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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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과 비교하면 다치바나는 나무랄 데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구청에 근무하고 어머니는 피아노 강사를 하고 있어 아무런 어려움도 없다.

그러나 '그런 비교는 누가 하는 걸까' 하고 기타는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어떻게 하면 불행하다는 건가. 어디에 선을 긋는다는 말인가.

십오 년 전에 여교사가 자신이 근무하고 있던 고등학교 건물 옆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유서도 있었고, 실연으로 괴로워하다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으로 처리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제자인 남학생 세 사람이 범인이었다고,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제보가 들어온다. 제자 세 사람이 여교사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에 학교로 숨어 들었고, 그것이 여교사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살인이라고 해도 내일이면 시효가 끝나는 시점이다. 공소시효가 스물네 시간 남은 시점에서 들어온 제보, 경찰들은 당시의 제자들을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을 차례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기타와 다쓰미, 다치바나는 공부에 관심이 없어 자주 수업을 빼먹고 카페 루팡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기말시험을 앞두고 시험 문제를 훔치겠다는 일명 루팡 작전을 세우기에 이른다. 이제 와서 시험 성적이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엄중하게 보관된 시험지를 훔쳐낸다는 계획 자체에 신이 난 그들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기에 이른다. 이들 세 악동과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는 삼억 엔 탈취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카페 루팡의 사장, 그리고 매일 밤 교내를 정찰하던 수상한 화학 선생 등 관계자들의 진술이 과거의 사건을 복기한다. 공소시효까지 앞으로 스물네 시간, 과연 범인은 검거될 수 있을까.

히다카 아유미의 행방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고, 수사에 특별하다고 할 진전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십오 년 전 사건이다. 어제 오늘 시체가 발견된 사건처럼 쓸 만한 정보가 척척 들어올 리도 없었다. 거리도, 사람도, 사는 방법까지 전부 변해버렸다. 페인트가 몇 겹이나 새로 발린 거리는 지금 현재의 색깔만 보여줄 뿐, 과거의 오래된 자국은 보이지도 않는다. 과거란, 대체적으로 고생으로 겹겹이 포개졌기에, 아무리 벗겨내고 벗겨내도 십오 년 전의 색깔이 뭐였는지, 사람도, 거리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 외에, 그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와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가이다. 절제된 문구와 정확한 어조는 이야기와 인물들을 페이지마다 빈틈없이 채운다. 꽤 많은 분량의 페이지들이 속도감을 잃지 않고 넘어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실제'같은 사람들이 '실제'같은 곤경에 빠져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생생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매번 그의 작품에서는 형사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는 범죄라는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환경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64>에서 경찰 내부의 조직과 언론과 경찰간의 관계를 세밀하게 그려내는 방식도 마찬가지였고, <클라이머즈 하이>에서 신문사에서 펼쳐지는 그 생생한 전쟁의 한 복판에 함께 앉아서 그들과 그 시간을 고스란히 공유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분위기를 그려냈던 것도 그랬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근속기간 12년의 베테랑 기자였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작품에서 빛나는 수많은 정보와 치밀한 구성, 탄탄한 문장들이 고스란히 그의 이력을 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작품 <루팡의 소식>을 계기로 요코야마 히데오는 신문 기자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이 쓴 전설의 데뷔작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존 작품들에 비해 풋풋한 청춘 소설같은 분위기가 색다른 느낌도 들었지만, 데뷔작인데도 불구하고 탄탄한 스토리와 복선, 긴장감 넘치는 구성, 군더더기 없는 문장, 인간적이고도 생생한 캐릭터의 힘은 여전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공소시효 하루 전이라는 긴박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마지막 즈음에 이르면 묵직한 감동마저 안겨 주어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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