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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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충격은 오래 전에 사라졌고, 그와 함께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어쨌거나 그녀의 마음은 그때 일을 거의 돌이켜보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된 삶, 그 가공의 삶은 수정처럼 날카롭고 투명하게 존재했다.

아름다운 아릴랜드 서부의 스토니브리지에 위치한 호텔 스톤하우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출간 전에 전체 10편의 이야기 중에 3편을 먼저 티저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읽기 전에는 전체의 반도 안 되는 이야기를 읽어 봤자 소설의 맛보기만 하는 건데, 그걸로 이 작품이 어떤지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나는 겨우 첫 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작품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 모두 각각 하나의 단편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들 또한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스토니브리지의 농장에서 아버지를 도와 암탉을 돌보던 소녀 치키는 언니들, 형제들이 큰 도시로 떠나 일을 하거나, 교육을 받기 위해 다른 지방으로 떠나는 모습을 본다. 그녀는 대단치 않은 일을 하더라도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날 잘생긴 미국인 청년을 만나게 되고, 그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육 주 동안의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할 즈음 치키도 그를 따라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집안 식구들은 노발대발 난리법석을 피운다. 치키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라 미국으로 떠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의 끝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하지만 그녀는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남아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게 된다.

 

"저는 제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나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 하지만 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도 정리할 건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이제 중년이 된 치키에게 뜻밖의 제안이 생기고, 고향의 스톤하우스를 인수해 호텔로 개조하는 일을 하게 되기까지의 스토리 자체는 특별할 게 없다. 그러나 남자와 눈이 맞아서 고향을 떠나왔지만, 행복한 시간이란 그리 길지 않았고 다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녀가 고향의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거짓으로 꾸며낸 삶으로 행복한 척 살아가는 이야기는 어딘가 뭉클했다. 일 년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것만 빼면 돈을 아끼느라 휴가도 즐기지 않고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그녀에게 '꾸며낸 거짓 삶이 보상'이었다는 것. 그리고 결국 그녀가 떠날 때 고향 사람들의 우려가 모두 틀렸고, 자신의 선택이 맞았다는 걸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유일하게 그녀를 살아 있게 하는 믿음이라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안타깝고, 이해가 되어 응원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치키의 이야기에 이어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살며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경찰에 붙잡힐 처지가 된 리거, 런던에서 회사 생활을 하며 지쳐 버린 치키의 조카 올라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스톤하우스는 손님 맞을 준비를 모두 끝낸다.

메이브 빈치는 아일랜드의 국민작가로 불리는데, 사후에 발표된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이 작품이다. 누구나 살면서 삶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마련이다. 내가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선택하는 순간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도, 선택을 번복할 수도, 취소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니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순간의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것, 인생이란 스스로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인생이란 단 한 번뿐이니 말이다. 메이브 빈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리며 인물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토닥이며 위로해주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해준다. 스톤하우스에 도착하게 되는 손님들의 사연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다음 이야기를 빨리 만나보고 싶다. 마음 시린 이 계절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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