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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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라는 이름의 게임입니다. 여기에는 면밀한 계획과 대담한 실행력이 요구됩니다. 게임인 이상 이겨야 합니다. 게임이라고 얕봐서는 곤란합니다. 세상에는 목숨을 건 게임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것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나는 게임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습니다.

 

사쿠마는 대학 입시, 취업, 연애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게임으로 여기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서 기쁨을 느껴왔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게임에서 진 적이 거의 없었다. 모든 일들에 대해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승리를 거둬 왔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광고기획사에서도 성공시키지 못한 기획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자신이 기획한 오토모빌 파크 아이디어로 기획이 마무리되어 이제 실행 사인만 나는 단계인데, 갑자기 닛세이자동차 측에서 해당 기획에 대해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다. 오토모빌 파크에 딴죽을 건 사람은 새로 부사장에 취임한 회장의 아들인 가쓰라기였다. 게다가 가쓰라기는 새로운 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테니, 팀의 스태프를 새롭게 짜고, 리더인 사쿠마는 교체해달라는 요구를 한다. 사쿠마는 분노와 굴욕감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 술김에 가쓰라기의 저택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그 집에서 젊은 여자가 담을 넘어 나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바로 부사장의 딸이었고, 사쿠마는 가쓰라기 와의 관계를 위해 그녀를 이용하기로 한다.

내 마음속에는 굴욕감과 투지가 믹서에 넣은 듯이 소용돌이쳤다. 게임이라고? 그렇군. 당신은 게임의 고수인 척하고 있다. 그렇지만 게임이라면 나도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고수인지 확실히 가려야 하지 않겠는가.

 

 

알고 보니 부사장의 딸 주리는 가스라기의 정식 딸이 아니었다. 가쓰라기는 20년 전에 합의 이혼했고, 지금 부인과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는데, 주리는 전처의 딸도 아닌, 전 애인의 딸이라고 한다. 어릴 때 엄마가 병으로 죽고 나서 가쓰라기 집안에 들어와 살고 있는데, 지금의 생활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뛰쳐나왔다는 거다. 새엄마와 이복 동생들이 웃는 표정의 가면을 쓰고 그 동안 자신을 계속 무시해왔기 때문에, 그 집안에서는 말도, 행동도 다 공허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가출을 하고 보니 당분간 생활할 수 있는 돈이 필요했고, 주리는 사쿠마에게 자신을 유괴하지 않겠냐는 이상한 제안을 받게 된다. 부사장에게서 받은 굴욕감에 복수하고 싶었던 사쿠마는 주리의 제안에 응하게 된다. 주리는 가쓰라기 집안에서 돈을 빼낼 수 있고, 그는 가쓰라기와 제대로 된 승부를 겨뤄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두 남녀가 각자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기괴한 유괴 게임을 시작한다.

 

 

범죄라는 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돈을 노린 범죄는 회사에서 하는 일과 똑같다. 법망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궁리하는 대신 경찰의 수사망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협박도 거래와 다를 게 없다. 아니, 고집스러운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상담에 비하면 훨씬 단순하고 편한 일이다.

 

이 작품은 '유괴'라는 범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전혀 어둡거나 심각하지 않다. 대부분 범죄 소설에서 유괴가 소재로 등장할 때는 남겨진 가족들 내지는 피해자의 시점과 범인을 쫓는 경찰의 시점이 등장하게 마련인데, 그 역시 전혀 없다. 시종일관 범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유괴라는 범죄는 마치 장난처럼 경쾌하고,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로 속도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부사장을 대상으로 그의 딸과 사쿠마가 함께 벌이는 이 게임은 전문 범죄자에 의해 진행되는 유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진행이 되고 있어 끊임없이 긴장감을 제공한다. 특히나 전혀 속을 알 수 없는 가쓰라기 부사장의 행동이 유괴 범죄의 성공여부와 별개로 미스터리를 더해주고,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게임처럼 살아온 사쿠마라는 독특한 캐릭터 역시 일반적인 범죄자와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야. 맨얼굴을 드러내면 언제 어느 때 얻어맞을지 몰라. 이 세상은 게임이야. 상황에 따라 얼마나 적절한 가면을 쓰느냐 하는 게임."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에서도 손에 꼽히는 반전을 자랑하는 작품이라,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게다가 인질과 범인이 모의한 유괴 사건이라는 소재 역시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평범한 회사원과 아름다운 여대생이 쓰고 있는 가면 뒤의 진짜 얼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이 작품의 묘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모두가 납득하는 살인 동기가 아니라, ‘이런 이유로도 사람을 죽여?’ 하는 추리 소설에 도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그 현실적인 작의가 씁쓸하기도, 섬뜩하기도 하다.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다거나,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 벌어지는 살인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다반수인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번 작품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개정판으로 더 세련되고 감각적인 표지로 새로 출간되었으니, 이 작품을 아직 만나보지 못한 분들은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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