어둡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시종일관 경쾌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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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곤베리 소녀
수산네 얀손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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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지금까지 믿었던 현실이 쩍 갈라지면서 자신이 그 틈으로 떨어져 말이 존재하지 않고 시간조차 사라진 장소로 굴러 들어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곳으로 말이다. 구조물이 폭발해 산산조각이 되고 나서야 현재의 순간은 물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도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 같았다. 그녀가 그 순간'이었다'고 말이다.  다음 순간 극렬한 반사작용처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내가 무슨 경험을 하고 있는 거지?'    p.53

생물학자인 나탈리에는 온실효과가 습지의 부패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14년 전 이곳 모스마르켄을 말없이 떠났었다. 이곳은 달슬란드와 베름란드 사이 습지에 자리 잡은 황량한 곳이었다. 늪지로 유명한 외딴 마을이었고, 오래 전 기원전 300년에 인신공양의 제물이 된 소녀가 시체로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현재는 '링곤베리 소녀'라 이름 붙여진 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늪지는 산소가 부족하고 산성인 환경 덕분에 부패가 매우 천천히 진행되는 곳이다. 덕분에 당시 발견된 소녀는 거의 부패되지 않은 채로 머리카락과 의복, 금장신구가 남아 있는 미라 상태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 시신을 품고 있었던 장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눈앞으로 보이는 풍경은 너무도 평화로운 곳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에 키 작은 소나무들이 누러 바다에서 튀어나온 앙상한 팔처럼 서 있고, 거대한 하얀 하늘 아래로 누르께한 풀과 이끼의 파도가 치는 것처럼 보이는 장소이니 말이다.

한편, 저명한 사진작가인 마야는 어머니가 경찰이었던 관계로 어릴 때부터 예술과 경찰의 세계를 하나처럼 느껴왔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평범하지 않은 부업인 법의학 사진가 일을 20년 가까이 해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레이프 형사와 함께 늪지 근처에서 청년이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사건을 조사 중이다. 그녀는 현장을 촬영하면서 늪지의 풍경과 그곳에 가라앉은 것들에 관심이 생기게 되고, 오래 전 발견된 '링곤베리 소녀'와 현재 벌어진 사건 사이에 기묘한 연결 고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늪지에서는 지난 14년 동안 실종되었던 사람들의 시신이 연이어 발견되기 시작한다.

"아니, 나탈리에. 그런 건 없어." 그가 대답했다.

"아저씨가 유령이 정말 있다고 말하신다고 엄마가 그랬어요."

다시 침묵.

"유령은 존재하지 않아, 나탈리에. 그게 바로 유령이야." 그가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 말이야. 그러니 유령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은 그 자체로 모순이야."    p.147

모스마르켄 근처에서는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항상 돌곤 했다. 아주 오래 전에 사람들이 그곳에서 제물을 바쳤다는 말이 있었고, 실제로 링곤베리 소녀를 비롯해 미라로 발견된 존재도 있었으니 그냥 전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늪지에서 지난 14년 동안 사람들이 실종되었다. 과연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것은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범죄일까, 늪지라는 괴물이 사람들을 데려간 것일까. 이야기는 나탈리에가 14년 전에 겪었던 비극에 대한 미스터리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조사하는 마야의 시선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늪지는 수수께끼와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띄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곳을 제의나 영적 세계와 소통하는 장소로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늪지는 떠돌이들을 매장할 완벽한 장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사회와 대중의 의식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불모지이자 쓸모 없는 땅이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찾을 이유가 없는 장소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은 바로 이러한 늪지의 풍경들을 완벽하게 묘사해서 실제로 안개 자욱한 늪지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검은숲 독서클럽 1주차 도서로 만나게 된 수산네 얀손의 데뷔작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스웨덴 작가이기도 하고, 북유럽 스릴러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는 평을 듣는 작품이기도 해서 기대가 되었다. 이 작품은 주로 마약과 살인 등의 범죄를 적나라하게 그려온 여타의 북유럽 스릴러의 흐름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늪지 서스펜스라는 장르적 재미, 그리고 피 한 방울 없는 죽음을 묘사해 오싹한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있기도 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묻어 나오는 공포까지 버무려져 색다른 북유럽 스릴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웨덴의 습지 풍경들을 검색해봤는데, 정말 놀라울 만큼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더욱 오싹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산소가 결핍된 늪 속에서 자연 방부처리 되어 마치 잠에 빠진 듯한 늪지 시신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려졌다. 육지와 바다 사이의 경계, 마른 곳과 젖은 곳의 경계, 부드러운 것과 단단한 것 사이의 경계,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이기도 한 매혹적인 그곳으로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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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리학 이야기 - 알아두면 전혀 무서울 것 없는
나카노 토오루 지음, 김혜선 옮김, 박성혜 감수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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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뿐이다. 사람이 죽으면 몸의 세포도 역시 죽는다. 그렇다면 세포가 죽으면 사람도 죽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답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인데 어느 장기의 세포가 어느 정도 죽는지, 또 어떤 속도로 죽는가에 따라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면 세포가 죽어도 괜찮다. 게다가 아폽토시스(세포자연사)라고 불리는 병이 아닌 생리적으로 세포가 죽어가는 현상마저 알려졌다.   p.31

 

'병리학'이라고 하면 어쩐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 뜻을 보면 질병의 분류, 기재 및 그 특성과 병인 및 진행 과정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되어 있으니 더욱 그렇게 보이고 말이다. 하지만 쉽게 말하자면 병이 어떤 이유를 발병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보면 된다. 일생 동안,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을 없을 테니 어느 정도 알아두면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학문이기도 하다.

 

 

 

 

 

 

의과대학 교수인 저자는 의료계와 관련 없는 보통 사람도 어느 정도는 병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는 분야이니 읽다가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도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금방 알기 쉬운 내용으로 돌아오므로 어려운 부분은 일단 건너뛰어도 지장이 없다고 미리 서문에 밝히고 있어, 오히려 부담 없이 술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의료계에서는 '내과의는 뭐든지 알고 있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외과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무슨 일이라도 한다. 병리의는 뭐든지 알고 있고 뭐든지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때를 놓친다'라는 농담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이 병리의가 하는 일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말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병리의는 환자의 병소에서 떼어 낸 조직, 형태에 의한 진단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사망한 환자의 병에 관해 부검을 통해 조사하는 일도 한다고 하니 말이다.

 

 

 

 

병이라는 것은 세포의 기능이 여러 가지 상해를 끊임없이 받게 되어 파탄 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되더라도 바로 죽는 것은 아니다. 병이 난 세포들은 정상과는 조금 다른 상태에서 좀 전문적인 단어가 되겠지만 '병태생리'적으로 새로운 평형 상태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어르고 달래서... 왠지 모르게 세포와 삶을 함께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    p.94

 

우리의 몸은 대략 200종류의 약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많은 세포가 각각의 역할을 완수하고, 나아가서는 협조화여 가능한 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의 인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세포가 손상이 되는 것을 우리는 병이 난다고 한다. 정신 질환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질병의 원인은 세포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세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세포가 스트레스를 어떻게 참아 내는가부터 시작해 세포의 죽음, 노화 등의 이야기를 거쳐 암과 함께 가장 높은 사망 원인으로 꼽히는 심혈관 장애를 중심으로 몸 속 혈액에 관해 알아 본다. 그리고 '병의 황제'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라는 질환의 발병 원인부터, 어떻게 증식하는 지와 같은 암의 진화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장에서는 자궁경부암, 위암, 간암 등에 관한 이야기를 거쳐 멀지 않은 미래에 의학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AI나 분자표적약 등에 관한 내용도 수록되어 있어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나 '실마리도 없는 잡담을 하듯이 질병의 메커니즘을 웃음과 함께 설명하는 지적 여행'이라는 소개 문구처럼, 마치 별로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일상 속 잡담하듯이 풀어내고 있어 의학과는 전혀 무관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보통의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병에 걸리면 다양한 약이 처방된다. 그러한 약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효과를 나타내는가를 이해하려면, 병의 발병에 관한 병리학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요즘은 처방전에도, 약국에서도 각각의 약에 대한 기능과 효과에 대해 자세히 기재되어 있고,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자신이 처방 받는 약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의학이 크게 진보한 만큼 일반인들도 그에 걸 맞는 의학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의학적 지식과 그에 대한 해석,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통해서 평소 궁금했던 여러 질병의 발병원인과 진행과정 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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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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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서야 깨달았어. 나한테는 중요한 뭔가가 없다는 걸. 그 이유를 찾다가 어릴 적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어."

"너한테 뭐가 없다는 건데?"

"없어." 사야카는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알아. 나밖에 몰라. 난 결함 있는 인간이야."

예상치도 못했던 말이 사야카의 입에서 튀어나와서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p.37

7년 전 헤어진 그녀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고등학교 2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약 육 년 동안 연인이었다. 하지만 딱히 정열적인 애정 표현을 나눈 적도 없고 극적인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육 년이나 사귀고 있었고, 관계에 종지부를 찍은 건 사야카였다. 그랬던 그녀에게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이 지도에 있는 곳에 가줘. 나랑 같이."

 

남편은 미국 출장 중이고,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연락했다는 사야카는 사 년 전에 결혼해서 현재는 전업주부였다. 그녀는 황동으로 만든 열쇠와 편지지에 검은 잉크로 그린 지도를 보여 준다. 일 년 전에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이라면서, 이 지도에 있는 곳에 함께 가달라고 부탁한다. 아빠의 생전 행동 중에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고, 어쩌면 아버지가 이 지도에 있는 곳에 주기적으로 다녀오셨던 것 같다고, 여기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거였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에게 어릴 적 기억이 전혀 없다고, 그 기억을 되찾기 위해 이곳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나가노의 숲 속에 위치한 회색 집을 찾게 되는데,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 기묘한 그 집에서 그녀는 잃어버린 기억과 자신의 과거를 찾게 될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 집에 감도는 불길한 기운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비과학적인 표현이었지만 저주와도 같은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건, 사야카의 기억이 사라진 것에도 그 저주가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사야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른 건 바로 그때였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생각에 빠져들던 나는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p.192

크레타 문명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크노소스 궁전 안에 고고학자들을 괴롭힌 방이 있었다고 한다. 배수시설이 있긴 했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는 없었고, 방을 만든 재료도 마모되기 쉬운 재질이었으며, 계단 등에 사람이 지나다니며 생기는 사용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 이 방은 무엇일까 모두 의아해했다. 그곳은 바로 망자가 저승에 가서 생활하는 방, 유령을 위한 공간, 요컨대 무덤이었던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이라는 작품을 착안했다고 한다. 덧창이 닫힌 어둑한 집 안, 수북이 쌓인 먼지와 스산한 공기, 오래된 일기장, 같은 시간에 멈춰버린 시계들... 오래된 집이라는 공간만큼 공포를 불러 일으키기 적절한 장치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으로 단 두 명의 등장인물이 한적한 숲 속의 회색 집에서 만 하루 동안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연극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본격 미스터리로 손꼽히는데, 시종일관 오싹하고 섬뜩한 기분이 들게 만들어 공포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작가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야심작'이라는 표현을 할 만큼 자신감과 애정을 드러내는 작품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별다른 사건이나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시종일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긴장감과 서사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도 10년이 넘어 새 번역과 새 디자인으로 다시 출간된 작품이고, 요즘 같은 날씨에 읽기 딱 좋은 이야기이니 이번 기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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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 - 현실 자매 리얼 여행기
한다솜 지음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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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를 타고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풍경이 펼쳐졌다. 눈이 채 녹지 않은 어마어마한 산 아래, 동화 속 마을에 온 것 같았다. 내가 보아온 할슈타트의 사진은 겨울이었는데, 또 다른 푸릇한 할슈타트를 경험하다니. 페리에서 내려 돌아가는 배편의 시간을 확인하고 동생과 나는 본격적으로 할슈타트 여행에 나섰다. 우리처럼 당일로 온 사람도 있고, 며칠 묵으며 천천히 여행하는 여행자들도 있는 듯했다. 문득 예쁜 숙소가 가득한 이 마을에 머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107

215일 동안 인스타그램으로 공유되어 4만 팔로워의 뜨거운 응원을 받은 한자매의 세계여행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제 딱 서른 살, 나는 무엇을 이뤘을까. 그동안 적어놓은 버킷 리스트 속에는 언제 이룰지 모르는 꿈들이 가득했다. 그녀는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이 결정을 누군가와는 상의하고 싶었고,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동생이었다. 그녀의 결정을 듣던 스물다섯 살 동생은 대번에 이렇게 말한다. "언니 나랑 같이 가자." 그렇게 '한자매'의 세계여행이 시작되었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백배 낫다'는 말에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더 늦기 전에 버킷 리스트를 실현해보겠다고,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다소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일에 도전하기란 웬만큼 추진력이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게다가 서른이라는 나이는 대학 졸업 후 어느 정도 직장 생활에 적응이 되어 경력을 포기하기가 참 어려운 시기 아닌가. 그리고, 거창한 세계 여행으로 수많은 경험을 하고 돌아와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녀와서 계획은 있냐는 엄마의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뚜렷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벌써부터 걱정하며 여행하고 싶지는 않다고. 그렇지만 다녀와서는 더 멋진 사람이 되어 멋진 인생을 살겠다고. 딸의 이야기에 대한 엄마의 대답은 "우리 딸들, 인생 참 멋있게 산다." 였다. 그렇게 믿고 지지해주는 엄마, 아빠의 응원으로 한자매는 본격적인 세계여행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회사에 사직서를 낸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했다. 다행히 배낭은 방수가 되는 재질이라 많이 젖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내 배는 눈치도 없이 밥을 달라며 보챈다. 동생도 배가 슬슬 고파오는 표정이다. 우리는 이른 저녁이나 먹자며 밖으로 나갔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낡은 건물에 상점들뿐, 마땅한 식당이나 슈퍼가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과일을 파는 상인이 보인다. 그거라도 사야겠다 싶어 가보았지만 과일 상태가 안 좋았다. 바로 옆, 옥수수와 고구마를 파는 상인이 보인다. 동생과 나는 이게 최선이란 걸 직감하고는 옥수수 하나와 고구마 두 개를 골라 700짯을 냈다.    p.324~325

이 책은 출발 215일 전부터 시작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시작으로 24개 나라, 54개 도시 곳곳을 누비는 여정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꿈일 것만 같던 세계여행을 떠난 스물다섯, 서른 살 자매의 여정은 2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메고 비를 쫄딱 맞고 현실 자매의 싸움도 매일같이 이어지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리얼함으로 인해 진짜 여행처럼 느껴진다. 그녀들의 세계 여행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된다. 러시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에서 체코로 들어간다면 여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데다, 평소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의 첫 유럽 여행지는 체코의 프라하, 그리고 헝가리의 로맨틱한 부다페스트,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꿈꾸는 여행지라는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거쳐, 오스트리아, 독일, 영국, 크로아티아, 스위스, 그리스 등등...으로 이어진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는 누룽지 한 조각에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뉴욕에서는 현실 자매의 다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하고, 페루의 숙소에서 만난 크고 작은 벌레에 기겁하기도 하고... 다양한 풍경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게 된다.

여정이 끝나고 후반부에 수록되어 있는 장기여행을 위한 다양한 팁들도 매우 흥미로웠다. 출발 준비부터 귀국까지, 장장 400여 일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담은 체크리스트와 여행 루트, 교통비와 여행경비, Q&A까지 꼼꼼하게 정리한 부록이 수록되어 있어 실제로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행 가이드로서의 역할도 해줄 것 같으니 말이다. 각 국가별 비용도 식비, 교통비, 숙소, 입장료, 액티비티 등으로 나뉘어 있고, 원화로 환산했을 때 금액도 표기되어 있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여행 비용이었다. 나도 동생과 둘이서 해외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친구나 연인과 함께하는 것과는 다르게 더 편한 부분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자 마자 동생에게 이런 책이 있다고 소개를 해줬는데, 언젠가 나도 이렇게 리얼한 자매 여행을 떠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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