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좋은 날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이유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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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는 건 말이지, '형태'가 그 첫걸음이란다. 먼저 '형태'를 만들어 두고 그 안에 '마음'을 담는 거야."

'하지만 마음이 들어가지 않은 텅 빈 형태를 만든다니. 그냥 형식주의에 불과하잖아. 인간을 틀에 가두는 것 아닌가? 게다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따라해 봤자 창의력이라곤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잖아.' 일본의 전통적인 악습에 끼워 맞춰지는 기분이 들어서 반항심으로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p.49

저자인 모리시타 노리코는 대학생이던 스무 살 때 다도를 시작했다. 이 책은 일주일에 한 번씩, 그렇게 25년 동안 다도를 해왔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일본에서 이 책이 출간된 지 17년이 넘었고, 4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이자, 긴 시간 동안 사랑 받아 온 스테디셀러라고 한다. 국내에는 이번에 영화가 개봉되면서 그에 맞춰 소개가 되고 있는데, 일본의 인기 에세이스트 모리시타 노리코는 여전히 다도와 함께 차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고 하니 무려 40년 넘게 다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다도'라는 것이 젊은이들에게는 고리타분한 전통 같은 느낌이 강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다도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일까.

노리코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내 일생을 걸 만한 무언가를 찾고 싶다고 늘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지 못했다. 그러다 3학년이 되었고, 주위에서는 슬슬 취직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어느 날 엄마의 권유로 다도를 접하게 되는데, 너무 낡고 진부한 느낌이라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이대로 대학 생활이 끝나 버리기 전에 뭔가 구체적인 일을 하나라도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도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다도 수업은 생각보다 너무 복잡하고, 그저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취업도 연애도 마음처럼 되지 않고, 남들과 달리 저만 멈춰 있는 것 같아 불안한 그녀에게 다도의 많은 것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고, 이상한 과정투성이에, 손에 잡히지 않는 세계였다.

 

 

계속 여기에 있었고 어딘가에 갈 필요도 없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해야만 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부족한 것도 무엇 하나 없다.

나는 그저,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온전히 충족시키고 있었다.   p.254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다도의 단계에 대해서 배우면서 그건 왜 그렇게 하냐고 묻는 노리코에게 다케다 아주머니가 이유는 상관없다고 대답하던 순간이었다. 왜냐고 물으면 나도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의미 같은 건 몰라도 되니까 어쨌든 그렇게 하도록 하라는 말에 노리코는 당황스러워 한다. 다도라는 건 원래 그런 거라고, 이유 같은 건 상관없다는 그 말에 책을 읽던 나 역시 노리코 처럼 당황스러웠다. 다도 연습은 그렇게 나날이 되풀이되었고, 머리로 외우지 말고 그냥 한 번이라도 더 많이 연습하라는 말에 노리코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발끈한다. 거기다 아주 기본적인 순서도 소화하지 못했는데 매번 다른 도구에 맞춰서 데마에를 해야 했고, 도저히 기억할 수 있는 양이 아니어서 어느 날은 메모를 하려고 하다 야단을 맞기도 한다. 열심히 하려는데 대체 왜 혼이 나야 하는 건지 어리둥절했던 그녀는, 그러다 어느 날엔가 자신도 모르게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손이 움직이게 된 단계가 된 것이다. 그제야 그녀는 깨닫는다.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히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수많은 ''을 찍고, 그러한 점과 점이 가득 모여서 ''을 이루게 되는 거라고. 그렇게 그녀의 다도 수업은 조금씩 깨달음의 순간을 선물하기 시작한다.

'다도'라는 말을 찾아 보면 '찻잎 따기에서 달여 마시기까지 다사로써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 행위'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천천히, 성실하고, 꾸준하게 다도를 배우면서 성장해나가는 노리코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다도의 세계에서는,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긴장감도, 늘 마음속에 끌어안고 있는 고민도, 당장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도,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불안도,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공포심도 전부 사라진다. 그저, 그 순간에 집중해서 온전히 그 시간을 느끼고 즐기는 것이다. "오감을 사용해서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맛보렴. 그러면 알게 될 거야. 자유로워지는 길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단다." 라는 책 속 다케다 아주머니의 말이 오래 여운을 남겨 주었다.

 

'일일 시호일'.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뜻이다. 당신의 매일매일도 역시 좋은 날이다.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서 언떤 날이든 즐길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여기 현재에,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 보자. 조급해하지 말고 느긋하게, 그렇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자신을 만들어 간다면 후회하지 않을 만한 삶을 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지친 일상을 위로하는 따뜻한 차 한 잔처럼 힐링의 시간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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