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니스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0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남자들이 화가 잔뜩 나서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거든요."

", 그렇다면 남편 하나가 그 사람 코에 한 방 먹이면 곧 마을을 떠나겠네요."

해미시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엄지손가락이 쑤시는 걸 보니, 무언가 사악한 것이 이리로 다가오고 있구나.' 그건가요?"

"비슷해요."

 

사건이라고는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아마도 영국 제도에서 가장 따분한 마을 드림에 영화배우처럼 잘생기고 매력적인 젊은 남자 피터 하인드가 이사를 온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도 한 눈에 반한 아도니스처럼 아름답다는 남자 덕분에 마을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해미시 멕베스 경사는 로흐드 마을에 살지만, 드림 역시 그의 담당 구역이기에 소문을 듣고 인사도 나눌 겸 찾아가 보기로 한다. 젊은 사람이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마을에 살겠다고 나타난 피터의 의도가 의심스러웠지만, 해미시가 보기에도 그는 엄청난 매력의 소유자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마을에 정착한 젊은이가 중년 여성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탓에 파리만 날리던 미용실이 중년 여성들로 붐비고, 그런 아내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남편들은 점점 더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외지인을 향한 남자들의 증오심이 깊어지면서 점점 마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지는데, 어린 소녀가 해미시를 찾아와 시체 없는 살인 사건을 신고한다. 갑작스럽게 피터가 쪽지를 남겨두고 마을을 떠났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가 살해된 것 같다는 거였다. 물론, 시체가 발견된 것도 아니고, 사건 현장을 목격한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이번 작품은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그 열 번째 이야기이다. 말단 순경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지난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 경사로 승진하고, 전편에서 오랜 짝사랑 상대였던 프리실라와 약혼한 이후 해미시의 달라진 일상이 시작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프리실라는 해미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보란 듯이 그를 높은 자리로 승진시키고 싶어 하는데, 그저 유유자적한 삶을 원하는 해미시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성공시키겠다고 죽자사자 애쓰는 그녀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해미시는 성공한 남자가 되고 싶은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고, 그저 한가하게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소문이나 주워듣고 밀렵이나 하고 공짜 밥이나 얻어먹으며 살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게 바로 그가 약혼 전 평온하던 시절에 늘 하던 일이었고, 그게 바로 해미시 맥베스라는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전부였으니, 앞으로 시리즈가 점차 진행되면서 프리실라에 의해 과연 변화하게 될지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야망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남자와 상류사회의 우아한 여인이 만들어 내는 로맨스는 살인 사건과 미스터리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이 시리즈 전체를 계속 읽게끔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들 커플 덕분에 우리는 작가의 말처럼 '그동안 단 한 권도 없었던, 할리퀸 로맨스와 정통 문학 작품의 경계에 서 있는'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시리즈를 모아 놓고 찍으려다 보니, 아무리 찾아도 2권이 안 보인다. 판형이 작고 가벼워 휴대성이 좋은 반면, 잔뜩 어지러진 책장에서 찾을 때는 오히려 잘 안 보인다는 단점이.. 하핫...

 

 

 

해미시는 랜드로버로 돌아가서 차 안에 앉아 침울하게 아래쪽 호수를 빤히 바라봤다. 이 사건을 좀 더 파고들지 않는다면, 죽는 날까지 후회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해미시는 게을렀다. 하지만 인간의 목숨을 앗아 가는 일은 최악의 범죄였고, 그는 베티의 죽음이 사고사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온갖 것에 간섭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보이는 프리실라 때문에 해미시는 왠지 자신의 약혼이 깨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느낀다. 해미시가 로흐두를 떠날 의사가 전혀 없는데 비해 프리실라는 끊임없이 이사할 좋은 집들을 알아보지만 그녀 역시 엉터리 점성술사에게서 들은 불길한 예언 때문에 어딘지 두렵다. 그녀는아가씨는 맥베스와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아름다운 남자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테니까.” 라는 말을 들었고, 그 이후에 매력적인 청년 피터가 등장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피터가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난 뒤에도 여전하다. 마을의 남자들은 화가 잔뜩 나 있었고, 여자들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렸으며, 사건이라는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미시는 어딘지 수상하다는 느낌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중이었다. 무사태평, 유유자적에 게으르고 매사 느긋하기만 한 경찰이지만, 정의감만은 투철한 점이 바로 해미시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최악의 범죄였고, 만약 범죄가 일어난 거라면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그래서 결국 해미시는 살인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아니 애초에 살인이 일어나긴 한 걸까. 짧은 분량이지만 이야기는 소소한 재미와 흥미진진한 요소들로 무장하고 있다.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는 영국 추리소설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20세기 초 고전들의 유산을 계승한 정통 코지 미스터리이다. 1985년 『험담꾼의 죽음』을 시작으로 2018 2, 33번째 권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데, 무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세계의 사랑을 받는 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인 M. C. 비턴은스코틀랜드 북쪽 끝에 있는 서덜랜드의 낚시 교실에 참가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고지대의 황무지에 고립된 11명의 사람들, 이 얼마나 멋진 고전적인 탐정소설의 무대인가! 그렇게 해미시 맥베스가 탄생했죠.”라고 탄생 비화를 말한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이 시리즈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도 완벽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는 언제나 스코틀랜드 고지를 무대로,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을 소란하게 만드는 인물이 출현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너무도 평범해서 고개를 돌리면 어느 거리에서나 만날 법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스토리라서 더욱 공감도 되고, 몰입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시리즈물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무려 서른 권이 넘는 시리즈가 부디 모두 출간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한 권짜리 이야기보다 지속되는 시리즈는 더 많은 즐거움을 주는 법이니까. 시리즈가 지속되는 동안 내내 누적되는 인물들 만의 소우주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대체 어떤 캐릭터이길래, 무려 30년 넘게 사랑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아늑한 고전 추리물이 2018년 현재에도 여전히 읽히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를 만나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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