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매순간 삼인분의 삶을 살아내면서, 단조롭고 반복적인 엄마 생활은 종종 외로움을 불러왔다. 양육의 기쁨과 양육의 고통은 거의 같은 크기였고, 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라서 불행했다. 결혼이라는 가부장제 가족 제도에 편입되는 순간, 여자인 나는 계속 뭔가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올라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다행히도 남편은 육아와 집안일을 나몰라라 하지 않았고, 시부모님 역시 전혀 간섭하지 않으시고 나를 딸처럼 예뻐해주셨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런 나도 이런데 하물며, 독박 육아, 독박 가사에 고통받는 아내들의 속마음이란 어떨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속마음이 실제로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해도 그리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이 모든 걸 겪기 전인 결혼 전의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이해하기 어려웠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근 들어 따뜻한 밥과 된장국을 몇 번이나 먹었던가?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나면 딸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엄마 제비가 새끼 제비에게 음식을 계속 날라다가 입속에 넣어주는 것과 같았다. 자신은 늘 뒷전으로 미루고 제대로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생선구이는 일일이 뼈를 발라내야 하니 먹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먹곡 싶네. 현미밥이라도 천천히 씹어 먹고 싶어. 30분이라도 좋으니 혼자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어봤으면 좋겠다. 느긋하게 앉아 신문도 읽고 싶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풀고 싶어. 아이를 돌보느라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대충 머리를 감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게 천천히 머리도 감고, 미용실에 가서 커트도 하고 싶어. 갓 뽑은 뜨거운 커피도 마시고 싶은데 아이가 매달리면 위험하니까 안 되겠지.'

 

아이가 생긴 뒤로 나는 절대로 꿈꿀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사실 남편은 아주 쉽게 하고 있는 걸 볼때마다 억울하기도, 부럽기도, 분하기도 하다. 가끔은 남편도 똑같이 부모인데, 왜 나만 이 모든 걸 감수해야 하는지 싶어 화가 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오래 휘둘릴 시간 조차 엄마인 내게는 사치였다. 아이가 스스로 앞가림할 때까지 엄마는 혼자 있을 권리, 차분히 먹을 권리, 푹 잘 권리, 느리게 걸을 권리 같은 기본권을 몽땅 빼앗기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육아의 보람과 기쁨을 그 위안으로 삼기엔 그것과 맞바꿀 대가가 너무 크고 길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거나, 내 선택에 대해서 재고해볼 여지가 없을 만큼 일상이 정신없이 바쁘다는 건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이기도 하다. 그저 매 순간을 살아내기에 바빠서 우울증에 걸릴 시간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들의 모든 사연에 공감을 하진 않았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든든한 위로를 받았다는 느낌은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나보다 더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도 많다는 것만으로도 기운을 얻을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들을 겪엇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제목은 무시무시하다. 책장에 꽂아 놓기에는 어쩐지 꺼림직할 만큼. 혹시라도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이 본다면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괜히 민망할 것도 같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제목이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어 있다. '어쩌면 내 아내도 꾸는 꿈'이라는 책등을 바깥으로 보이게 놔둔다면, 저 무시무시한 제목은 감춰질테니 말이다. 그런데 '아내가 꾸는 꿈'이라는 제목은 단지 진짜 제목을 감추기 위한 임시방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의미심장하고, 슬프기가지 한 제목이긴 하다.

저자인 고바야시 미키는 이 책에서 워킹맘, 전업주부, 중년 여성 등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는 아내 14인을 취재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삶을 찬찬히 되짚으며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꿈이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비윤리적 희망사항이 아님을 설명하고, 독박 육아 및 독박 가사를 피할 수 없는 일·가정 양립의 현주소를 구석구석 조명한다. 또한 아내에게 생명을 위협받지 않기 위한 남편의 행동 지침을 제시하고, 행복의 기초가 되는 가정을 바로 세우기 위한 사회의 의식 변화,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어디가서 말도 못하고 속을 끓여햐 했던 수많은 주부들에게는 속 시원한 사이다와도 같은 책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이 휴무를 신청한 날은 고작 이틀이었다. 그의 업무를 방해한 적이 없었다. 업무에 지장을 주는 일은 전부 아내이자 엄마인 사토코가 짊어졌다. 고마워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남편은 "회사에서 아이 얘기는 하지 말라고 상사한테 혼났어"라며 앞으로는 절대로 아이 때문에 쉬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토코는 남편의 상사까지 얄미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성들의 삶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고스란히 우리 나라로 가져와도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유사한 상황들이 많다. 아마도 평생 아내, 엄마, 여자만 불리한 사회 구조 때문일 것이다. 독박 육아, 독박 가사에 고통받는 여성들도, 맞벌이를 하면서 육아까지 책임져야 하는 워킹맘의 경우에도 말이다. 남자도 부모라는 것을 꽤 많은 남편들이 잊어 버리곤 한다. 이 에피소드의 경우처럼 아이 일로 휴무를 신청하기 어려운 회사 분위기라서 너무 자주 휴무를 신청해서 해고라도 당하면 곤란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책임을 똑같이 일하는 여자에게만 미뤄서는 안 되지 않을까. 어차피 한 사람 한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내가 그 '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이라 문제이지만, 막상 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누군가는 사회 개혁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발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것이다

육아라는 시련을 겪으면서 애정이 살의로 변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에피소드들은 사실 너무도 평범하고 소소해서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매일 아침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아이들과의 고군분투 속에서 모른 척 도망치려는 남편들, 남편이 곁에 있었는데도 혼자 출산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상황들, 아내의 육아휴직을 당연하게 여기고 부추기는 사회의 인식과 편견, 가사와 육아 분담을 당연한 일이 아니라 서비스라고 여기는 남편의 의식 변화, 딱히 나쁜 점이 없는 남편이지만 가정에서 제대로 역할을 해주지 않아 아내가 점점 강해지게 만드는 그런 가정,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면 지옥의 문이 열리는 전업주부의 저주받은 일상까지... 저자가 인터뷰한 부부들의 삶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비슷한 고민과 상황에 처해 있었다.

삐걱거리는 부부 관계의 원인을 상피적인 성격 차이로 분석하는 여타의 책과는 전혀 다르게, 이 책에서는 권위주의 사회가 묵인하고 조장하는 아내의 희생을 면면이 살피며 문제의 근본 원인은 구시대적 성 역할 의식과 그에 따른 남녀 노동 환경의 격차임을 강조하고 있다. 매우 속시원하게도 말이다.

'육아휴직? 그럼 당신이 먹여 살릴 거야?'

'아이랑 놀기만 하고 좋겠네.'

'나만큼만 벌어 오면 집안일 할게'

당연히 육아는 아내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남편도, 억울한 마음으로 꿈과 커리어를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된 아내에게 종일 집에서 아이를 노니 좋겠다고 생각하는 남편도 있다. 거기서 더 이기적인 남편은 자신이 돈을 벌어오는 경제력을 과시하면서 아내를 무시하기도 한다. 아직 미혼인 사람들은 설마 결혼 생활이 그렇기만 하겠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대부분의 가정이 비슷한 모습이다. 남편이 얼마나 아내를 이해하고, 육아와 가정 일을 도와주고 하는 문제와 별개로, 사회가 만들어놓은 아내와 남편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기란 사실상 어려운 게 현실이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처럼 베이비 붐 세대 아내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은 '더 이상 남편 따위 필요 없다'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른다. 한때 황혼 이혼이 유행처럼 뉴스에 보도되었던 것처럼, 그녀들은 수십 년 동안 희생하고, 참고,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며 견뎌왔던 자신의 삶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단지 젊은 혈기나 한 순간 욱하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슬프다. 그렇게 40대와 50대를 보내고,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부부 관계는 섬뜩할 정도로 살벌해진다.

이 책에 실린 에피소드 중에 '어느 아내가 감행한 40년 만의 복수'는 전업주부였던 70세 아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와 마음 한 켠이 짠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작품의 후반부로 가면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의 현실과 이상을 보여주며 '남편이 살아갈 길'을 제시한다. 농담처럼 들리는 제목이지만, 그야말로 리얼한 현실적 제안인 셈이다.

가끔 생각한다. 엄마들은 왜 평생 좋은 음식 한번 마음껏 못 사드시고 살았을까. 사랑이 아니라면 기나긴 인생, 결혼 생활은 대체 어떻게 살아지는 걸까. 왜 엄마들에게 행복은 늘 충족 유예 상태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내일을 위해 오늘을 인내하는 삶, 자식을 위해 자신은 포기하는 삶이 너무도 당연했던 우리 엄마들의 세대는 더 이상 존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엄마들도 행복하고 싶다. 엄마들도 남이 차려준 따뜻한 밥을 먹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자격이 있다. 구시대적인 성 역할 의식과 노동 환경이 한 순간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변할 거라고 믿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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