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2
단요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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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한 소음 속에서, 약함과 악함의 경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들 중 누구라도 그저 무해할 수 있었더라면 이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로를 다른 방식으로 아끼는 법을 알았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철학자가 말하길 자연 상태에서 잠든 거인은 난쟁이에게도 죽을 수 있으므로 인간은 평등하다고 했다. 그 말에는 아주 약한 사람조차 상대를 죽일 마음을 품는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걷어채인 아픔을 자신의 단단함으로 삼는 자세는 둘 중 하나다. 너무 오래도록 앓은 탓에 그만 나아버리기로 결단한 것이다. 혹은 처음부터 아픔이 아니었던 것이다.        p.55~56


맨손으로 살아 있는 걸 만지면 아무거나 케이크로 바뀌어 버리는 남자가 있다. 가끔씩 손이 타는 것처럼 뜨거워지고 머릿속까지 깜빡거리는데, 뭐든 만져야 정신이 돌아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 한쪽에 쥐 사육장을 만들고 케이크를 만들어야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경직 사무관으로 평범하게 살았던 그의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여기, 변두리 원룸촌에서 업소에서 일하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 중학교 3학년 소녀가 있다. 어릴 때부터 그 어떤 보살핌이나 훈육,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자란 선머슴 같은 그녀의 유일한 친구는 못된 짓만 골라하는 세력의 우두머리였다. 못된 애의 곁에서 불쌍한 애들을 괴롭히고, 못된 짓을 함께하며 살던 소녀는 어느 날 케이크 손이라는 남자를 알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소녀의 이름은 현수영이지만,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안혜리는 그녀를 현수라고 부른다. 친구들은 수영을 안혜리의 개이자 일종의 남편처럼 여긴다. 수영은 키도 큰데다 머리도 짧았고 살갗도 까무잡잡해 보통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남자애로 보인다. 안혜리는 학교에서 겉도는 애들을 모아놓고 싸움판을 종종 벌이곤 한다. 안혜리는 투견장의 주인이었고, 겉도는 애들은 투견이었으며, 그의 곁을 지키는 수영은 그녀의 행동대장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어딜 가나 겉돌았던 수영은 세 마디 이상의 문장을 만드는 법을 몰랐고, 기본적인 예절이나 행동에 대해서 전혀 배우질 못했다. 그런 수영을 데리고 다니며 한글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욕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 바로 안혜리였다. 그 모든 것에 선의가 담기지 않았을지라도 혜리가 베푼 모든 시간이 고마웠던 수영은 그녀가 창조한 세계 속에서 갇혀 별다른 불만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케이크 손이라는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그 셋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하나만을 그 순간의 이미지로 삼고 나머지는 외면하는 방식으로 삶을 버텨왔다. 반면 상식적이며 교양 갖춘 사람들이 보이는 속물성이란 사랑할 만한 것만을 사랑한 다음 따지러 올 사람이 없는 채무는 그저 잊어버리는 태도다.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더러움은 오로지 저들의 몫이며 자신에게는 빚이 없다는 확신이다. 그런 속물성을 거부할 방법이, 속물조차 되지 못할 무언가에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뿐이라면 삶은 고통이거나 거짓말이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므로 이건 파국이 아니었다. 다만 싱겁고 지겨웠다.               p.147


중학생 여자애와 서른 넘은 남자와의 기묘한 우정은 세상의 시선으로 보자면 숨겨야 하는 무엇일 것이다. 하지만 원래 안 된다고 정해진 일들은 사실 매일 일어나는 일들이고, 그렇게 따지자면 옳고 그름의 경계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어지기도 한다. 엄마의 남자가 집에 오면 언제나 밖으로 나가야 했던 수영에게는 시간을 때울 공간이 필요했고, 집에 틀어박혀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살던 남자에게는 말 상대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남자는 가끔씩 와서 말 상대가 되어주는 조건으로 공부를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고, 수영은 그렇게 남자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두 번이, 이틀에 한 번이 됐고, 방학이 되자 매일로 변했다.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낯설고 비현실적인 공간이 이상하고 편안한 꿈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수영을 둘러싼 세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장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은 인간이었던 흡혈인과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인조인간이 기계에 대항하는 사투를 보여주었던 정보라 작가의 <밤이 오면 우리는>이었다. 두 번째 작품은 <다이브>, <개의 설계사>, <마녀가 되는 주문> 등의 SF작품으로 만났던 단요 작가의 첫 중편소설이다. 이기호 작가와 조예은 작가의 추천평이 기대감을 더해 주었는데, 다 읽고 나니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단요 작가는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점점 더 좋아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과 불행을 아닌 척 즐기면서 사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남자가 만들어내는 케이크는 아름답고 달콤했지만, 결국 살아 있던 존재를 무생물로 만들어서 탄생한 것이었다. 무언가의 비명과 죽음이 만들어내는 케이크, 어른들의 세계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아이들의 세계, 그 속의 비정함과 잔인함, 그들만의 회계장부는 악의가 없어도 폭력을 만들어 낸다. 누군가의 불행이 또 다른 누군가의 행복이 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긴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이다. 단요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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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기원 - 우주의 탄생부터 인류의 미래까지 이광형 총장이 안내하는 지적 대여정
이광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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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만들어졌을까, 아니면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아 그것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을까? 나는 후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는 자연환경의 지배를 받고, 세부적 부분은 인간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생명체는 지구상에 태어난 후 약 40억 년 동안 수많은 변화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 많은 생명체 중 하나가 인간이다. 바다에서 태어난 지구 생명체는 육지에 올라온 후 5억 년 동안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맞았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기인한 대재앙이었다.            p.21~22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난다>로 만났던 KAIST 이광형 총장의 신작이다. 수십 년간 미래를 연구해온 그는 미래에 대한 해답을 오늘의 인류를 있게 한 빅히스토리에서 찾았다. 역사의 인과관계를 보면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를 찾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550페이지를 넘는 두툼한 이 책은 우주와 인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서 이광형 총장이 5년간 집필한 것이다. 남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미개척지에 길을 내는 선각자로 살아온 이력처럼 미래 전략가로서의 삶을 살아왔기에 미래에 대한 보다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을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은 인간의 뇌가 어떻게 사고하고 움직이는지 탐구하는 데서 시작된다. 인간의 정신을 이해하려면, 뇌 속 물질의 변화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결국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와 전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들 원소는 별에서 만들어졌으며, 별은 빅뱅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인간에 대한 답일 찾기 위한 여정을 우주에서 시작한다. 우주의 기원에서 시작해 물질이 생성되고, 은하가 탄생하고, 태양과 지구가 탄생해 생명체가 출현하게 된다. 대륙이 형성되고 어류에서 양서류, 파충류로 진화하며 공룡이 출현하고 대멸종을 겪으며 포유류와 영장류가 등장하게 된다. 그렇게 호모사피엔스의 진화로 시작해 고대문명이 만들어 지고, 인간의 뇌와 의식, 문명과 사상, 근대사회의 혁명을 거쳐 각종 과학기술로 인해 도래한 싱귤래리티 시대, AI 시대를 지나 또 다른 행성을 찾아가는 미래로 향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주의 탄생부터 생명체의 출현, 인류의 진화를 거쳐서 현대문명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장구한 우주의 인간의 역사 속에서 배울 점은,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정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는 팽창하고 천체의 모든 물체는 회전하고 있다. 남세균에서 출발한 생명체는 환경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며 오늘날의 우리로 진화했다. 인간의 세계관과 가치관도 계속 변하고 있으며 신기술 역시 예측할 수 없으리만큼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p.496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역사학이 곧 미래학'이라고 말했다. 역사 전개의 본질적인 원리를 파악하면 다가올 미래도 상당 부분 예상해볼 수 있다고 말이다. 오랜 시간 미래를 연구하고 예측해온 저자는 지금의 인류를 있게 한 역사의 인과를 찾고자 수많은 책들을 탐독해 왔다. 수천, 수만, 수억 년의 긴 시간을 살펴본 이유가 모두 미래를 제대로 보기 위해 시작한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류학자가 아니라 과학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살펴보는 이 책은 여타의 미래 예측서들에 비해 상당히 깊이 있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미래상을 보여준다. 물론 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백 페이지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지만,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는 줄기세포 기술, 유전자 편집 기술, 인공지능 기술 등 인간의 사상과 윤리, 나아가 '인간됨'의 의미까지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신기술의 발달에 직면해 있다. 과거 역사에서 그랬듯이 새로운 도구의 출현은 삶의 환경을 변화시킬 것이다. 인간이 21세기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이용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지금부터 100~200년 후 지구상에 살고 있을 인류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져 있을 거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렇게 이 책을 통해 138억 년의 장구한 우주의 시간, 46억 년의 긴긴 지구의 시간, 600만 년의 인류의 시간, 그리고 20만 년의 호모사피엔스의 시간을 모두 살펴 보았다. 그야말로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고, 방대한 분량의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사실이 새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술 너무 잘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각 장마다 주요 내용들을 요약해 두었고, 참고 사진들도 컬러로 눈에 쏙 들어오게 배치되어 있다. 우주와 인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각각 다루어도 책 한 권 분량일 텐데, 이 모든 것을 단 한 권으로 꿰뚫고 있으니 550페이지라는 분량이 결코 많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만난 과학교양서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유익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예측을 다루고 있는 그 어떤 책에서도 만날 수 없는 통찰력과 놀라운 지적 대여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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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아나의 회화력 급상승 영어 일력 365 (스프링) - 영어가 진짜 내 것이 되는 1일 1영어 습관
권주현.김기성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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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면 누구나 결심하는 것들 중에 다이어트 다음으로 외국어 공부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작심삼일로 끝나게 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도 외국어 공부일 테고 말이다. 사실 학창 시절에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우리는 영어 공부를 해왔다. 그래서 아는 단어들은 꽤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전에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분명히 아는 단어의 조합인데도 말이다. 


나 역시 늘 영어 공부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어, 기회만 있으면 시작을 하려고 하는데... 작심삼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랜 기간 꾸준히 지속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문장으로 보면 아는 것도 말로 내뱉는 것이 쉽지가 않아서 영어 회화를 술술 하게 되는 것이 로망이 되어 버렸다. 




이번에 만나게 된 것은 '영어 일력'으로 회화를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학습서이다. EBS ‘진짜 영국 영어’ 방송 진행자이자 아리랑TV 아나운서이기도 하고, 25만 구독자를 보유한 영어 유튜버(‘권아나TV’ 운영)이기도 한 권주현 아나운서가 직접 뽑은 필수 회화 패턴들을 만날 수 있다. 매일 하루에 한 문장씩,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하나씩 넘겨 보기만 하면 되니 영어 습관 만들기에 최적의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1년이 365일이니 매일 한 문장씩만 공부해도 필수 회화 패턴 365개를 익힐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각각의 패턴마다 응용문장들이 하나씩 함께 수록되어 있어, 전제 730개의 문장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니 아주 알차게 1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해당 일력이 특정 연도와 상관없이 '모든 연도에 사용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거다. 그러니 공부를 하기로 시작한 바로 그 날짜에 맞는 페이지부터 펼쳐서 학습을 시작할 수 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일력을 세워 두고는 수시로 보면서 부담 없이 영어 회화 공부를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루에 딱 두 문장 외우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다가 매번 포기했었다면, 영어 일력을 통해서 쉽고, 재미있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페이지 상단에는 QR코드가 수록되어 있어, 바로 음원을 듣고 따라 말하는 연습도 해볼 수 있다. 시원스쿨 홈페이지에의 자료실에서도 MP3가 다운로드 가능하니, 원하는 방법대로 이용하면 될 것 같다. 음원은 그날의 대표 문장과 응용 문장 각각 하나씩을 들어볼 수 있다. 




그날의 페이지에 맞는 영어 문장에는 해당 문장의 느낌과 상황을 담은 귀여운 삽화도 수록되어 있다. 삽화만 봐도 영어 문장의 뜻을 연상해 유추해볼 수 있고, 이미지 연상 학습법으로 더 효율적으로 문장을 익힐 수 있다. 특히나 여기 수록된 회화 문장들은 실생활에서 네이티브들이 입에 달고 사는 회화 패턴이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진짜 살아 있는 영어 회화를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권아나의 회화력 급상승 영어 일력 365'를 통해서 1일 1영어 습관을 기를 수만 있다면, 회화 패턴과 문장들이 머리를 안 거치고 바로 입에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운동이든, 외국어 공부든 뭐든 매일 꾸준히 하는 습관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바로 그 매일하는 것이 어려워 많이들 중도에 포기하곤 한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기 전에, 어떻게든 미루고 싶어 생각을 하기 전에,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 매일의 습관을 만들 수만 있다면 누구나 영어를 쉽고 편하게 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특히나 영어는 몇 시간씩 하다 말다 하는 것보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매일 조금씩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들 하니, 이렇게 영어 일력을 통해 하루에 단 두 문장씩만 공부하더라도, 이 시간들이 쌓이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영어 내공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년 이맘때쯤은 조금 달라진 나를 기대하며, 올해는 영어일력을 통해 영어 습관들이기에 매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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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이제창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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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참 다행이지 않냐?"

"뭐가요?"

"네가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기와 저기, 또 우리와 우리가 아닌 것들을 가르는 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 박상영, '요즘 애들' 중에서, p.89


카페에 앉아 있는 한 남자는 자신이 이곳에 왜 왔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 없었고,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기억 상실이라니, 아침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의 가장 식상한 소재가 자신의 현실이 된 것이다. 이상한 것은 커피나 커피 잔, 디자인 의자와 소파 등에 대해서는 자신이 확실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정도 커피라면 자신의 단골 카페일 거라 생각하고 직원에게 자신에 대해 질문을 해보지만 별로 쓸만한 정보를 찾아내진 못한다. 결국 경찰서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의 지문이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일 거라는 추측을 시작으로 이런 저런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자신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물론 여전히 자신에 대한 기억은 사라진 채로 말이다. 정지아 작가의 <존재의 증명>은 그렇게 기억을 잃어 버리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정소현 작가의 <엔터 샌드맨>에서는 폭발 사고로 무너져 내린 건물에 깔렸다가 구조되어 살아남은 여자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친구와 함께 며칠을 그 속에서 버텼는데, 결국 구조된 건 자신 혼자였고, 친구는 죽고 말았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와 방황은 결혼을 하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잔해 속에서 구출을 기다리며 함께 불렀던 노래, 엔터 샌드맨. 그녀는 현실을 외면하고 점점 자신만의 세상에 틀어 박혀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헤어진 남편이자 사고에서 함께 살아 남았던 지훈의 이상한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사고 이후 처음으로 아주 명징하고 단단한 고통을 느낀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뾰족하게 돋아 올라 온몸으로 가지를 뻗어 가다가 눈을 예리하게 뚫고 올라오는 통증을 느끼며, 서서히 진짜 세상 속으로 걸어 나올 준비를 시작한다. 





그런 날이 정말 있었는지, 그가 정말 있었던 게 맞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잔해 더미 속에 엎드린 채로 꾸는 꿈이 아닐까, 은하도 지훈도 둘과 함께 있던 세계도 모두 헛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둘이 함께 나누던 사소한 농담, 둘이 먹던 형편없는 식사, 둘이 앉아서 졸곤 했던 낡은 가죽 소파, 그가 좋아했던 부드러운 무릎 담요를 떠올렸다. 그것은 그녀가 유일하게 속해 있던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세계였다. 지수는 그 세계가 정말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동시에 영원히 잃어버렸다.          - 정소현, '엔터 샌드맨' 중에서, p.127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신작이다. 이 시리즈는 현직 교사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제자들을 걱정하며,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지표가 되어 줄 작품들을 선별해서 엮어 왔다. '우정'을 소재로 함께 걷는 소설, '가족'을 소재로 끌어 안는 소설, '노동'을 주제로 땀 흘리는 소설, '이별'을 주제로 손 흔 드는 소설 '재난'을 테마로 기억하는 소설, '환경'을 테마로 숨 쉬는 소설 등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다. 이번에 나온 <방황하는 소설>은 시리즈 열한 번째 책으로 '방황'을 테마로 한 7편의 단편 소설을 묶었다. 정지아, 박상영, 정소현, 김금희, 김지연, 박민정, 최은영 작가가 그려 낸 이야기들은 각각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고, 나이대도 다양하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죽을 것 같이 아프고 힘들어도 세상은 여전히 잘만 돌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세상은 변함없이 그대로이고, 달라지는 건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이유로든 누구나 살면서 방황을 하게 마련이고, 방황하는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 버리거나, 사회에 처음 나와 방황하기도 하고, 트라우마나, 인간관계에 대한 방황 등 각자의 상황은 다르더라도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방황하고, 헤매고, 실패하고, 고통받으며 조금씩 오늘을 살아간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이미 다른 지면을 통해서 발표가 되었던 소설들이라, 처음 만나는 작품도 있었지만 이미 읽었던 이야기들도 많았다. 하지만 분명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느 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또한 소설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앤솔로지 형태로 묶인 테마 소설 시리즈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일곱 편의 이야기 중에서 내가 거쳐 온 방황의 모습과 닮은 이야기가 분명 한 편쯤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이야기가 삶의 방향을 찾아 방황하는 당신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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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봄
한연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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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길었던 겨울, 봄이 우리를 잊었나 싶을 정도로 차갑고 시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봄을 찾아 긴 여행을 하던 중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무리에서 홀로 떨어지게 된다. 한참을 헤매다 새하얀 눈밭에 덩그러니 서 있는 작은 집을 발견하고, 새는 창문을 두드린다. 


똑.똑.똑.똑. "잠시 쉬어 갈 수 있을까?" 




아이는 창문을 열고 얼어붙은 새의 몸에 작은 숨을 불어 넣어준다. 작은 새는 할머니새가 해 준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 주었고, 새와 아이는 봄을 만나기 위해 함께 남쪽으로 향한다. 그렇게 작은 새와 아이는 구불구불한 언덕 사이에서 고양이를 만나고, 동그라미 숲에서 언 땅을 딛고 서 있는 순록을 만나고, 뽀족 숲에서 부리부리한 눈동자의 올빼미들을 만난다. 


거친 바위 협곡의 눈표범을 만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의 검은 거북도 만나고, 높고 높은 곳을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센 눈바람이 뺨을 할퀴기 시작하다가, 순식간에 아이의 외투가 허공으로 날아가버린다. 과연 작은 새와 아이는 이 힘겨운 여정 끝에 봄을 만날 수 있을까. 




겨울이 되어 햇빛이 약해지면 꽃은 시들고, 나무는 말라붙고, 자연의 활력들은 모두 빠져나가 버린다. 풍경은 색채를 잃어 버리고, 남은 건 그저 무채색의 추위와 차가움 뿐이다. 하지만 길고 길게만 느껴지는 겨울에도 끝이 찾아 온다. 엽록소의 생생한 초록빛으로 온통 세상이 가득해지는 봄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우리가 겨울을 견뎌낼 수 있는 건 아닐까.


고양이의 포근한 인사, 순록의 믿음직한 용기, 올빼미의 소중한 호의, 눈표범의 한결같은 기다림, 그리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검은 거북의 친절까지 아이와 작은 새의 여정을 함께하는 것은 봄을 기다리는 동물들의 다정함이다. 




이 작품은 <눈물문어>, <우리 반 문병욱> 등의 작품으로 만났던 한연진 작가의 신작이다. 새하얀 눈으로 가득한 겨울 풍경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록 따뜻한 봄의 빛깔들이 알록달록 펼쳐지는 너무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봄을 기다리는 아이의 하얀 외투가 고양이의 포근한 숨, 순록의 싱그러운 숨, 올빼미의 반짝이는 숨, 눈표범의 고요한 숨들이 모여 점점 예쁜 컬러로 물들기 시작한다. 봄을 기다리는 건 동물들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 작고 소중한 마음들을 담아 색색의 숨들이 모여 겨울의 끝, 봄을 향해 달려간다. 


이제 겨울의 중반 정도 지나가고 있다. 아직 두어 달은 지나야 봄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봄의 온기가 가득한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봄의 아름다움과 설레임을 다시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이 그림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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