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소원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유동익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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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는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아무도 안 올 거야.

편지를 침대 옆에 내려놓고 등을 대고 누웠다.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슬펐다. 외로움은 나에게 속한 거야, 내 가시처럼.

혼자 사는 고슴도치는 외롭다. 그의 집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누군가 지나가다 문을 두드리더라도 고슴도치가 문을 열까 말까 너무 오래 망설이는 바람에 그 누군가는 다시 가던 길을 가 버리곤 했다. 이제껏 그 누구도 초대해 본 적이 없었던 고슴도치는 어느 날, 밖을 내다 보고 앉아 있다가 생각한다. 누군가를 한번 초대해볼까?

보고 싶은 동물들에게, 모두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안 와도 괜찮아.

고슴도치는 편지를 써놓고는 계속 고민한다. 편지는 안 보낼 거야. 지금은 아니야.

아마 다들 못 온다고 할 거야.

내일 모두 올 거야. 모두 다 같이.

스스로에게 자신은 정말 외롭지 않다고 거울을 보며 말을 건네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슴도치는 외롭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한 발 다가가기가 너무도 두렵고, 어렵기만 하다.

고슴도치는 여전히 침대 및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여기가 제일 안전해, 외롭지만 안전해.

여기선 나 때문에 불편할 일도 거의 없어.

나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고슴도치처럼 그랬던 것 같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반이 달라지니,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또 마음 맞는 친구를 찾아야 되는 상황이 매번 부담스러웠으니 말이다. 단짝 친구랑 학년이 바뀌고 나서도 서로 같은 반이 되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 나는 매번 새 학년에 올라갈 때마다 걱정에 휩싸이곤 했다. 그래서 새로운 학년의 새로운 반에서 첫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모르는 친구들만 가득한 교실에서 내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펼쳐놓고, 아무도 다가오지마! 라는 표정을 한 채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겉으로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책을 읽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한 해를 또 재미있게 보내려면 마음 맞는 친구 한 명은 최소한 필요한데, 이번에는 또 어떤 친구를 찾아야 하나 복잡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친한 친구가 생기고 나면, 그 친구가 나에 대한 첫인상을 꼭 이렇게 평가하곤 했다. 말도 걸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어서 다가갈 수가 없었다고 말이다. 어린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아마도 첫날 낯선 교실에서 다들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텐데. 그러니 그렇게 혼자 강한 척, 관심 없는 척 안 해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고슴도치의 소원>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줄곧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먼저 다가가는 것이 두려워 가시를 세우고 있었던 나를, 사실은 외롭고 싶지 않았지만 안 그런 척 했던 나를, 실제로 행동하는 것보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들이 더 많았던 나를 말이다. 뾰족뾰족 가시 때문에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동물로 상징되는 고슴도치의 딜레마가 너무도 천연덕스럽고, 진지하게 그려지고 있는 이 작품은 동화라고 하기엔 너무도 공감할 부분이 많아서 그냥 짧은 소설처럼 읽힌다.

 

고슴도치는 숲에 사는 동물들을 초대하고 싶지만, 편지를 써놓고 보내지 못한 채 매일 같이 상상만 한다. 달팽이와 거북이, 장수하늘소, 코뿔소, 곰과 코끼리, 기린, 말벌 등등... 고슴도치는 친구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오고, 파티를 하는 모습을 그저 머릿속으로만 그려본다. 그리고 친구들은 고슴도치에게 말한다.

넌 정말 재미없어! 우리 그만 가자.

초대를 받고 왔어. 그런데 우리는 네가 무서워.

고슴도치는 고민한다. 나는 이상해. 겁을 주고, 외롭고, 자신감도 없어. 내겐 가시만 있어. 그리고 누군가 나를 찾아와 주길 원하면서 또 누군가 오는 걸 원하지 않아.............

가끔은 혼자이고 싶지만, 또 가끔은 절대 혼자이고 싶지 않은 게 대부분일 것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걸 우정이든 사랑이든 어떤 형태로든 유지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너무도 피곤한 일인 것이 사실이니까. 그래서 먼저 다가가고 싶지는 않지만, 누군가 내게 다가와 손 내밀어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혹시 내가 하는 행동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다들 고슴도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나도 그랬어. 라고. 그래서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은 기분도 들고, 안쓰러워 보듬어 주고 싶은 기분도 들고, 다들 그런 거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질 것이다. 고슴도치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겪어 봤을 법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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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7-02-23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언가 마음 한켠의 외로움과 컴플렉스를 건드리고 공감하게 되는 책이네요, 덕분에 일단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좋은 서평 읽고 갑니다.

피오나 2017-02-23 10:13   좋아요 1 | URL
이 책이 딱 그렇더라고요. 누구나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있는 감정을 건드려주는 책이었어요. 캐모마일님도 만나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