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일의 시간 - 삶의 끝자락에서 전하는 인생수업
KBS 블루베일의 시간 제작팀 지음, 윤이경 엮음 / 북폴리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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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KBS 다큐멘터리 '블루베일의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은 아주 우연히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봤던 걸로 기억한다.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곁에서 그들의 죽음을 지켜봐 주는 수녀들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내 주변 누구도 아직 죽음을 맞이한 적이 없었던 터라, 실제 임종의 순간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에서는 실제 임종의 순간까지 고스란히 담아 내어 무심코 티비를 보던 나를 숙연하게 만들어 주었다. 50년 전 한국에 진출해 국내 최초이자 동양 최초 의 호스피스 시설인 갈바리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은 평생을 그렇게 생과 사의 순간에서 헌신하며 살아왔다.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이들의 마지막 심정,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함께 하면서 겪게 되는 수도자들의 깨달음이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엄마, 엄마, 방금 전에도 숨을 쉬었는데... 왜 숨을 안 쉬어...."

중년의 남자가 어린아이처럼 울먹였다. 그는 죽은 어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태어나고, 자라고, 아이를 낳고, 늙어 가고, 마침내 빈껍데기로 죽는 그 모든 시간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생의 비밀이 한꺼번에 그의 머리 위로 쿵 내려앉아 납작 깔린 모습이다. 남자 뒤에 있던 딸이 허둥지둥 앞으로 나와 어미의 얼굴을 감쌌다.

"아직도 따듯한데... 이렇게 따뜻한데...."

임종을 지키는 가족들의 황망함과 어떻게든 죽음을 붙들고 싶어 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그 가족들 뒤에 지난밤 할머니의 병실에서 오랫동안 기도했던 막달레나 수녀가 서 있다. 그녀는 조용히 이 모든 것을 바라본다. '그들의 삶의 뿌리가 뚝 끊어지는 것을. 무릎이 꺾이고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것을.' 말이다. 아직 내가 겪어보지 못한 죽음의 생생한 현장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지난 2013 12월 방송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갈바리 의원의 100일간의 기록, <KBS다큐멘터리 블루베일의 시간>이 이번에 책으로 출간되었다. 강릉 호스피스 병원 갈바리 의원 100일간의 기록은 영상에서 미쳐 다 보여지지 않는 모습까지 그려져 있어 다큐멘터리를 봤던 이들에게도, 보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되어 줄 것 같다.

몸이 죽어 가는 것을 인간인 우리가 막을 도리는 없다. 그저 닥친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수밖에 말이다. 죽어가는 이는 세상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매 순간 느낀다. 죽음을 앞두고 남은 나날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남은 이들에게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누구나 단 한 번뿐인 삶, 죽음 또한 처음 겪는 것이니 말이다.

“갈바리에서 한 달 넘게 지낼 때사랑한다, 고맙다교육을 많이 받았어요. 그 말을 진작 했더라면……. 임종이 가까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평소에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많이 하고 사는 게 좋구나, 엄마가 그런 귀한 깨달음을 주고 가신 것 같아요.”

누구나 곁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떠나버린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게 어리석은 인간이라 하지 않던가. 평소에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나와 가까운 이들에게 자주 말해주고, 마음을 표현하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언젠가는 찾아오게 마련인 죽음을 간접적으로 겪고 나면 내게 남은 나머지 시간이 소중해 질테니 말이다. 매 순간을 감사하고, 충분히 행복하게, 뒤돌아봐도 후회 없도록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끝에 다다라서야 시작부터 잘못됐구나. 여기게 되는 삶도 있겠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충만하게, 하고 싶은 대로 멋지게 살아온 삶도 있을 것이다. 살아 생전 어떤 삶을 살았던지 그에게 주어지는 죽음의 시간이란 사실 공평하게 찾아온다. 감동적이었던 다큐멘터리만큼이나 책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죽음을 겪고 나서야 삶을 배우지만, 그럼에도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선물처럼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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