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참 재밌는데 또 살고 싶진 않음 - 매일매일 소설 쓰고 앉아 있는 인생이라니
고연주 지음 / 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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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스터디를 하는 친구가 "누나의 인맥과 경험은 돈 주고 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ㅈ선생님은 '그렇게 많은 경험을 했으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고 하신 적이 있다. 삶이 아까워서 눈물이 다 날 것 같다. 언젠가 영화관을 나오는데 한 남자가 '저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이런 영화를 찍는 것도 재능'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에게 있는 하나의 재능을 발견한 느낌.

그녀는 정확하게 열한 살 때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다녔고, 벌써 세 번째 책을 낸 작가이다. 그런데 그녀는 끊임없이 '소설'을 쓰려고 한다. 막상 소설을 쓰려고 하면, 소설을 뺀 모든 것이 흥미로워져, 소설이 아닌 모든 것들에 열과 성을 다하는 자신에게 투덜투덜. 나는 왜 누군가처럼 그렇게 열정적으로 소설을 쓰지 못할까. 나는 정말 소설을 좋아하는 걸까. 스스로를 형편없다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소설을 쓰는 덴 게으르지만 소설을 쓰지 않고 있는 자신을 책망하는 덴 열심인, 재미있는 인물이다. 대학에서 전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소설을 쓰고 싶어 얼마 전부터 소설 워크숍에 다니기 시작해, 7년 만에 소설이라는 걸 완성했단다. 하지만 그저 열심히 썼다는 걸로만 만족해야 하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이란다.

왜 나한테 아름다운 것이 당신에게는 도통 아름답지가 않고 당신에게 아름다운 것이 왜 나에겐 아무렇지 않은 거지.

 

왜 그녀는 소설을 써야만 하는 걸까. 이미 책을 세 권이나 출간한 작가이고, 게다가 너무도 맛깔스럽게 문장을 만들어내고, 주변에 사람도 많고, 이것저것 인생의 풍부한 경험도 해보았고.. 그래서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만족스럽지 못한 걸까. 가만, 그런데 나 역시도 그렇지 않은가. 나 역시 다른 이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가치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었지 않은가. 나 역시 다른 이들이 부러워할만한 부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내가 가지지 못한 그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책망하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녀의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소설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버리면 행복해질 수도 있어." 물론 그럴싸한 논리다. 하지만 그걸 버리면,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게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어쩌면 사는 게 소설보다 소설 같은데 이걸 소설로 못 쓰는 건, 사는 법을 알아버려서 인지도 모르겠다. 사는 데에는 개연성이 없이. 필연성이 없어. 사는 건 커다랗고 두루뭉술한 우연의 총체니까. 주변에서는 자꾸 무엇인가 일이 일어났고 나는 삶을 주섬주섬 적다 보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그것만으로는 쓸 수가 없어서. 나는 나의 몇 가지 불행을 생각하곤 금세 좌절했다. 나는 왜 불행마저도 상투적이지, 쓰는 글도 상투적인데. 내 불행은 클리셰해서 도무지 소설로 옮겨올 수가 없다.

정작 소설은 안 쓰고 소설소설 이야기만 하는 그녀의 부끄러운 고백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고, 이해되고, 공감되면서 읽힌다. 아니, 이렇게 글을 재미있게 잘 쓰는데, 굳이 소설을 꼭 써야 하나 싶을 만큼 말이다. 별반 특출할 것도 별날 것도 없이 서른다섯이나 먹은 그녀는, 별나지 않은 직업을 갖고 별나지 않은 외모로 별나지 않은 것들을 향유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 단 하나, 성격은 별나다고 인정하는데, 바로 한 가지에 대해 남들보다 길게 말하는 초타이어드 '집요집요 파워'때문이라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녀가 특별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그녀가 세상에 약간 비스듬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올바르게만 살아가려고 하는 그 누구보다 그녀의 인생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나는 종종 외로워졌고 그래서 비참해졌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자랑스러웠다.

 

가끔은 현실이 더 소설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일상을 통해서 대리 위안을 받게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 맞장구 치면서 공감을 하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고연주 작가의 책을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너무도 매력적이라 기존에 출간된 작품 두 권을 바로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소설을 써야만 한다고 그것을 의무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독특함이 어쩐지 사랑스러웠고, 멋지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처럼 세상에 약간 비스듬한 사람들을 몇몇 알고 있다. 평범한 이들이 보기에는 다소 삐딱한 시선을 가진 이들로 통하는 그들의 씩씩하고 주눅들지 않는 태도를 사랑한다. 이 책은 그런 이들 편에서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고 있다. 당신은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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