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서 - 이민혜 그림 에세이
이민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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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절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가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무심코 받은 적이 있다. 일상적인 몇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곁에 있던 남자친구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물었다. 누군데 전화를 그렇게 받느냐고. 별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무뚝뚝한 말투와 신경질이 묻어난 대답, 짜증 섞인 표정까지... 나는 회사에서도, 친구들에게도, 연인에게도 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엄마에게만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왜 엄마는 이기적이고 틱틱거리기나 하는 딸을 아끼고, 챙기고, 사랑하는 걸까.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었다. 평상시에는 정말 사근사근한 말투와 상냥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누군가도, 자신의 엄마와 통화할 때만큼은 나랑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왜 우리의 엄마들은 자식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 걸까. 또 우리는 왜 매번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 모든 것이 다 허용되고 묵인되는 거라고 이기적으로 생각해왔던 걸까.

 

이민혜 작가의 그림 에세이를 보면서, 나는 새삼스레 엄마에 대해 생각해본다.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우리들의 엄마 이야기가 매 페이지마다 내 마음을 쿡쿡 찔러 댄다. 유쾌하고 시니컬한 모습으로 그려진 일러스트들이지만, 함께 있는 글들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은 엄마를 잊어 버리고 사는 당신에게 건네는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는 걸까.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가 아닐까.라고. 왜냐하면 그 누구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자식을 통해서 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고, 내가 이렇게 옹알이를 하고,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보았겠구나. 하며 자신이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되면서 다시 한번 더 자식이 되어, 내 부모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부모들이 내가 속을 썩일 때마다 한숨처럼 내뱉던 그 말, "너도 너랑 똑같이 닮은 자식 새끼 낳아봐라. 그때는 내 마음 알 거다."라는 대사가 비로소 체감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당연하게'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 하는 존재가 엄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엄마의 입장을 알게 된 이후로는, 가족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어찌 보면 부당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는 그냥 처음부터 엄마인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이가 어디있겠는가. 처음부터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고, 손해보면서도 티내지 않고, 억울해도 참고, 힘들어도 아닌 척 하고.. 그렇게 정해져 태어나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가 얼마나 자식들을 힘들게 키웠는지.. 우리는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내가 속 썩이고 걱정끼치는 건 생각지 않고, 오로지 엄마가 하는 잔소리만 듣기 싫어 하면서, 나중에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되면 저런 소리 안 해야지하는 생각 따위는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엄마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이렇게 불면증에 시달리는 건, 아직도 여드름이 올라오고 배가 나오고 못생긴 건, 마음에 들었던 소개팅 남에게서 연락이 없는 건, 클라이언트의 지나친 언사에 매번 말 한마디 못 하는 건, 마감이 코앞인데 아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건!

", 엄마 때문이야!"

못난 딸의 분노는 왜 늘 엉뚱한 방향으로만 향했을까.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내가 뱃속에 있을 때의 태동이 어땠는지를 기억하신다. 하도 요란하게 엄마 배를 발로 뻥뻥 차서 길을 걸어가다 깜짝 깜짝 놀라서 멈춰야 했다면서 말이다. 처음으로 젖을 떼려고 할 때 어떤 방법을 썼고, 그게 싫어서 아기였던 내가 어떤 얌체 같은 행동을 했었는지, 등에 엎고 시장에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북적대는 틈이 싫어서 사람들을 하도 꼬집어대서 미안해했다는 사연까지.. 엄마는 그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아직 생생하게 내가 아기였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계셨다. 매우 유순한 편이었던 동생과 달리, 나는 어딜 가도 맘에 드는 걸 사달라고 떼쓰며 보채는 고집쟁이였던 터라 엄마를 매우 힘들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엄마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번져있다. 이런 게 바로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인 것이다.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았지만, 절대 억울하지도 그 시절이 불행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이 모든 걸 생각하면서도 나는 오늘도 엄마에게 짜증섞인 말을 내뱉고 말았다. 대체 나는 언제 철이 든 듬직한 딸이 되는 걸까.

 

어느 일요일 아침, 이불을 널기 전에 물기를 털어내고 있었다. 힘껏 털 때마다 이불과 함께 나도 날아갈 것 같았다. 팔과 어깨가 뻐근해왔다. 남편이 문득 말했다.

 

"엄마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나는 대번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이토록 끝없이 반복되는 고된 집안일을 엄마는 어떻게 몇 십 년간이나 혼자 해왔단 말인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 청소해놓아도 바로 난장판이 되어 버리는 집,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하는 우리의 엄마들. 하지만 자식들, 남편을 포함해서 가족들은 엄마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의 엄마들도 평생 나를 그렇게 키워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든 그저 '당연한' 일이란 없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족들이 매번 따뜻한 밥에, 깨끗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엄마를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사는 게 급급한 우리에게 여전히 우리 곁에 엄마가 있다는 걸, 엄마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이젠 엄마 옆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딸이라서 더 서운했던 것들, 엄마라서 더 안타까운 것들, 그것들이 한데 섞여 원망이 되고 후회가 되었던 시간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세상의 모든 딸들과 모든 엄마들이라면 비슷한 상황들을 경험해왔을 것이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연애하느라 정신없다고, 사는 게 녹록치가 않아서, 결혼 후에는 남편과 아이를 챙기느라, 어쩌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제일 먼저 엄마라는 존재를 미뤄왔던 게 아닐까. 나부터 미안하고,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굉장히 뭉클하고 감동적이고,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그리고 있지만, 이민혜 작가의 그림들은 매우 기발하고, 유머스럽고, 예리하고 날카롭다. 가끔은 너무 적나라한 표현에 서글퍼지고, 또 가끔은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결혼 전 불평 많고 철없는 딸과 그런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일상과 딸의 결혼 후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끊임없이 만나는 딸과 엄마의 일상들은 이거 전부 내 얘기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감 또 공감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제 가끔은 뒤 돌아서서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쓸쓸해보이기도 하고, 또 가끔은 소녀같은 감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세월이라는 무게가 서글퍼지기도 한다. 

수십 년 전에도, 몇 년 전에도, 평일에도, 주말에도, 어제도, 오늘도.. 하루도 빠짐없이 가족들일 위해 밥을 짓는 엄마의 모습에서 이제는 미안한 감정도 든다. 우리들을 위해서 엄마의 청춘이 다 지나가버린 것 같아서.. 이제는 어른이 되고 누군가의 부모가 된 나에게 아직도 얼굴만 보면 밥 먹었냐고 챙기는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맙고 먹먹해서 말이다.

내일은 엄마에게 꼭 말해야겠다.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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