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맨 앤드 블랙
다이앤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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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벨맨이 열 살하고도 나흘이 되었을 때 떼까마귀들은 자신들의 슬픔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 위험한 곳에서 떠났다.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나무를 볼 수 있다. 그렇다. 바로 지금, 당신의 시간에서. 그러나 그 가지에서 떼까마귀는 한 마리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떼까마귀들은 생각과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    p.167

대저택의 페허에 숨겨진 가족의 비밀이 드러나는 고딕 미스터리 <열세 번째 이야기> 이후 다이앤 세터필드는 장장 7년에 걸친 자료조사와 집필 끝에 두 번째 소설을 발표한다.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최초의 장례용품 전문점이 문을 연다. <벨맨 앤드 블랙>은 죽음을 전시하고 애도를 파는 가게를 중심에 두고 미스터리를 품은 빅토리아 스타일의 유령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19세기 영국 휘팅포드의 작은 마을, 주인공 윌리엄 벨맨이 열 살이 되고 나흘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강과 숲 사이의 들판에 있었고, 그곳은 떼까마귀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먹이를 찾아 땅을 쪼아대는 들판이었다. 윌리엄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자주 있을 법한 허세로 아주 멀리 있는 나뭇가지의 새를 맞출 수 있다고 자신한다. 사정권을 한참 벗어나 들판 중간쯤에 있던 그 새를 맞추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고, 소년들은 그의 허세를 터무니없다고 비웃었다. 윌리엄 자신 조차 말이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높고 멀리 날아간 돌멩이가 자신의 여정을 마쳤고, 아직 부리가 검은 어린 새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며 죽었던 것이다. 열 살배기 영웅이 으레 그러듯 윌리엄은 미소 지었고, 우쭐해 했지만, 멀미가 났고 창피했으며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랫 동안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된다.

 

 

"벨맨&블랙요. 장례용품을 파는 엠포리엄."

"블랙 씨 되시나요""

벨맨은 가슴이 철렁했다. "전 벨맨입니다."

"그렇다면, 벨맨 씨, 장례용품이라면 제대로 만드셔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니까요. 그게 곧 미래죠, 안 그런가요? 나의 미래. 당신의 미래. 모두의 미래."    p.233~234

이야기는 벨맨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그가 결혼을 해 가족을 꾸리고, 방직 공장에 이어 장례용품 전문점을 새롭게 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죽음을 전시하고 애도를 파는 가게'라는 설정이 너무도 고딕 미스터리와 잘 어울려서 시작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부분이 나오는 것은 두툼한 페이지의 중반 이후 2부에 가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윌리엄 벨맨은 영리하고 잘생겼으며, 교회 성가대의 스타였고, 아가씨들의 인기를 한 몸에 누리던 소년이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백부는 그를 믿고 벨맨 방직공장에 고용해주었고, 노련한 사업가적인 기질을 타고난 그는 방직 공장이 전에 없던 성장을 거듭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본격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은 런던으로 무대를 옮긴 2부에서부터이다. 가족들이 하나 둘 열병에 걸려 죽어가면서부터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벨맨이 어린 떼까마귀를 본의 아니게 죽였던 그 순간부터 얼핏 등장했던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가족들의 장례식 장에서도 끊임없이 벨맨의 눈에 띈다. 아마도 죽음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는 이 존재는 벨맨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로, 그는 검정색 차림의 남자를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급기야 그가 영국 최초의 죽음에 대한 물건을 파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도 블랙이라는 남자와의 동업으로 진행된다. 생각보다 도처에 널려 있는 죽음들이 벨맨의 삶을 끊임없이 침투한다. 죽음은 그를 슬픔에 잠기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시종일관 그의 삶에 등장하는 의인화된 죽음이 그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애도를 팔아 돈을 벌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복잡한 계산에 심취한다. 애도의 단위는 무엇인가? 슬픔을 어떻게 세고, 무게 달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그렇게 암울한 계속을 하며 마음속 주판알을 튀겼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과 거래를 하기에 이르게 된다.

 

"예전에는 죽은 자를 석조 제단에 올려놓고 떼까마귀들이 뼈를 바르도록 방치했지요.  그거 아셨어요? 아주 오래전. 우리의 십자가들과 첨탑들과 성경책들이 생겨나기 이전. 그리고 이 모든 것들......"

 

모두 누군가를 잃는다. 또 누군가는 모두를 잃는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울고 애도한다. 당연히 죽음은 유행을 타지 않으니, 벨맨이 구상한 사업에 대한 수익은 장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강한 자나 약한 자,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들 모두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점이 벨맨 앤드 블랙의 사업을 번창하게 만든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이야기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망자를 ‘저세상’으로 인도하고 돌아오는 존재인 떼까마귀에 대한 묘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둡고 음습하고 불안한 기색이 만면에 깔려 있는 이야기지만, 다이앤 세터필드의 이야기는 여전히 아름답다. 전작인 <열세 번째 이야기>에 등장했던 비다 윈터의 말처럼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마치 가족과도 같아서, 우리가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그들을 잃었다고 해도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 있으니까. 그들에게서 멀어지거나 등을 돌려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그러니 우리는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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