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세상만사가 우연인가, 아니면 모든 일은 정해져 있는 것인가? 우리가 만든 물건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것인가? 30초 일찍 경기장을 나섰다면, 좀더 세게 페달을 밟아 한 바퀴만 더 빨리 달렸다면.... 나를 수술했던 의사는 일찌감치 귀가하여 아내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서로 연결되어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시간 탓이 아니었다. 각자 스스로 결정한 일들이며,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조정되어 온 현대적 스타일의 배합이다. 나는 이러한 배합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매번 새 책이 한 가득 도착할 때마다 생각한다. 왜 하루는 스물 네 시간밖에 안 되는 걸까. 책을 구입할 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도 같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항상 시계에 맞춘 삶을 살고 있으며, 좀처럼 오랫동안 시간의 여유를 갖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처럼 하루 24시간 중 많은 시간을 활용하려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까 고심하기도 하고 말이다. 과거에는 수동적으로 시간을 소비했던 사람들이 요즘에는 대단히 적극적으로 시간을 이용한다. 시간이 사람들의 일상사를 지배하는 모습을 초창기 시계를 만든 장인들이 보았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사이먼 가필드의 이 책은 바로 이런 '인간들의 시간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시간 측정, 시간 통제, 시간 판매, 시간에 관한 영화 만들기, 약속 시간 이행, 시간의 불멸화, 그리고 시간의 의미화를 갈망하는 인간의 모습들이 등장해 지난 250년간 시간이 어떻게 우리 일상에 파고들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에 시간이라는 복잡한 관념을 고대의 문명사를 통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현대사를 거의 반세기 동안 연구해온 역사학자가 저자였던 터라 굉장히 흥미로운 역사서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이 책은 시간을 비현실적인 존재가 아닌, 우리 삶의 주인공, 때때론 우리 가치의 유일한 척도가 되는 실질적인 존재로 본다는 점에서 더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사고를 당했을 때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느끼는 그런 감각에서 지나치게 감아버린 시계태엽처럼 팽팽하던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시간에 관한 모든 것이 뒤집히는 경험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새 역사를 쓰기 위한 새롭지만 혼란스러운 달력을 만든 사례를 소개하면서, 숫자가 10시까지만 적혀 있는 벽시계도 등장하는 등 시간 흐름의 방향을 바꾸려는 프랑스의 오랜 전통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 따라 각각 다른 시간으로 공연되는 점을 보여주면서, 예술에 절대성이란 없으며 인간의 감정은 시간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엄청난 일이 벌어진 그날의 그 중요한 시간에 버넷은 라이카 카메라의 필름을 갈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사용하던 라이카는 필름을 끼우기가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카메라였다. 버넷 기자도 네이팜탄을 투하하는 비행기와 시커먼 연기를 뚫고 뛰어오는 베트남 사람들을 보았다... '한 순간에...., 닉 우트가 정치와 역사를 초월한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들이닥친 전쟁의 공포를 상징하는 장면이지요. 사진은 시간과 감정 등 온갖 요소를 포착하며 절대 지워지지 않습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기차가 대륙을 가로지르기 시작하면서 기차 사고를 면하려 표준시간을 채택하게 된되면서 어쩔 수 없이 시간에게 우선권을 내주었던 사례도 있었고, 저장 장치의 용량 한계로 인해 대부분의 앨범이 재생시간 70분 내외로 정해진 기준에 맞춰서 음악을 감상하는 것처럼 우리가 항상 시간이라는 것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거기다 현재를 잡아두는 사진기자, 영화 속 장면들로 24시간을 표현한 영화감독에게서는 시간의 새로운 해석을 엿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들의 사례가 너무도 다양하고 무궁무진해서, “책 속에 들어있는 거대한 시간박물관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와 닿는 느낌이었다. 철학적 개념도 과학 이론도 없이 오감으로 시간을경험하는 것은 오로지 사이먼 가필드라서 가능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을 거리들이 풍부해 너무도 재미있는 시간 여행이었다.

자동차 조립 라인에서부터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직접 시계 제조회사 작업실에서 시계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까지 등장하고 있다. 거기다 시계 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스위스의 시계는 대체 무엇이 다른지, 시간에 대한 강박 관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운동 선수들의 사례와 어떻게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전략까지 수록되어 있다. 시간이라는 테마가 얼마나 폭넓은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지에 대한 그 결정체라고 느껴지는 이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금방 이야기에 빠져들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어 누구라도 부담 없이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해준다. 그야말로 제목처럼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을 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