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 세계사 - 교양으로 읽는 1만 년 성의 역사
난젠 & 피카드 지음, 남기철 옮김 / 오브제(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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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남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사악한 마법이 아닌 여성들의 자립심과 욕망이었다. 그래서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자립심 강하고 욕망 있는 여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악마 취급을 했다....종교재판관은 지나칠 정도로 여자들을 증오했으며, 여자들이 불쌍한 남자들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크라메르 수도사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욕정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여자를 불완전한 동물이라고 판단하는 건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p.163~164

 

수메르인들은 관음증 증세가 심했고,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광란의 사도마조히즘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이는 기원전 600년으로, <그레이의 그림자>가 출간되기 2,600년 전의 일이다. 고대 중국의 의사들은 여성들에게 애널 섹스를 치료법으로 추천했고, 중세의 수도사들은 딜도를 즐겨 사용했다. 이 책은 인류가 역사에 남긴 수많은 유물과 문헌, 사건, 사례를 보여주면서 1만 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며 지속되어 온 인류의 성 문화를 심도 있게 조망하는 책이다.  '섹스'를 통해 지난 1만 년 인류 역사를 되짚어 본다고 하니, 아마도 가장 과감하고, 발칙한 세계사 연대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호모사피엔스는 1만 년 전부터 섹스에 대해 광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그들은 동굴 벽에 포르노그래피를 그렸고, 파피루스에 음담패설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은 그렇게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되어 온 인류의 섹스 문화를 선명하게 복원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성의 영역이 어떻게 오늘날의 인류문화를 만들어냈는지를 알려주고 있어, 인문학서로서도 흥미로운 책이었다.

라캉에 의하면, 너무 적나라하고 욕정을 불러일으키며 불쾌감을 주는 쿠르베의 그림을 보면 얼굴이 달아오르는바, 이는 자기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 그림 속 나체 여인의 배가 약간 부른 모습에서 그녀가 예비 엄마임을 추측할 수 있다. 본인의 출생에 관한 기억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정신분석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을 낳은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 역시 억압되는 게 보통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누구에게나 사각지대로 남는다.   p.284~285

 

남녀가 몸을 밀착해 서로 끌어안은 모습이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는 <아인 사크리 연인상>은 남녀의 성교 모습을 표현한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으로, 1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 고대 이집트의 피임 처방전도 파피루스에 쓰인 것으로 발견되었고, 그들이 사용했던 고품격 최음제인 맨드레이크는 수 천 년 동안 가장 많이 이용된 최음제이기도 했다. 인류 최초의 포르노 서적인 투린 파피루스는 외설이나 풍자 문학이었는지 또는 섹스 기술을 가르쳐주는 지침서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18세기에 살았던 인류 최고의 플레이보이 카사노바는 정열적인 페미니스트였고, 19세기에 살았던 타이어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는 아내 몰래 부엌에서 실험하다가 우연히 콘돔을 발명하기도 했다. 점잖고 교양 있던 영국의 산부의과 의사 그랜빌은 1833년 히스테리 치료를 위해 바이브레이터를 개발했고, 여성의 음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프랑스 화가 쿠르베의 1866년 작품은 자크 라캉 정신분석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1만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 곳곳에 깊이 숨겨져 있던 성 담론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인물들이 보여주는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저자는 '성의 영역에서 진부한 사실과 전설이 오늘날의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우리의 성적 자유를 위해 싸웠는지 보여주며, 인류의 역사를 보다 과감하게, 정직하게, 유쾌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1만 년 인류 역사의 은밀하고도 치밀한 사랑과 치정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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