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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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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오셀로와 결혼했다가 파우스트에게 사랑도 받았다가 파리스에게 납치도 당했어요. 어때요? 이쯤이면 제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운 좋은 여자 같지 않아요?"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며 우리 마을의 여자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덧붙였다.

"그들에게도 기회는 있었죠." 그녀가 말했다.

"그들 대부분은 그런 흥분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겁니다."    - '이번에는 나는 누구죠?' 중에서

블랙 유머와 풍자의 대가인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반전 작가인 커트 보니것의 단편집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의 장편 소설 <5도살장>이 나오기 한해 전인 1968년에 출간된 책이다. 그는 장편소설에 앞서 초창기 수많은 단편소설들을 집필했고, 그 작품들을 잡지와 출판사에 팔아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 작품집에는 당시 보니것이 「코스모폴리탄」, 「플레이보이」 등 현재 우리에게도 이름이 익숙한 대중 잡지에 팔았던 2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2081, 모든 사람이 마침내 평등해졌다.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지 않았으며,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잘생기지도 않았고,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힘이 세거나 빠르지도 않았다. 이 모든 평등은 '평등을 위한 미국 핸디캡 부여 사령부' 요원들이 부단히 경계한 덕분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능이 평균을 훨씬 웃도는 사람일 경우, 높은 지능을 평균으로 낮추기 위해 정신적 핸디캡을 부여하는 작은 무선 수신기를 귀에 끼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법이었고, 정부의 발신기에서는 약 20초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보내 그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두뇌를 불공평하게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외모가 잘생긴 사람은 두껍고 어질어질한 렌즈를 끼운 안경을 쓰거나, 눈썹을 밀고, 코와 치아에도 보기 흉한 것들을 씌우고 다녀야 했다. 뭐 이런 이상한 세상이 다 있냐고?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해리슨 버저론' 속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이렇게 완전히 평등한 미래 사회나 인간이 노화하지 않고 영생하는 미래 세계 등을 배경으로 한 SF 장르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커트 보니것이 그려내는 디스토피아는 유머스럽지만 시니컬하고,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대화시켜 어둡지만, 매우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세계이기도 하다.

"내가 괴짜라는 건 나도 알아." 그가 말했다. "나를 괴짜로 만드는 건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지….. 만약 잉크 병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미치광이'가 나를 묘사하기에 족할 유일한 표현이네." 그가 내 말허리를 자르고 끼어들어 말하며 책상 등을 켰다. 그가 실눈을 떴다. "내가 어느 정도 미쳤는지 자네가 감이 안 잡힐 것 같으니 미리 대략 알 수 있도록 내가 자고 있어야 하지만 뜬눈으로 지새우는 시간에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을 말해 주겠네. 나는 어쩌면 내가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 '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 중에서

여자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가 예비 신부를 위한 잡지를 읽고 있던 어느 날, 남자가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린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그들은 서로 못 본 지 거의 1년이 되었다. 그는 수줍게 말한다. 산책 갈래? 결혼식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아 정신없이 바빴던 여자는 거절하지만, 군대에 있어야 했던 남자는 그녀를 위해 탈영했다고 말한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으면서 갑작스럽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는 남자와 화나고 당황스러운 여자는 그렇게 함께 산책길에 나서게 된다.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 고백은 과연 어떻게 진행될까? 커트 보니것이 그려내는 로맨스는 어떨까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읽어 보시길. 이번 작품집에는 '영원으로의 긴 산책'이라는 이야기 외에도 '이번에는 나는 누구죠?'라는 이야기에서도 소품 같은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굉장히 유쾌하고, 발랄하고, 코믹하기도 하고 귀여운 작품이라 함께 실려 있는 다른 작품들과는 굉장히 분위기가 다르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SF, 로맨스 장르의 이야기들 외에도 세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 우주 개발 경쟁, 당시의 정치 상황 등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도 있고, 전쟁을 직접 체험한 작가답게 반전 작품들도 있고, 보니것이 기술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도 있어 매우 다양한 색깔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이 나왔던 당시는 아직 그의 대표작인 '5도살장'이 나오기 1년 전이지만, 이 단편소설들을 통해 그러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반짝거리는 작가로서의 재능을 만나볼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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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18-12-07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정말 상큼해서, 커트 보니것이라는 이름만큼 표지에 눈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