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박단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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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들에게 왜 열심히 일하느냐고 질문하면, 바캉스를 떠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바캉스는 프랑스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문화입니다. '일 중독'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였으면 하는 문화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어릴 때 레오 카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 <나쁜 피>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 일 것이다. 그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나에게 프랑스는 여행지에 대한 로망이었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자금이 여유가 있을 때는 시간이 없고,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때는 돈이 부족하지 않나. 유럽은 이삼일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계획을 세우다 좌절되고, 꿈만 꾸기를 반복하며 결국 현재까지 프랑스로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프랑스는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꿈의 여행지로 남아 있다. 그래서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그곳에 대한 이미지란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등의 아름다운 관광지와 와인, 마카롱 등의 근사한 음식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끔 뉴스를 통해 만나게 되는 테러 사건과 정치에 관련된 이슈들은 내가 알고 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그것이었으니, 언젠가 그곳에 갈 거라면 제대로 알고 가고 싶었다.

 

창비의  이만큼 가까운시리즈는 각국을 오랫동안 연구한 저명한 학자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다채로운 면모를 생생하게 소개하는 교양서이다.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프랑스는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사회, 역사, 지리, 정치·경제, 문화, 한불 관계 등 여섯 개의 주제를 통해 프랑스라는 나라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나처럼 여행지로서의 프랑스가 궁금한 이들에게도, 혼란스러운 프랑스 사회 자체를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책인 셈이다.

프랑스인에게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 한 편의 연극을 연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미각을 통해 몸과 마음을 새롭게 충전할 뿐 아니라 대화를 나누며 긴장을 풀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유대감을 만드는 과정이니까요. 프랑스인에게 식사란 오감을 충족하는 활동입니다.

 

프랑스는 나라 안에 다양한 소수 세력의 공존을 지향하는 다문화주의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고, 공화주의 아래에 하나의 나라를 지향하는 사회적 공화국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 문제로 파업을 하거나 시위를 하는 모습이 매우 일상적이며, 적극적인 사회 보장 제도를 지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또한 프랑스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근대 페미니즘의 출발점이라고도 이야기되는 프랑스 혁명을 떠올려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될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그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최근 테러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 총기 난사와 자살 폭탄 공격 등의 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가장 최근인 올해 4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순찰 중인 경찰관을 총으로 살해해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게다가 프랑스에서의 테러는 대부분 자국민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외부인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테러에 적극 개입하는 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과 68혁명 등 빛나는 성취는 물론, 현재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 선거와 정당 등 지금 정치 상황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이렇게 묵직한 주제들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인들의 특별한 바캉스 문화와 축구 사랑, 축제와 공연 이야기와 종교 문제와 박물관에 관한 정보까지 담고 있다. 무엇보다 프랑스의 음식 문화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한국사람들은 절대 하지 못하는 '느리게 먹기' '대화하면서 먹기'가 가장 큰 특징이었다. 오죽하면 그들은 길에서 아무렇게나 음식을 먹고 배를 채우는 것을 야만인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하겠는가. 그래서 프랑스의 거의 모든 식당에서는 저녁 시간 내내 한 테이블당 손님을 한 팀만 받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식당이 문을 여는 저녁 7시경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계속 대화를 나누며 문을 닫는 시간까지 있어도 전혀 눈치를 주지 않는 다는 거다. 음식을 먹는 것을 하루 일과 중에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고, 나아가 인생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로 여기는 그들의 가치관이 부럽기도 했다.

‘이만큼 가까운시리즈를 통해서 프랑스가 어떤 역사적·사회적 맥락에 놓여 있는지 이야기를 알게 되니, 오히려 멀리 있어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가벼운 가이드나 관광지 위주의 정보만 있는 여행서들 과는 달리, 이 책은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 진지하고도 흥미롭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 오늘의 프랑스가 궁금한 모든 이들을 만족시켜 줄만한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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