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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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사망한 사람의 경우에 타살을 의심하지 않더라도 그 적확한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부검할 때 자살자와 사망 원인이 불명했던 경우가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자살자를 왜 부검하는지 궁금해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타살의 의혹이 없는지 정확히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나는 월요일마다 죽은 자들을 만나러 간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나는 죽어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p.27

10월의 어느 밤, 생후 11개월 된 아이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응급실로 급히 후송된다. 아이는 여러 검사를 거친 뒤에 경막하출혈로 진단이 되었는데, 담당 의사는 의아해했다. 넘어져 땅에 머리를 부딪치거나 벽에 머리를 굉장히 세게 박을 경우 생기는 경막하출혈은 키가 작은 어린 아이에게는 자주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엄마는 눈 주위가 벌겋게 충혈된 채 말한다. 아까 오전에 보행기 없이 걷다가 넘어져서 울기는 했는데, 그것 말고는 어디에서 떨어지거나 하는 등의 사고는 없었다고. 머릿속 출혈을 제거하기 위해 응급 수술이 진행되었지만, 아이는 의식을 찾지 못하고 며칠 후 사망했다. 이제 의사가 사인 란에 '병사'라고 적으면 그대로 장례가 진행되고, 아이의 미심쩍은 사망 원인에 대해선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뭔가 석연치가 않았고, 사인을 '외인사'로 적었다. 절차에 따라 병원 행정실에서 경찰에 신고했고, 검사는 부검을 지시했다. 엄마와 아빠는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부검은 진행되었고 추락 또는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친 경우로 보인다는 소견으로 아이 엄마를 취조해 자백을 받아 낸다. 어쩔 수 없는 결혼과 원하지 않는 아이로 인해 벌어진 비극이었다.

법의학자들은 아이의 시신을 검사할 경우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죽은 아이가 끝내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무런 증거 없는 살인에서도, 완벽하게 사고사로 보이는 시신에서도, 전혀 동기를 짐작할 수 없는 사건에서도 법의학자들은 숨겨진 죽음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법의학자는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직업이다. 그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늘 고민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법의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죽음은 어떤 것인지 다양한 사례와 경험들을 소개하며, 모호하고 두렵기만 했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고 있다.

 

법의학자로서 특별히 죽음과 인연 깊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인연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아닌 삶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도인은 아니지만 죽음을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삶의 경건함과 소중함이 더욱더 절실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법의학자로서 우리 사회에 죽음을 숙고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그래야 우리들 삶이 행복해지겠다는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다.   p.166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각 분야 최고의 서울대 교수진들은 2017년 여름부터서가명강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다른 주제의 강의를 펼쳤으며, 매회 약 100여 명의 청중들은 명강의의 향연에 감동하고 열광했다. 이 배움의 현장을 책으로 옮긴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 그 첫 번째 작품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의 교수이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유성호 교수의 교양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듣는 인기 강의를 일반인들도 듣고 배울 수 있다는 것으로도 궁금증을 유발시키지만, 법의학자의 예리한 시선과 인문학적 통찰로 풀어낸 죽음 지침서라는 점에 있어서도 매력적인 책이다.

이 책은 법의학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에서 시작해서, 실제 사건에 대한 사례를 통해 법의학이 진실을 밝히게 되는 과정을 들려주고, 법의학의 전문 지식 등도 포함해 죽음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있다. 범죄를 포함한 죽음의 사회적 현상, 그리고 죽음의 역사적 맥락 및 인식의 변화, 현재 사회 병리학적 현상으로 여겨지는 사라 등의 문제와 의료 분쟁, 보험 사고 등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만나볼 수 있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가지의 죽음이 있다. 저자는 말한다.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되어야 한다고.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이 책을 읽고 보니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의미가 깊어질 거라고 나 역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 우리의 삶을 위해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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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02-07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엄청 기대됩니다. 요새 온라인 서점 핫한 책에 이 책 계속 올라오더라고요. 멋진 리뷰를 정성들인 사진과 함께 읽으니 더욱 독서욕구 자극받습니다.

피오나 2019-02-07 22:28   좋아요 0 | URL
ㅎㅎ 그죠? 저도 라인업을 보니 앞으로 이어질 서가명강 시리즈가 모두 궁금해지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