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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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편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는 말이로군요.” 다하라가 말했다.

“정의의 편?” 가모가 중얼거렸다.

…………..

“그 학생들도 사회를 혼란하게 만든 악인이에요.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니까요. 그런 놈들이야말로 위험인물이죠. 사실은 그런 놈들에게 벌을 내려야만 한다고요.”

“평화경찰은 진짜 나쁜 놈들은 체포하지 않잖아.”

정부는 평화 경찰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각 지역을 순회하며 사회에 위험이 될 만한 인물을 미리 색출해 공개처형을 한다. 매년 안전 지구를 선정해 평화경찰이 부임해오는데, 올해는 센다이 지역이다. 그들은 테러를 막기 위한 위험인물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연행해 잔인하게 고문한다. 마치 현대판 마녀사냥처럼 벌어지는 이 행위들에 대해 사람들은 그저 그들이 위험인물이어서 적발된 거라고, 보통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없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처형이 되는 사람들부터, 전혀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고발 받은 사람들, 별 의미 없이 연행되어 고문에 의해 자백을 하고 처형당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평화 경찰이라는 자들이 자신의 공권력을 행사해 참혹한 고문을 즐기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자, 몇몇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들어 있던 정의감이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실제로, 불의의 공권력에 대항해 그들과 맞서 싸우는 히어로가 등장한다.

위아래가 연결된 검은색 라이더 슈트를 입고 검은색 모자에, 수중안경과 비슷한 큼지막한 고글을 쓰는 남자. 골프공처럼 생긴 동그란 비밀 무기와 목검을 가지고,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나타난 남자. 우리의 블랙 히어로되시겠다. 경찰은 경찰 이외의 사람이 힘을 지니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그 힘이 언제 경찰이나 국가로 향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평화경찰이 공권력을 휘두르는 곳마다 '정의의 편'이 나타나 그들을 방해하고, 그러다 평화경찰들이 다치거나 죽는 일까지 발생하자 정부는 그를 잡기 위해 특별 수사관까지 파견하기에 이른다. 과연 '정의의 편'이라 불리는 수수께끼의 히어로는 무슨 목적으로 사람들을 돕는 걸까. 정말 정부의 불합리한 독재 정책에 맞서 정의를 지키기 위한 의도인 걸까. 흥미로운 것은 이사카 고타로의 히어로는 일반적인 히어로물, 그러니까 할리우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마음과 투철한 의식으로 무장한 영웅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반 이후까지는 정체를 알 수 없었던 히어로에 대해서 밝혀지는 후반부로 접어 들어야 실체를 접할 수 있는 우리의 영웅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당신이 그 어디서도 만나보지 못했던, 상상하지 못했던 히어로의 모습 일테니 말이다.

 

“다하라 씨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리 불만이 많든, 지금의 이 사회를 살아가야만 해. 룰을 지키며 올바르게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면 돼. 다만 어느 나라에 가든 이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지. 일본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도 있어. 약도 없고 에어컨도 없지. 말라리아 때문에 고민하는 나라도 있어. 이 나라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화성에 가서 살 생각이야?”

‘화성’이라는 단어가 너무 유치하게 들려, 다하라 히코이치의 마음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것인가, 아니면 화성에라도 가서 살 것인가. 희망이 없는 선택지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IT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개인의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추적당하는 이른바 '감시사회'를 살고 있다. 범죄 예방이라는 대의와 명분 하에 어느 곳이든지 CCTV가 설치되고, 개인의 일상은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에게 낱낱이 공개될 수 있다. 이는 국가라고 하는 권력이 마음만 먹는다면 개인의 모든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또한 모든 시민을 위험 요소나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내려놓고, 감시사회를 별다른 의심 없이 용인하면서 살고 있다. 감시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를 악용해 국가가 권력의 횡포를 부릴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걱정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래서 전부터 감시 사회를 소재로 한 책과 영화들은 기존에도 많이 있어왔다. 대표적으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많이 떠올리겠지만, 이사카 고타로는 조금 색채를 달리한다. 극단적이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고 할까. 독재 정치라는 시대를 겪어 왔던 국민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리얼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지금,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어느 순간 우리는 오싹해진다.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은 방식으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가상 현실 속의 공포가 현실의 그것과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진짜 무서워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게 바로 이사카 고타로의 매력이기도 하다.

극중 국가의 정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의 말에, 아무리 불만이 많더라도 우리는 지금의 이 사회를 살아가야만 하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면 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뭐 사실 맞는 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처럼,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곳을 떠나야 하는 게 용기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사카 고타로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상황에서 왜 떠나는 것이 최선이냐는 것이다. 하다 못해 목검이라도 들고 변화를 위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용기가 아니냔 말이다. 파란 망토를 두르고 하늘에서 나타나 악인을 차례로 통쾌하게 쓰러뜨리는 그런 멋진 히어로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블랙 라이더 슈트에 스쿠터를 타고 나타나 이상한 무기밖에 휘두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당신은 뭐라도 바꿀 수 있다. 무기력하게 가만히 앉아 있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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