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
루스 호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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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두아의 경우 로라가 이 집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쟁반보 때문이었다. 앤서니는 면접을 보면서 그녀에게 차를 내줬다. 그는 정원이 보이는 방으로 쟁반을 가져왔다. 덮개를 씌운 찻주전자, 우유 주전자, 설탈 그릇과 집게, 컵과 받침, 은제 티스푼, 차 거름망과 받침. 쟁반보를 깐 쟁반 위에 그 모든 것이 놓여 있었다. 쟁반보는 새하얗고 가장자리에 레이스가 달린 리넨이었다. 쟁반보가 방점을 찍었다. 파두아는 쟁반보까지 포함해서 이 모든 것들이 일상인 곳이었다. 그리고 퍼듀 선생은 정확히 로라가 꿈꿔왔던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앤서니는 사랑하는 연인이 세상을 떠난 지 사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를 잊지 않는다. 약혼녀가 세상을 떠난 날 그녀가 선물했던 작은 메달리온을 잃어버리고는, 이후로 사람들이 잃어버린 물건들을 주워 서재에 보관하기 시작한다. 언젠가는 물건의 주인을 찾아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의 서재에는 선반과 서랍마다 그가 사십 년 동안 모아온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했고, 각각의 물건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물건을 발견한 날짜와 시간, 장소를 상세히 적고 어떤 것인지 기록해 둔 것이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던 로라는 유산과 함께 아이를 갖고자 하는 집착과 남편과의 불화로 수년을 불행하게 보냈고, 결국 남편이 바람을 피움으로써 결혼 생활을 정리한다. 불만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망감에 의사에게 우울증 약을 처방 받기 위해 병원에 들어갔다가 대기실에서 잡지 광고를 발견한다. 남성 작가의 가정부 겸 개인 비서를 구한다는 광고에 지원한 로라는 앤서니를 만나게 되고, 그의 집에서 비서로 일을 하며 그와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예감한 앤서니는 비서인 로라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집과 장미 정원, 전 재산을 물려준다. 단 그의 유언에는 조건이 있었으니, 자신이 그 동안 서재에 모아둔 수많은 분실물들을 잘 맡아서 주인을 찾아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물건들은 별 가치가 없고 돌려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린 걸 되찾아줘서 행복하게 해주거나, 그의 부서진 심장이라도 고쳐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이다. 앤서니가 꽤 유명한 작가였던 탓에 로라는 동네에서 화제의 인물이 된다. 무뚝뚝한 가정부에게 앤서니가 모든 유산을 물려준 것이 수상했을 테니 말이다.

"로라, 내 친애하는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영리하고 완벽하게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로라. 넌 대단히 크고 아름다운 집과 보물들과 섹시한 정원사까지 한꺼번에 물려받았어. 앤서니는 널 딸처럼 사랑했고 자신에게 귀중한 모든 것을 너한테 줄 만큼 믿었어. 그런데 좋아서 춤을 추는 대신에 넌 여기 앉아 징징거리고 있지. 그는 널 믿었어. 나도 항상 너를 믿고. 네가 숨는 상대는 선샤인만이 아니야. 넌 모든 것으로부터 숨고 있어. 그리고 이제는 숨는 걸 그만두고 인생의 엉덩이를 걷어찰 때가 됐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지옥으로나 가라고 해."

이야기는 현재의 로라와 40년 전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유니스의 사연이 교차로 진행된다. 그리고 앤서니의 서재에 있는 분실물들 각각이 품고 있는 사연들이 액자 소설처럼 중간중간 등장한다. 로라는 어마어마한 분실물들을 다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감이 안 잡히고 부답스럽기만 하다. 그런 그녀의 곁에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녀 선샤인과 잘생긴 정원사 프레디가 합세해 잃어버린 물건들을 위한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꼬리표가 달려 있는 분실물들을 주인에게 찾아주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처음 단 몇 페이지 만에 그냥 훅 빠져 버렸을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설레고 뭉클한 것들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읽는 내내 책 속에 등장하는 도넛과 밀크티가 먹고 싶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심플한 플롯이지만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이야기들이 너무도 따뜻하고 유쾌해서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초반 설정부터 굉장히 동화스러운 인물들과 배경이 등장하는데, 이들 각각의 사연들이 굉장히 현실적이고 공감적인 부분이 많아서 단순하지 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언젠가 지하철 유실물 센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데, 물건에 담긴 한 사람의 고유한 추억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루스 호건의 이 소설처럼 잃어버린 물건에 얽힌 사연들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이어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고, 그 속에 깃든 추억을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자신이 반평생 동안 서재에 모아둔 수많은 분실물들의 주인을 찾아 달라는 유언, 이라는 설정 자체부터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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