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2. 에티켓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오리진 시리즈 2
윤태호 지음, 김현경 교양 글, 더미 교양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전체 100권으로 기획된 '오리진' 시리즈는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을 탐구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1권 보온에 이어 2권은 에티켓 편이다. 전작에서 우리는 열을 지키는 '보온'이 생명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은 36.5도에서 1~2도만 높아지거나 낮아져도 생명이 위험해지는 존재이니, 외부 환경의 변화에 관계 없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온 AI 로봇봉투 21세기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열의 의미와 보온의 중요성을 깨닫고, 비활성화된 하나의 '생각' 중에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당신을 존중한다.'

'당신 역시 나를 존중해줘야 한다.'

‘나는 당신을 해칠 의사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 너무 다가오지 말아달라.’

‘나와의 거리를 유지해달라.’

‘나와 가까워지고 싶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사회에서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생존 기술이자 본능이라는 에티켓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윤태호 작가는 말한다. 상대와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미션과도 같다고. 매우 어려운 일이나 꼭 해내야 하고 유지해야 하는 감수성이라고 말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어 가면서 살아가게 된다. 상대를 매우 싫어하거나 매우 좋아한다면 자신의 행동 노선을 정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진짜 어려운 것은 평범한 관계이다. 적절한 거리 조절에 실패하게 되면 무례하고 무심한 사람이 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상대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서로를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

 

 

 

로봇은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로봇이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을 베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친절은 로봇이 모방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형식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문 열어주기..상대방이 말할 때 마주보며 눈을 천천히 깜박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활짝 웃기, 침착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기 등. 친절한 로봇을 만들려는 사람은 친절의 이런 형식적인 요소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요소들을 우리는에티켓또는매너라고 부르고, 이미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가르치고 있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부모들은 그들에게 매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같은 건 좀처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춘기만 되어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의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하거나 허락없이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부모들은 또 당연히 뭐가 그리 까탈스럽냐고, 부모가 한 집에 사는 자식 방에 들어가는 게 뭐 굳이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냐고 되묻기 마련이고 말이다.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에 한 번이라도 타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타인들과의 비좁은 거리. 그 시간대에는 그 누구도 적절한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할 수 없다. 그리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출퇴근하는 현대인들은 그걸 또 당연히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불편으로 여긴다.

 

봉원이네 집에서 하숙하는 과학자 친구들은 아침부터 화장실 전쟁을 치른다. 1층에 달랑 하나 있는 화장실을 분식집 가족이랑 집주인네 딸하고 아들 등... 엄청난 인원이 함께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봉투가 한밤중에 콘센트 옆에서 드륵소리를 내면서 충전을 하는 바람에 소음 때문에 잠을 설친 주인집 할머니는 아침부터 봉원이네 집에 처들어 와서는 소란을 피운다. 봉투는 별 생각없이 봉원을 따라간 분식집 가게에서 냉장고 전원을 빼고 충전을 했다가, 음식물을 죄다 상하게 만드는 대형사고를 쳐서 나선녀 아줌마에게 된통 혼이 난다. 화가 나서 떨어지라고 소리치는 아줌마의 모습에 놀란 봉투는 사람들 간에 서로의 적절한 거리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마다 가까워지기 위해선, 지켜야 하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윤태호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에티켓'은 일종의 생존 기술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사물화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해서건 강요해서건. 그래서 때로 우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나 보다.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만큼 약속도 많아졌다. 약속을 지킨다는 건 에티켓을 지키는 일이고 에티켓을 지킨다는 건 나에게도 그렇게 해달라는 요청이다.
우리가 서로 허용한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를 보호하는 가장 첫 번째 조건.
가까워지고 싶다면.. 그 거리를 유지해주세요.

 

 

 

1부 오리진 만화가 그렇게 마무리되면서 연결되는 2부 오리진 교양에서는 에티켓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에티켓과 예의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에티켓의 역사와 문화상대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거리들로 에티켓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조절하는 현상처럼, 일상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문화가 마치 제2의 본능처럼 작동하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 적인 예로 텅 빈 전철을 탔을 때 사람들이 팔걸이가 있는 양쪽 가장자리에 먼저 앉는 경향을 들 수 있겠다. 전철에 자리가 차는 순서를 보면, 정말 나도 그렇게 앉고 있었구나 싶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공간을 평등하게 나누어 가지면서 각자 자기 위치를 방어적으로 고수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소한 일상 속 순간에서 조차 말이다.

 

에티켓은 '체면'과 관계가 깊은데, 체면 차리기는 매우 인간적이면서 사회적인 특성이라고 한다. 대부분 민망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에티켓운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마련이다. 이미 누군가 체면을 잃고, 그 결과 다른 사람까지 민망한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복구 의례 네 단계도 매우 흥미로웠다.

 

윤태호 작가의 '오리진' 시리즈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거나,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누구나 살면서 생각해보거나 고민해봤을 만한 부분들을 그저 일상 속 스케치로 쓱쓱 그려 보여줄 뿐이다. 게다가 테마부터 무려 '교양 만화'이다. 뻔하거나 지루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이 짧은 만화 속에 감정을 건드리는 대목들이 매번 존재한다. 5~6세 정도의 지능을 가진 AI 로봇 '봉투'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게 되고, 이해하고, 배우게 되는 그 과정들이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뭔가를 두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부분들이지만, 그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혹은 사는 게 너무 바쁘고 고되어서 잊고 있었던 그것들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그 순간들이 참 감동적이었다.

 

전체 100권으로 기획된 '오리진' 시리즈는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을 탐구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1권 보온에 이어 2권은 에티켓 편이다. 전작에서 우리는 열을 지키는 '보온'이 생명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은 36.5도에서 1~2도만 높아지거나 낮아져도 생명이 위험해지는 존재이니, 외부 환경의 변화에 관계 없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온 AI 로봇봉투 21세기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열의 의미와 보온의 중요성을 깨닫고, 비활성화된 하나의 '생각' 중에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꼭 아이들을 위한 만화로 된 과학, 역사 동화 종류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어른인 내가 읽기에도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운 대목들이 여전히 많았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정말 전체 100권을 다 소장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내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꼭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리즈이다. 다음 시리즈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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