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시가 아키라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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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보안 의식이 낮다.

단일민족인 데다 사방을 바다가 지키고 있고,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우수하기 때문에 이제까지는 다소 방심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인터넷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자기 생일을 은행 비밀번호로 설정하는 것은 만취한 여성이 홀로 걷는 것과 유사할 정도로 위험하다.

 

남자는 어젯밤 택시 안에서 스마트폰을 주웠다. 취했던 탓인지 자신의 것인 줄 알고 가져왔는데, 벨소리가 울려 보니 대기화면 속 남녀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화면 속 여자는 검은 머리칼을 가진 미인으로 자신의 이상형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사진 속 흑발의 미인이었고, 스마트폰의 주인은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스마트폰을 택시 안에 두고 내린다거나, 어딘가에서 잃어 버리게 되는 경험은 누구에게라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설정이라 현실감이 두드러진다. 예전에 역시 핸드폰을 소재로 한 국내 스릴러 영화가 있었는데, 핸드폰 분실 후 지옥 같은 시간을 겪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익명성을 무기로 핸드폰을 분실한 남자를 위협하는익명의 남자의 정체와 의도를 숨기고, 점점 더 뒤틀려 가는 사건 속에서 어떻게 핸드폰을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긴장감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시가 아키라의 작품은 스마트폰을 주운 남자가 별다른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초반에 주인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준다. 하지만 남자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남자는 스마트폰 주인의 여자 친구에게 반한 상태였고, 폰을 돌려 주기 전에 비밀번호를 알아내 그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백업해둔다. 거기다 스마트폰에도 원격 조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화나 사진, 위치 정보들을 다른 장치로 볼 수 있도록 해둔다. 그리고 알아낸 정보들을 SNS를 활용해 검색해서 그들 커플의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신상정보를 모두 알아낸다. 과연 남자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이야기는 세 가지 시점으로 번갈아 진행되는데, 스마트폰을 주운 남자, 그의 표적이 된 여자, 그리고 어느 숲 속에서 백골 상태의 여성 사체를 발견한 형사의 시점이다. 신원의 알 수 없는 여성의 변사체는 잇따라 발견되는데, 발견된 사체와 일치하는 DNA를 가진 실종자에 대한 정보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결국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정도의 성인 여성이 실종되었는데 누구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게 경찰은 첫 사체 발견으로부터 3주가 지나도록 피해자 특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살해당한 여성의 가족과 애인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왜 아무도 그들의 실종신고를 접수하지 않았던 것일까.

 

애정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무시당할 바에는 차라리 미움 받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미움 받기 전에 애초에 거절당해 버리기 때문에 관계가 시작되는 여자도 없었다. 남자의 스트레스는 하루하루 심해져 갔다. 그리고 이대로 계속 무시당할 바에는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죽여 버리자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스토커들에 의한 살인사건을 떠올리지 않아도 남자의 심리는 명백했다.

 

이 작품은 6천만 이동통신 가입자수, 한해 300만 건의 핸드폰 분실이 일어나는 국내 현실에서 누구에게나 현실처럼 다가오는 리얼한 서스펜스를 보여 주고 있다. 우연히 스마트폰을 줍게 된 사이코패스 킬러와 그의 타깃이 되는 여자는 서로 완전히 관계없는 사람들이었다. 남자에게 주어진 거라고는 여자의 남자친구가 잃어버린 스마트폰, 그리고 그녀의 얼굴 사진과 휴대폰 번호뿐이었다. 거기서 출발한 남자가 어떻게 그녀의 사생활 구석구석을 치밀하게 침범하는 지에 대한 과정이 너무도 리얼하고 섬뜩해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들어 준다. 전혀 알 지 못했던 타인에게 페이스북을 통해서 친구처럼 접근하고, SNS상에 노출된 그녀의 일상에 대한 정보들을 캐치해서 어떻게 이용하고, 나아가 연인조차 모르는 개인정보, 숨겨진 비밀까지 파헤치는 것에 이르는 과정은 정말 굉장히 디테일하고 현실적이었다. 작가가 실제로 이런 범법 행위에 대해서 치밀하게 연구하고 조사한 것처럼 느껴질 만큼 리얼했다. 어쩌면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겠다는 자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현대인들의 스마트폰 의존 현상은 SNS에 대한 의존으로 이어진다. 끊임없이 SNS의 메시지를 읽고, 사진을 업로드하며 타인의 관심에 목말라한다. 20대 여성 4명 중 1명은 스마트폰 중독을 경험한 적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하는데 관심이 높을 수록 더 SNS에 의존하게 된다는 거다. 그건 일상 속 스트레스에 의한 심적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다른 무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약해진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은 소셜네트워크 사용자만 30억명에 이르는 시대이다. 비슷한 관심을 지닌 사람이 모여 정보를 나누는 파급력은 경험을 나누는 공유경제 매커니즘으로 발전했고,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거짓 정보가 난무하고 불법 마케팅도 성행한다. 온라인으로 연결돼 언제 어디서나 소식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사람들간의 소통을 극대화하는 커뮤니티라는 장점도 있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각종 범죄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처럼 다른 이용자의 사진을 도용해 그 사람인 척하거나 집요하게 그 사람의 일상을 분석하며 범죄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실제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범죄이다. 시가 아키라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적 재미와 함께 현대인의 공포를 끄집어내는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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