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부서진 밤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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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안은 발길을 들여놓는 순간, 대낮임에도 사방이 어두웠다. 요동성의 성벽보다 높은 양쪽의 절벽 덕분에 햇빛이 들지 못한 것이다. 거기다 절벽이 검은색 칡넝쿨로 덮여 있어서 검게 보였다. 그런 기괴한 광경에 어디선가 시체가 썩는 것 같은 퀴퀴한 냄새가 났다. 말갈족에게 쫓기는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로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앞장선 욱래도 같은 생각인지 숨을 헐떡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대낮인데 왜 이리 으스스하지?"    p.41~42

지금은 함락된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 장군을 찾기 위해 요동에 위치한 망월향에 도착한 세활과 그 일행은 퇴로를 막아선 말갈족를 피해 짙은 안개를 뚫고 가까스로 계곡 안으로 들어선다. 계속 쫓아오던 말갈족은 알 수 없는 존재의 공격을 받아 물러났지만,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짙은 안개와 기분 나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잔뜩 긴장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칼로 베어도 죽지 않는 정체 모를 괴물의 습격을 받게 된다. 박쥐처럼 날개가 달려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칼날이 깊숙이 박혀도 피가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고, 늑대 같은 이빨을 지니고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는 괴물의 존재는 무엇일까. 겨우 그들을 피해 계곡 안으로 들어간 세활과 일행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방금 전까지 그들이 안개로 뒤덮인 계곡에서 정체불명의 괴물과 싸웠다는 사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온한 곳이었다. 이상한 건 싸울 수 있는 건장한 어른은 없었고, 아이들과 노인들만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죽지 않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에 대해 알고 있는지, 과연 이곳에 양만춘 장군이 있을지,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올 여름에 조선을 배경으로 좀비 액션 영화가 개봉했던 걸 다들 기억할 것이다. <창궐>은 좀비라는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를 조선시대로 가져왔다는 설정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던 작품이었다. 극중 등장하는 야귀란 존재는 좀비와 뱀파이어의 성격을 일부 차용해 만든 괴물이었다. 조선시대라는 특수한 배경과 야귀의 결합만으로도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이번에 만난 소설 역시 역사와 호러가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이다. 한국 장르소설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정명섭 작가는 좀비라는 소재를 고구려라는 시대로 가져온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부흥군을 이끌어온 세활이 지금은 함락된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 장군을 찾기 위해 망월향으로 향하는 여정이 주요 스토리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양만춘 장군 역시 올 여름 영화 <안시성>이라는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물이라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영화 <안시성> 보다 한참 뒤의 시점이긴 하지만, 교차 진행되는 세활의 과거 속 어느 부분은 영화와도 교집합이 있으니 어느 정도 익숙한 배경이기도 하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그런 존재들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머물면서 죽음만 갈구하는 존재들, 몸은 있되 마음은 없고,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존재들요."

리뉴의 말에 세활은 계곡에 들어오면서 안개 속에서 마주쳤던 그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육신이 움직이는 망자입니다. 빛을 두려워하고, 사람처럼 도구를 다루거나 말을 못 하기는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는 존재들이에요."   p.193

세활을 비롯한 무리들은 군대끼리의 싸움으로는 당을 이길 수 없는 전력이고, 신라는 그들을 이용하려고만 들고 있는 상태라, 양만춘 장군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고 그걸 토대로 적과 싸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양만춘 장군이 살아 있는지, 정확히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는지 조차 아는 사람이 없다. 단지, 그가 죽었다는 걸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디선가 살아 있기를, 그리하여 흩어진 민심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는 이 시대를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 정도로 가까웠던 시대'였다고 말한다.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살아 있지만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시대적인 배경에도 해당되지만 좀비라는 죽음과 가까이 있는 존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 흥미롭다. 살아 있는 시체들이라는 것이 실제로 죽은 뒤에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나라 없이 살아야 하는 백성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테니 말이다.

기존에 좀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꽤 읽어본 편인데,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여타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 흥미로웠다. 이는 '좀비 전문가'이기도 한 정명섭 작가가 이들을 '일종의 피해자'로 보고 있다는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좀비라고 하면 인류를 멸망시키는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게 마련이지만, 사실 대부분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좀비가 되어 버린 존재들이 이들이기도 하니 말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좀비라고 명확하게 지칭되지는 않을 뿐이지 모든 문화권에는 죽은 사람이 되살아서 다시 산 사람 곁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의 설화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용재총화>라는 책에서 좀비와 비슷한 존재가 등장한 적이 있고, 이 작품은 그 얘기를 듣고 구상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 역사 속에 좀비 혹은 그것과 비슷한 존재가 있다면 어떻게 얘기를 풀어 갈지가 이 작품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좀비는 무덤에서 일어났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며, 죽었지만 살아서 움직이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존재'이다. '하나하나에게 월등한 능력은 없지만 모이게 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좀비들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익명의 대중으로 투영될 수도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좀비들은 그 배경부터 조금 색다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대중적인 좀비와는 전혀 다를 수 있으니 보다 신선하고, 색다른 좀비물을 만나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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