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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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동화를 읽고 있는 동안은 뭔가 보호받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던 것 같다.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불만이 생기거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거나,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할 때, 나는 안데르센의 동화들을 은신처 삼아 잠시 동안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에게 잘 골라 펼쳐 든 한 권의 책은 방패이자 방화벽이며, 투명인간의 망토였던 셈이다. 어릴 때부터 북적북적 시끄러운 집안이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독서의 매력을 알아차려버린 것도 있지만, 나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던 든든한 친구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눈의 여왕, 인어 공주, 성냥팔이 소녀, 미운 아기 오리 등등.. 안데르센의 수많은 동화들은 지금도 여전히, 내가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르곤 하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안데르센 동화전집이 가치가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가장 많은 작품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는 거 아닐까 싶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었던 안데르센의 전 작품은 156편이었는데, 이번에 12편이 더 추가되어 최초로 168편이 수록되어 있는 전집이니 말이다. 게다가 클래식 일러스트가 무려 64장이나 함께 담겨 있어, 읽는 내내 더할 나위 없이 향수를 느끼게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처음 만났던 동화의 판본에는 언제나 이런 일러스트가 함께 수록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안데르센의 동화는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 다시 읽어도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은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단순하지만 유치하지 않고,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주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어른들의 삶도 비춰주고, 굉장히 판타지처럼 읽히지만 반대로 매우 현실적이기도 하니 말이다. 바로 그 보편성과 아름다움이 안데르센의 수많은 작품들이 아직도 여전히 각색되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이유이기도 할테고 말이다.

 

 

 

안데르센의 동화들은 너무도 유명해서 내가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통해서 하나씩 읽어나가다 보니 많이 알려진 작품들 외에 너무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동화'이기 때문에 웬만한 작가들의 '단편'보다도 더 짧은 이야기들인데, 어쩌면 그렇게 수많은 삶의 진리들과 보석같은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는지 말이다.

 

"이 세상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또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는 거야. 이제 난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어. 사람들은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걸 겪어 봐야 해. 그러면 결국 우리는 모두 탑지기처럼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게 된다구."

-'탑지기 올레' 중에서

 

"진딧물이라구! 사물을 올바르게 불러야지. 일상 생활에서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동화에서라도 올바르게 불러야 하는 법이야. " 동화 할머니가 큰 소리로 말했다.

 

-'녹색 옷을 입은 작은 병사들' 중에서

 

사람들은 말과 의미가 다른 말을 종종 한다. 사람들은 말은 많이 해도 의미가 별로 없는 말들을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다. 중상모략을 하는 말들이 많으며 해가 되지 않는 말들도 많다. 사람들의 말 속에는 진실과 유머가 숨어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중에서

 

안데르센의 <동화집>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의 경험에서 나온 거라고 한다. 그가 보고 행한 모든 것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영감을 준 것이다. 안데르센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쓴 이야기들은 나의 생각 속에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개울물과 한 줄기 햇살과 한 방울의 말루트 액만 있으면 꽃을 피우는 씨앗과 같다." 그는 이야기에 현실적인 측변을 살짝 가미하고 초자연적인 것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는 삶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고, 끔찍할 수도 행복할 수도 있으며, 순조로울 수도 잔인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의 이야기는 동화지만 모두 행복하게 끝나지 않는다.

 

 

 

무려 1280페이지의 두툼한 페이지이지만, 그 속에 수록된 168편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10분이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짧다. 하루에 십분만 시간을 내어보자. 그리고 아무렇게나 페이지를 펼쳐서 그 이야기를 읽어보자. 어쩌면 그 이야기로 인해 당신의 하루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인어 공주, 눈의 여왕의 지배를 받아 심장이 얼음덩이가 된 소년 카이와 그를 찾아 세상 끝 라플란드로 떠난 소녀 게르다, 팔지 못한 성냥에 불을 밝히며 환상 속에서 잠들어 가는 소녀들이 당신이 잊고 있던 그 무언가를 깨닫게 해 줄 지도 모르니 말이다.

 

우리의 부모가 읽었고,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읽고 있으며, 우리의 자녀들이 또 읽을 수밖에 없는 안데르센의 동화들은 동물이나 식물, 돌들이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움직일 뿐만 아니라 장난감이 생명을 가지고 영혼이나 요정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내가 살아온 인생사가 바로 내 작품에 대한 최상의 주석이 될 것이다.” 라고 말했던 안데르센의 어린 시절과 인생이 불행과 절망으로 얼룩져있었기에, 그가 작가로서 성공적으로 데뷔해 창작한 수많은 작품들 속에 아름다움과 더불어 처절한 슬픔도 함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배수아 작가가 안데르센의 동화들은 '내 어린 시절의 한 페이지를 완성해주었다'고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누구에게든 그렇지 않았을까. 나에게도 안데르센의 동화들은 그만큼 특별하고 소중한 이야기들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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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1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어린시절 읽은 동화를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책 살 돈이 많으면 그림형제 동화 전집, 안데르센 동화 전집을 사고 싶어요. ^^

피오나 2017-01-12 19:16   좋아요 0 | URL
그림형제, 안데르센의 동화들은 아이들이 보기에도, 어른이 읽기에도 좋은 책이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