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그렉 올슨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완전 미쳤구나." 오웬은 리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말도 안돼, 리즈. 당신이 그랬을 리 없어."

리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단어들이 무딘 스테이크 나이프처럼 목 안에 콱콱 박혔다. 한 번 더 말했다간 피를 토하고 말 것이다.   p.123

리즈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커피와 각성제를 섞어 마시며 밤새 책과 컴퓨터를 보고, 다음 날 힘겹게 일어 났다. 그녀는 스물아홉 이었고, 더 이상 젊지 않았으며, 이번이 두 번째 변호사가 되기 위한 시험이었다. 이 시험은 그녀에게 전부나 다름없었고, 그녀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험을 몇 시간 앞둔 아침, 그녀는 각성제를 먹어 흥분 상태인데다 밤새 꼬박 공부한 탓에 머리까지 멍했다. 그 상태로 급하게 차고를 빠져나가려고 후진을 하는데, 쿵 소리가 나면서 뭔가 들이받은 느낌이 나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개나 고양이라고 생각했지만, 차에 치인 것은 옆집의 세 살 짜리 소년 찰리였다. 천사 같은 아이였고, 캐롤과 데이비드 부부 역시 리즈와 오웬부부와 친분이 있었다. 특히 리즈와 캐롤은 언니, 동생처럼 서로를 대하며 의지하는 사이였다. 대체 이제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누구나 이런 상황이라면 눈 앞이 캄캄하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가장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각정제를 먹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데다, 늦어서 허둥지둥 나가는 길이었다.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나쁜 방식으로 그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차고에 그대로 두고 방수포로 덮어놓은 뒤 변호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운전해서 그 자리를 피해 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사고가 사건으로 바뀌었고, 그녀는 이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만다.

 

 

리즈는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에 경악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생각도 못 했는데 그녀가 저지른 짓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얼음 덩어리처럼 산비탈을 굴러 내려온 거짓말이 점점 커지면서 죄 없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는 눈사태가 되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떤 일이 닥쳐오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p.325

한편, 전화를 받느라 아주 잠깐 아이에게 눈을 떼고 있었던 캐롤은 찰리의 실종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다. 그녀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에스더 반장과 젊은 순경 제이크가 조사를 시작한다. 아내 때문에 자신의 성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남편 오웬은 리즈를 대신에 시체를 처리하고, 끊임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리즈는 정신적으로 점점 무너져 간다.  이야기는 완전범죄를 꾀하는 오웬과 그의 곁에서 미칠 것 같은 리즈, 아이를 잃고 절망에 빠진 캐롤과 자식의 실종보다 레스토랑의 위기에 더 신경 쓰는 데이비드, 그리고 용의자와 목격자를 만나며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사실 이야기가 시작할 때만 해도, 플롯이 단순하니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전개로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페이지가 한 장씩 넘어 가면서,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감정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누구도 겉만 봐서는 모르는 게 사람이니 말이다. 사람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외모나 재산, 교육수준 등 보여지는 모습과 행동, 말투, 관계를 대하는 방식과 주위 사람들의 평판 등을 놓고 봐도 마찬가지이다. 완벽해 보이는 모습 이면에 추악함이 감춰져 있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문을 닫은 뒤 각자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리즈와 오웬, 캐롤과 데이비드 부부에게도 역시나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비밀이 있었고, 그것들은 우발적인 교통 사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과 더불어 점점 사태를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치닫게 만든다. 그렇게 수십 년간 묻혀 있던 과거와 갈등이 드러나고, 교통사고를 기폭제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극은 놀라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준다. 특히나 리즈와 오웬, 캐롤과 데이비드라는 네 명의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고, 그들의 심리 묘사 또한 매우 섬세하게 보여지고 있어 생생한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범죄스릴러의 대가 그렉 올슨이 작가 생활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발표한 심리스릴러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완벽한 페이지터너가 아닌가 싶다. 그의 다른 작품도 어서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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