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의 비밀 편지
스텐 나돌니 지음, 이지윤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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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음악이 청중을 변화시킬 때 그 주체가 작곡자인지 연주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문학과 미술도 마찬가지죠. 마법도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모순과 우연의 영역을 다뤄요. 그들은 '우연일 리가 없어'라고 말하죠. 놀라움에 겨워서 하는 말이지만 누가 그걸 했는지, 혹은 누가 하긴 한 건지 알아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건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은 그걸 보고서도 자신들의 눈을 믿지 않죠.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기적을 신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적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돼요. 바로 그걸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겁니다."   p.157~158

이 책은 파흐로크 할아버지가 손녀 마틸다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파흐로크가 첫 번째 편지를 쓸 때 그는 106세였고, 마틸다는 생후 3개월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다섯 살 6개월이 되었을 때, 마지막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미처 끝맺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그때 그의 나이 111세였고, 그 편지들은 12년 후에 마틸다에게 전달이 되어야 했다. 마법사였던 파흐로크 씨는 그렇게 손녀에게 총 열 두 통의 편지를 남긴다. 편지에는 그가 마법사로서 어떻게 마법을 연마하고 능력을 익혔는지부터, 마법의 대가가 되었지만 이후의 삶에서 라디오 수리공, 발명가, 심리치료사 등으로 신분을 숨긴 채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 그의 삶 전체가 담겨 있다.

분명 마법을 소재로 하고 있으니 판타지 장르의 소설처럼 보이지만, 막상 진행되는 스토리는 현대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지혜를 다루고 있어, 마치 자기계발서나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마법이라는 특수한 기술을 가지고 살아가는 남자가 현실 세계에서 튀지 않고, 모나지 않게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이라는 것이 다소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신선하게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했다. 마법이 사라진 세상에 맞서 자신만의 기술로 한 세기를 살아온 한 남자의 전례 없는 삶의 역사라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흥미진진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말이다.

 

마틸다, 우리가 마법의 힘으로 단번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실하고 믿음직한 사람, 다른 사람을 도울 일만 기다리는 사람, 그리고 언제까지나 이기적인 일은 도모하지 않을 사람 말이야. 선한 마음을 마법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럼 우리는 천사가 될 거야. 그런데 천사로 살면 행복할까? 그건 회의적이구나. 아마도 그리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아. 그렇게 되면 마법사의 삶이 소름 끼치게 지루할 것 같다. 우리 모두 자동으로 착해진다면, 크든 작든 그 어떤 노력도 필요 없을 테니까.   p.342

마법의 기술들을 제목으로 한 목차부터 재미있었다. 첫 번째 편지인 '팔 늘이기' 부터, 공중에 뜨기와 날기, 투명인간 되기, 벽 통과하기, 강철 되기, 생각 읽기, 돈 만들기 등등... 파흐로크 씨는 정말로 손녀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술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벽을 통과하는 기술에 대해서 알려 주면서, 벽은 커피에 적신 비스켓 처럼 한순간에 부드러워지지만, 조금은 찐득거릴 수도 있다고. 보통의 벽들은 통과하자마자 곧장 닫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본래의 강도로 돌아가기 때문에, 만약 자신에게 총알이 날아들게 되면 그 탄환은 벽에 그대로 박히게 된다는 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벽 뒤에 무엇이 있는지 꿰뚫어 보는 능력은 나이를 좀더 먹어야 찾아오니, 절대 경솔하게 벽을 향해 돌진하면 안 된다고, 혹시 그 너머에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하고, 고층 외벽을 뚫고 나와 허공에서 팔다리를 허우적대는 것은 위험하니 잘 살펴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만화 같은 상황에서, 정말 판타지 영화스러운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것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 동안 깨닫게 되는 삶의 지혜이다.

 

사랑하는 마틸다, 끈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배우렴. 모든 능력들은 끊임없이 시도하다 보면 저절로 얻어지는 법이란다. 때로는 오랫동안 발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마법은 어느 순간 선물처럼 나타난단다.

'마법'이라고 하면 해리포터 시리즈나 판타지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 속에서 등장하는 마법이라는 것은 1차 세계대전부터 현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통과하고, 단단히 현실에 발을 딛고 서있는 느낌이라 그런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마법을 이용하면 손가락 두 개를 책등에 얹는 것만으로 1분 안에 모든 내용을 파악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독서를 손쉽게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두려움은 나쁜 것이 아니며, 용기는 무조건 필요하다고, 그리고 마법사는 마법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고, 특별한 재능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텐 나돌니는 이 작품을 통해서 마법사의 눈으로 독일 역사의 굴곡진 마디마디를 짚어내면서 우리가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마법에 대한 설레임과 위로를 이끌어낸다.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12가지 마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모든 마법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믿음, 진짜로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 모두 각자 인생의 마법사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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