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김정범 지음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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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위로를 받게 되는 순간이 있다. 멜로디, 곡의 분위기, 노랫말, 그리고 그 음악을 들었을 당시의 상황에 대한 기억이 더해져 타인의 언어를 내 것처럼 느끼고 나누는 공감의 과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 시험에 떨어졌을 때, 혹은 사랑에 빠졌을 때, 친구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을 때 음악을 찾아 듣는다. 음악은 세상 저 밑바닥에 떨어진 듯한 절망을 위로해주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기쁨은 그 배가 되도록 더해주니 말이다.

팝재즈밴드푸딩’, 세계적인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화제를 낳은푸디토리움의 뮤지션이자 작곡가, 그리고 <롤러코스터> <허삼관> 등 다수의 영화음악을 만든 영화음악감독이자 대학교수인 퓨지션 김정범이 일상 속의 음악들을 하나씩 소개해준다. 이 글들은 마치 조용한 한밤에 이불을 뒤집고 누워서 뒹굴거리면서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그렇게 나를 설레이게 만들었다. 나도 한때는 음악을 기어코 찾아서 듣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시절에서 너무 멀어져 버렸지만.

이 책에 소개된 음악들은 무려 100곡에 이른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에서 특정 음악을 찾아 들을 수도 있도록 곡명들이 소개되어 있다. 계절에 따라서, 사운드트랙만 골라서,  위로받고 싶은 날을 위해, 명상과 사색의 순간을 함께할 수도 있고, 재즈와 헤비메탈, 발라드와 얼터너티브록 등 장르에 따라서, 피아노, 바이올린, 베이스 등 악기에 따라서 골라볼 수도 있고 재즈 오케스트라, 현악 사중주, 듀오 등 키워드로 찾아 볼수도 있고, 김정범이 작업한 음반과 그가 만났던 뮤지션, 그리고 그의 꿈이 시작된 계기를 만들어준 음악들도 골라 볼 수 있다.

나는 요즘 영화 '라라랜드' OST를 틈이 날 때마다 듣고 있다. 물론 거의 24시간을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기에, 제대로 시간을 내긴 어렵지만, 아이를 할머니에 맡겨두고 잠깐 외출할 때나, 아이가 잠이 들었을 때 등 잠깐 시간이 되면 항상 내 귀엔 이 음악이 흐르고 있다. 그렇게 음악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아드레날린이 막 솟구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겨우 음악을 들었을 뿐인데도 그저 벅찬 감정이 떠오르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영화의 장면들이 주었던 그 어떤 것이 내 안의 뭔가를 건드렸고, 그걸 상기시켜주는 도구가 바로 그 음악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처럼 한 트랙 한 트랙 넘어갈 때마다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가 어마어마했다고 김정범이 추억하는 음반은 러시아 클래식의 미래라고 불리는 작곡가 블라디미르 마르티노프의 것이었다. 그는 기본에 충실하고 정교하며, 뛰어난 멜로디와 감성으로 풀어져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그 음악에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음악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감동이 어떤 건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요즘 내가 그렇게 음악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김정범은 이번에 이 책의 출간과 함께 싱글 싱글 [AVEC]를 세상에 내놓았다. ‘푸디토리움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한 것은 무려 4년 만이라고 한다. 궁금해서 음악을 찾아서 들어 보았다. 일렉트로닉에 감성이 더해졌다고 하는데, 굉장히 생소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상반된 느낌이 드는 묘한 느낌이었다. 분명 색다른 사운드인데도 계속 듣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고 할까. 이 음악을 들으면서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를 읽고 있자니, 오래 전의 기억들이 솟아나기도 하고, 추억 속에 잠겨 어떤 음악을 흥얼거리게 하기도 하며 자꾸 나를 그 어떤 시간 속으로 데려다준다는 느낌이었다. , 음악이라는 것이 이런 힘이 있었다는 걸 그동안 내가 잊고 살았구나. 싶어서 안타까우면서도 새삼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이 책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부산일보에 매주 기고한 칼럼들을 선별해서 모은 것이다. 음반이라는 주제로 쓰는 일주일의 이야기는 그에게 지난 시간을 담은 일기장과도 같다고 한다. 그는 삶과 음악이 만나는 '운명적 순간'에 집중하고, 그 경험을 나누고 싶었기에, 음악의 전문적인 용어들을 일부러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그저 일상을 그리고 있는 에세이처럼 편하게 읽힌다. 굳이 여기에 수록된 음악들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음악을 들을 시간도 없고, 음반을 찾아볼 마음도 없을 정도로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그 어떤 음악이든 듣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시종일관 우리에게 "같이 들어요" 라고 속삭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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