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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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소중한 건 언제나 잃고 나서야 알아차린다는 걸. 옛날에 나는 빛났어.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달았지. 그래서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결국 중요한 말을 한마디도 전하지 못하고 아사쓰키를 잃었어. 후회했지. 후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또 후회하는 중이야. 왜 좀 더 열심히 편지를 찾지 않았을까. 어떤 지갑을 찾는지도 안 물어봤어. 처음부터 찾을 마음이 없었으니까."

그치지 않았다. 후회는 그칠 줄 몰랐다.    p.107

고등학생 사쿠라 신지는 초등학교 시절 축구부에서 활약할 때만 해도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자신의 미래는 계속 행복해지리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다리를 다쳐 달릴 수 없게 된 것을 시작으로, 회사를 경영하던 아버지가 터무니없는 사고를 쳐서 체포됐고, 회사는 도산했으며, 부모님은 이혼하게 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죽을상으로 아득바득 일하는 아버지와 막대한 빚뿐, 점심 값도 아껴 써야 하는 수준에다 대학은 이미 포기했지만, 고등학교만이라도 졸업하기 빠듯한 상황이었다. 학교에선 거의 말을 나누는 친구도 없었고, 매사 의욕 없이 구제불능 상태로 보내던 나날이었는데, 어느 날 독특한 아르바이트를 제안 받게 된다. 이름하여 '사신 아르바이트'로 미련이 남아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사자'의 소원을 들어주고 저 세상으로 보내주는 일이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아르바이트인데다, 시급은 단돈 300, 경우에 따라 조기 출근도 있고 잔업도 있지만, 시간 외 수당은 없으며 근무 스케줄 조정도 불가능. 대체 이런 아르바이트를 누가 할까 싶을 정도로 웬만한 악덕 사장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의 열악한 조건이다.  대신, 조건은 최악이지만 근무 기간을 채무녀 어떤 소원이든 딱 하나 이루어주는 '희망'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딱 헛소리처럼 느껴지는 수상한 아르바이트이긴 하다. 하지만 사쿠라는 이 말도 안 되는, 시급 300엔짜리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다.  사신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추호도 믿지 않았지만 말이다.

 

 

'사자'는 미련을 해소한다는 결실을 거두지는 못하지만 작은 행복을 찾아내 여행을 떠난다. 그것은 어디에도 남기지 못할 허망한 기억. 하지만 사신인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잊어버리기 전에 그들의 행복을 온 세상에 흩뿌린다면.... 분명 멋진 의미가 깃들지 않을까. 요 한동안 시간을 멈추고 많은 씨앗을 뿌려왔다.   p.317

미련을 품고 죽은 사람 중에서 드물게 '사자'가 탄생하고, 그 순간 세상은 가짜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그 세상에서는 죽음이 무효화되어 그들은 추가시간 동안 전처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한 달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무슨 미련이 남아서 '사자'로 선택된다면, 그 때문에 세상이 그가 죽지 않은 모습으로 재구성된다는 거다. 분명 사고 난 기억은 있는데, 사고가 났다는 사실 자체가 싹 지워지고, 가짜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죽은 자와 대면하는 사신 아르바이트라는 독특한 설정도 흥미로웠고, 소중한 건 언제나 잃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뭉클하게 와 닿게 만드는 에피소드들도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저자인 후지마루는 '내일 나는 죽고 너는 되살아난다'라는 라이트 노블 작품으로 전격소설대상 금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이번에 만나게 된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이라는 작품 역시 감성 미스터리라고는 하지만 캐릭터나 소재나 구성 등 모두 라이트 노블에 가까운 작품이다. 사실 라이트 노블이라는 장르는 주로 게임·만화·애니메이션 문화를 바탕에 두고 있어 10대 청소년들이 주요 독자인 오락소설이다. 장르소설과 만화,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소설이라고 보면 되고, 쉽게 말해 표지와 삽화에 일러스트가 있는 작품들이 많다. 캐릭터가 중요한 장르이다 보니 서사를 중시하는 일반적인 소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 나도 평소에 많이 읽는 장르는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라이트 노블이라는 장르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는 듯한 느낌이다. '표지가, 문체가, 캐릭터가 가볍다고 꼭 내용까지 가벼운 건 아니다'라는 김은모 역자의 말처럼, 무거운 소재를 가볍고 짧은 문체로 가볍게 풀어나가고 있는 이야기라 시작은 라이트하더라도, 그 끝에 뭉클하게 올라오는 감동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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